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368화 (367/468)

368화. 마룡굴을 털어라 (1)

[방광 : 크크큭…… 마침내 날 깨워 버린 건방진 인간에게…… 금단의 힘을 줘볼까나…… 소변 참기 능력…… 1.5배…… 크큭…….]

“…….”

이건 뭘까.

진짜인 걸까.

뜻밖의 순간에 시야를 야물딱지게 채워오는 메시지의 물결을 향해 라키엘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당신의 방광이 깨어났습니다.]

[심장 : 야 근데 어디서 지린내 안 나냐?]

[허파 : 허…… 파학ㅋ]

[대장 : 확실히 나지 말입니다?]

[간장 : 그 증거로 허파 빡쳤음ㅋㅋ]

[위장 : 모르고 숨 크게 들이마신 거?]

[콩팥 : ……미안.]

[비장 : 왜 콩팥 네가 미안함?]

[콩팥 : 방금 깨어난 저거 사실 내 하청업체거든.]

[방광 : 크크크킄크…… 지린다…… 지려 버릴 테다…… 킄크…….]

[당신의 오장육부가 뉴비의 탄생을 기뻐하며 500 HP를 후원하였습니다.]

[당신의 내부에서 뉴비의 지린내를 중화하기 위한 환기 작업이 실시됩니다. 10분간 당신의 호흡량이 소폭 증가합니다.]

[현재 보유 중인 HP : 24,700]

역시나 메시지의 내용은 사실이자 실화, 그 자체였다. 거기에 더해서 소소한 추가 메시지가 떠올랐다.

딩동!

[당신은 방광을 일깨움으로써 육부(六腑) 수집 완료까지 3개의 장기를 남겨두게 되었습니다.]

[육부에 해당하는 장기를 모두 일깨울 시, 그에 걸맞는 수집 퀘스트 특별 보상이 주어집니다.]

[당신의 오장 / 육부 수집 현황]

[오장 (5/5) : 심장(☆), 간장(☆), 폐장(☆), 콩팥(☆), 비장(☆)]

[육부 (3/6) : 대장(☆), 위장(☆), 방광(☆), 소장(X), 쓸개(X), 삼초(X)]

[수집의 길은 멀고도 험하지만, 그 끝에는 찬란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화이팅♡]

“…….”

그러고 보니 벌써 육부의 절반을 일깨웠다. 오장을 모두 모았을 때는 정령과의 소통 능력을 얻었는데, 육부 수집을 완료하면 어떤 보상을 받게 될까.

라키엘은 치미는 궁금증을 한쪽으로 눌러두고는 고개를 들었다. 지금은 풀 길이 없는 호기심보다 중요한 물음이 들려온 까닭이었다.

“자. 너님 소원대로 고구마 종자와 레시피를 전부 보냈단다? 그럼 이제 우리 볼일은 끝난 거겠지?”

고막을 콕콕 찔러오는 용왕 베르키스의 목소리. 과연 돌아보니 베르키스가 탕약 사발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아까 이쪽이 달여준 숙면대보탕이었다.

라키엘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잽싸게 입을 열었다.

“잠깐만요!”

“……또 뭔데.”

“아직 하나 더 남았습니다.”

“후우. 귀찮…….”

“으신 건 알겠지만, 약속은 약속이니까 말입니다?”

“너님이 살던 별궁으로 돌아가는 포탈?”

“옙. 아까 말씀하셨던 것처럼 1시간 동안 유지되는 버전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주 당연한 것처럼 요구를 하네?”

“용왕님께서 친히 언약하신 부분이니까요?”

“아 또 죽이고 싶다.”

“…….”

“아까 죽였을 때 솔직히 진짜 통쾌했는데.”

“…….”

“목숨 하나 더 줄 테니까 또 죽이면 안 돼?”

“안 됩니다.”

“왜?”

“목숨, 더는 못 주실 거잖습니까.”

“너님이 그걸 어떻게 알아?”

“그냥, 추측을 해봤습니다.”

용왕 베르키스의 가호로 내려주는 여벌의 목숨이 무제한일까? 아니. 그런 기적은 한 번이 한계겠지. 한 번만으로도 이미 세계의 질서를 일그러뜨리는 일일 텐데. 그게 반복해서 가능하다는 건 너무 사기일 테니까.

역시나 그런 추측이 맞았던 걸까. 베르키스가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쩝 다셨다.

“쯧. 이래서 똘똘한 놈들이 싫어. 모르는 척 그냥 죽어주면 얼마나 좋아.”

“죄송합니다?”

“하나도 안 죄송한 얼굴인데?”

“어디를 봐서요?”

“대체적으로?”

“그 점 또한 죄송합니다?”

“이거 봐. 안 죄송한 거 맞다니깐?”

“저기, 그런데 말입니다.”

“또 뭔데.”

“제가 가만히 생각을 해봤는데, 저거…….”

라키엘이 조심스럽게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복사된 인슐린 약품, ‘트레제오’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저거, 생각보다 양이 엄청난 듯해서 말입니다. 어지간해서는…….”

“한 시간짜리 포털로는 다 옮기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옙.”

“포털 유지 시간을 늘려달라고?”

“가능하실까요?”

“가능은 한데 나님 기분이 문제겠지?”

“귀찮으실까요?”

“당연히.”

“절 예쁘게 보아 주셔서 서비스 30분만 더 넣어 주시면 안 될까요?”

“나님이 노래방 사장이니?”

“노래방을 아십니까?”

“18번 곡도 있는데?”

“정말요?”

“태신노래방 기계 기준으로 48636. 방탄조끼단, 가을날.”

“그 곡을…… 혼자서요?”

“나님은 호흡량이 무제한이니까?”

“과연! 훌륭하십니다!”

“마음에도 없는 아부는 됐고.”

베르키스가 손을 휘휘 저었다. 역시나 인간은 귀찮다. 특히 이렇게 똘똘한 놈들은 더 귀찮다. 차라리 요구를 들어주고 얼른 보내 버리자는 생각이 들었다.

“2시간. 됐냐?”

“감사합니다!”

“마음에도 없는 감사도 됐고.”

딱!

베르키스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 직후, 허공에 지름 3미터짜리 포털이 뚫렸다.

……뻐엉!

시원한 소리와 함께 포털 너머로 보이는 새로운 풍경! 약간 어둑한 가운데 가지런하게 정돈된 선반들이 보였다. 약간은 쌉싸름하고도 구수한 향기도 솔솔 풍겨왔다. 한약재 냄새. 익숙한 풍경. 별궁 한의원 지하의 약재 보관 창고였다.

“자. 너님 소원대로 2시간짜리 포털을 열어줬…… 으음?”

귀찮다는 듯이 성의없게 베르키스가 말해주려던 순간이었다. 포털이 열리는 것을 본 라키엘이 잽싸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아앗!

라키엘이 안내 방송(?)은 듣지도 않고서, 냅다 포털을 향해 달려갔다. 삽시간에 포털 건너편으로 몸을 던졌다. 별궁 한의원 지하 약재창고로 진입했다. 그러고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선반 사이를 순식간에 지나치고, 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 복도로 달려나가며 목청껏 외쳤다.

“전원! 비상 집합-!”

얼마나 있는 힘껏 외쳤는지 성대가 기겁할 정도의 성량이었다. 하지만 라키엘은 멈추지 않았다. 달리기도, 외침도 그러하였다.

“집합! 나! 황태자! 라키엘 아드리아 마젠타노가 명하노니! 내 외침을 듣는 자들은 모두 집결하라!”

지하실 복도를 내달리며 외쳤다. 뛰어올라가며 외쳤다. 1층 로비를 가로지르며 외쳤다. 한의원 복도를 지나치며 또 외쳤다. 탁 트인 앞마당 정원을 누비며 더욱 힘껏 외쳤다. 덕분에 평온하던 별궁이 들쑤신 벌집처럼 소란스러워졌다.

처음에는 모두가 라키엘의 외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중요한 일을 위하여 데미안을 데리고서 어딘가로 떠난 황태자였다. 별궁 식구 모두가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예고도 없이, 황태자가 지하층에서 뿅 하고 나타나서는 별궁 전체를 뛰어다니며 외쳐대기 시작하였다.

다들 얼떨떨할 수밖에 없었다.

“어? 이거…… 전하 목소리인데?”

“정말? 어? 그런 거 같은데?”

“누가 장난 치는 거 아닌가?”

“아닙니다. 정말로 전하 목소리 같은데요?”

“어어! 저기!”

“전하?”

라키엘의 외침을 들은 이들이 처음에는 서로를 쳐다보며 의아해하였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도중에 뛰어다니는 라키엘의 모습을 목격하였다. 의아함이 경악과 깨달음으로 변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저, 전하께서 돌아오셨다!”

“전하를 뵙습니다!”

모두가 황급히 예를 표하였다. 그러나 라키엘은 전혀 개의치 않고 또 외쳤다.

“예를 표할 시간에 집하아아압! 본관 앞 정원으로 집합!”

“……!”

황태자의 지엄(?)하고도 절절한 외침에 모두가 무의식중에 반응했다. 별궁 식구들이 다급히 본관 앞 정원으로 속속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예외란 없었다.

별궁의 시종과 시녀는 물론이었다. 근위대원과 특근대원들도 경계 임무를 수행하는 자들을 제외하고는 비번인 자들까지 모조리 집결했다. 웨어울프 간호사들도 라키엘의 목소리에 귀를 쫑긋거리며 뛰어오기는 마찬가지였다.

“뽀보복! 뽀복!”

“코몽! 코모몽!”

“누우우우우-!”

“꾸꺄아! 꺄!”

별궁 한의원에 남아서 임무를 수행 중이던 환상종, 불사복치 뽀복이와 코끼리 코몽이도 냅다 달려왔다. 정원 한구석에서 되새김질을 하던 우루스와, 그 등판에 엎드려 광합성을 하던 애벌레 꾸꾸도 예외가 아니었다.

심지어 한의원의 혈액분석기, 피믈리에로 일하던 뱀파이어들마저도 집합했다.

“……후우, 좋아. 다 모였지?”

라키엘은 숨을 고르며 모두를 돌아보았다. 불과 10분 남짓한 사이에 별궁 식구들 대부분이 모였다. 흐뭇했다. 오랜만에 보는 이들의 면면이 반가워서. 이제부터 이들이 이루어낼 혁혁한 성과가 예상이 되어서.

그는 모두를 향해 간략하게 말했다.

“다들! 오랜만에 봐서 반갑다. 하지만 지금은 해후를 나누기보다는 더욱 중요하고도 긴급한 일을 처리해야 할 순간이야. 그래서 모두를 모이게 하였다. 이제부터 우리는! 별궁 한의원 지하 약재 창고에 열린 포털을 통해 용왕 베르키스가 기거하는 마룡굴로 건너가게 될 것이다!”

“……!”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라키엘의 작전 설명이 이어졌다.

“그곳으로 건너가면 똑같은 물건이 산더미처럼 쌓인 광경을 보게 될 것이다. 먼저 우루스? 뽀복이와 코몽이? 너희는 그 산더미처럼 쌓인 물건을 이곳으로 가져오면 될 거야. 알겠지?”

“누!”

“뽀!”

“코!”

우루스와 두 환상종이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라키엘의 비장해진 눈길이 나머지 인원들을 좌악 훑어보았다.

“그리고 나머지 모두의 목표는! 마룡굴 곳곳에 비축된 금은보화다!”

“……!”

모두의 눈이 더욱 휘둥그레졌다. 라키엘의 입에서 모두의 귓구멍마저 번쩍 열리게 하는 발언이 나왔다.

“용왕 베르키스 님께 허락을 받았다! 마룡굴의 금은보화를 마음껏 가져와도 좋다고! 그런데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는 고작 1시간 50분 남짓! 하여 모두에게 약속하노니! 이제부터 마룡굴 약탈을 감행할 너희 모두는! 각자가 마룡굴에서 가져오는 금은보화의 5퍼센트의 금액을 인센티브로 받게 될 것이다아!”

“……우오오오오!”

모두의 귀가 번쩍 열리고 눈동자가 화르륵 타올랐다. 별궁 본관 앞마당이 삽시간에 광기의 도가니에 휩싸였다. 그 선봉에 라키엘이 있었다. 그는 광기의 조율자이자 지휘자가 되어 모두의 등짝에 탐욕의 채찍질을 선사하였다.

“가즈아아아!”

“크오오오!”

모두가 돌진했다.

인센티브 5퍼센트.

그 황금빛 약속 앞에선 근엄한 근위대도, 거친 특근대도, 야성의 웨어울프도, 성실한 시종 시녀도 없었다. 그저 위아 더 월드 자본주의의 노예를 자처하며 내달렸다.

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힘찬 연어들처럼. 광활한 아프리카의 평원을 내달리는 힘찬 누 떼처럼. 모처럼의 랜선 효도를 위하여 임양웅 콘서트 구매 버튼을 광클릭하는 이 땅의 아들딸처럼.

사상초유의 합법적 마룡굴 노략질 사건, 그 장대한 서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