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화. 인과응보 (2)
“감히!”
채찍이 날았다. 저도 모르게 치솟은 분노의 감정을 담아서. 자비 없는 손길을 따라 공기를 갈랐다.
그리고 노파의 뺨을 후려쳤다.
짜악-!
‘설마하니 감히 이런 식으로 내 권위에 기어오를 줄은 몰랐는데.’
부신관장은 분노에 찬 눈빛을 던졌다. 뺨을 맞고 나동그라지는 노파. 그래도 최소한의 선을 지킬 줄 알았다. 아무리 제 아들이 귀하다고는 해도, 이렇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소매를 붙잡으면서까지 매달리며 자신의 권위를 깎아내릴 줄은 몰랐다.
그동안 신도들을 너무 물렁하게 대했기 때문일까.
‘앞으로는 이런 일은 꿈도 꾸지 못하게 해줘야겠지.’
부신관장은 가빠지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채찍 손잡이를 더욱 세차게 움켜쥐었다.
♣
쿠당탕!
가느다란 팔뚝이 바닥에 호되게 부딪혔다. 날아온 핏방울이 이마에 점점이 무늬를 새겼다.
기병대원 뮐러의 어머니는 초점이 풀린 눈길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멍하니 생각하였다.
아, 내가 지금 뭔가에 호되게 맞았구나.
생각해보면 어제부터가 참 이상한 날이었다. 저녁 내내 유난히 기분이 불안했다. 식사가 잘 넘어가질 않았다. 모처럼 가져온 우유는 상해 있었고, 심지어 달걀은 썩은 채였다.
최악의 저녁이었다. 생각해보면 꿈자리도 사납기가 그지없었다. 기도소에서 요양 중인 아들이 꿈에 나왔더랬다. 팔다리가 모조리 잘려 피 웅덩이에 빠져 있는 끔찍한 모습이었다. 엄마, 어머니 절 좀 꺼내주세요. 피눈물을 흘리며 호소하던 아들의 모습에 소스라친 숨결을 뱉어내며 잠에서 깨어났던가.
하여 새벽 내내 기도를 올렸다. 신께 아들의 쾌유를 빌었다. 비록 지금은 불신자의 치료를 받고 있는 처지이지만, 아들이 다 나은 후에 사죄와 반성의 기도를 따로 올리겠노라고 간곡히 애원하였다.
그렇게 한참을 기도했던가. 아침 해가 떠오르고,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가 집 근처 길목을 채울 때쯤에야 기도를 멈추었더랬다. 이상했다. 무슨 소란일까. 길목에 가득한 사람들. 광장으로 이어지던 행렬.
모두를 따라 광장에 도착하고서야 상황을 깨달을 수 있었다. 준비 중인 화형대. 매달린 여인들의 모습까지. 보자마자 전날의 악몽이 소름 끼치는 감각과 함께 되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는 회개의 머리를 조아리리라!”
귓가를 두드려 오는 카랑카랑한 외침. 그 소리가 노파의 상념을 일깨웠다. 그녀는 천천히 눈길을 들었다. 비로소 보였다.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신관. 그가 흔들고 있는 채찍. 채찍 끝에서 투둑, 튀는 핏방울. 그 너머에 서 있는 새하얀 법복의 사람들.
신관님들.
가장 존경받는 분들이자, 말씀 자체가 법칙인 분들. 그래. 그렇구나. 나는 방금 신관님의 채찍에 얻어맞은 것이로구나.
아팠다. 괴로웠다. 무서웠다. 어째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 건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아들이…… 불신자의 치료를 받고 있어서? 그걸 잠시만 눈감아달라고 호소를 해서?’
생각나는 이유라고는 그게 다였다.
불신자의 치료.
물론 옳지 않다는 건 잘 알았다. 사죄의 기도와 기부금을 마련해야 함 또한 알고 있었다. 실제로 기부금으로 바칠 돈을 미리 마련해두고 있기도 했다.
그런데 채찍질이라니.
손가락질이라니.
‘그게…….’
아들의 건강을 바라며 호소를 하였던 일이 그렇게 잘못이었던 걸까. 내 아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는 것을 바람이. 그런 마음을 신관님께 간곡히 애원하였던 것이.
연이어 채찍질을 당해야 할 만큼 잘못된 일이었나.
“회개하라! 때 묻은 영혼이여! 회개하고! 조아리고! 죄를 인정하여! 어둠에 물든 영혼을 빛 앞에 내보이라!”
부신관장이 채찍을 치켜들었다.
노파가 온몸을 웅크렸다.
그 모습을 보며 라키엘은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을 느꼈다.
딩동!
[당신의 급격한 감정 변화에 오장육부가 동요합니다.]
[심장이 RPM을 풀악셀로 올립니다.]
[허파가 과격한 들숨날숨을 뱉습니다.]
[대장이 괄약근을 꽉 조입니다.]
[위장이 쪼그라들며 혈액 지분을 근육에게 양보합니다.]
[콩팥이 요산 필터링 기능을 긴급 하향 설정합니다.]
[비장이 다들 왜 이러냐며 소매를 잡고 뜯어말립니다.]
[방광이 말리는 비장 때문에 더 빡쳐서 놔보라고, 아 이거 좀 놔보라고 를 시전합니다.]
[오장육부가 사이다 원샷 드링킹을 기원하며 100 HP를 후원합니다.]
[현재 보유 중인 HP : 26,800]
“…….”
이건 아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아무리 신관이고, 교리가 중요하고, 권위를 지키고 싶다고 하더라도, 이건 정말로 좀 아니다.
라키엘은 손을 뻗었다.
짜악-!
손목을 때리며 감겨오는 채찍의 화끈함.
그 감각을 느끼며 라키엘은 허리를 폈다. 사실은 살가죽이 순식간에 벌겋게 부어올랐을 정도로 아팠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더, 피가 뜨거워졌다.
‘이런 채찍질을, 노인에게, 그것도 얼굴에다 갈겼어?’
이건 이상하다.
뭔가 잘못됐다.
채찍질을 하는 부신관장도. 그런 부신관장을 바라보고만 있는 시민들도. 거짓말 같고. 웃음이 나오고. 그래서 이건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은데.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실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니까.
모르겠다.
정말로.
나는.
“감히! 불신자의 몸으로! 신의 이름을 행하는 이를 업신여김은 곧! 신의 성령을 모독하는 짓이라 선지자께서 이르시되! 마땅한 매질로 다스려 영혼의 때를 덜어내고! 친히 살가죽을 벗기어 죄를 덜어내심이 마땅하니!”
부신관장이 채찍을 당겼다.
라키엘도 손목을 당겼다.
손목에 감긴 채찍이 팽팽해졌다. 부신관장의 표정이 굳었다. 라키엘의 눈빛은 한결 차가워졌다.
“그래서, 가죽을 벗길 거라고? 나를? 산 채로?”
“이윽! 잇……!”
“…….”
이쪽에게 잡힌 채찍을 빼내려고 애를 쓰는 부신관장. 그 모습을 보며 라키엘은 생각했다.
‘확 후려쳐 버릴까.’
생각 같아선 그러고 싶었다.
신관이고 뭐고 가릴 것 없이 모조리 박살을 내고 싶었다. 그놈의 교리, 신의 거룩함을 운운하며 사람에 대한 선을 넘는 놈들에 대한 본보기를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얼마 후에 성막이 걷힐 때 작전이 망가지겠지.’
진짜 적은 성벽 밖에 있다. 엄청난 위력의 방사선을 뿜어내는 본드래곤이 성막이 걷히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놈이 훨씬 중요하고, 위험하다.
한데 여기서 신관과 대놓고 적대관계가 되어 버리면? 모든 게 끝장이 날 것이다. 누가 뭐래도 이곳 하르미온은 종교 국가니까. 대신관이 곧 국왕인 나라니까. 한데 시민들이 신관과 대놓고 적대하는 이쪽을 따를까. 이쪽의 작전 지휘에 고분고분 움직여 줄까.
‘아니. 그렇진 않겠지.’
그러면 작전이 망한다. 도시가 멸망하는 건 물론이고, 이쪽과 일행도 위험해질 수 있다. 그건 싫다. 그러니까 지금은 참자. 섣부른 감정보다는 이성으로. 무조건 사이다만 옳다는 생각은 버리고. 조금 더 합리적으로. 더 큰 이득을 지혜롭게 바라보자.
……라고 라키엘이 스스로를 향해 다짐하던 순간이었다.
휘익, 따악!
돌연, 어디선가 작은 돌멩이가 날아왔다. 그리고 이쪽이 아닌, 부신관장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엇?”
졸지에 돌팔매질에 맞은 부신관장이 어깨를 움츠렸다. 라키엘은 돌팔매질이 날아온 쪽을 돌아보았다. 웬 청년 하나가 눈을 부릅뜨고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가 돌을 던진 듯했다.
‘설마 날 맞추려다가?’
삑사리가 나서 부신관장이 맞은 걸까?
답은 곧 드러났다.
휘이익, 휘익!
곧이어 사방에서 돌팔매질이 날아들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돌멩이가 전부…… 부신관장과 나머지 신관들을 향하고 있었다.
“어읏? 엇? 무, 무슨……!”
“이게 대체?”
그리 큰 돌멩이는 없었다. 자잘한 돌팔매질에 별스럽게 다칠 신관들도 아니었다. 하지만 모두가 크게 당황하며 시민들을 둘러보았다. 시민들이 자신들을 향해 감히 돌을 던질 거라는 상상을 한 번도 못 해본 것처럼.
“감히! 이런 불경한!”
채찍을 되찾으려 애를 쓰던 부신관장이 시민들을 향해 고함쳤다. 그러나 시민들은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함성을 내지르지도, 항의의 외침을 토해내지도 않았다.
모두가 여전히 조용했다. 그저 묵묵히, 근처의 돌을 주워들어서 신관들을 향해 던질 뿐. 그렇게 자신들의 의사를 또렷하게 표현하고 있을 뿐이었다.
‘헐.’
라키엘도 그 모습에 놀랐다. 설마하니 시민들이 신관들에게 이런 식으로 대들 줄은 몰랐으니까.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깨달을 수 있었다.
‘여기 사람들, 방금 신관이 노파를 후려친 일에 분노하고 있는 거야.’
누가 봐도 선을 넘는 행위였다. 덕분에 상대가 신관이고 뭐고를 떠나서, 이곳 사람들도 뚜껑이 열려 버린 것이리라.
게다가 따지고 보면 기도소에 누워 있는 기병대원들도 이곳의 시민이자, 누군가의 아들이고, 형제이며, 연인이고, 아버지이자 이웃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도시를 구하기 위해 용맹하게 싸우다가 부상을 입은 영웅이기도 하겠지.
그러니까…….
‘지금, 여론이 내 편이라는 말이지?’
확실하다.
연이어 돌팔매질을 하는 시민들의 모습도. 화형대로 달려가 묶인 여인들을 풀어주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이러면 참을 필요가 없는 거네?’
……히죽.
결론을 내린 순간.
라키엘은 손목을 확 당겼다. 마나써클까지 동원했다. 이쪽과 나름의 줄다리기를 하던 부신관장이 그 힘을 버텨내지 못하고 앞으로 확 쏠려왔다.
“어억?”
부신관장이 채찍을 놓쳤다. 채찍을 허공에서 낚아채듯 붙잡았다. 균형을 잃고서 이쪽을 향해 비틀거리며 넘어지는 부신관장이 보였다. 당황한 얼굴. 아직 뭐가 잘못됐는지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표정까지.
그를 향해 다른 손을 뻗었다.
터억!
붙잡았다.
덕분에 넘어지지 않은 부신관장이 뒤늦은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이쪽을 올려다보았다. 눈빛이 마주쳤다. 흠칫. 놀라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약간은 고민하는 표정도 보였다. 화를 내어야 할지, 넘어지려던 자신을 붙잡아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말을 해야 할지 나름 헷갈리는 거겠지.
“그…… 어…….”
아주 잠깐의 혼란에 빠져 버벅대는 부신관장의 모습을 감상했다. 그사이, 부신관장은 자신이 지금 어떤 처지인지를 깨달은 듯했다. 그의 얼굴에서 고민이 썰물 빠지듯이 사라졌다. 대신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분노였다.
“이게 무슨! 감히 신관을……!”
감히?
지금?
댁이 나한테 감히?
그러면 확실하게 알려줘야겠다.
사실 지금이 말이야. 댁이 감히, 라는 말을 쓸 수가 없는 거거든. 상황적으로든, 신분적으로든, 모든 면에서 말이지.
그러니까.
“신의 말씀을 전하는 이 몸에게 이런 무도하기 짝이 없는!”
침을 튀기며 소리치는 부신관장. 그가 신의 이름과 권위를 내세우며 라키엘을 규탄하려던 순간이었다.
“감히!”
라키엘의 단호한 외침이 부신관장의 말을 잘랐다.
그리고.
짜악-!
신앙이고 뭐고 조또 안 믿는 황태자의 채찍이, 부신관장의 안면을 풀스윙으로 레고 장난감 박살 해체쇼를 벌일 듯이 후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