360화. SARS-CoV-2 (3)
연구는 힘들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일이기에 그렇다. 남들이 가지 않았던 길, 흙투성이 진흙탕,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방법을 참고할 자료조차 없이 동원해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것이 바로 연구다. 그렇기에 연구라는 괴물은 사람을 갈아서 잡아먹고는 한다.
특히, 전생에 업보를 쌓은 대학원생이라는 가련한 이들을 가장 맛깔나게 갈갈갈 잡아먹는다.
“……예? 저보고, 뛰라고요?”
“응.”
“…….”
라키엘은 침묵했다.
사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약간은 기분이 들떠 있던 그였다. 용왕의 코로나를 치료해 주어야 한다는 엄청난 과제가 주어졌다.
그걸 자신이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아니,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현대의 수많은 제약회사와 연구진도 아직 해내지 못한 일이니까.
그런데 그걸?
자신이?
혼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때 마침 기막힌 지원군이 나타났다. 용왕 본인이 직접 도와주겠단다. 함께 연구를 하잔다. 가히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든든했다.
한편으로는 기대도 되었다. 무려 용왕이니까, 인간과 다른 방향으로 엄청나게 발전한 지식과 지혜를 선보이겠지, 라는 그런 기대.
……는 무참히 박살 나고 있었다.
“당연히 뛰어야지. 너님도 코로나 걸렸지?”
“아, 예.”
“그러니까 뛰어야지.”
“…….”
그러니까 왜요?
라키엘은 온몸으로 묻고 싶었다.
용왕 베르키스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열심히 뛰면 심장이 쿵쿵 뛰겠지? 혈액순환이 빨라질 거고. 신진대사도 빨라질 거야. 그렇지?”
“그렇겠지요.”
“그러면 병의 진행도 더 빨라지겠지?”
“그럴…… 거 같긴 합니다만…….”
“그럼 죽을 거 같은 상태도 더 일찍 오겠다. 그렇지?”
“…….”
“한계를 돌파하는 거야.”
“…….”
“돌파한 뒤엔 더 강해져 있을 거고.”
“…….”
“왜? 나님 생각이 마음에 안 드니?”
“예.”
“그렇다고 나님이 뛸 수는 없잖아.”
“어째서 말입니까?”
“나님의 체력은 무한대라서. 게다가 코로나는 드래곤의 건강과 생명에는 아무런 지장을 주지 못한다며. 그러니까 한계 같은 것도 안 찾아올 거고.”
“그렇기는 한데…….”
“그러니까 너님이 한계와 맞서 싸워야지?”
“아니, 그게 무슨…….”
라키엘은 황당함을 억누르며 항변했다.
“용왕님? 일단 말씀을 드리기 전에 확실하게 짚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응, 짚어보렴.”
“용왕님과 제가 함께 연구를 진행하기로 했으니까 말입니다. 연구에 관한 일이라면 잡다한 예의보다 사실을 우선해서 말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막 일침 놓으려는 거야?”
“연구를 위해서라면요.”
“그래. 그러렴. 대신 나님 마음이 살짝 가녀린 편이니까 그건 신경 써 주고.”
“…….”
퍽이나.
라키엘은 용왕의 말을 상큼하게 씹으며 말했다.
“일단, 용왕님께서 저보고 뛰라고 말씀하시는 취지가 무엇인지는 알겠습니다. 병의 진행을 가속하고, 그 상태에서 자가치유를 유도하고, 회복기에 생성될 항체를 얻겠다…… 맞습니까?”
“너님, 똑똑하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생각하신 그 방법은 허무맹랑합니다.”
“어째서?”
“뒤가 없는 방법이니까요. 막말로 제가 죽으면 모든 게 끝장나는 방법이지 않습니까.”
“너님만 끝장이 나는 방법인데?”
“예?”
“나님은 괜찮을 건데. 하하.”
“…….”
“정 걱정이 되는 거라면 여벌의 목숨 하나쯤은 선물해 줄 수도 있고. 어때? 300년 전에도 여벌 목숨 받아서 되게 야무지게 써먹은 애가 있었거든.”
“그런데 지금은 마법 사용을 못 하시지 않습니까.”
“어? 아뿔싸.”
“…….”
용왕만 아니었으면 한 대 때렸다, 진짜. 라키엘은 파괴적 충동(?)을 억누르며 말했다.
“게다가 신진대사의 가속을 위한 거라면, 저한테는 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래? 그럼 그거 쓰면 되겠네.”
“……이 방법 자체가 답이 아니라고요.”
“쯧.”
“아닌 건 아닌 겁니다. 게다가 제가 얼마나 저질 체력인지 모르니까 그러시는 거 같은데, 말씀하신 방법처럼 뛰어대다간 정말로 죽습니다, 저.”
“그럼 너님은 어떡하고 싶은 건데?”
“우선 제 몸에서 항체를 추출하겠다는 의견에는 찬성입니다. 다만, 뛰어서 죽을 위기를 만들고 그걸 극복하겠다…… 라는 건 말도 안 되는 거고요. 대신 탕약을 달여볼까 합니다.”
“탕약?”
“예. 제 몸에는 그게 잘 맞을 듯하니까 말입니다.”
사실은 당연한 이야기다. 따지고 보면 굳이 위험한 방법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탕약과 침술, 뜸으로 몸을 다스리면 된다.
중증으로 넘어가지만 않으면 된다. 그렇게 면역력을 끌어올리면서 버티면? 충분히 자연치유가 될 것이다.
그 후에는?
‘아스라한 심법과 써클 슬롯을 동원하면 돼. 그러면 내 몸에 생겨난 항체를 뽑아내서 용왕에게 줄 수 있을 거야.’
이쪽의 자연치유를 통한 항체를 확보하자는 용왕의 아이디어, 거기에 이쪽이 셀프로 시도할 수 있는 처방들. 그 결합이라면 충분히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탄식이 나왔다.
또, 코로나다.
“…….”
따지고 보면 한국에서 나름 건실하게 살아왔던 이쪽의 삶을 망가뜨린 것도 코로나였다.
수천, 수만의 안타까운 목숨을 앗아간 것은 물론이고, 이쪽의 인생 계획도 나락으로 빠뜨렸으니까.
솔직히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름 괜찮은 생활이었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재산이 없었지만, 쌓아둔 재산도 없었지만, 그래도 한의사라는 직업은 나름 수입이 괜찮은 편인 까닭이었다.
장밋빛 미래를 그렸더랬다.
한창 수입이 괜찮아지고 있었으니까.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은 안정적인 삶이 이어질 거라고도 여겼다. 그런 확신 속에 거액의 대출을 감행했고, 그 자금으로 개인 한의원을 차렸더랬다.
나름 자신이 있었다. 천재지변만 아니라면. 그런 일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잘 꾸려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코로나라는 천재지변이 일어났다.
‘후우.’
이게 트라우마라는 걸까. 당시에 느꼈던 아득함이 다시금 마음을 좀먹어오는 기분이었다. 라키엘은 짐짓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지금은 쓸데없는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라고. 당장의 일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그러니 우선 제가 스스로 대처해보겠습니다.”
“그럼 나님은?”
“그냥 조금씩만 도와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도움이라. 이를테면?”
“혹시 마룡굴에 비축된 약초가 있지는…… 않겠지요?”
“물론이지. 그래서 지난번엔 숙면대보탕 재료 가져오라고 너님한테 텔레포트 서비스도 해줬잖아? 지금이야 뭐 텔레포트도 못 써주게 됐지만.”
용왕 베르키스가 미간을 찡그리며 뒤통수를 북북 긁었다.
라키엘은 혹시나 하며 물었다.
“그럼 혹시, 마룡굴 근처의 숲에 어떤 종류의 약초가 자생하는지는 알고 계신지요?”
“나님이 그런 걸 알 것 같아?”
“아뇨.”
“그런데 왜 물어보니?”
“……죄송합니다.”
역시나.
용왕에게는 기대할 것이 별로 없겠다. 라키엘은 열악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나름 머리를 쥐어짰다.
‘일단 지금 확보된 약재는 지난번에 가져온 숙면대보탕 재료밖에 없는 거구나.’
숙면대보탕은 산조인탕과 삼물황금탕이 결합된 탕약이다. 즉, 이곳에는 산조인과 복령, 지모와 천궁, 지황과 황금, 고삼밖에 없다는 뜻이다.
보유한 재료를 떠올리던 라키엘은 미간을 찡그렸다.
‘부족해.’
아무래도 진짜로 근처 야산을 직접 돌아다니며 약재를 찾아봐야겠다. 하물며 지금은 머뭇거릴 때도 아니다.
“그럼 저는 다녀오겠습니다.”
사실은 오한이 올라오려는 기미가 조금씩 느껴졌다. 쉬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자신 외에는 약재를 찾으러 다닐 이가 없기 때문이었다.
데미안은 마룡굴 구석진 방에 격리시켰다. 다행스럽게도 마룡굴의 마수 하나가 데미안의 간호를 자처했다.
“꼬이? 꼬이이?”
소식을 듣고 날아온 가고일이었다. 석상으로 이루어진 가고일의 몸을 보며 라키엘은 안심했다.
생물체 타입이 아니니, 이쪽이나 용왕에게서 코로나를 받아 데미안에게 전파하는 일은 없겠구나 싶었다.
비로소 마음을 놓은 라키엘은 꼬슴이의 등에 올라탔다.
“꼬슴아?”
“꼬슴?”
“넌 괜찮겠어?”
“꼬스슴?”
“나한테 코로나, 옮을 수도 있는데.”
“꼬슴! 꼬스슴!”
“내가 마스크 잘 쓰고 장갑 끼고 있으면 괜찮을 거라고?”
“꼬스슴!”
“……그래, 고맙다. 혹여나 몸 상태가 이상한 거 같으면 바로 말해주고.”
“꼬슴!”
힘차게 외치며 꼬슴이가 땅을 박찼다. 그런데 마룡굴 밖으로 채 나가기도 전이었다.
출구로 이어지는 통로를 달리고 있는데, 저 앞쪽에서부터 누군가가 바쁘게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갑옷?’
번쩍거리는 금속성 질감.
걸어 다니는 마법의 갑옷, 리빙아머가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마치 히치하이킹을 시도하는 사람처럼. 혹은 꼭 알려야 할 무언가를 말해 주려는 것처럼. 그러다가 급기야 리빙아머가 통로로 후다닥 달려 나와서 앞길을 가로막았다.
“어엇?”
끼이이익!
꼬슴이가 급정거를 시도했다.
덕분에 가까스로 리빙아머와 교통사고(?)가 나는 사태를 면했다. 하지만 리빙아머는 그런 사실엔 신경도 안 쓰는지, 손짓발짓을 하며 이쪽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말했다.
“삐각! 삐가각? 삐각!”
“……예?”
“삐가가각! 삐각!”
“어, 으음, 말씀을 알아들을 수가 없는데 혹시…… 보여줄 것이 있으니 따라오라는 뜻인가요?”
“삐각!”
투구를 끄덕이는 리빙아머.
이내 이쪽의 대답도 듣지 않고서 몸을 홱 돌려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그 뒤를 따라갔다. 출구와 반대 방향이었다.
‘뭐지…….’
설마하니 함정으로 유도하는 건 아닐 거고. 이쪽에게 대체적으로 호의적인 마룡굴 마수들의 태도로 보아선 도움을 주려는 것 같은데. 이번엔 대체 무슨 도움을 주려는 건지 감도 오지 않았다.
캄캄한 통로를 따라 한참을 움직였다. 그동안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가 물거품처럼 스러졌다.
한국에 남은 황태자는 잘 지낼까. 친구들은 괜찮을까. 그리고 나는, 언제쯤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있을까.
다행히 상념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어둡던 통로가 어느 순간 넓고 환해졌다.
“삐가각? 삐각?”
리빙아머가 한쪽을 자랑스러운 손짓으로 가리켰다. 라키엘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리빙아머가 가리킨 곳. 그곳에는…….
“고구마?”
엄청난 규모의 고구마 잎과 줄기가 통로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단지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니었다. 잎사귀 하나가 거의 파초선, 아니, 우산 크기였다.
“저기, 리빙아머님?”
“삐각?”
“저한테 보여주시려던 게 이거였습니까?”
“삐각!”
“고구마를 보여주려고 하셨던 건가요?”
“삐가각!”
내내 끄덕여지던 리빙아머의 투구가 마지막 질문에는 가로로 움직였다.
사실 리빙아머는 고구마 때문에 라키엘을 안내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따로 있었다.
“삐각, 삐가각!”
리빙아머의 벙어리장갑이 움직여 커다란 잎사귀를 따냈다. 그리고 라키엘에게 내밀었다.
“삐가각, 삐각, 삑!”
나름 손짓발짓을 써가며 열심히 설명했다.
이 고구마 잎사귀는 용왕의 아내가 아끼는 것이라고. 평범한 인간인 용왕비는 가끔 몸살 기운이 느껴질 때마다 이 잎사귀를 우려내어 차처럼 마시곤 하는데, 그러면 어김없이 몸살이 쑥 가라앉았노라고.
다행히 리빙아머는 손짓발짓의 장인(?)이었다.
가히 판토마임에 가까운 몸놀림!
덕분에 두세 번 손짓발짓을 손보이니, 라키엘도 그 뜻을 어렴풋이나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게요? 약효가 좋다고요?”
“삐각!”
“…….”
설마.
라키엘은 혹시나 기분으로 거대 고구마잎을 향해 스킬을 발동하였다.
‘약초 탐색.’
딩동!
[약초 탐색 (Lv.2) 스킬이 발동됩니다.]
[<심마니 모드 HUD>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주위 10미터 이내의 약초를 자동으로 탐색하여 결과물을 시야에 표시합니다.]
[환자에게 유용한 약효를 지닌 약초는 형광성 연녹색으로 표시됩니다. 약초가 지닌 약효가 강력할수록 표시되는 색깔이 선명해집니다.]
[환자에게 유해한 독성을 지닌 독초는 형광성 붉은색으로 표시됩니다. 독초가 지닌 독성이 강력할수록 표시되는 색깔이 선명해집니다.]
[보물찾기 타임, On!]
지이이잉!
심마니 모드가 켜지며 시야가 바뀌었다. 바뀐 시야로 고구마잎을 쳐다보았다.
“……!”
그 순간, 라키엘은 넘실대는 아마존 대자연의 짙은 녹음 속을 질주하는 농부르기니 무르익을라고 벼벤다토르 논두렁 슈퍼차저의 호연지기를 안구 가득 느껴 버렸다.
녹색, 너무나 짙고 강렬한 녹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