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9화. 짓눌리고 쓰러져도 (1)
방사선은 일종의 탄환과 비슷하다.
원자보다도 작은 초 미세한 입자가 초 강력한 에너지를 품고서 인간의 몸을 초 단호하게 뿌슝 뚫어 버린다.
구멍?
당연히 개통된다.
말 그대로 총알 같은 것이니까. 한데 몸에 뚫린 구멍의 크기가 눈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아서 티가 나지 않을 뿐이다. 구멍이 수십 개쯤 났을 때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구멍이 수만, 수십만, 혹은 그 이상의 개수로 늘어난다면? 슬슬 이야기가 달라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구멍이라고 해서 대미지가 없는 게 아니니까. 속을 들여다보면 인체는 이미 매운맛 벌집휫자 꼴이 나 있는 상태인 법이니까.
‘세포 단위에서 타격을 받지. 특히, 세포 소기관이나 핵이 입자에 맞아 망가지면서 DNA의 구조가 파괴되어 버려. 볼링공에 맞은 볼링핀처럼 와르르, 유전자 사슬이 끊어지는 거지.’
DNA는 세포의 설계도다. 한데 그걸 잃으면? 그 세포는 정상적인 분열 능력을 잃게 된다.
혹은 가까스로 분열에 성공하더라도 돌연변이 세포만을 만들게 된다. 어딘가 망가진 암세포. 혹은 세포와 닮았으되 아무런 기능도 하지 못하는 그 무엇.
그런 세포들이 많아질수록 전신의 기능에 장애가 생긴다. 세포가 죽어서 분열을 못 하는 피부는 말 그대로 괴사해서 썩어간다.
골수는 적혈구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여타의 장기도 역할을 못 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면?
죽는다.
그것 외에는 답이 없으니까.
“그래서 미세한 입자가 몸을 꿰뚫는 걸 막아줄 특수한 갑옷이 필요한 거야. 이렇게, 특수 재질로 빈틈없이 도금이 된.”
텅텅.
라키엘이 ‘이렇게’라고 말하며 손을 들었다. 그리고 노크하듯 옆에 세워진 전신갑옷을 두드렸다.
갑옷의 모습은 보통의 것들과 사뭇 달랐다. 투박했다. 매끈하지 않았다. 마치 서투른 어린아이가 찰흙을 빚어서 만든 듯한 모양새였다.
갑옷을 본 변경백은 저도 모르게 눈썹을 꿈틀거렸다.
“혹시 이 갑옷이, 방금 전하께서 말씀하신 ‘특수한 장비’인 것입니까?”
“그렇지.”
“방사능 피폭이라는 걸 막아줄 납 도금 갑옷이라고요?”
“으음.”
“한데 이걸 어디서 어떻게 구하신 것이십니까?”
“안 구했는데?”
“예?”
변경백은 순간 멈칫했다.
라키엘이 별일 아니라는 듯 피식 웃었다.
“오면서 만들었어.”
“만들었노라 하심은, 설마…….”
“눈치챘어?”
“변경백저를 출발하시던 때에 이미 이 모든 사태와 원인을 파악하시고, 그에 대비하기 위하여 창고의 납괴와 마법 재료, 저택의 대장장이를 모조리 다 챙겨오신 겁니까?”
“으음. 이래서 그대가 좋아. 이야기가 빨라져서 말이지.”
라키엘은 어깨를 으쓱였다.
변경백이 짐작한 그대로였다.
“출발할 때 챙긴 전신갑옷 중의 하나를 오는 길에 샘플로 삼아 개조했어. 각종 마법 재료를 녹여서 겹겹이 바르고, 그 위에 납을 두껍게 한 겹 덮는 걸로 마무리를 했지. 덕분에. 이렇게.”
텅텅!
“시험 삼아 착용을 해봤는데 효과가 나쁘진 않더라고.”
사실이었다.
아까 이걸 입고서 폐허가 된 요새 근처까지 직접 접근해보았던 라키엘이었다.
결과는 제법 성공적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방사선에 대해 차폐 효과가 드러났다.
“그러니까 이걸 입고 흉수를 추적해야 하는 거야. 놈이 지나간 모든 경로가 방사능으로 오염되어 있으니까. 이런 대비책 없이 추격만 하다간 지속적인 피폭 피해를 입을 거고.”
“하면, 이런 특수한 처리가 된 갑옷을 단시간에 대량으로 만들 수가 없기 때문에 소수정예의 추격대를 구성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로군요.”
“그래. 바로 그거지. 재료의 양에 한계가 있어서. 납이야 그렇다 치고, 그대의 저택에 비축되어 있던 마법재료를 다 끌어모아도 제대로 된 방사선 차폐 효과를 내려면 10벌의 갑옷이 한계일 것 같거든.”
“그렇습니까.”
“그렇지. 평소에 마법 재료 좀 많이 비축해두지 그랬어.”
“하, 하지만 전하.”
“음?”
“전하께서 이번에 싹싹 긁어오신 재료들이 워낙 희귀한 고가의 것들이라…….”
“아하. 그래서 아까우시다?”
“아뇨! 그게 아니라!”
“알아. 농담이야. 워낙 귀하고 비싸서 그 정도를 비축해둔 것도 엄청난 일이었겠지. 특히 엘렌시아 수액은 황실 창고에서도 특수 품목으로 관리할 정도니까. 그런데 그게 잉크병 하나치 분량이나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사실이었다.
엘렌시아 수액.
엘프들의 고향 에버글로우 숲의 신비한 나무뿌리에서만 채취할 수 있다는 수액. 그 어떠한 열기도 다 막아준다는 전설의 액상 마법 재료였다.
마침 그게 변경백 저택의 창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잉크병 하나치 분량? 그거면 충분했다.
콩기름을 좀 섞어서 갑옷에 발라주니 납도금의 방사능 차폐 능력이 몇 배로 뻥튀기가 되었을 정도였다.
“일단 그럼 차폐용 갑옷부터 빠르게 만들어보자고.”
“알겠습니다, 전하.”
그날부터였다.
변경백은 대장장이들을 온종일 재촉하였다. 대장장이들이 엘렌시아 수액을 비롯한 귀한 마법 재료들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그 위에 납을 두껍게 발랐다.
특히 투구의 제작에 많은 공을 들였다. 안면부의 숨구멍은 두 겹의 솜과, 마법재료인 ‘아켈란의 잎사귀’를 곱게 빻은 물에 삶은 면직물 세 겹으로 틀어막았다.
호흡을 위한 최소한의 공기를 통하게 하면서 방사능 물질의 유입을 완벽하게 막아내기 위한 처리였다.
눈구멍 또한 마찬가지였다. 유리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강화 유리 두 겹 사이에 희석된 엘렌시아 수액을 채워 넣었다.
덕분에 굴절은 최소화하면서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물론 갑옷 자체가 편안한 착용과는 거리가 멀긴 했지만.
“……끄읍!”
마침내 이틀에 걸친 차폐용 갑옷 10벌 제작이 끝난 아침이었다.
출발을 앞두고서 차폐용 갑옷을 걸친 라키엘은 저도 모르게 80살 먹은 할아버지처럼 끙끙대는 소리를 내야 했다.
그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건 너무…….
‘무거워!’
입자마자 엄청난 무게가 전신을 짓눌렀다. 사실은 당연한 일이었다.
완벽한 방사능 차폐를 위해서, 실전용이 아닌 의장용 갑옷을 베이스로 삼아서 제작한 물건이기 때문이었다.
경량화를 고려하여 다리 등의 후면부를 생략하는 실전용과 달리, 의장용은 빈틈이라고는 없이 전신을 감싸고 있었다.
전신이 번쩍번쩍, 오직 뽀대(?) 하나만을 위해서 착용자의 편의성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
덕분에 어느 한 곳의 빈틈도 없이 납도금을 마칠 수 있었지만, 그만큼 무거웠다. 갑갑했다.
입자마자 100미터 달리기 골인과 동시에 불가마 용암굴 한증막에 입장한 것처럼 뜨끈뜨끈한 숨이 턱 차올랐다.
‘내가 이걸 입고서 계속 움직일 수 있을까.’
절로 의구심이 들었다. 안 그래도 무거운 의장용 갑옷에 마법 재료와 납도금을 덕지덕지 덮었으니, 걷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물러설 수는 없는 일이었다.
라키엘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애초에 내가 제시한 방법이야. 게다가 내가 없으면 흉수를 빠르게 추격하는 것도 어려워질 거고.’
사실이었다.
자신은 아스라한 심법으로 방사능의 흔적을 손쉽게 포착할 수 있었다.
마나를 감지하는 데에 유용한 아스라한 심법이, 고에너지의 입자를 뿜어내는 방사선 또한 쉽게 포착할 수 있는 덕분이었다.
‘그런데 변경백 등의 아스라한 가문 사람들은 그게 잘 안 돼. 저들이 평생 키워온 써클은 파괴력 하나에만 몰빵한 나머지 다른 감지 능력들은 현저하게 떨어지는 듯하니까.’
변경백이 여기까지 오면서, 방사능을 감지하지 못하고 오직 흔적으로만 흉수의 흔적을 추적한 것이 가장 명백한 증거였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런 방법으로는 뒤만 졸졸졸 따라가게 될 뿐이다.
눈앞의 흔적이 아닌, 저 멀리까지 이어진 방사능의 기세를 포착해서 더욱 큰 그림 속의 최단거리 경로를 그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흉수와의 거리를 효과적으로 좁힐 수 있다.
그러자면…… 무조건 이쪽이 추격대를 이끌어야 한다. 오직 이쪽만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러니까, 이 정도 무게에 짓눌려서 허우적거려선 안 되겠다.
의지를 다잡은 라키엘은 태연하게 보이려 애를 쓰면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자신과 똑같은 차폐 갑옷을 입은 9인의 추격대를 바라보았다.
데미안과 특근대의 최연장자 세르지오, 쌍둥이 검투사 출신인 몬테로와 페드로, 별궁 근위대장 프란델 경과 부관 해밀턴 경, 변경백 알칸타르 아스라한, 그의 조카이자 부관인 파비안 아스라한, 거기에 황제가 보내준 호위군단의 군단장 카티니 경까지.
이쪽이 현재 거느린 최고의 정예들이었다.
“다들, 준비는 됐겠지?”
“물론입니다, 전하.”
9인을 대표하여 대답하는 변경백.
그 모습을 보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말고는 다들 차폐 갑옷에 짓눌리거나 힘겨워하는 이가 없는 듯 보여서. 그거면 충분하다.
내가 겪을 고난은 오롯이 내가 이겨내어야 할, 나만의 것이어야 할 터이니까.
“그럼 가보자고.”
철컥!
라키엘은 투구 안면부의 바이저를 내렸다. 눈앞의 시야가 바뀌었다.
엘렌시아 수액으로 채워진 2중 유리가 선사하는 일렁거리는 풍경. 전신을 짓누르는 갑옷의 무게와 아울러 약간의 현기증을 선사했다.
하지만 라키엘은 이질적인 감각을 꾹 참아내며 일행의 선두에 섰다. 그리고 이쪽을 배웅하는 이들을 힐끗 돌아보았다.
“누우! 누우우!”
“꾸꺄아! 꾸!”
“꼬슴! 꼬스슴!”
“뽀보복! 뽀오!”
애초에 갑옷을 입을 수 없는 우루스, 아피로스 애벌레 꾸꾸, 환상종 꼬슴이와 뽀복이까지.
업무상 한의원에 남겨두고 온 코몽이를 제외한 나머지 녀석들이 모두 울먹이며 이쪽을 배웅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우루스는 많이 북받쳤는지 이불 사이즈의 손수건에 코를 푸애앵 풀기까지 했다.
‘미안. 너희한텐 너무 위험한 길일 듯해서.’
방사능 앞에선 미노타우로스이건, 환상종이건 예외가 없다. 치명적이다. 그러니 너희를 데려갈 수는 없겠다.
사실은 나도 무섭고 불안한데, 그런 길을 너희에게 강요할 수는 더더욱 없겠다.
라키엘은 아쉽고 미안한 마음을 접어두고는 고개를 돌렸다.
“출발.”
그렇게 숙영지를 떠나왔다. 기나긴 추격의 걸음을 떼었다.
한없는 무게, 갑옷 안에 차오르는 체온의 열기, 갑갑한 호흡, 일렁거리는 시야. 그러나 멈출 수는 없는 걸음의 연속이었다.
“……후, 후욱!”
고작 30분을 이동했을 뿐이었다. 갑옷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는 열기 때문에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이쪽을 태운 말의 걸음도 점점 힘겨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었다.
하루가 지났다.
말이 거품을 물었다. 납으로 도금된 갑옷을 입은 사람을 태우고 온종일 이동을 하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멈출 수는 없었다. 지금도 수많은 인명이 학살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있을 상황이었다.
이틀째.
말이 죽었다. 고된 혹사와 지속적인 방사선 피폭 피해를 견뎌내지 못한 탓이리라.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으로 말을 길가에 고이 눕혀주었다.
다른 말로 갈아탔다. 너도 같은 마지막을 맞이하겠지.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닷새째.
두 번째 말도 죽었다. 일행 모두가 세 번째 말로 갈아탔다. 평소 말을 아끼던 프란델 경의 몸이 떨리는 것이 갑옷 위로도 보일 정도였다.
섣부른 위로의 눈빛조차 건넬 수 없었다. 그저 같은 심정으로 묵묵히 안장 위에 올랐을 뿐.
여드레째.
일행 모두의 마지막 말이 죽었다. 이제는 데려온 말이 남지 않았다. 다들 묵묵히 걸음을 디뎠다.
납으로 뒤덮인 갑옷의 무게가 전신을 짓눌렀다. 그러나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각오했던 일이었다.
그동안 라키엘은 일행의 선두를 계속하여 고수했다. 그는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 애를 썼다.
아스라한 심법으로 흉수가 남긴 방사능 지대의 흔적을 시야 끝까지 집요하게 포착했다. 최적의 경로를 일행에게 제시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었다.
걸음마다 전신을 짓누르는 무게. 일렁이는 유혹. 이대로 쓰러지면 편해지지 않을까. 내가 왜 이렇게까지 애를 써야 하는 걸까. 나는 왜. 어째서. 어쩌자고.
까득!
의식이 흐려지려 할 때마다 이를 꽉 깨물었다. 걷고, 또 걷고. 버티고 또 버티고. 한없이 그렇게.
그렇기에 라키엘은 자각하지 못하였다.
……딩동!
[아스라한 심법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급격히 성장하는 아스라한 심법이, 용왕 베르키스에 의하여 죽음과 부활을 겪으며 재구성된 당신의 신체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어느새 흐릿해진 시야 사이.
남모를 기적적인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