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455화 (454/468)

455화. 뜻밖의 보상 (3)

“그거, 본드래곤 뚜식 경이 한 짓이 맞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된 시장 브레다의 안색은 다소 초췌해져 있었다.

아니, 초췌하다기보단 지쳤다고 해야 할까. 지난 본드래곤 사태 때 파괴됐던 도시의 복구공사가 안겨준 피로 때문인지, 혹은 새로운 골칫거리 때문인지 모를 일이었다.

시장이 조금 굳은 목소리로 물어왔다.

“한데 전하께서도 벌써…… 그걸 보신 겁니까?”

“대강은?”

라키엘은 어깨를 으쓱였다.

하르미온에서 출발한 지 정확히 12일째. 제법 오랜만에 돌아온 옛 테니온, 이제는 라키엔데라 불리는 이 도시의 분위기는 전과 사뭇 달라져 있었다.

을씨년스러웠다.

광장에 사람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본드래곤 사태, 홀리워터 페스티벌, 종교 세속혁명, 거기에 희망찬 도시 복구의 열풍이 뚱땅뚱땅 몰아치던 전과 179도쯤 달라진 분위기였다.

라키엘이 말했다.

“그걸 못 봤을 리가. 광장에서 제일 큰 벽에 너무 대놓고 떡하니 새겨져 있더라고. 사람 뼈다귀를 촬영한 흔적이.”

“역시. 보셨군요.”

시장 브레다의 안색이 한층 어두워졌다.

“그래서 전하는, 괜찮으신 겁니까?”

“으음, 뭐가?”

“그 저주의 흔적을 직접 보아 버리셨는데…… 어디 불편하거나 몸이 아프거나 하진 않으신지 염려가 되어서 말입니다.”

“…….”

정말로 이쪽을 걱정하는 듯한 시장 브레다의 모습. 그걸 보고서야 라키엘은 너무나 달라져 버린 도시의 분위기가 이해가 되었다.

“혹시, 다들 광장 담벼락에 새겨진 그 흔적 때문에 이러는 거였어?”

“예?”

“그거 나쁜 거 아닌데.”

“무슨 말씀이신지…….”

얼떨떨해하는 시장 브레다.

그를 향해 물었다.

“일단은 자초지종부터. 저 흔적이 언제, 어떻게 새겨진 건지부터 들을 수 있을까?”

“아, 예 전하. 물론입니다.”

시장 브레다가 기억을 더듬었다.

“그 사고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현장의 인부들을 덮쳤습니다…….”

기억을 되짚을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돋아나는 소름.

시장은 그날의 참사(?)를 떠올렸다.

평범한 날이었다.

날씨는 적당히 맑았고, 이따금씩 드리우는 구름 그늘 덕분에 지나치게 덥지도 않았다. 덕분에 시가지 복구 현장의 인부들도 즐겁게 땀을 흘릴 수 있었다.

광장 보수공사 현장 또한 그러했다.

드넓은 광장.

그 바닥의 파손된 포석을 새로 깔던 도중이었다. 인부들 사이에서 포석 더미를 옮기던 본드래곤 뚜식 경이 갑자기 멈칫했다.

그러더니 난데없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처음엔 무슨 일인가 싶었다. 한데 그때, 나비 한 마리가 뚜식 경의 코끝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파국이 일어났다.

“뚜식 경이 재채기를 했습니다. 예고도 없이, 너무나 갑작스럽게 말입니다.”

“그래서, 옮기던 포석 더미를 떨어뜨리기라도 했던 거야? 그래서 인부들이 깔리거나 다쳤고?”

“그건 아닙니다.”

“그럼?”

“뚜식 경은 포석 한 장도 떨어뜨리지 않았습니다. 재채기가 불러온 돌풍이 근처 인부들의 안전모를 벗기기는 했지만, 그것 때문에 특별히 다치거나 한 사람은 없었지요. 하지만 더 큰 문제가 따로 있었습니다.”

“설마.”

“짐작하신 겁니까?”

“대강은?”

라키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이 짐작한 바를 물었다.

“혹시, 뚜식이가 재채기를 한 직후에…… 담벼락에 새겨진 거야? 근처 사람들의 뼈다귀 모양이?”

“정확히 그랬습니다.”

“허허.”

“그것은…… 끔찍한 광경이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아도 소름이 돋는지, 시장이 어깨를 부르르 떨며 간신히 말을 이었다.

“사실 그 현장에는 저도 있었습니다. 몇십 발짝 떨어져 있기는 했지만, 뚜식 경이 재채기를 한 직후에 놀라서 제일 먼저 그곳에 달려간 사람이 저였지요. 혹여나 돌풍에 휘말려 다친 인부가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저는 가장 먼저 달려간 만큼 가장 먼저 그 참상을 목격하고 말았습니다…….”

“뼈다귀 형상?”

“……예, 전하.”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는 시장의 안색이 더욱 참담해졌다.

“전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사실 저는 신을 열렬하게 믿는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때는 신의 이름을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저주라니요.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의 뼈를 담벼락에 새겨 버리는…… 그런 끔찍한 저주라니요. 그런 건…… 상상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

“아마도 직접 저주를 받아 버린 인부들의 심정은…… 더욱 끔찍했겠지요. 사태를 깨달은 이들은 모조리 다리가 풀려 버리고 말았습니다. 누군가는 반대로 허겁지겁 도망치듯 집으로 달려간 이도 있었고 말입니다. 그것이 불과 닷새 전의 일이었습니다. 그 후의 일들은…… 전하께서 이곳으로 돌아와 목격하신 모습 그대로입니다…….”

“…….”

“물론 저도 할 수 있는 모든 대응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급히 신관들을 불러와 저주를 해소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신관들도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광장 담벼락에 새겨진 그 끔찍한 저주의 흔적…… 그걸 보자마자 하나같이 창백해져서 수없이 기도를 올렸지만…… 그 저주의 상흔이 지워지는 일은 없었지요.”

“…….”

“그래서 저는 감히 전하께 아뢰고 싶습니다. 이 도시는 저주받았습니다. 뚜식 경은…… 비록 개심한 듯하긴 했지만 타고난 저주의 속성을 완전히 벗어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니 부디, 전하께서는 신속히 이 저주받은 곳을 떠나십시오. 오직 그것만이 제가 충심을 담아 드릴 수 있는 유일한 간언입니다, 전하.”

“……어, 그래서, 뚜식이는?”

“사태를 깨닫고는 광산 최하층까지 내려가서 나오질 않고 있습니다.”

“자기가 사람들한테 저주를 걸었다고 생각하면서 우울증이랑 손잡고 쎄쎄쎄 하는 중인 거야?”

“아마도 그런 듯합니다. 그러니 전하, 부디 이 사태를 무겁게 여겨 주시면 아니 되겠습니까?”

“응 안 돼.”

“……예?”

나름 비장하게 간언을 올리던 시장 브레다가 멈칫했다. 그 모습에 라키엘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거, 저주 아닌 거 같은데.”

“예에? 하지만,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의 뼈다귀가 벽면에…….”

“아, 그거 엑스레이라서 그런 거거든.”

“엑스……레이요?”

“응.”

“그게, 뭡니까?”

“그런 게 있어. 아무튼 나쁜 건 아니고. 나한테 좋은 거야. 그래서 한 가지 묻고 싶은데. 혹시 당시에 엑스레이 촬영을 당했던 주변의 인부들 말이야. 그들 중에 몸져눕거나 아프게 된 사람이 있어?”

“아, 아뇨. 아직은…….”

“앞으로도 그거 때문에 아플 일은 없을 거야. 그럼 일단 뚜식이부터 좀 보고 와야겠네.”

“예? 전하? 하지만……!”

“아이고, 저주 아니라니까 그거.”

뚜식이를 보러 가겠다는 말에 기겁하며 일어나는 시장 브레다. 라키엘은 그를 안심시키느라 한참이나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덕분에 라키엘은 제법 애를 먹고서야 그를 떼어내고 광산으로 향할 수 있었다.

‘하. 엑스레이라니.’

생각하니까 새삼 기도 차지 않았다.

기뻤다.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랄까.

‘뚜식이의 코어가 안정화가 되면서 방사선이 완전히 봉인된 줄 알았는데. 그것까진 아니었나 보네.’

이제 보니 미약한 엑스선 정도는 여전히 뿜어낼 수 있는 듯했다. 광장 담벼락에 남겨진 인부들의 엑스레이 촬영 결과물이 그 증거였다.

‘……이거, 잘만 하면 별궁 한의원에 엑스레이 장비가 생기는 거잖아?’

생각만 해도 두근거렸다.

사실 지금껏 써먹고 있는 경혈 스캐닝에도 한계는 있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신체의 마나 흐름을 통해 질환을 짐작하고 추적하는 스킬이었다.

때문에 뼈나 관절의 모습을 직접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게 가능해질 것 같다. 심지어 할로겐화은(AgBr) 등의 감광유제가 도포된 전용 필름조차도 없이 촬영할 수 있는 엑스레이라니!

광산을 내려가는 발걸음이 절로 가벼워졌다.

‘물론 그 전에 사람들의 오해부터 좀 풀어줘야겠지.’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의 뼈다귀가 벽면에 딱. 엑스레이를 모르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오해하기 딱 좋긴 하다.

그건 엉겁결에 엑스선을 방출한 뚜식이 본인(?)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오랜만이야, 뚜식아?”

- 뚜우우……?

“좀 괜찮아?”

- 뚜웅뚜우……?

“어이쿠, 안색이 왜 이래. 애가 뼈밖에 안 남았네.”

- 뚜앙뚜…….

광산 최하층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뚜식이. 오랜만에 만난 녀석은 어깨가 축 늘어져 있었다.

아마도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리는 탓이겠지.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에게 저주를 걸었다고 생각하며, 과거의 자신이 저질러 버렸던 살생의 기억이 되살아나 괴로워하고 있었겠지.

라키엘은 안타까움을 느끼며 말했다.

“시장한테 이야기 다 들었어. 난리가 났었더라.”

- 뚜우우…….

“그런데 넌 나쁘게 하려던 거 아닌데. 나는 아는데. 사람들 참 야속했다. 그치?”

- 뚜우?

“네가 재채기를 하니까 벽에 새겨졌다던 사람들 뼈다귀 그림 말이야. 그거 저주 아니거든, 사실은.”

- 뚜우우우……?

“진짜야. 사실은 그거 무지 좋은 거야.”

- 뚜앙뚜!

“어, 내 말 안 믿어?”

- 뚜우…….

“고개, 잠깐만 들어볼래?”

- 뚜우웅…….

“내 얼굴 안 볼 거야? 오랜만에 보는 건데?”

- 뚜두우…….

“옳지. 그렇지. 나 봐봐. 그러니까, 여긴가?”

마침내 푹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어서 이쪽을 돌아보는 뚜식이. 라키엘은 활짝 웃으며 뚜식이의 코끝을 손가락으로 콕, 눌렀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 뚜…… 뚜우……뚜쉬익!

푸확!

마치 버튼이라도 누른 것처럼 즉시 터져 나오는 뚜식이의 맹렬한 재채기!

하지만 라키엘은 재채기의 압력에 날려가진 않았다. 미리 대비한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뚜식이가 자신의 재채기에 아연실색 놀라기 전에 얼른 녀석의 커다란 머리통을 꼭 안아 주었다.

“워. 워. 괜찮아. 아무 일 없어.”

- 뚜, 뚜우우!

“광산 벽에 내 뼈다귀 새겨졌다고? 어디 보자. 어이구, 뼈도 잘생겼어, 아주.”

- 뚜우, 뚜두!

“큰일 안 나. 괜찮아. 나 멀쩡하잖아. 내가 말했지? 저주 아니라고.”

- 뚜우우……?

“사실은 이렇게 뼈를 촬영할 수 있는 거, 엄청나게 좋은 거거든. 사람 몸을 째지 않고도 안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거잖아? 덕분에 어디가 아픈지도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거고. 안 그래?”

- 뚜두우?

“네가 그런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거야.”

- 뚜우? 뚜두?

“그래, 네가.”

- …….

비로소 이쪽의 말에 믿음이 생겨나는 걸까. 불안감에 떨리던 뚜식이의 두개골이 조금은 진정되는 것이 느껴졌다.

라키엘은 싱긋 웃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손목을 짚고서 셀프 진맥을 실시했다. 그 결과 자신의 몸은 멀쩡했다.

뚜식이의 엑스레이가 지나치게 강력해서 의도치 않은 방사선 피해를 입히지도 않았다. 즉, 결론은 깔끔했다. 뚜식이의 엑스레이, 안전함에 이상 없음. 땅땅땅.

“그러니까 말이야, 뚜식아.”

- 뚜우?

“너 재채기를 할 때 자동으로 뿜어져 나오는 힘 말이야.”

- 뚜두우?

“그거 출력이 들쭉날쭉하거나 그러진 않지?”

- 뚜우!

“완전 일정하다고?”

- 뚜!

“더 좋네.”

라키엘은 씨익 웃었다.

다행이다. 매우 좋다. 그러니까 손쉽게 추진할 수 있겠다.

“그럼 일단 사람들의 인식부터 좀 바꾸자.”

- 뚜우우?

“네 엑스레이가 무서운 저주라는 오해부터 풀어야지. 그러자면-”

마침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라키엘은 뚜식이를 보며 자신 있게 말했다.

“인생뼈컷 캠페인, 슬슬 기획 좀 해볼까?”

- 뚜두우우……?

“어. 간만에 상술 한 번 부려볼까 해서.”

이쪽의 말에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는 뚜식이. 흐뭇하게 웃으며 계획을 차곡차곡 떠올리는 라키엘. 이 도시의 역사에 길이길이 새겨질, ‘인생뼈컷 페스티벌’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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