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9화. 마룡굴을 털어라 (2)
“가즈아아아!”
“크오오오!”
인센티브.
보너스.
돈까스.
모두가 이 험난하고 막막한 세상 한쪽 구석을 아름답게 수놓는 단어이자 개념이다. 돈까스는 바삭바삭하고 인센티브는 달달하며, 보너스는 짜릿하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기억해라! 나, 라키엘 아드리아 마젠타노가 황태자의 이름으로 약속하노니, 인센티브 5퍼센트! 각자 가져오는 금은보화의 5퍼센트를 챙겨주겠다!”
“우오오오!”
“인! 센! 티브!”
“5퍼센트으으!”
“황태자 전하 만세!”
“용왕 베르키스 만세에!”
정원에 집합했던 별궁 식구 모두가 돌진했다. 인센티드 5퍼센트. 무려 황태자가 보증하는 약속. 그 앞에서 근위대원들이 근엄함을 벗어던졌다. 특근대원들의 눈동자가 금색으로 변했다. 웨어울프 간호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서둘러!”
“아 빨리빨리 좀 갑시다!”
“크르르릉!”
“아잇, 새치기는 하지 마시구요!”
시종들이 앞다투어 달렸다. 시녀들도 질세라 기를 썼다. 모두가 별궁 지하실에 생성된 마룡굴행 포털을 향해 맹목적으로 달렸다. 신분이고 계급이고 없었다. 먼저 달려가는 사람이 장땡이었다.
물론 그중에는 별궁 근위대 지휘관, 프란델 경도 있었다.
“으오오오옷! 1등!”
“크아아악! 2등!”
프란델 경에 이어서 특근대 최연장자 세르지오가 장렬한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선보이며 마룡굴로 입장(?)했다.
3등은 수간호사 아니스였다.
“크르릉! 헥헥헥!”
그 뒤를 이어서 별궁 시종장이 노익장을 과시하며 탐욕과 연륜의 주법으로 마룡굴에 도착했다. 뒤를 따르는 수많은 시종 시녀들과 함께였다. 그 모든 도착자들의 눈빛은 초롱초롱하다 못해 광기로 번득이고 있었다.
“훅! 후욱!”
“헉! 허억!”
광대하고 신비로운 마룡굴에 감히 발을 디딘 자가 느낄 법한 경외감? 없었다. 평생 처음 겪어보는 포털 체험에 대한 신기함? 또한 없었다. 저만치에 슬쩍 보이는 마룡굴 마수들의 모습이 주는 두려움? 역시 없었다.
‘내 눈엔…… 돈밖에 보이지 않아!’
모두가 마룡굴에 입장하자마자 시뻘게진 눈으로 하이에나처럼 주위를 탐색했다. 저만치 보석이 보인다? 냅다 뛰어가서 주웠다. 저쪽에 금괴가 쌓여 있다? 일단 달려가서 챙겼다.
물론 그 와중에 라키엘은 오늘 작전(?)의 본질을 잊지는 않았다.
“다들 들어라! 마룡굴 중앙 광장에 쌓인 물건이 보일 것이다! 그걸 챙기면 금괴 하나로 금액을 쳐주겠다!”
“……!”
라키엘이 한쪽에 쌓인 인슐린 약품, ‘트레제오’ 더미를 가리켰다. 모두의 귀가 쫑긋. 눈길이 번득. 두뇌 계산이 팍팍. 결론은 쉽게 나왔다. 딱 봐도 황태자 전하가 가리킨 물건이 금괴보다 더 작고 가볍다. 그러니 저것부터 챙기는 것이 이득이리라.
이내 트레제오를 향한 집단 러시가 시작되었다.
“돌겨억-!”
“우오오!”
이것은 좀비 떼의 무한 웨이브보다 더욱 파상적인 무지성 공세! 그 모습을 본 용왕 베르키스는 심플한 감탄사를 머금었다.
“……와우.”
용왕의 눈길이 자신의 마룡굴을 유린(?)하는 폭도들에게서 라키엘에게로 옮아갔다. 이 순간만큼은 그의 눈동자엔 평소의 귀차니즘을 압도하는 어이없음의 감정이 담겨 있었따.
“너님, 좀 치네?”
“아, 하하…….”
“이래서 포털 유지 시간을 늘려달라던 거였니?”
“예, 뭐, 좀…….”
“아주 작정을 했구나?”
“그, 용왕님께서 허락을 하셨으니까 말입니다?”
“나님이? 허락을?”
“예.”
“언제?”
“저를 용왕 후원 멤버십에 가입시키신 순간부터 말입니다.”
“…….”
“마룡굴 재물 무제한 이용권.”
“…….”
“감사히 잘 쓰겠습니다.”
“쯧. 이래서 인간은 함부로 믿는 법이 아닌데.”
“죄송합니다.”
“또또.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한다.”
“그 역시 죄송합니다.”
“진짜로?”
“으음.”
“허. 이젠 숨기지도 않아.”
“용왕님께 감히 거짓말을 하는 것보단 낫지 않습니까?”
“뻔뻔하기까지.”
“건방진 것보단 나을 것 같습니다.”
“이미 건방진 거 같은데.”
“죄송합니다.”
“진짜로 죄송하면 성의를 보이든가.”
“예?”
“탕약. 좀 식은 거 같은데.”
베르키스가 대접을 스윽 내밀었다. 과연 그가 내민 대접에 담긴 숙면대보탕의 김이 사라져 있었다.
“재탕 해드릴까요?”
“그래. 너님 어차피 포털 닫힐 때 떠날 거잖아? 그때까지 이거나 다시 좀 데워라.”
“……으음, 사실은 그동안 저도 금괴랑 보석 좀 챙기려고 했는데.”
“쓰읍.”
“죄송합니다.”
라키엘은 공손하게 탕약 대접을 받아들었다. 마침 마룡굴의 살라만더가 아장아장 기어왔다. 그리고 이쪽이 어떻게 반응하기도 전에 다리를 타고 올라오더니 품에 쏙 안겼다.
“더더덕? 더덕?”
“어? 탕약을 데워주시려는 겁니까?”
“더덕!”
고개를 끄덕인 살라만더가 탕약 대접을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은은한 불꽃을 일으켰다. 딱 핫팩 정도의 열기로 뜨끈하게. 자신을 안은 이쪽과 탕약 대접 양쪽 모두가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만.
따스한 열감이 느껴졌다. 덕분에 긴장이 풀린 걸까. 잊고 있던 피로가 스르르 몰려왔다. 그제야 용왕 베르키스가 재탕을 요구한 이유가 어렴풋이 짐작이 되었다.
‘아…….’
나, 많이 무리하고 있었구나. 코로나를 이겨내느라. 치료 탕약을 개발하느라. 항체를 추출해서 용왕에게 건네어 주느라. 그 뒤로도 최대한의 보상과 이득을 얻기 위해서 나름 머리를 굴리느라고.
전혀 쉬지 못하고 있었다. 그걸 이쪽보다 용왕이 먼저 알고 있었다.
“…….”
슬쩍 용왕을 돌아보았다. 마침 그와 눈길이 마주쳤다. 피식 웃어 보이는 용왕. 더욱 확실히 알 것 같은 그의 배려.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리에 편히 앉았다. 따끈한 살라만더와 탕약을 품에 보듬고 있자니,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살랑살랑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별궁 식구들의 노략질(?)은 계속되었다. 모두가 혈안이 되어 트레제오 약품과 보석, 금괴 등을 챙겼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대부분이 한 번쯤을 라키엘이 있는 쪽을 힐끔 살펴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우리 황태자 전하께서는 이제 용왕과도 나란히 앉아 계시는 사람이 되셨구나, 라고.
“…….”
생각해보면 신기했다.
한때 황태자는 그저 무력하게 병상만 전전하던 사람이었다. 모두를 휘어잡는 카리스마? 꿈도 꿀 수 없었다. 타인을 아우르는 리더십과 융화력? 실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보통의 사람보다도 못한 존재에 불과했다.
그저 황족의 혈통으로 태어난 덕분에 호의호식을 하는 사람. 가진 재주라고는 수공예품의 흠집을 찾아내고 꼬투리를 잡는 것이 다인 사람. 그것도 모자라 거의 매일 별궁의 시종과 시녀들에게 신경질만 부리던 사람. 그것이 대부분이 기억하는 과거의 황태자였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너무나 많은 것이 바뀌었다.
특히, 평생을 별궁에서 재직한 시종장이 보기엔 더더욱 감격적인 변화였다.
‘내 평생, 우리 전하께서 저렇듯 위풍당당해지신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무려 드래곤의 왕 옆에서 편하게 퍼질러 앉아 계신 우리 황태자 전하! 무시무시한 마수 살라만더를 강아지 안듯이 자연스럽게 품고 계신 우리 전하! 심지어 그 상태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용왕과 잡담마저 나누고 계신 우리 미래의 폐하!
‘장하십니다, 전하. 실로 장하십니다.’
이제 저는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일단 어, 왕방울 다이아몬드부터 좀 챙기고. 늙은 시종장은 흐뭇함에 촉촉해진 눈가를 훔치기보다는 보석들부터 알차게 쓸어 담았다.
그 외에도 모두가 비슷했다. 황태자를 오래 보아온 고참 시종과 시녀들이, 근위대원들이 특히 그러하였다.
그렇게 두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포털 서비스(?)의 종료 시점이 다가왔다.
치짓…… 칫, 짓……?
포털의 테두리에서 스파크가 튀며 윤곽이 불안정해지기 시작했다. 그걸 본 라키엘은 모두에게 철수 명령을 내렸다.
“다들 별궁으로 퇴각! 마룡굴에 혼자 남겨지고 싶은 사람은 어물쩡대시든가?”
“……!”
별궁 식구들은 돌진하던 때만큼이나 신속해진 걸음으로 포털을 건너갔다. 그중에는 트레제오 수천 개가 담긴 보따리를 짊어진 우루스도 있었다.
“누우우?”
포털을 건너가기 직전, 우루스는 근육 빵빵한 어깨를 살짝 움츠렸다. 어쩐지 아까부터 때때로 소름이 오싹 돋곤 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이건 마치, 태생적인 천적이 수풀 속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듯한…….
“……누우?”
시선이 느껴졌다.
우루스의 고개가 삐거걱 돌아갔다. 덕분에 눈길이 마주쳤다. 저쪽. 먼발치에 식빵 같은 자세로 웅크린 늙은 만티코어가 보였다. 만티코어가 이쪽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최상급 LA갈비를 발견한 주부 같은 눈초리로…….
츄릅?
입맛을 다셨다!
“……!”
포털을 건너가는 우루스의 걸음이 어쩐지 신속해졌다. 그걸 끝으로, 별궁 식구 모두가 포털을 건너갔다. 나름 역사 최초의 마룡굴 노략질 작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된 셈이었다.
“전하. 이제 우리도 건너가야 할 듯합니다.”
“어. 그래야지.”
데미안 녀석의 재촉을 받으며 일어났다. 그동안 재탕을 위해 안고 있던 탕약 대접을 용왕에게 돌려주었다.
“여기, 이제 따끈해졌으니 드시지요.”
“안 시켜도 그럴 거니까 얼른 꺼져 버리렴.”
“예. 그동안 많은 신세를 졌습니다.”
“알면 다시는 오지 말고.”
“싫은데요.”
“…….”
“아무리 봐도 오늘 쓸어간 재물이 마룡굴에 쌓인 전체 금은보화의 10퍼센트도 안 되는 거 같아서, 조만간 또 오겠습니다.”
“여기가 너님 놀이터니?”
“멤버십 라운지입니다?”
“……하.”
결국 베르키스의 입에서 실소가 흘러나오고 말았다.
“그래. 후원은 후원이니까. 하지만 또 오는 건 그때 일이고. 지금은 얼른 떠나 버리렴? 여기 계속 있을 건 아니지?”
“물론입니다.”
라키엘은 포털 앞에 섰다. 귀찮은 파리를 내쫓듯 손을 휘휘 젓는 베르키스. 그를 향해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포털을 건너갔다.
……파츳!
라키엘과 데미안이 건너간 직후, 포털이 사라졌다. 시끌벅적하던 마룡굴에 오랜만의 평온과 고요가 찾아왔다.
“후우.”
베르키스의 입에서 나직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오랜만이다, 이 조용함은. 평화로움은. 그러니 이제부터 즐겨야지. 24시간 내내 퍼질러져서 한껏 방탕하게 잠만 잘 테다.
야물딱진 다짐과 함께 베르키스가 대접을 기울였다. 숙면대보탕을 단숨에 원샷했다. 그리고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소파를 향해 걸었다. 누웠다. 최소한의 동선과 에너지를 사용하며. 눈을 감았다.
비로소 행복이 찾아오는 느낌.
소파와 몸이 물아일체가 되는 이 감각.
‘이거야.’
잠이 솔솔 쏟아졌다.
진심으로 행복했다.
본격적인 숙면 모드로 진입했다.
아니, 하려던 순간이었다.
“……낭군님? 소녀, 예정보다 일찍 다녀오게 되었답니다. 제가 없는 동안 푹 주무시었어요?”
언제 들어도 사랑스러운 목소리.
아내의 음성이 낭랑하게 들려왔다.
그 순간 베르키스는 반사적으로 미소 지었다. 동시에 그의 눈꼬리엔 이슬 같은 눈물 한 떨기가 처연하게 맺혔다. 또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