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4화. 뜻밖의 보상 (2)
딩동!
[당신은 진균 전용 치료제인 청상방풍탕과 무좀박멸고의 적절한 조합과 활용을 통하여 전신 악성 무좀에 시달리던 환자 : 크리스탄 리니에르 하르미온을 성공적으로 진료하였습니다. 그는 비록 아직은 완치 단계가 아니지만, 머지않은 시기에 확정적인 완치의 길을 걸을 것이며, 평생 건강한 신체를 누리며 장수하게 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당신은 환자를 위하여 스스로의 고통을 마다하지 않는 성실한 헌신의 자세를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본 환자 : 크리스탄 리니에르 하르미온이 당신을 향한 진심 어린 존경과 갈채, 찬사를 평생 마음속에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진료 보상에 ‘찬사 보너스’ 효력이 추가됩니다.]
[진료비 청구 (Lv.2) 스킬의 효과가 1.5배로 적용됩니다.]
딩동동!
거듭 울리는 상큼한 소리.
뒤이어 쪼르륵 떠오르는 메시지.
[만약 당신의 이번 치료가 없었다면, 환자 : 크리스탄 리니에르 하르미온은 약 3년 2개월 16일 후에 절망과 실의에 빠진 채로 극단적인 선택을 통하여 스스로의 목숨을 저버릴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환자 : 크리스탄 리니에르 하르미온은 당신의 헌신적인 진료 덕분에 스스로의 앞날에서 희망을 엿보았으며, 그것만으로도 그가 자살할 예정이었던 미래가 수정되었습니다.]
[이러한 효과로 인하여 환자 : 크리스탄 리니에르 하르미온은 71년 7개월의 기대수명 연장 혜택을 받았습니다. 이에 당신은 71년 3개월의 1/1950에 해당하는 보너스 수명을 정산받습니다.]
[13.15일의 보너스 수명이 계산되었습니다.]
[보상에 찬사 보너스 효력이 추가됩니다.]
[당신에게 주어지는 보너스 수명이 1.5배 증가하였습니다.]
[총 19.730일의 보너스 수명이 계산되었습니다.]
[정산되는 수명의 최소 단위는 1일입니다.]
[정산되는 보너스 수명이 반올림 처리됩니다.]
[총 20일의 보너스 수명이 정산됩니다.]
[당신의 예상 기대수명 : 1,783일]
‘……예스!’
보상 메시지는 언제 보아도 즐겁다.
보상 메시지는 언제 떠올라도 반갑다.
라키엘은 생각보다 묵직하게 주어진 보너스 수명을 확인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로써 부유한 백수 라이프 유통기한 20일 연장!’
물론 보상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딩동!
[그동안 당신은 수많은 환자를 진료하며 대량의 누적 보너스 수명을 쌓았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토대가 되어 <진료비 청구> 스킬이 한층 개선됩니다.]
[진료비 청구 스킬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스킬명 : 진료비 청구 Lv.3]
[개선된 정산 비율 = 1900 : 1]
‘오엇?’
눈이 번쩍 뜨였다.
보너스 수명이 정산되는 비율이 좋아졌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한 보너스가 더 있었다.
딩동동!
[진료비 청구 스킬이 일정 수준을 돌파함에 따라, 스킬에 옵션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진료비 청구 전용 옵션 ① : HP 환전 - 당신이 보유한 HP 포인트를 보너스 수명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이 옵션의 환율은 향후 지속적으로 개선될 수 있습니다. (현재 HP 환율 : 10,000 HP = 보너스 수명 1일)]
[진료비 청구 전용 옵션 ② : 신용담보 수명대출 - 생명이 위독한 환자에게 당신의 기대수명 일부를 떼어줄 수 있습니다. 이는 일종의 투자입니다. 수명대출을 받은 환자는 대출한 수명만큼 임시로 생명을 연장합니다. 해당 환자가 당신의 진료를 받고 병마, 혹은 외상을 끝까지 이겨내어 삶을 이어가게 된다면, 당신은 대출해 준 수명과 함께 추가적인 이자 수명을 보너스로 회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수명 이율 : 연장되는 수명 100개월당 이자 3일)]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엄청난 옵션이 열려 버렸다.
그것도 두 개나.
라키엘은 저도 모르게 눈두덩을 맹렬하게 비볐다. 그렇게 다시 메시지를 또박또박 읽었다. 그럼에도 내용은 그대로였다.
‘잘못 본 게 아니네.’
HP 환전이라니.
신용담보 수명대출이라니.
‘그럼 이거, 그동안 쌓아둔 HP를 수명으로 바꿀 수 있게 됐다는 거네? 게다가 두 번째 옵션은…… 위독한 환자한테 내 수명 일부를 살짝 떼어서 대출을 해주고, 그렇게 임시로 생명 연장을 시키고, 그사이에 추가로 진료를 해서 살려낼 기회를 얻는 그런 건가?’
딩동!
[오장육부가 당신의 빠른 이해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심장 : 역시 우리 몸뚱이ㅋ 벌써부터 싹 이해를 해 버리네ㅋㅋ]
[허파 : 허허허헣파핰ㅋ]
[대장 : 그런데 형님들, 저 스킬 옵션 말입니다. 보기엔 좋은데 은근 리스크가 좀 있는 거 같지 말입니다?]
[간장 : 그러게. 대출해줬다가 위독한 환자가 죽어 버리면 어떻게 되는 거임?]
[위장 : 호로로로로로록!]
[콩팥 : 말아잡숫는 거지ㅋㅋㅋㅋㅋ]
[비장 : 아 대출 빌려 간 사람이 죽어 버렸다니까요ㅋㅋㅋ]
[방광 : 죽었는데 어쩌라고ㅋㅋㅋ 아쉬우면 배 째보시든가ㅋㅋㅋㅋㅋ]
[오장육부가 새로운 옵션 획득을 축하하며 7,000 HP를 후원합니다.]
[현재 보유 중인 HP : 39,600]
“…….”
이제는 저렇듯 제법 쌓인 HP가 더는 허투루 보이지 않게 되었다. 사실은 그동안 HP를 쌓아는 두면서도 은근히 쓸 곳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말이다.
‘HP 저거, 언젠가 스킬 업그레이드하는 날에 몰아서 쓰자고 다짐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이젠 아냐. 나중에 환율이 좋아질 때까지 원기옥 모으듯이 쌓아두다가 한 방에 환전하면? 그것만으로도 최소 몇 년 치의 수명을 살 수 있을지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두근거렸다.
게다가 수명 대출은 어떠한가.
약간의 리스크는 느껴지긴 하지만, 이것도 투자만 적절히 하면 제법 큰 이득을 볼 수 있을 듯했다.
‘게다가 위독한 사람을 일단은 며칠 정도라도 살려둘 수 있을 거고.’
그게 어디인가.
며칠의 기회.
진료할 기회.
원래라면 죽어야 할 사람을 살려낼 희망을 이어갈 수만 있다면, 그렇게 뭐라도 해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셨을 때 이런 스킬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키엘은 문득 떠올라 버린 생각에 한숨을 머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이미 너무나 오래전에 지나가 버린 일이다. 당시에 불가능했던 일을 지금 와서 아쉬워하고 후회해봤자 이제 와서 달라지는 건 없다.
그러니 괜히 더 우울해지지 말자.
……라고 다짐하며 라키엘은 잠시 마음을 뒤덮어오던 감상을 걷어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일어나셨습니까.”
문득 들려오는 데미안의 목소리.
비로소 라키엘은 자신이 마젠타노령으로 편입된 구 테니온, 신 라키엔데 시로 돌아가는 마차 안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떠올렸다.
‘아, 그래.’
우리 일행, 야영 중이었지. 그리고 나는 마차 안에서 자다가 이른 아침에 깨어나서 메시지 내용을 훑어보고 있었지.
“끄응.”
라키엘은 자다 깬 새벽에 휴대폰 시간을 확인하는 심정으로 손을 뻗었다. 마차 내부 커튼이 잡혔다. 살짝 젖혀 보았다. 밝은 아침 햇볕이 야속하게 비쳐 보였다.
“후우. 더 자고 싶어.”
솔직히 피곤했다. 역시나 장거리 여행은 만만한 게 아니었다. 특히나, 익숙하지 않은 마차에 몸을 싣고서 온종일 덜커덩대는 이런 여행은 더더욱 그렇다. 마차가 아무리 좋아 봤자, 한국에서 굴러다니는 1톤 트럭 포터 이상의 승차감은 나오기 힘든 법이니까. 길바닥도 아스팔트처럼 매끈하지는 못하고 말이다.
라키엘은 누운 채로 데미안이 있는 쪽으로 힐끔 눈길만 던졌다.
“일어는 났는데 일어나기가 싫네.”
“그럼 계속 누워계시지요. 잠시 후에 출발 명령을 전달하겠습니다.”
“아냐. 일어나야지.”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사실 데미안의 말도 틀린 건 아니다. 어차피 마차에 실려가는 여정이다. 굳이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이쪽이 탱자탱자 마차 안에서 뒹굴거려도 마차는 온종일 잘도 굴러가겠지.
그렇지만 그건 좀 뭐랄까.
싫었다.
“그랬다간 밤에 잠이 안 올 거라서.”
“그렇습니까.”
“어. 하르미온에서 출발했던 첫날에 그랬잖아. 기억 안 나냐.”
“납니다. 덕분에 새벽까지 꼬박 전하의 말동무가 되어드려야 했던 것도요.”
“말동무는 개뿔. 핀잔만 줬으면서.”
“제가 말입니까?”
“어.”
라키엘이 그간 제법 길어진 뒷머리칼을 질끈 묶어 꽁지를 만들며 피식 웃었다.
“당뇨, 이제는 완전히 극복했으니까 더는 짐짝 취급하지 말아달랬잖냐.”
“제가 언제 그렇게 말씀을 드렸습니까?”
“언제긴. 사흘하고 3시간 23분쯤 전에.”
“저는 그저 이제부터 정상적인 호위 임무 수행이 가능해졌으니 기쁘다고 말씀을 드렸을 뿐일 텐데요.”
“그게 그거지.”
“대체 어디가 그게 그거…….”
“쓰읍. 말대꾸하는 거 봐라?”
“…….”
“그래도 다행이야. 이렇게 잘 낫게 돼서.”
“……뭐, 그렇긴 합니다. 다만-”
“다만?”
“마계왕이 이걸로 포기하는 일은……없겠지요?”
“아마도 그렇겠지.”
그럴 것이다.
어쩌면 더욱 끔찍한 불치병을 데미안에게 안길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전에 잠깐이나마 대적하며 느꼈던 마계왕의 집념은 충분히 그럴 수준이었으니까.
“하지만 저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냐.”
“네.”
데미안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제가 굴복하게 되면, 전하께서 제일 먼저 위험에 처하실 테니까요.”
“넌 그 상황에서도 그게 걱정되는 거냐.”
“네.”
“어째서?”
“전하의 곁을 지키는 것이 제 본분이니까 말입니다. 그래서입니다.”
이쪽을 바라보는 녀석의 눈빛에 어쩐지 모를 비장한 기색이 서렸다.
“어떤 일이 있어도, 설령 제가 어떤 일을 겪게 된다 하더라도, 전하를 위험에 빠뜨리지는 않겠습니다.”
“…….”
“그것이 제 각오입니다.”
“그러냐.”
“네.”
“그런데 어떡하지.”
“예?”
“나 이미 너 때문에 한참 위험해진 거 같은데. 손발 오글거려서.”
“…….”
“넌 말이다. 뭔 대놓고 사람 면전에서 그런 소리를 태연하게 하냐. 어째서, 왜, 부끄러움은 내 몫인 거냐고.”
“……죄, 죄송합니다.”
“알면 됐고.”
라키엘은 피식 웃어 버리고 말았다.
가끔 느끼는 거지만, 데미안은 냉철해 보이면서도 은근히 세상 물정에 순진하고 맹목적인 구석이 있는 듯했다. 방금 같은 순간이 그랬다. 그런 녀석이 이쪽을 지키기 위해 뭐든지 다 하겠다니.
‘……나야말로.’
널 지켜야 하는 쪽이 아닐까, 사실은. 원래라면 소설 속 주인공으로 살아가며 누구보다 찬란한 길을 걸어야 했을 네가, 이곳에 끼어든 나 때문에 지금 같은 고생을 하는 셈이니까. 나야말로 그런 너에게 빚을 갚는 심정으로 책임감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라키엘은 대놓고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다. 방금 데미안 때문에 한껏 오글거리게 된 분위기에 자신마저 추가 오글거림을 끼얹는 건 바람직(?)하지 않을 테니까.
“그럼, 오늘도 열심히 덜컹거리며 실려가 보자고.”
마젠타노를 향하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이들에게로.
일행을 실은 마차가 아침 햇볕 아래 출발했다. 산 넘고, 물 건너고, 평원과 몇 개의 관문을 지나, 마침내 국경에 닿았다. 그곳에 하르미온으로부터 양도받게 된 옛 테니온, 이제 라키엔데로 불리게 된 도시가 있었다.
한데 오랜만에 돌아오게 된 이 도시에서, 라키엘은 뜻밖의 광경과 마주쳐야 했다.
“뭐냐, 이건?”
그러니까, 시가지 광장 둘레 한쪽. 그곳의 담벼락에 새겨져 있는 사람 모양의 뼈다귀 벽화, 혹은 사진처럼 보이는 저것들은…….
“설마…… 엑스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