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431화 (430/468)

431화. 연구를 시작합시다아 (3)

나는 험악한 세상의 포식자다.

수많은 악의와 음모, 계략, 흉계와 모함의 역경을 헤치고 여기까지 왔다. 더욱 수많은 견제, 비방, 살의와 위협을 이겨내고 마침내 왕좌에 도전하였다.

비록 간발의 차이로 왕좌를 손에 넣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하여 미완의 야망을 가슴속에 품은 채로 살아가는 처지가 되었다 하여도. 여전히 야심의 불길은 꺼지지 않았다.

내 이름은 쟈빌론.

쟈빌론 플랑베르 앙부아즈.

그것이 언젠가 이 땅의 왕이 되어 만인을 호령할, 야심의 제국의 건설할, 나의 이름인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풉크겔엙!”

지금 나는 이토록 하찮기가 그지없는 괴음을 목구멍에서 긁어 내뿜고 있단 말인가. 어쩐지 인어 비늘때 맛이 잔뜩 느껴지는 정체 모를 시커먼 액체와 함께 말이다.

“어우야, 에헤이!”

귓가를 찔러오는 야박한 호통.

한심하다는 듯이 이쪽을 바라보는 눈초리.

꿈에서도 보고 싶었던 리한 군의관이 눈살을 찌푸리고서 투덜거렸다.

“아이고 이 귀한 걸 뿜으면 어떡하셔 진짜!”

“……쿨룩! 쿡! 컭겍!”

“다 큰 어른이 돼가지고 약 하나 제대로 못 삼킬 줄은 몰랐네, 쯧!”

“…….”

억울하다.

게다가 좀 서럽다.

간신히 기침을 멈춘 쟈빌론은 억하심정이 가득 배어나는 눈초리로 리한 군의관, 라키엘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심 어린 한마디를 물었다.

“이게, 약이라고?”

“당연하지.”

라키엘이 콧김을 풍 뿜었다.

“몸에 좋은 약 치고 맛있는 거 봤어?”

“아니, 그렇지만…….”

“그렇지만, 뭐.”

“이건 맛이 그냥 없는 게 아닌 듯한데.”

“인어 비늘때 맛?”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건가?”

“어. 당연하지.”

“안 당연한 듯한데.”

“그걸 댁이 어떻게 알아?”

“방금 먹어봤으니까!”

더는 참지 못한 쟈빌론이 우렁차게 빼액 외쳤다. 진심이었다.

이건, 방금 자신이 강제로 입에 머금었다가 차마 삼키지도 못하고 뿜어내 버린 탕약, 아니, 극약은 정녕코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종류의 맛이 아니었다.

리한 군의관의 말로는 ‘인어 비늘때 맛’이라고는 했는데, 그건 결코 그런 쉬운 표현법으로 간단하게 정의될 맛과는 차원이 달랐다!

“죽는 줄 알았다. 혀에 닿는 순간 미각이 사라지는 것 같았어. 그…… 그 텁텁함이란, 말로 표현하지 못할 곰팡내란, 대체……리한 군의관, 그대는 내게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가?”

“무슨 짓이라니. 말했잖아. 신약 개발.”

“…….”

“방사선 피폭을 치료할 신약을 효율적으로, 대량으로 만드는 게 목적이라고 아까 충분히 설명했을 텐데.”

“하, 하지만……!”

“믿기지가 않으신다?”

“그렇다!”

쟈빌론의 목덜미에 힘줄이 빡 돋아났다.

신약?

그따위 맛이?

사람의 영혼을 뿌리부터 송두리째 뒤흔들어서 마침내 일말의 인간성조차 삭제해 버릴 듯하던, 그 지옥 밑바닥 콩나물 부산물 쪼가리 같던 그 맛이?

정녕코 사람을 치료하는 약물의 맛이라고?

“말도 안 된다. 믿을 수가 없어. 그대는 뭔가를 꾸미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감히 나를 이렇듯 수치스럽게 묶어두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시약을 먹이는 것이겠지. 내가 소드마스터니까. 강력한 육체와 강인한 정신을 지녔으니까. 그 어떤 인간도 도달할 수 없을 수준의 인내심 또한 갖추었으니까. 이런 나를 이용해서 어떤 대상이라도 능히 망가뜨리고 파괴할 수 있을……. 그래……. 그대는…… 그런 것이었군…….”

라키엘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던 쟈빌론의 눈동자에 희미한 깨달음(?)의 빛이 떠올랐다. 그가 계속 뇌까렸다.

“리한 군의관. 그대 또한 마침내 어둠의 야망과 열망을 향해 미래를 내던지기로 작정한 것이로군. 그렇지? 이제는 알겠어. 그대는 마침내 결심한 것이야. 더없이 강력하고 위험한 약물을 창조하고, 그것으로 그대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기로. 제국의 울타리를 넘어 더욱 넓은 세상 전체를 정벌하기로. 맞나?”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아니. 이제 와서 부정해본들 나는 믿지 않아. 리한 군의관. 지금 나를 바라보는 그대의 눈동자에 쓰여 있어. 다른 이는 모르겠지만, 나는 알아볼 수 있지. 그건 명백히 야망을 품은 자의 눈동자야.”

“야망이라. 있긴 한데.”

“과연……!”

“평생 노동의 강요로부터 벗어나서, 완전한 경제적 자유를 획득한 상태에서, 남이 차려주는 밥 편하게 먹으면서, 직접 설거지할 걱정조차 없이, 소파에서 뒹군 채로 달달한 디저트 퍼먹으면서 넷팔릭스나 뉴튜브를 보는 거지. 하루 종일.”

“……그게 무슨?”

“댁이 알 필요 없고. 내 야망을 함부로 재단할 재주도 없을 거고.”

“제멋대로 지어낸 말로 나를 기만하려 들지 말라, 리한 군의관!”

“아 몰라. 기만이면 뭐 어쩔 건데.”

“……뭐?”

“기만이면 어떻고 진심이면 어때. 댁이 그걸 알아서 어쩔 건데. 뭘 할 수 있는데.”

“…….”

“지금 내가 부어주는 탕약을 순서대로 마시는 거 말고 뭘 할 수 있느냐고.”

“그건…….”

“잡담 시간은 여기까지입니다아. 데미안?”

“네, 전하.”

“시작하자.”

“예.”

라키엘이 눈짓했다. 데미안이 움직였다. 쟈빌론의 턱을 붙잡았다.

단단한 손아귀에 강제로 벌어진 쟈빌론의 고운 치열이 드러났다. 그만큼 라키엘의 입가에는 보람찬 미소가 한가득 걸렸다.

“자아, 아까 다 마시지 못한 1번 샘플부터 다시 마셔보자고. 갑니다갑니다갑니다아.”

“우웁! 쿠럵!”

“안 삼켜? 자꾸 버티면 목구멍으로 직통되는 깔때기 꽂아 버릴 건데?”

“……겕긁!”

꿀꺽!

쟈빌론의 목울대가 반강제로 출렁거렸다. 형언할 수 없을 맛의 탕약 한 모금이 목구멍으로 꿀떡 넘어갔다.

그 모습을 향해 라키엘은 경혈 스캐닝을 발동하였다.

키이이잉!

[경혈 스캐닝을 발동합니다.]

[스캐닝의 범위 (반경 150m) 이내에 헤모글로빈 기반의 혈액을 지닌 대상이 다수 포착되었습니다.]

[범위 내의 헤모글로빈을 지닌 모든 대상이 자동으로 스캔됩니다.]

츠스스스스……!

시야가 변했다. 온통 시커멓게 변한 배경 속으로 쟈빌론의 전신이 떠올랐다.

그의 모든 혈맥, 경혈을 따라 흐르는 마나의 흐름이 일목요연하게 보였다. 순환하는 기운과 상호작용하는 오장육부의 반응 또한 보였다.

방금 그가 삼킨 탕약 샘플 1번이 닿는 위장의 움직임도 물론이었다.

‘쓰읍. 흡수가 좀 느리네?’

위장의 반응을 살펴보던 라키엘이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탕약을 담게 된 위장이 거의 위경련을 하듯이 격렬하게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구토를 하기 직전의 반응 같았다.

‘맛이 너무 없어서 거부반응을 보이는 거로구나.’

그럼 샘플 1번은 탈락.

마음속의 도표에 x 하나를 그린 라키엘은 눈짓을 보냈다.

“데미안?”

“예, 전하.”

“안 되겠다. 등 두드려. 위치는 알지?”

“물론입니다.”

톡!

데미안이 대답과 함께 쟈빌론의 등줄기 한쪽을 손날로 툭, 쳤다. 미리 라키엘에게 사전교육(?)을 받은 자리, 독맥(督脈)의 영대혈(靈臺穴)이었다.

그곳을 맞은 쟈빌론이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우읍, 구웱!”

왈칵!

방금 마셨던 탕약이 목구멍을 거슬러 올라와서 라키엘이 잽싸게 받쳐준 양동이 속으로의 다이빙을 선보였다.

즉, 쟈빌론은 탕약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토해냈다.

“어때? 시원해?”

“……구읅, 컥…… 컥컥!”

“방금 데미안이 때려준 자리가 구토할 때는 직빵이거든. 거 왜, 술 제대로 마시고 필름 끊겨서 구토하는 사람한테 등 두드려주는 자리 있잖아? 그거 그냥 하는 게 아니야. 사실은 다들 무의식중에 느끼고 거길 두드리는 거야. 편하게 토하라고.”

“쿨룩! 쿡, 커흙!”

“게다가 위경련이 심한 분들이 어딘가에 기대앉거나 할 때 그곳이 지그시 눌리면 속이 불편해진다고들 하더라고. 내 환자분들 중에도 그런 분들이 있었거든. 나 아는 사람 지인인 백경 씨는 거길 ‘구토 버튼’이라고 부른다던데.”

“백경……인지 천경인지…… 빌어먹을!”

“어어. 왜 애꿎은 사람한테 화풀이야?”

“화풀이가 아니라!”

쟈빌론은 진심으로 분노했다. 이건 대체 뭐 하자는 짓인가 싶었다. 고문? 앙갚음? 모르겠다.

그저 괴로웠다. 아니, 그보다 수치스러웠다. 다른 이도 아닌 리한 군의관에게 붙잡혀서 이런 꼴이라니.

하지만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오늘의 라키엘은 조금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래? 내가 주는 탕약이 그렇게 형편없어?”

“……뭐?”

“언제는 나한테 두통 치료를 맡길 거라며? 그거, 허풍이었어?”

“무슨?”

“생각을 해봐. 만약에 말이야. 내가 나중에 댁의 두통을 제대로, 영구적으로 치료해줄 획기적인 탕약을 개발했는데 말이지. 그 약 맛이 방금 마신 것처럼 그러면?”

“…….”

“안 마실 거야?”

“그건…….”

“와,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그렇게나 리한 군의관, 리한 군의관 하면서 집요하게 쫓아다니더니, 고작 맛 하나로 내가 주는 약을 가려대고, 딱 그럴 정도의 각오와 결심인 거였어?”

“아니, 그건…….”

“실망이네. 조금.”

“…….”

꿀꺽.

쟈빌론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조금 전까지 분노하던 마음은 어느샌가 싸악 식어 버렸다. 찬물을 흠뻑 맞은 듯이. 혹은 명치를 세게 맞은 듯이.

“……라고 내가 그대의 술수에 말려들어서, 순진하게 약을 더 먹여 달라고 굴 줄 알았나? 리한 군의관?”

“쯧. 안 통하네. 역시.”

“너무 얕은 수작이었으니까.”

“뭐 그렇긴 해. 그럼 2번 샘플 마셔봅시다.”

“……뭐?”

“내가 댁한테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수작을 걸었던 건, 1번 샘플 때문에 댁의 뒤집어진 속이 조금 진정되라고 시간을 준 거였거든. 사람이 원래 그래요. 뭔가에 몰입하면서 대화를 나누면 몸의 불편한 부분을 생각보다 빨리 잊곤 해서.”

“무슨……. 그럼…….”

“아 시간 없어. 빨리빨리.”

“……우읍! 웁! 쿠걱!”

다시금 강제로 오픈되는 쟈빌론의 입. 그곳으로 거침없이 들이 부어지는 2번 샘플 탕약. 쟈빌론에게는 몹시 불행하게도, 이번에 그의 미각을 유린하게 된 탕약은 ‘우랄산맥 떡멧돼지 승모근 피지맛’이었다.

“……구와아아아알ㅇ갸!”

이곳은 하르미온의 변경도시, 테니온.

삭풍이 부는 도시의 시장관저 지하에서 어느 야심가의 구슬픈 헛구역질 소리가 온종일 울려 퍼졌다.

엿새가 지났다.

그동안 라키엘은 끈기 있게 탕약을 개발하고, 실험했다. 개발의 목적은 단순하고 명확했다.

방사선 피폭 치료에 효능이 있는 꾸꾸의 침. 그 물질의 한계점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분명히 효능은 있지만, 대량생산이 불가능해.’

오직 꾸꾸가 입안에 머금었다가, 퉤! 하고 뱉어주는 분량만을 쓸 수 있다. 그렇기에 생산(?)할 수 있는 양에 명확한 한계가 있었다.

한데 약효를 필요로 하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너무나 많았다.

이전에 심한 피폭을 당한 기병대원들, 미끼 작전의 주체가 되었던 그레노 경, 작전에 참가했던 예비대 병사들, 간접적으로 피폭을 당한 수많은 시민들까지.

게다가 도시 인근의 평원과 도시 대로, 광산 내부까지 두루두루 미친 방사능 오염지대를 제거하는 일 또한.

엄청난 양의 약재를 필요로 할 것이었다.

한데 꾸꾸가 뱉어주는 침을 그대로만 사용한다면? 백 년이 지나도 그만큼의 양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였다.

‘다른 약재와 조합을 하면서 최대한의 시너지를 내야 해. 꾸꾸의 침을 최소한으로 쓰면서, 다른 약재들이 침의 성분을 돕도록 만들면 돼.’

마치 실제 과일은 0.1%만 들어가는 주제에 ‘과일주스’라고 팔리는 수많은 음료들처럼. 진짜 트러플은 청산가리 치사량만큼도 안 들어가면서 ‘트러플 과자’라고 팔리는 스낵처럼. 그런데 막상 먹어보면 과일이나 트러플의 맛과 향이 제대로 나는 제품들처럼.

꾸꾸의 침을 극미량만 넣으면서도, 침의 효능은 그대로 살아 있을 탕약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야 대량 생산이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여 노력했다.

수많은 재료를 배합하였다.

탕약 조제 스킬을 활용했다.

약재 배합 미리보기 옵션을 써먹으며 배합의 결과를 어느 정도 예측했다. 성분 분석 옵션으로는 조제한 탕약의 효능을 살펴보았다.

그렇게 어느 정도 검증이 완료된 탕약들을 쟈빌론에게 거침없이 먹였다.

약재를 다듬고.

열심히 달이고.

정성껏 식히고.

즐겁게 먹이면.

맹렬히 토하는.

탐구적이고도 건설적인 괴롭힘의 나날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엿새째가 되는 날.

반가운 알림음이 귓가를 적셨다.

딩동!

[당신은 아피로스 애벌레의 침 성분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하였습니다.]

[새로운 레시피의 결과물로 ‘홀리워터탕’이 성공적으로 조제되었습니다.]

방사선 피폭 치료의 신기원을 열어젖힐, 기념비적인 탕약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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