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과의사 엘리제-3화 (3/194)

00003  1-1  =========================================================================

그녀는 간신히 눈물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아버지, 엘 드 클로렌스 후작은 헛기침했다.

“미안하구나. 네가 그렇게 힘들어할 줄은 몰랐다.”

가족들은 그녀가 벌 받은 게 서러워서 그렇게 울었다 생각했다.

지현은 가만히 답했다.

“아니에요. 제가 잘못한 거니까요.”

사실 그녀는 자신이 무슨 잘못을 해서 벌을 받았는지 모른다.

‘뭐, 무언가 잘못했겠지. 비싼 물건을 집어 던졌거나, 아랫사람에게 행패를 부렸거나.’

본인 스스로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참 그녀의 성질은 뭐 같았다.

아무리 인형처럼 예쁘게 생기면 뭐하는가? 성격이 이따위인데.

‘그래도 아직은 크게 문제가 될만한 사고는 저지른 게 없다는 게 다행이겠지?’

지금은 제국력 283년.

그녀의 나이 16살로, 다행히 큰 잘못을 저지르기 이전의 시기였다.

‘아직 잘못하기 전이니까. 다 바꿀 수 있어.’

반드시 이전 삶을 반복하지 않고, 가족들을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리라.

지현은 그렇게 다짐했다.

한편, 그런 그녀를 보는 가족들의 표정이 이상했다.

'애가 왜 이렇게 변했지?'

평소와 너무나 달랐다.

짜증이 사라진 태도, 부드러운 말투.

그리고 도저히 16살의 어린 나이로 느껴지지 않는 차분함.

모르는 사람이 보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10일간의 감금이 너무 힘들었나?’

엘 후작은 자신이 어린 딸에게 너무 심한 벌을 내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전에는 어떤 벌을 줘도, 상처는커녕 전혀 반성도 없었는데.’

저렇게 온화하게 앉아있으니 보기야 좋았지만,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금방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겠지?’

그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착한 모습으로 계속 있으면 참 좋겠지만, 아마 며칠 못 갈 것이다.

자신의 딸이지만, 예쁜 외모와 다르게 성품이 너무 못 됐다. 아무리 혼내고, 가르쳐도 소용없었다.

‘내가 죽기 전에 저 아이가 철드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그는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 순간, 그는 상상도 못 했다.

자신의 바람이 얼마나 빨리 이루어질지.

그날부터 그의 딸, 엘리제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

“마리, 나머지는 내가 할게.”

“괘, 괜찮은데...”

“아니야. 내가 하는 게 편해서 그래. 그리고 너 다른 일할 것도 많잖아. 가서 일봐.”

하녀, 마리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소녀가 정말 엘리제인지 의심했다.

‘혹시 다른 사람인 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저 인형같이 예쁜 얼굴을 보면 엘리제가 분명했다.

“아, 그리고 아까 케이크 고마워.”

“...!”

마리는 다시 한 번 놀랐다.

이전의 엘리제는 자존심 때문에 절대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았다.

‘정말 아가씨가 맞는 거겠지?’

마리는 최근 그녀의 변화를 떠올렸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하루아침에 사람이 바뀌었다.

‘심지어 우리한테 사과도 하시고.’

가족들과의 만찬 이후, 엘리제 아가씨는 믿을 수 없는 일을 하였다.

지금까지 자신이 심하게 행패 부렸던 사람들한테 찾아가 사과한 것이다!

모두 깜짝 놀라 그 사과를 받았지만, 당시 그녀가 진심으로 변했다고 생각한 이는 없었다.

한때의 변덕이고, 곧 다시 이전처럼 못되게 굴 것이라 여겼다. 사람의 인성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날 이후 아가씨는 정말로 변했다.

‘전혀 성질도 안 부리시고, 아랫사람들 배려도 해주시고...’

마리는 엘리제의 얼굴을 바라봤다.

‘심지어 어제는 한스의 어머니가 아픈 걸 아시고, 치료비도 주셨어.’

그뿐이 아니었다.

선배 하녀인 매리가 임신했다는 소식에 선물을 주기도 하고, 몸이 안 좋은 유니에겐 약을 지어주기도 했다.

그런 배려를 받은 사람들이 엘리제 아가씨에게 얼마나 감동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갑자기 천사가 아가씨의 몸에 들어간 것일까?’

아직 어린 마리는 그런 생각을 하였다.

확실히 인형처럼 예쁜 엘리제가 온화하게 웃을 때면 마치 천사가 미소 짓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만약 천사가 들어온 거면, 천사님. 계속 떠나지 말고 이대로 있어주세요.’

마리는 그렇게 바랐다.

지금의 엘리제 아가씨는 너무나 착하고, 좋아서 영원히라도 옆에서 모시고 싶을 정도였다.

***

‘아, 시간이.’

종이에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던 지현은 시계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 지현이 엘리제의 몸으로 돌아온 지도 벌써 한 달에 가까워진다.

어느 정도 생활에 익숙해진 그녀가 최근에 시작한 일.

그건 바로 효도였다.

“아버지, 저 엘리제에요.”

노크를 한 그녀는 아버지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크흠, 왔느냐?”

“네, 업무 보시느라 힘드시죠? 피곤하실 것 같아 차를 준비해왔어요.”

“크흠, 크흠.”

그녀가 시작한 효도는 별것 없었다.

아버지가 마시는 차, 직접 준비해주기. 가끔 디저트 해주기. 적적한 새어머니와 말벗 해드리기 등.

다 사소한 일들이었지만, 원래 진정한 효도는 마음이었다.

‘이전 삶에선 고아였어서 효도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지.’

죽고 나서야 부모님들의 소중함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그래서 송지현으로 살아가며 이런 순간이 오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아버지, 왜 그러세요?”

엘리제는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버지에게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 아니... 네가 이렇게 차를 끓여주니...”

“??”

“좋아서 말이다. 크흠. 내가 우리 딸이 달여주는 차를 마시는 날도 오다니.”

그렇게 말한 아버지는 헛기침하였다.

딸에게 이런 효도를 받은 적이 처음인 그는 적잖이 감동한 눈치였다.

그 모습을 보니, 엘리제는 가슴이 뭉클했다.

고작 차 달여드리는 게 뭐라고.

‘앞으론 자주 끓여드릴게요. 아니, 더 좋은 것도 해드릴게요.’

“차는 입맛엔 맞으세요?”

“아, 그래! 참 맛있구나. 황궁에서 마시는 차도 이렇게 깊은 맛이 나지 않은데.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끓인 것이니?”

엘 후작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딸이 끓여주는 차는 황궁의 전문 시녀가 끓이는 것에 비해 맛이 못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능가하는 것 같았다.

“이전에 틈틈이 공부했었어요.”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뭐, 거짓은 아니니까.’

이전 첫 번째 삶.

황후가 된 후, 차를 좋아하는 황제의 마음을 잡으려고 다도를 공부했었다.

별 효과 없는 노력이었지만, 황궁에서 배운 솜씨이니만큼, 그 실력은 웬만한 장인 못지않았다.

이후, 두 번째 삶에선 외과의사로 살면서 제대로 된 차를 끓일 일이 없었지만, 다행히 실력이 녹슬진 않은 것 같았다.

“그러면 이만 가볼게요.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아버지.”

엘 후작은 뭔가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 조금 더 있다가 가도 된단다.”

“아니에요. 제가 있으면 방해되잖아요. 저녁 식사 때 뵐게요. 그러면 수고하세요.”

그러고 그녀는 시끄러운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히 문을 닫고 나갔다.

엘 후작은 그녀가 나간 방문을 한참을 바라봤다.

그는 감동한 얼굴로 생각했다.

‘우리 딸이 저렇게 변하다니. 아버지 건강도 챙기고.’

원래 바라만 보고 있어도 행복한 게 자식이다.

그런데 이렇게 효도까지 하니 어찌 아니 기쁠까?

그는 이 행복이 날아갈까 봐, 딸이 남기고 간 차를 조금씩, 조금씩 아끼면서 마셨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