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3화. 맞춤형 심법 (2)
딩동!
자욱한 먼지 사이로 들려오는 알림음.
그토록 기다렸던 메시지.
[진료비 청구 (Lv.2) 스킬이 발동됩니다.]
‘오옷!’
라키엘은 맑은 눈을 똥그랗게 떴다.
사회인의 빛과 소금, 축복이자 생명수.
월급만큼이나 중요한 보너스 앞에서 누가 기쁘지 아니할까.
[당신은 환자 : 아르민 아스라한에게 과격하지만 적절한 용천혈의 단련법과 새로운 형태의 써클, 그리고 써클의 특성에 맞추어진 운용법을 전수하였습니다. 이는 환자 : 아르민 아스라한의 신체에 생겨날 잠재적 질환인 비후성 심근증(hypertrophic cardiomyopathy)을 예방하는 데에 더없이 유효한 종합적 진료였습니다.]
[이러한 진료의 효력으로 환자 : 아르민 아스라한은 향후에 확정적으로 발생할 예정이었던 비후성 심근증을 평생 모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환자 : 아르민 아스라한은 당신의 치료 프로그램을 통하여 71년 3개월의 기대수명 연장 혜택을 받았습니다. 이에 당신은 71년 3개월의 1/1,950에 해당하는 보너스 수명을 정산받습니다.]
‘……됐다!’
라키엘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치료가 끝났다고 다 끝난 것이 아니다. 환자가 멀쩡해 보인다고 안심할 계제가 아니다. 완전히 끝났다며 안심을 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이거지!’
완치 알림.
보너스 수명.
이제는 이게 눈앞에 떠야 비로소 안심이 된다. 라키엘은 월급 통장 열어보는 직장인 심정, 혹은 시즌 레이팅 성적표를 확인하는 게이머의 기분으로 메시지창을 야물딱지게 촵촵 핥듯 쳐다보았다.
[13.15일의 보너스 수명이 계산되었습니다.]
[정산되는 수명의 최소 단위는 1일입니다.]
[정산되는 보너스 수명이 반올림 처리됩니다.]
[총 13일의 보너스 수명이 정산됩니다.]
[당신의 예상 기대수명 : 1,788일]
‘후후. 흐흐후후후.’
무려 13일.
넷플럭스 정주행을 지겹도록 할 수 있는 시간. 지구 멸망을 앞두고 사과나무를 심어도 13그루쯤은 짬짜면 츄르릅 시켜가면서 심을 수 있을 기간. 그만큼의 알찬 생존 기간을 보장받게 됐다.
당연히 라키엘의 눈빛에서 꿀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요 이쁜 녀석!’
역시 어린애들을 살릴 때가 제일 보람차다. 그만큼 늘어나는 수명도 길고, 보너스 수명도 넉넉하게 안겨주는 편이니까.
그런데…….
“아.”
정작 아르민이 눈앞에 보이지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르민은 방금 새로운 써클의 운용법을 실천하다가 조절을 잘못해서 위로 솟구쳤으니까. 덕분에 천장을 뚫고 위층으로…….
“어억, 아르민! 괜찮냐!”
라키엘은 벌렁벌렁 트리플악셀을 뛰려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위층 계단으로 뛰어갔다.
♣
다행히 아르민은 살아(?)남았다.
그저 잘생긴 이마 한쪽과 손등, 목덜미 등등에 생채기가 조금 생겼을 뿐. 그 외에는 크게 다친 곳도 없었을 정도였다.
“……라고는 하지만 당분간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네, 전하.”
“근데 어휴. 천장 저거 어떡하냐.”
“네?”
“내가 괜한 걸 시켜가지고 귀한 집 천장이나 깨먹었네. 쯧.”
“…….”
라키엘은 안타까운 눈초리로 구멍이 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아르민은 어깨를 살짝 움츠렸다.
“너희 가주님은 별말 안 하시디?”
“……네. 그저 제 이마를 조금 걱정해 주셨을 뿐입니다.”
“그리고?”
“제 새로운 써클의 운용법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넌 뭐라고 했냐.”
“시범을 보였습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결과는?”
“…….”
“또 천장 부쉈어?”
“아직 조절이 어렵습니다.”
“그렇겠지.”
라키엘은 피식 웃고 말았다.
용천혈에 장착한 새로운 써클에 최적화가 된 새로운 운용법. 그것은 용천혈 써클을 오히려 메인으로 삼는 방법이었다.
“그래도 익숙해져야 해. 너희 가문 사람들이 가슴에 품은 써클은 너무 난폭하다고 해야 할까. 본인의 심장까지도 다치게 해 버리니까.”
“하지만 전하. 그렇다고 아래쪽의 써클을 메인으로 삼으면…….”
“알아. 지금껏 자부심과 함께 키워온 가슴의 써클이 보조의 자리로 내려갈 수밖에 없겠지. 그런데 그게 뭐. 혹시 보이지도 않는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 죽을 거야? 대대손손?”
“…….”
“그렇다고 따지고 보면 가슴의 써클을 완전히 찬밥 취급하자는 것도 아니야. 발에 있는 써클은 심장의 마나하트로부터 거리가 먼 만큼 효율이 떨어지니까. 그 떨어지는 효율을 메우기 위해서 가슴의 써클이 반드시 필요한 거고.”
이들을 위하여 라키엘이 고안한 새로운 마나 운용법은 간단했다.
용천혈의 써클을 메인으로 삼는다. 단, 마나하트와 멀어지며 떨어지는 효율을 가슴의 써클이 지닌 특유의 고출력으로 메꾼다. 라는 것이 요지였다.
“내가 그랬지. 너희 가문 사람들이 가슴에 품은 써클은 지나치게 난폭하다고. 너무 출력에만 몰빵…… 아니, 투자를 과하게 해서 심장에 무리가 간다고. 하지만 새로운 운용법에서는 그 특성을 장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거야. 고출력으로 머나먼 발바닥까지 마나를 팍팍, 공급하는 연료 펌프가 되어 주는 거지.”
“그렇게 전달된 마나가 아까처럼…… 용천혈의 써클에서 증폭되는 거고요?”
“그렇지. 바로 그거지.”
“…….”
아르민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아까 온몸을 관통하는 듯했던 충격적인 감각을 떠올렸다. 황태자의 지도에 따라 가슴의 써클을 회전시키고, 거기서 나오는 마나를 용천혈의 써클로 밀어 넣었다. 증폭했다.
그랬더니 펑.
예상보다 훨씬 강력한 출력이 나오고 말았다. 아까의 갑작스러운 도약과 천장 돌파(?)가 그 결과물이었다.
“이제부턴 그 출력을 조절하는 연습만 하면 돼.”
“어, 그렇지만…… 전하?”
“궁금한 거라도 있어?”
“네. 그게, 전하의 말씀을 듣다 보니 조금 의아한 부분이 있어서요.”
“뭔데.”
“전하는 저희 가문 사람들의 가슴 쪽 써클이 지나치게 강력해서 문제가 된다고 했잖아요.”
“그랬지.”
“으음, 그런데…… 새로운 운용법에서도 가슴의 써클은 그대로 사용하는 거니까, 똑같이 심장에 부담이 가진 않을까요?”
“응 아니야.”
라키엘은 상큼하게 웃었다.
“가슴의 써클에서 만든 출력을 몸을 움직이고 격렬한 전투를 치르는 데에 직접 쓰는 것과, 그 출력을 하체로 보내는 데에만 쓰는 건 엄연히 다르지.”
정말로 다르다. 천지 차이다. 물건을 드는 데에 순수한 팔뚝 힘만을 쓰는 것과, 지렛대를 쓰는 것의 차이 정도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지렛대를 쓰는 쪽의 힘이 훨씬 덜 든다.
혹은 비유하자면, 10만 원을 써서 먼 길을 여행하는 것과 비슷할 수도 있다. 똑같은 10만 원으로 비싼 신발을 사서 직접 뛰어가는 사람과, 택시를 잡아서 타고 가는 사람의 도착 시간은 한참이나 차이가 날 테니까.
‘즉, 새로운 마나 운용법의 경우엔 용천혈의 써클이 지렛대, 혹은 택시가 되어 주는 거지.’
심장 써클의 부담은 줄이고.
출력은 더욱 극대화하고.
조심하기만 한다면, 능숙해지기만 한다면 정수리로 천장을 파손할 일 없이 전보다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서 심장의 건강까지 확실하게 챙기면서 말이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연습 철저히 하자고. 네가 얼마나 능숙해지는가에 따라서 가문 사람들의 건강이 달라질 거야.”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얼떨떨한 기색으로 반문하는 아르민.
녀석을 향해 씨익 웃어 주었다.
“이제부터 널 훈련 조교로 삼을 거란 뜻이야.”
“네에?”
“못 들은 척하긴. 따라 나와. 이미 연무장에 다들 모여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
저기, 황태자 전하?
아까는 당분간 무리하지 말라면서요.
아르민은 반박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황태자의 손에 이끌려 연무장에 도착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였다.
“자아, 시범!”
……콰아앙-!
황태자가 구령을 외칠 때마다 아르민은 새로운 마나 운용법의 시범을 보여야 했다. 물론 그때마다 조절에 서툴러서 수 미터씩 로켓처럼 쏘아지긴 했지만.
그때부터였다.
가문의 식솔들이 아르민의 시범을 따라 새로운 운용법을 익히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이제 어느 누구도 황태자의 지도에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실제로 모두가 황태자 덕분에 3대 황제의 제약을 피해 새로운 써클을 두 개나 얻은 까닭이었다.
하루, 이틀, 나흘이 지났다.
그동안 새로운 마나 운용법을 익힌 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덕분에 연무장에는 때 아닌 장관이 펼쳐졌다.
펑! 콰앙! 퍼펑! 투콰앙-!
곳곳에서 조절에 실패해서 수 미터씩 펑펑 튀어 오르는 인원들이 속출했다.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마치 생생하게 튀겨지는 프라이팬 속 팝콘을 보는 것 같달까.
물론 그때마다 라키엘의 입꼬리가 귀에 벌쭉벌쭉 걸렸다. 한 사람이 튀어 오르는 데에 성공할 때마다 어김없이 맑고 고운 알림음이 달팽이관을 촉촉하게 적셨다.
딩동!
[진료비 청구 (Lv.2) 스킬이 발동됩니다.]
[당신은 환자 : 리카르도 아스라한에게 과격하지만 적절한 용천혈의 단련법과 새로운 형태의 써클, 그리고 써클의 특성에 맞추어진 운용법을 전수하였습니다. 이는 환자 : 리카르도 아스라한의 신체에 생겨날 잠재적 질환인 비후성 심근증을 예방하는 데에 더없이 유효한…….]
언제 들어도 즐거웠다.
들을 때마다 행복했다.
분명, 처음엔 그러했다.
딩동동! 딩동!
[진료비 청구(Lv.2) 스킬이 발동됩니다.]
[당신은 환자 : 레미온 아스라한에게…… 어쩌고저쩌고…… 적절한 용천혈의…… 미주알고주알…… 블라블라…… 종합적 진료였습니다.]
하도 들으니 좀 시끄러웠다.
너무 자주 들리니 귀가 아팠다.
확실히, 점점 좀 그랬다.
딩동! 딩동! 링 디기디기! 딩딩딩! 링딩동!
[진료비…… 워우예!]
“…….”
저기, 시스템 님.
혹시 야간에 알림을 꺼두는 기능은 없을까요.
가능하면 아침에 한꺼번에 받고 싶은데.
없딩! 동딩!
“…….”
하아 x발.
이대로면 불면증은 둘째 치고 자다가 귓구멍에서 피 나올 거 같은데.
하지만 라키엘의 그러한 고통(?)의 나날도 다행히 그리 길지는 않았다. 처음 아르민이 새로운 마나 운용법을 익힌 지 21일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때쯤 마지막 보너스 알림이 울렸다.
딩동!
[당신은 환자 : 알칸타르 아스라한에게 과격하지만 적절한 용천혈의 단련법과…….]
……변경백이다.
그도 마침내 해냈구나.
다크써클을 눈가에 주렁주렁 매단 채로 아침 식사를 하려던 라키엘은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보며 피식 웃었다.
이번 치료에서 유난히 애를 먹었던 변경백이었다. 처음 훈련을 할 때는 솔선수범을 하듯 앞장을 섰고, 훈련 후반부에는 남들보다 느린 습득 때문에 남모를 마음고생을 많이 했더랬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옛일이 되었다.
변경백을 마지막으로 아스라한 가문의 모든 직계 혈족이 새로운 써클과, 맞춤형 마나 운용법을 익혀냈으니까. 이제 가문 대대로 비후성 심근증 때문에 안타깝고 이른 죽음을 맞이할 일이 없게 되었으니까.
“후후후. 크크크!”
이로써 보너스 수명, 영업 완료.
아스라한 가문 사람들에게서 얻은 총 784일의 보너스 수명을 현금 세어보듯 음미하며, 라키엘은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데미안을 돌아보았다.
“야. 가자.”
“예?”
가자니?
밥 먹다가 갑자기? 어딜?
데미안은 얼떨떨한 눈초리로 라키엘을 바라보았고, 라키엘은 수금하러 가는 사채꾼처럼 상큼하게 웃었다.
“멀티 마나하트. 약속대로 받아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