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6화. 인생뼈컷 페스티벌 (1)
상술이란 교묘한 심리전이다.
내가 원하는 조건과 가격으로 상대가 지갑을 열도록 만든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상대가 불만을 가져서는 안 된다. 오히려 만족해야 한다. 좀 비싼 것 같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곳에 돈을 썼다고 생각하게 해주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쓴 돈을 생각할 때마다 오히려 보람을 느끼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요컨대 훌륭한 상술은 서로가 만족하는 것! 소비자가 오늘의 지름에서 스스로 의미를 찾으며 행복해하는 것!”
“…….”
회의실이 침묵에 휩싸였다.
라키엘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라키엔데 시의 시장 브레다, 아스라한 변경백, 그리고 최근접 호위 데미안까지. 세 남자가 각자의 어이가 털린(?) 눈빛과 표정을 애써 감추고 있었다.
라키엘이 한쪽 입술을 말아 올렸다.
“왜? 다들 이상해?”
“예, 전하.”
제일 먼저 냉큼 대답한 이는 데미안이었다. 녀석이 말했다.
“조금 이해가 안 됩니다.”
“이해가? 안 돼?”
“네.”
“어느 부분이?”
“전하께서 말씀하신 뚜식 경의 엑스레이 말입니다. 그게 나쁜 저주가 아니라는 건 설명을 통해 충분히 들어서 알겠습니다. 그런데 과연…… 도시의 사람들도 그걸 선뜻 믿고서 엑스레이를 찍으려 들까요?”
“그렇게 만들어야지. 그래서 상술을 부리는 거잖아.”
“그 상술이라는 게…… 사람들의 뼈다귀 사진 엑스레이를 벽돌에 새기고, 그 벽돌을 도시의 광장 보수 공사에 사용해서 잘 보이게 전시하고, 대신에 소정의 ‘기부금’을 촬영비로 받겠다는 겁니까? 사람들에게서요?”
“그렇지. 잘 이해했네. 그런데 뭐가 이해가 안 돼.”
“돈을 받는 부분이 이해가 안 됩니다.”
데미안은 진심으로 의아함을 느끼며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뚜식 경의 엑스레이에 공포심과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걸 찍어주는 대가로 돈까지 받게 되면…… 오히려 사람들이 더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까요?”
“응 아니야.”
“어째서 말입니까?”
데미안이 되물었다. 솔직히 좀 이상한 논리였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돈까지 내면서 찜찜하고 두렵고 불안한 일을 선뜻 하는 사람이 있을까. 자신이 생각하기엔 그런 사람은 머리가 좀 이상한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라키엘의 입가를 점령한 피식거리는 웃음은 한결 짙어지기만 했을 뿐이었다.
“아. 이런이런. 우리 카이엔 경은 내가 말한 상술이 어떤 의미인지 전혀 감을 못 잡았네. 안타깝게도.”
“…….”
“잘 들어봐. 데미안? 네가 말했듯이 사람들이 뚜식이의 엑스레이를 두려워해. 몹시 고약하고 사악한 저주가 아닐까 불안해하고 있어. 그런 상황에서 ‘공짜’로 그걸 찍어준다고 하면? 사람들이 의심을 할까, 안 할까?”
“어, 그건…….”
“분명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거야. 아, 황태자가 뭔가 숨기고 싶거나 우리에게 잘 보이고 싶은 게 있으니까 우리에게 베풀 듯이 공짜로 촬영을 해준다는 거구나. 그런데 이게 과연 공짜일까? 왜 공짜인 걸까. 더 찜찜하고 불안한데, 흐음. 이라고 말이야.”
“…….”
데미안은 입을 다물었다. 원탁에 나란히 앉아서 경청하던 시장과 변경백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세 남자는 어렴풋이 생각했다. 지금 황태자가 하는 말이 뭔가, 엄청, 불합리한 듯하면서도 묘한 설득력이 있다고.
라키엘의 말이 이어졌다.
“원래 사람 심리가 그런 거거든. 공짜? 무조건 좋아할 거 같아? 아니야. 평소에 말로는 그렇다지만 막상 실제 상황이 닥치면 달라져. 왜냐. 사람은 이득에 민감한 동물이거든. 어떤 상황과 맞닥뜨리면 본능적으로 마음속에서 손익을 따진단 말이야. 그래서야. 누군가가 대가 없는, 비용 없는, 그저 공짜를 외치며 자신에게 다가오면 본능적인 의심을 품게 되는 건 말이지.”
“그런…… 겁니까?”
“그렇지. 만약에 누가 너한테 접근해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검술과 심법을 공짜로 전수해준다고 제의한다면? 너는 그걸 덜컥 받아들일까?”
“으음, 아니오. 조금 찜찜할 것 같습니다.”
“바로 그거지. 그러니까 소액의, 누구에게나 부담이 없을 정도의 기부금을 살짝 받는 거야.”
“사람들의 의심을 지우기 위해서 말입니까?”
“그렇지. 거기에 추가로 사람들이 자신이 지불한 비용에 의미를 부여하며 만족감을 얻게 될 거고.”
“…….”
“사람 심리라는 게 좀 그래. 그렇게 돈을 내고 엑스레이를 찍게 하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걸? 우와, 저거 알고 보니까 나쁘진 않은 건가 봐. 그러니까 돈까지 받는 거겠지.”
“정말…… 그렇게 생각할까요?”
“당연하지.”
라키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장 브레다를 향해 물었다.
“그래서 말인데. 내가 알기로 열흘 후쯤에 이 지방의 뜻깊은 명절이 있다며?”
“아, 예, 전하. 그렇습니다.”
“어떤 명절이야?”
“유일신인 오르무스께서 첫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세상에 첫 번째 가르침을 전파하신 뜻깊은 성축일입니다.”
“성축일이라. 멋지네. 어떤 가르침이었지?”
“너희는 스스로와 이웃을 널리 사랑하라, 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매년 성축일이 되면 광장에 모여 다 함께 음식을 나누고 축제를 열곤 했습니다. 또한-”
“또한?”
“젊은이들은 평소 마음에 두고 있던 상대에게 고백을 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나쁜 날이네.”
“예?”
“아, 농담이고.”
“…….”
농담, 아닌 거 같았는데.
순간, 진심이 좀 보였는데.
그러나 시장은 그런 본심을 사회생활 짬밥으로 꾹꾹 눌러서 봉인했다. 라키엘이 그에게 물었다.
“어쨌건 잘됐네. 그럼 올해도 축제가 열리는 거고?”
“그건…….”
“아닌 거 같아?”
“예, 다들 뚜식 경 때문에 너무나 놀라 버려서…….”
“쯧쯧. 그러면 안 되지. 축제가 안 열리면 섭하잖아. 내가 열리게 해줘야겠네.”
“어떻게…… 말씀이십니까?”
“말했잖아? 상술.”
“상술…….”
“그걸 위해서 시장, 그대가 해줄 일이 있어. 일단 도시 곳곳에 팻말을 좀 세워줘.”
“팻말을 말입니까?”
“어. 내용은 내가 알려주는 그대로 써두면 될 거야. 그거면 충분하겠지.”
“충분할 거라니, 무엇이 말씀이십니까?”
“사람들이 엑스레이를 찍고 싶어할 거야.”
“…….”
의미심장한 미소를 그려내는 황태자.
그런 그를 바라보는 시장 브레다와 아스라한 변경백. 최근에 충성을 맹세한 두 남자는 황태자를 보며 각자 똑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이 사람, 어쩐지 가끔, 아니, 그보다 훨씬 자주 알쏭달쏭하다고. 좀처럼 속을 파악할 수가 없다고.
그리고 데미안은 가만히 생각했다.
이 인간, 또 시작이구나, 라고.
♣
그날 오후, 국경 도시 라키엔데 곳곳에 수백 개의 팻말이 내걸리고 세워졌다. 시장 브레다의 직인이 버젓이 찍힌 팻말이었다.
팻말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오늘부로, 뚜식 경의 뼈다귀 사진은 황태자를 비롯한 황족과 신관들만이 독점할 수 있음을 선포하느라.]
처음엔 그걸 본 사람들은 의아함을 느꼈다.
“여보? 이거 좀 이상하지 않아요?”
“그러게. 뼈다귀가 벽면에 새겨지는 무시무시한 일을…… 황태자 전하와 신관님들만 겪을 수 있다니?”
“혹시 그분들이 우리 대신 사진이라는 저주를 덮어써 주시는 걸까요?”
“나야 모르지. 그분들의 속을 어찌 알겠어.”
“하지만 그러면 조금…… 위험할 것 같은데.”
“그러게. 너무 무리하시는 건 아닐지…….”
처음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걱정’이었다.
이미 시민들의 무한한 존경을 받고 있는 황태자였다. 본드래곤과의 혈전에서 보여준 솔선수범과 희생, 그 후에 도시민들의 회복을 위해 만들어 준 홀리워터탕까지. 덕분에 황태자를 향한 이곳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은 거의 신앙의 수준에 다다라 있었다.
신관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들이 섬기는 유일신 오르무스에 대한 신앙은 이곳 사람들의 생활, 그 자체였다. 당연히 대부분의 신관들은 이곳 사람들의 영적인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한데 그렇듯 대단한 분들인 황태자와 신관님들이 뚜식 경의 저주를 몸소 감당하시겠단다. 사람들에게 금지령을 내리면서까지 손수 감내하시겠단다.
소식을 들은 시민들은 걱정하고, 염려하며 아연실색하였다. 누군가는 가만히 눈물짓기도 했다. 또 누군가는 그런 끔찍한 일은 일어나게 둘 수 없다며, 자신들이 나서서라도 뚜식 경의 저주를 받아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도시민들의 염려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바로 다음 날 아침부터, 황태자가 광장 중앙에서 보란 듯이 셀프 엑스레이를 찍어댔기 때문이었다.
- 뚜…… 뚜쉬익!
푸확!
코끝을 누르자마자 어김없이 터지는 뚜식이의 재채기!
맹렬한 콧바람 폭풍이 순간적으로 주위를 휩쓸었다. 그러나 라키엘은 태연했다. 머리칼이 흩날리는 상황을 오히려 즐겼다. 그리고 포즈를 잡았다.
‘브이!’
찰칵!
재채기와 함께 뚜식이의 코어에서 뿜어져 나온 5 KeV 이상의 엑스선이 공기를 관통했다. 라키엘의 몸을 통과했다. 특히 라키엘의 몸속에 있는 물과 지방 등의 조직은 거의 프리패스로 지나갔다.
그러나 뼈는 달랐다. 엑스선은 뼈를 통과하지 못했다. 가로막혔다. 덕분에 라키엘의 뒤편에 놓인 새하얀 회벽에는 지방과 물, 단백질 등의 조직을 통과한 엑스선만이 날아가 부딪쳤다. 그리고 까맣게 그을린 흔적을 남겼다.
심지어 기존의 아날로그식 엑스레이 기계였다면 필요했을, 할로겐화은(AgBr) 등의 감광유제가 도포되어 Compton 효과를 통해 엑스선의 이미지를 보여줬을, 전용 필름조차도 없이!
“오오. 잘 찍혔네.”
물론 전용 필름을 사용한 것이 아니기에, 오로지 뚜식이의 코어에 깃든 마법적 특성의 도움을 살짝 받아서 벽면에 인화된 이미지이기에 제법 흐릿했다. 실제로 의료용으로 써먹기에는 보완이 제법 필요할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목적이 달랐다.
진료를 위해 촬영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인식 변화를 위해 꾸미는 작당질(?)을 위한 촬영이다.
“그러니까 한 컷 추가?”
꾸욱?
라키엘이 신호를 보냈다.
데미안이 뚜식이의 코끝을 꾹 눌렀다.
뚜식이의 재채기가 자동으로 터졌다.
- 뚜쉬익……!
푸확!
다시금 광장을 휩쓰는 재채기 폭풍!
동시에 또다시 새겨지는 라키엘의 모델 포즈 뼈다귀!
“……라지만, 저도 함께 찍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잖아. 촬영기사니까.”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괜찮아. 그러라고 이 짓 하는 거야.”
“…….”
데미안은 걱정스러운 눈길로 광장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쪽보다 훨씬 걱정스럽게 이쪽을 쳐다보는 도시민들이 수두룩했다.
라키엘이 태연하게 말했다.
“걱정 마. 지금이야 다들 이쪽이 뭔 희생을 치르나 싶어서 저러지만, 이틀만 지나도 다들 시선이 바뀔 거니까.”
“바뀐다고 하심은……?”
“부러워할 거야. 나를.”
“…….”
과연 그럴까.
데미안은 깊은 산 속 옹달샘처럼 쑴펑쑴펑 요동치는 의문을 느끼며 뚜식 경의 코끝 엑스레이 발동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닷새 뒤.
라키엘의 호언장담이 사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