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화. 불신자의 치료법 (3)
“이봐요.”
“…….”
“이보세요? 똑똑?”
“…….”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 라임의 끝자락만 들어도 어딘지 모를 뻔뻔함이 물씬 느껴지는 목소리. 그 목소리를 귓구멍에 차곡차곡 담으며 하르미온의 신관장, 슈마이케는 실눈을 떴다. 그리고 발견했다.
“정신이 좀 드십니까?”
“…….”
그놈이다.
불신자.
이 도시의 위기 앞에 홀연히 나타났다는 신비의 기사이자, 마젠타노의 황태자.
“……!”
그 얼굴을 보자마자 열이 뻗쳤다. 사실 황태자가 이 도시를 도와준 일은 고마웠다. 그의 활약을 두 눈으로 직접 보기도 했다. 성벽 위에서 성막을 발동시킨 사람이 자신이었으니까.
하지만 도움에 대한 고마움과 지금 상황은 별개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신성한 교리에서 이르길, 신자는 불신자의 치료행위를 받으면 안 된다는 말씀이 명확히 쓰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으읍! 읍읍!”
무어라 외치려 했다.
당장 이 기도소에서 나가라고. 치유가 필요한 환자들에게 더럽고 타락한 불신자의 숨결을 쐬게 하지 말라고. 제발 말 좀 들으라고. 회개하라고.
외치고 싶었다.
한데 불가능했다.
“읍! 으븝! 읍!”
입에 물려놓은 재갈이 너무나 단단했다. 어찌나 야무지게 묶었는지, 혓바닥을 굴리는 것조차 쉽지 않아서 얼굴이 저릿저릿할 지경이었다.
“으으읍! 읍읍! 웁! 우웁!”
그럴수록 슈마이케는 더욱 악다구니를 썼다. 불합리한 상황에 화가 치솟았다. 물론 그럴수록 눈앞의 황태자는 애석하다는 눈빛만 보내어 왔지만.
“저와 차분히 대화를 나눌 생각은 정말로 없는 겁니까?”
“읍? 으웁웁!”
없다. 적어도 신성한 기도소 안에서 불신자와 대화를 나눌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런데 황태자는 이쪽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연하게 제 할 말만 꺼내놓았다.
“저는 신관장님에게 모욕을 주려는 게 아닙니다. 위해를 가하려는 것도 아니구요. 당연히 이곳의 환자들을 해코지할 생각도 없습니다. 제가 왜 그러겠습니까?”
“으읍! 읍읍!”
“그러니까 대화를 좀 나누자는 겁니다. 기왕이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대신에 차분한 목소리로. 지성인답게 말입니다.”
“웁웁! 웁!”
더욱 맹렬하게 외쳤다.
황태자가 아랑곳 않고 차분하게 말을 건네어 왔다.
“알고 계십니까? 이러는 사이에도 헛된 시간이 흐르고 있습니다.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적절한 시간 말입니다.”
“…….”
“환자들이 방치되어 죽음에 이르는 건 신관장님도 원하는 결과가 아니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
이 불신자 황태자는 뭘 말하고 싶은 걸까.
“그래서 제안을 하고 싶은 겁니다. 재갈을 풀어드리겠습니다. 대신 모시는 신의 이름 앞에 약속을 해 주시지요. 고함을 지르지 않고 차분하게 대화에 임하겠노라고 말입니다.”
“…….”
“어떻습니까? 우리의 대화가 빠르게 진척이 될수록 환자들이 더 일찍 치료를 받을 수 있을 텐데요.”
“…….”
슈마이케는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고개가 끄덕여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좋군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데미안?”
“예, 전하.”
재갈이 풀렸다.
신관장은 울컥하는 마음을 담아 황태자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신의 이름 앞에 약속한 바를 어길 수는 없는 노릇이라, 가까스로 샤우팅을 목구멍 안쪽으로 삼켜야 했다.
그가 가까스로 누그러뜨린 목소리로 말했다.
“두 번 말하지 않겠습니다. 기도소에서 나가십시오.”
“싫습니다.”
“…….”
“여기엔 환자들이 있고, 제겐 환자들을 보살필 능력이 있습니다.”
아울러 덕분에 챙길 보너스 수명도 있고.
라키엘은 뒷말을 생략했다.
신관장이 반박했다.
“환자의 치료라면 불신자인 당신보다 우리가 훨씬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어떤 치료법을 쓰는지 물어도 될까요? 혹시 회복의 권능 같은 걸 쓰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하면?”
“환자들로 하여금 열과 성을 다하여 기도를 올리게 독려하고, 격려합니다.”
“……하?”
“그러면 환자의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신을 향한 절실하고도 순수한 경배의 마음이 우러나오게 됩니다. 그게 중요합니다.”
“……하아?”
라키엘은 가출하려는 어처구니를 간신히 붙잡았다. 그리고 신관장의 눈을 살펴보았다. 보자마자 깨달을 수 있겠다. 이 신관장이라는 인간, 진지하다고. 정말로 진지하게 저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다고.
신관장의 열변이 이어졌다.
“그렇게 신을 향한 순수한 경배와 믿음을 보이면 됩니다. 그러면 신께서는 긍휼한 마음으로 믿음에 대한 은총을 내려 주십니다.”
“어떤…… 형태로 말입니까?”
“병이 낫게 됩니다.”
“…….”
“이것은 당연한 섭리입니다. 신을 향한 믿음으로 가득한 이가 신의 은총으로 병마를 떨쳐내고, 믿음이 부족한 이가 병마에 굴복하게 되는 것은 말입니다.”
“이런 x발.”
“……예?”
“아, 아니, 말이 잠깐 헛나왔습니다.”
“방금 불신자의 욕설을 하신 것 같은데.”
“아닙니다. 그런데 신관장님의 주장을 듣다 보니 의문이 드는 점이 있어서 말입니다.”
“무엇입니까?”
“혹시 당신네 종교의 신은 적자생존의 철학을 지니고 계신 겁니까?”
“예?”
신관장이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라키엘의 신랄한 말이 이어졌다.
“믿음이 충분한 사람만 살아남는다는 거. 그게 적자생존 아닙니까? 사실은 그거 그냥 살아남은 놈만 신앙을 인정받는 거 아닌가요? 이건 무슨 강한 놈만 살아남는 종교도 아니고.”
“무슨 그런 망발을…….”
“망발이 아니고 말입니다. 고작 그런 걸 치료법이랍시고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우리를 내쫓으려 했습니까? 환자들 다 방치하려고?”
“불신자의 치료는 환자의 몸과 마음을 더럽힐 뿐입니다!”
“어? 어어? 소리 안 지르기로 약속했는데?”
“……!”
“아무튼 뭐, 대강은 잘 알겠습니다.”
라키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딱 두 가지를 제대로 알겠다.
‘하나. 이들의 치료 방법은 노답이야.’
그냥 기도만 주구장창 하다가 살아남은 놈만 ‘우와 너 믿음이 충만하구나?’ 이러는 식이다. 그러니까 전혀 신뢰할 수도, 신뢰해서도 안 되겠다.
‘그리고 둘. 이 신관장, 정말로 자기네의 교리가 무조건 진리라고 믿으며 FM대로 살아가는 타입이야.’
즉, 대화가 통할 상대가 아니다.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이런 사람을 한국에서도 겪어봤기 때문이었다.
‘전경 시절이었지. 선임 중에 좀 유명한 또라이가 있었어. 일명 FM 살인마.’
기억이 났다.
FM 살인마.
모든 걸 원리원칙과 교범대로만 진행하는 걸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 앞에선 어떤 예외도, 돌발상황이나 그에 따른 응용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게 얼마나 지랄맞은지는 직접 겪어본 사람만 아는 거거든. 말이 안 통해. 무조건 FM만 외치며 전진하다가 모두가 망하는 게 뻔히 보이는데도 절대 안 바꿔. 아니, 그걸로만 끝나면 다행이지. 전부 망한 뒤에도 남 탓만 하거든. 규칙을 제대로 안 따라서 망한 거라고.’
눈앞의 신관장이 딱 그런 타입인 듯했다. 가만히 보니 당시의 선임과 인상도 좀 비슷했다. 혹시 FM 타입 관상이라도 따로 있는 걸까.
“일단 신관장님은 당분간 여기 계속 억류되셔야겠습니다. 지나치게 교리만 밀어붙이시니 대화가 안 되거든요.”
“무, 그게 무슨?”
“교리와 원칙을 지키는 거. 예. 훌륭하지요. 비난은 하지 않겠습니다. 신관장님처럼 모든 걸 반듯하게 지키는 사람도 이 세상에 필요한 법이고, 그게 옳은지 그른지는 누구도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말입니다. 지금은 신관장님의 신념을 존중해주는 것보다 제게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게 뭐길래 이러는 겁니까, 불신자들의 황태자여.”
“저기 누워 있는 기병대원들의 목숨이요.”
“…….”
“그러니 잠자코, 며칠만 좀 여기에 함께 머물러 주시지요. 협조만 해주신다면 서비스로 신관장님도 함께 치료를 해드리겠습니다.”
“나는 불신자에게 치료를 받지 않습니다!”
“어허. 소리 지르기 금지. 약속은 아직 유효합니다?”
“…….”
“게다가 신관장님, 매일 밤마다 편두통에 시달리지요?”
“그건…….”
“아 예, 좀 살펴보니까 알겠습니다. 서비스로 편두통 치료 추가요.”
“이보십시오, 불신자들의 황태자여. 잠깐 내 이야기를 좀.”
“이야기는 다음에 마저 나누도록 하지요. 데미안? 묶어드려.”
“……!”
데미안에게 이끌려간 신관장이 기도소 구석의 작은 방에 감금되었다. 라키엘은 그 모습을 보며 콧등을 살짝 찡그렸다.
‘쯧. 신관장이 제대로 협조를 해주면 쉽게 갈 수 있는 건데.’
그래서 신관장과 대화를 나누어봤던 건데. 이제는 전폭적인 수준의 협조까지는 바랄 수 없게 되었다.
덕분에 라키엘은 그날 저녁, 나머지 신관들의 열띤(?) 방문을 받아야 했다.
“문을 여시오, 불신자여!”
“이런 식으로 기도소를 점거하고도 무사할 줄 아시는 겁니까!”
“불신자에게 신의 형벌이 있으라아아!”
쾅쾅쾅쾅쾅-!
횃불을 들고 몰려온 스무 명가량의 신관들이 기도소 문을 두드려댔다. 그러나 라키엘은 그들 앞에서 안면 가득 철판을 깔았다.
기도소 문에 달린 쪽창만 빼꼼 열고서.
창 틈새로 얼굴만 뽀작 내밀고서.
“예에, 예에. 주문하신 불신자 나왔습니다아.”
“……!”
“그런데 누추하신 분들께서 어쩐 일로 이런 귀한 곳까지?”
“……회개하시오!”
“아 씨. 여기 신은 성량으로 신관 뽑나 진짜.”
“뭐요?”
“무턱대고 소리부터 지르지 말고, 이쪽 얘기도 좀 들어보란 말입니다.”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려는…….”
“신관장님이 제 진료 행위를 허락했습니다.”
“……뭐요?”
“아, 거기에 여기 도시의 시장한테도 허가를 받았고 말입니다.”
팔랑팔랑!
어느새 라키엘이 내미는 종이 한 장.
낮에 데미안을 시켜서 받아온 시장의 친필 서류였다. 그걸 본 신관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라키엘이 말했다.
“시장의 허가 서류도 받았고, 당신네 신관장도 허락을 했고. 이 도시의 가장 높은 책임자 둘의 허가가 다 떨어졌는데 뭐가 더 문젭니까?”
“무슨……. 신관장님이 그대와 같은 불신자를 허락했을 리가 없습니다!”
“맞소! 신관장님을 직접 뵈어봐야겠소!”
신관들의 이마에 다시금 핏줄이 솟았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라키엘은 문을 쾅 잠가 버렸다.
그날부터였다.
밖에서 누가 뭐라고 하건. 신관들이 찾아와 농성을 벌이건 말건. 기도소 한쪽 골방에 갇힌 신관장이 애원을 해도.
라키엘은 귓바퀴 한 번 기울이지 않았다. 아예 모든 신경을 다 껐다. 대신 기병대원들의 진료에 모든 열과 성을 쏟았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 정도로 피폭된 환자는 그도 처음이었다. 솔직히 시시때때로 불안감이 몰려왔다. 행여나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지면 어떡하나 싶었다. 밤에도 잠을 거의 자질 못했다. 온종일 기병대원들의 상세를 살피고, 곁에 달라붙어 진료에만 매달렸다.
덕분에 데미안과 특근대 세르지오, 근위대 프란델 경 등이 엉겁결에 심부름꾼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들은 수시로 라키엘의 지시를 받고서 시장 관저로 달려갔다. 그리고 필요한 약재와 식량, 식수를 짊어지고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닷새, 열흘, 보름이 지났다.
개중에 가장 많은 피폭을 당했던 구스타프라는 기병대원이 마침내 기력을 되찾을 좋은 징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어지럼증이 줄어들고, 식욕이 살아나며, 우수수 빠지던 머리칼의 탈모가 멈추었다.
‘후아……. 다행이다.’
비로소 라키엘도 조금은 마음을 놓았다. 아울러 그동안 밤낮없이 매달렸던 피로감을 뒤늦게야 확 실감하려던 때였다.
“전하아! 큰일이 났습니다!”
콰당-!
누군가가 다급한 외침과 함께 기도소 뒷문을 부술 듯이 박차며 뛰어들어왔다. 마침 환자에게 시침을 하려던 라키엘이 화들짝 놀람음은 물론이었다.
“아, 깜짝이야.”
“죄송합니다, 전하. 하지만 워낙 급한 일이라서!”
“뭔데. 무슨 일인데.”
“그게 말입니다, 전하! 지금 시내의 광장에서…… 신관들이 여기 기병대원들의 아내들을 모조리 화형대에 묶어두고 있습니다!”
“……뭐?”
라키엘은 흠칫했다.
“어째서? 왜?”
그런 짓을 하는 걸까.
세르지오가 이마의 흥건한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그게, 신관들의 주장에 따르자면…… 기병대원들이 지엄한 교리를 어기고서 불신자의 치료에 기대는 추태를 보였기 때문에…… 그들의 아내를 본보기 삼아 산 채로 태움으로써 도시에 깃든 더러움을 정화해야 한답니다.”
“……이런 x벌 미친놈들이!”
스무스하게 혈압을 다섯 배로 뻥튀기시키는 개소리. 그걸 듣자마자 개빡친 라키엘은 시침하려던 가시를 집어 던지고서 광장을 향해 달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