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430화 (429/468)

430화. 연구를 시작합시다아 (2)

심심하다.

주인님은 어디로 가신 걸까.

혹시 나쁜 사람한테 납치라도 당한 게 아닐까. 그러면 안 되는데. 내가 구해주러 달려가야 하는데. 그런데 내가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겁을 먹고 끼야앙악 비명을 지를 거 같아. 그럼 난 어떡해야 할까.

- 쓰카학, 까학…….

역병의 권속, 악티누스는 답답한 심정을 억누르며 끙끙거렸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딜 보아도 사방이 막혀 있는 어둑한 공간. 광산 수직갱 밑바닥. 벌써 이곳에서 며칠을 보낸 걸까. 사흘? 나흘? 닷새? 모르겠다. 해가 뜨고 지는 걸 보질 못하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실감이 잘 되지가 않았다.

주인님을 못 본 시간이 말이다.

- 까하악, 까각…….

며칠 전일지 모를 얼마 전의 일이 떠올랐다. 주인님이 자신의 코어를 치료해준 날이었던가. 그런 따스한 온기는 처음이었다. 푸화학 뿜어져 나오던 따땃한 불길과 함께 코어의 균열이 사르르 녹아 달라붙었더랬다.

애정 가득한 접착제, 그 자체였다. 덕분에 불완전하던 코어가 나았다. 내면에서 날뛰던 뭔가가 가라앉았다. 고마웠다. 진정으로 자신을 돌보고 품어줄 분을 찾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하여 충성을 맹세했다.

그런데…….

- 까각, 까드각…….

주인님이 쓰러졌다. 마치 태엽이 다 풀려 버린 장난감처럼 픽. 다른 사람들에게 급하게 업혀 갔다.

그때부터였다.

이곳 광산 밑바닥에서 주인님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오늘은 오려나. 어제 안 왔으니까 내일은 오겠지. 그때가 오면 나는 주인님을 어떻게 반길까. 배를 깔고 헥헥거리면서? 훌라훌라 궁디춤을 추면서? 그래. 뭘 하든 주인님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서 움직여야지. 나는 힘이 무진장 세니까.

그러니까…….

- 까뚝, 뚜그앙…….

주인님아, 얼른 내려와. 와서 날 봐줘. 나 심심해. 주인님 보고 싶어.

……라고 꿍얼거리던 순간이었다.

“그동안 얌전하게 있었네?”

- ……!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악티누스의 두개골이 쫑긋 들렸다.

반가운 확신.

주인님이다!

- 뚜그앙! 뚜앙!

그때부터였다. 악티누스는 혼신의 춤을 추었다. 아니, 그게 춤인지 뭔지도 스스로 모를 몸짓이었다. 그저 반가웠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하여 제자리에서 쿠쾅쾅, 좌로 우로 뒹굴면서 또 콰과쾅, 대파괴(?)의 몸짓을 선보였다.

덕분에 라키엘은 기겁하며 다섯 걸음 물러서야 했다.

“워워워. 반가워? 어어 그래, 나도 반갑다 야.”

- 뚜앙! 뚜!

“어 그래. 워워. 이젠 진정하고. 착하지?”

- 뚜앙!

“…….”

라키엘은 차폐갑옷 투구 속에서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기력을 찾자마자 여기부터 내려온 그였다. 솔직히 한편으로는 걱정을 품고서 내려왔다. 본드래곤이 닷새 전처럼 여전히 우호적인 반응을 보일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데 그대로였다.

아니, 어쩐지 더욱 열렬해진 것 같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였다.

“우리, 닷새 만에 보는 거네? 여기서 잘 있었어?”

- 뚜앙뚜!

본드래곤이 두개골을 끄덕끄덕.

녀석, 확실히 이쪽의 말을 다 알아듣나 보다.

라키엘은 계속 물었다.

“지내면서 배가 고프거나 하진 않았고?”

- 뚜뚜앙!

“혹시, 나 보고 싶었니?”

- 뚜!

격렬한 긍정의 몸짓.

그렇게 문답을 나누는 사이, 라키엘은 경혈 스캐닝을 발동하였다. 그리고 본드래곤의 몸과 코어에 흐르는 마나의 흐름을 살폈다.

비록 본드래곤이 헤모글로빈을 기반으로 하는 혈액을 지니진 않았지만, 그래서 경혈 스캐닝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다행히 단일 대상이라서 구버전의 기능으로도 살펴보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그 결과는 제법 놀라웠다.

‘이 녀석, 진짜로 코어가 안정됐네.’

방사선이 날뛰면서 분출되던 예전과 달랐다. 코어 내부의 방사능 물질은 여전하지만, 그 방사선이 밖으로 새어나오질 않고 있었다.

적절한 차폐물질 덕분에?

그건 아니었다.

코어에서 생성된 마나의 흐름이 자기장의 그물처럼 코어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덕분에 방사선이 갇혀서 밖으로 나오질 못하는 게 보였다.

‘내가 그때 쏘았던 만년필 덕분인 건가.’

슬쩍 살펴보니, 전과 달리 매끈해진 녀석의 코어가 보였다. 이제 더는 예전의 균열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에는 경황이 없어 자세히 살펴볼 수 없었는데, 지금 보니 이쪽의 용접(?) 작업이 제대로 된 덕분인 듯했다.

“…….”

사실은 죽이려던 거였는데.

그런데 정반대의 결과가 나올 줄이야.

라키엘은 아이러니한 기분을 느끼며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좀 궁금한 게 있는데.”

- 뚜앙?

“너 말이야. 혹시 이제는 그거…… 분출 안 하는 거니?”

- 뚜?

“네 코어에서 뿜어져 나오던 그거. 방사선이라고, 막 파슈슈슉 열기랑 같이 나오던 거. 알지?”

- 뚜웅!

“어. 그거 이젠 안 나와?”

- 뚜앙뚜!

도리도리!

녀석이 두개골을 세차게 저었다. 그러더니 부연설명을 했다. 손짓발짓을 섞어서. 열심히 떠들며. 때로는 손가락으로 바닥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처음엔 무슨 뜻인지 단박에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몇 번을 거듭해서 듣고 보니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아, 그럼 그거, 네가 원할 때만 분출할 수 있는 거야?”

- 뚜앙!

끄덕끄덕!

“그 외에는 네 의지와 상관없이 뿜어져 나오거나 하는 일은 아예 없어진 거고?”

- 뚜우!

끄덕끄덕!

“혹시 그럼, 원할 때 분출하면서 출력도 조절이 가능해?”

- 뚜?

“아주아주 약하게 분출하는 거 가능하냐고. 딱 사람 뼈다귀만 살짝 비쳐 보일 만큼?”

- 뚜앙!

본드래곤이 자신의 코어를 탕탕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에게 거듭 물었다.

“그럼 지금 나한테 살짝 해볼래?”

- 뚜앙?

“괜찮아. 시험 삼아서 아주 살짝만. 보여 줄 수 있어?”

- 뚜두!

본드래곤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세를 잡았다. 뒷다리로 일어섰다. 두 앞발을 코어 양쪽으로 모았다. 그리고 통통 두드렸다. 서서히 비트를 탔다. 드럼을 치듯 뚜앙뚜각. 16비트 자진모리장단으로 흥겹게.

그러더니.

- 뚜!

……파팟!

약 0.1초 정도.

녀석의 코어에서 미약한 방사선이 뿜어져 나왔다. 그 힘이 아스라한 심법으로 느껴졌다. 경혈 스캐닝으로도 관측이 되었다. 코어를 감싸던 마나의 자기장이 아주 살짝 헐거워지는 모습으로였다.

‘허. 이게 되네.’

혹시나 했는데 정말이다.

눈으로 확인까지 하니 비로소 확신이 들었다. 이 녀석, 유용하게 쓰일 수 있겠다고.

“그럼 말이야. 이제 나랑 위로 올라갈래?”

- 뚜앙?

“네가 일할 곳이 있을 거 같아서. 나랑 일 좀 하자. 어때?”

- 뚜앙뚜!

악티누스는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님이 함께 가잔다. 오매불망 기다렸던 말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주인님을 위해 해줄 일도 있단다. 그러니까 이건, 코어를 고쳐준 은혜를 갚을 기회였다. 이보다 반가운 말이 어디에 있을까.

그렇게 주인님을 따라나섰다.

닷새 전에 주인님과 함께 달려 내려왔던 길을 거슬러. 아래에서 위로. 안에서 밖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그렇게 모두가 바라보는 시가지 중심으로.

“어때?”

- 뚜우……?

악티누스는 조금은 얼떨떨한 심정으로 바깥세상을 둘러보았다. 광산 출입구 근처, 사방에 공사 현장에 펼쳐져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잔해를 치우고, 자재를 나르고, 뚱땅거리며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그걸 보니 기억이 났다.

- 뚜앙…….

자신이 부순 건물과 길을 고치는 거다. 닷새 전에 너무나 부주의하게 움직여서. 자제력을 잃어버려서. 그래서 생긴 피해를 복구하는 모습들인 거다.

그런 이쪽의 깨달음을 짐작한 걸까.

주인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첫 번째 할 일은 실수를 바로잡는 거야. 마침 다행히도 여긴 네가 힘을 쓸 곳이 많아 보이는데. 어때?”

- 뚜앙!

속죄라면 환영이다.

주인의 뜻을 깨달은 악티누스는 앞다리뼈를 달각거리며 가까운 공사 현장으로 달려갔다. 마침 그곳에 자신과 덩치가 엇비슷한 소머리 아저씨(?)가 보였다.

“누우?”

현장에서 자재 더미를 옮기던 우루스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악티누스의 모습에 콧김을 풍, 뿜어냈다. 그리고 생각했다. 저 뼈다귀 애송이가 바로 라키엘이 말한 녀석이로구나, 라고.

그럼 선배의 자격으로 자상하면서도 엄격하게 챙겨줘야겠지. 아무래도 녀석, 아직은 이런 현장에 익숙하지 않을 테니까. 현장의 인간들도 은근슬쩍 이 녀석을 신경 쓰며 두려워할 수도 있을 테니까.

“누우우! 누우! 푸륵!”

- 뚜앙? 뚜?

“누우! 푸륵!”

일단은 함께 자재 옮기기부터.

그리고 이제부터 네 이름은 뚜식이여.

우루스는 선배의 자격으로 악티누스에게 새 이름을 붙여주었다. 악티누스, 아니, ‘뚜식이’는 처음으로 받은 이름의 어감에 대단히 만족하며 자재 더미를 들어 올렸다.

그 모습을 보던 라키엘은 피식 웃어 버렸다.

‘다행히 적응은 잘하네.’

당분간은 걱정 안 해도 되겠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겠다. 마음을 놓은 라키엘은 가벼워진 걸음을 시장 관저 지하실로 옮겼다.

쟈빌론이 감금된, 신약 개발 실험 연구실을 향해서였다.

“라는 바쁜 하루를 보내고 내가 여기까지 온 거야. 댁을 위해서.”

“…….”

“이봐요? 쟈빌론 씨?”

“…….”

“왜? 이렇게 꽁꽁 묶여 있으니까 이상해? 막 어색해?”

“……닥쳐라.”

“싫은데.”

“…….”

라키엘은 빙글거리며 쟈빌론을 쳐다보았다. 쟈빌론은 그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이글거리는 맹수의 눈동자를 활활 불태웠을 뿐.

“리한 군의관. 감히. 그대가 내게 이럴 수 있는 건가?”

“안 될 건 뭔데.”

“훗날 이 행동을 후회하게 될 텐데.”

“훗날? 언제?”

“내게 납치되어, 나만의 주치의가 되어, 오직 나만을 치료해야 하는 날이 왔을 때를 말함이다.”

“어, 걱정 마셔. 그런 날 안 와요. 안 와.”

“사람 일은 모르는 것 아니겠는가.”

“아이고 걱정도 많으셔.”

“걱정이 아니라!”

“뚝.”

라키엘은 쟈빌론의 외침을 똑 잘랐다. 그리고 쟈빌론이 포박된 의자 앞, 그곳에 놓인 테이블 위로 탕약 그릇을 척척 올려놓기 시작했다.

“어쨌건 지금은 우리, 한가하게 잡담이나 나눌 때가 아니거든. 내가 여기가 어디라고 했지?”

“…….”

“쯧쯧. 기억력이 나쁘신가 봐?”

“헛소리. 내 기억력은 앙부아즈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였다.”

“그럼 여기가 어디?”

“…….”

“말했잖아. 신약 개발 실험 임시 연구실이라고.”

“…….”

“그리고 연구 대상은 당신이고.”

“그게 무슨…….”

“뭐긴. 이제부터 이것들을 전부 마셔주셔야 한다는 소리지.”

“…….”

쟈빌론은 어이가 없어진 눈길을 테이블 위로 돌렸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이걸 내가…… 전부?”

“응. 오늘은 소박하게 50가지 맛으로.”

“…….”

“어때? 설레지? 막 기분도 버라이어티해지지 않아?”

“…….”

아니. 절대로.

쟈빌론은 고개를 젓고 싶었다.

그러나 불가능했다.

포박이 너무나 단단했다. 본드래곤에게 얻어맞은 타격의 후유증은 여전히 깊었다. 게다가 자신의 목과 머리를 단단하게 움켜쥔 데미안 카이엔, 이 망할 놈의 완력은 어찌나 단단하고 단호한지.

그리고 탕약 그릇을 들고서 스멀스멀 다가오는 리한 군의관의 미소는 어째서 의미심장하게 오싹한 건지.

“자아, 그러니까 오늘도 시민들의 공중보건과 피폭 치료를 위해 힘차게 건강해져 봅시다아. 입 벌리시고. 아아.”

“……으웁! 웁웁!”

“입 벌리시라니까. 아아.”

“읍! 웁웁!”

“데미안? 벌려드려.”

“……으읍으궤에엙!”

“아이고 착하지. 갑니다갑니다갑니다. 1단계는 인어 비늘때 맛으로 출발해보실까요? 인커밍. 파이어 인 더 홀.”

“웁우웁푸걱럭걹기얅읅갸악……!”

강제로 벌려진 입안에서 상큼하게 터지는 정체 모를 탕약의 빅뱅 어택. 그렇게, 라키엘이 선사하는 황태자의 50가지 구린죽 퍼레이드가 힘찬 스타트를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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