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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엘리제-38화 (38/194)

00038  2-2 뜻밖의 대형사고(?)  =========================================================================

그때 민체스터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런데 영애. 궁금하지 않나?”

“……?”

“어째서 짐이 어제의 일을 벌였는지. 사실 굳이 이런 무리한 발표 따위 하지 않아도 영애가 내기에서 이기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변하는 것은 없을 텐데 말이야. 그렇지 않나?”

엘리제는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황제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말을 이었다.

“짐이 영애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야.”

“……?!”

“난 영애가 우리 황실의 일원이 되길 원하네. 태자의 비가 되어, 린덴의 모자란 점을 채워주고, 짐과도 아버지와 딸 같은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어. 그 바람 때문에 짐이 욕심을 부렸네.”

진심이 담긴 목소리.

엘리제는 혼란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어째서? 어째서 그렇게까지 나를?’

그녀는 황제의 눈을 바라봤다.

이전 삶에도 그랬다.

그는 자신의 모자란 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항상 자신을 아끼고 총애해 주었다.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내가 친우의 딸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지난번 정숙한 모습을 보여서?

아니다. 그런 것만으론 설명되지 않았다.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짐작 가는 바가 없었다.

‘도저히 모르겠구나.’

황제가 말했다.

“그래서 영애에게 제안이 있네.”

“무엇입니까?”

“우리의 내기는 그만두는 것이 어떻겠나?”

“……?!”

“영애는 모르겠지만…… 난 정말로 영애를 아끼네. 그래서 영애가 더는 병원 같은 곳에서 고생하는 것을 보고 싶지가 않아. 애초에 이렇게 고생할 줄 알았으면, 내기를 시작하지도 않았을 거야. 짐은 영애가 금방 포기할 줄 알았거든.”

그리고 황제가 인자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정말로 그녀를 걱정하는 눈이다.

그는 자신의 가족이 될 것이라 여기는 그녀가 더는 괴로운 고생을 하는 것을 원치 않고 있었다.

“폐하…….”

엘리제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마음은 알겠다.

정확한 이유야 알 수 없지만, 황제는 자신을 진정으로 가족으로 받아들이길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모두를 위해서 그건 안 됐다. 결국, 모두가 불행해질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은 너무나 간절히 원하는 길이 있었다. 그 길을 떠난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어려웠다.

“저는…….”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말하려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비명이 연회장에서 울렸다!

“꺄악!”

“여봐라! 누구 없느냐?! 공작부인께서!”

황제와 엘리제는 깜짝 놀라 발코니로 향했다.

그리고 연회장에 펼쳐진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

하버 공작부인이 얼굴이 시퍼렇게 질려 목을 잡고 쓰러지고 있었던 것이다!

***

“……!”

황제가 급히 지시를 내렸다.

“여봐라! 누가 의사를 데려와라! 빨리!”

그리고 그때.

황제의 곁에 있던 유일한 의사가 발을 달렸다!

엘리제였다!

‘빨리! 시간이 없어!’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질식이야! 늦어도 2분 안에 살려내야 해!’

질식(Asphyxia)!

음식물이 공기가 통하는 기도를 틀어막아 숨이 완전히 막혀 버리는 상태!

새파란 안색과 목을 부여잡고 쓰러진 것을 봤을 때 공작부인은 질식한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아도 불안했는데! 이렇게 바로!’

그녀는 필사적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치렁치렁한 드레스가 걸리적거려 아예 손으로 들어 올렸다.

귀족 영애로서 생각지도 못할 모습이었지만,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았다.

아니, 조금 전 황제와 나누던 대화도 머릿속에 없었다.

오로지 단 하나!

공작부인을 살려야겠다는 생각만이 그녀를 지배했다.

‘빨리! 조금 더! 빨리! 1초라도 빨리 도착해야 해!’

그녀는 왜 하필 자신이 2층에 있었을까 후회스러웠다.

짧은 계단이지만, 천국과 지옥만큼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1분 정도 지났을 때. 그녀는 공작부인에게 도착할 수 있었다.

“하아! 하아!”

얼마나 급하게 왔는지 숨을 몰아쉬는 그녀에게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클로랜스 영애?”

“비켜주세요!”

“……?!”

“빨리 비켜주시기 바랍니다! 빨리요! 시간이 없습니다!”

평소 부드러운 모습에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박력!

우르르 몰려 있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주춤 물러섰다.

엘리제는 다급히 공작부인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부인! 정신 차리세요!”

강하게 치며 자극을 주었으나, 전혀 반응이 없었다.

완벽한 의식 소실, 코마(Coma)였다.

‘이런!’

더구나 새파란 얼굴. 얼굴뿐이 아니었다. 손가락부터 발끝까지 전신이 파랗게 변해 있었다.

몸에 산소가 없어 생긴 청색증(Cyanosis)이 분명했다.

‘도대체 무슨 음식이 기도에 걸린 거지?’

급히 주변을 살폈더니, 옆의 테이블에 갖가지 고기 요리와 수많은 디저트가 놓여 있었다.

그녀는 재빨리 공작부인의 자세를 앞으로 한 후, 뒤에서 배를 감싸 안았다.

‘최대한 강하게!’

그리고 손으로 배를 눌러, 복압을 증가시켜 기도의 음식물을 배출시키는 하임리히법을 시도했다.

하지만 몇 번을 해도, 공작부인은 축 늘어져 있을 뿐 반응이 없었다.

‘안 돼! 하임리히법으로는!’

무슨 음식이 걸린 것인지, 단순히 복압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효과가 없었다.

‘어떻게 하지?’

남은 시간은 30초.

아니, 그것도 안 남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 안에 기도를 뚫어주지 않으면 공작부인은 사망할 것이다.

그런데 그때, 엘리제의 눈에 한 가지 도구가 눈에 들어왔다.

‘저거라면?’

그래, 저 도구라면! 숨길을 뚫어줄 수 있다.

하지만 엘리제는 잠시…… 정말 1초도 안 되는 찰나 멈칫했다. ‘저 도구’를 사용해 공작부인을 살려낸 후 자신이 당할 일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대로 강행했다.

‘나중 일은 나중에!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은 살리는 것이 먼저야!’

그녀는 테이블에 놓인 ‘그 도구’를 손으로 집어 들었다.

사람들이 그걸 보고 놀라 비명을 질렀다.

“아니, 영애? 그 무슨?!”

“그거 놓게!”

그녀가 든 도구는 다름 아닌 날카로운 나이프였던 것이다!

엘리제가 하려는 일은 나이프를 메스 삼아 목의 한가운데에 구멍을 내, 숨구멍을 뚫어주는 것이었다.

바로 응급 기관절개술(Emergent tracheostomy)!

‘위험하지만.’

칼로 목을 절개하는 것이다.

위험하지 않을 리가 없다.

목을 지나가는 대혈관을 손상할 시 곧바로 사망이다.

‘하지만 이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

그녀는 곧바로 기관절개술을 시작했다.

남은 시간은 이제 30초 미만 남짓!

그 안에 끝내야 한다.

먼저 공작부인의 목을 뒤로 젖혀 공간을 확보했다.

동시에 나이프를 들지 않은 반대 손으로 갑상패임, 복장패임, 반지연골의 위치를 확인했다.

‘갑상샘도, 혈관도, 신경도 다 피할 수 있는 위치. 높지도 낮지도 않고, 너무 깊게 절개해서도 안 돼.’

그녀의 손가락이 세 번째 기관지 륜(3rd tracheal ring)을 짚었다.

‘이곳!’

곧바로 나이프를 움직였다.

칼로 목을 절개하는 것이건만, 망설임은 없었다. 망설이면 환자가 죽는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주저하지 않는 단호함!

“저, 저! 말려!”

“안 돼!”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순간, 그녀가 외쳤다.

“방해하지 말아주세요! 방해하면 공작부인을 살릴 수 없어요! 반드시 살릴 테니 기다려 주세요!”

“……?!”

간절한 의지가 담긴 외침!

사람들이 멈칫하는 순간, 나이프가 목의 정중앙을 꿰뚫었다!

파앗!

목에서 튀어 오른 피가 엘리제의 얼굴과 하얀 드레스를 물들였고, 귀족 영애들이 비명을 질렀다.

“꺄악!”

하지만 그녀는 눈 하나 깜빡 않고 수술을 진행해 나갔다.

‘3㎝! 절개가 너무 작아도, 커도 안 돼! 깊어도 안 되고!’

주의해야 할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생명과 직결된 기관들을 건드려서도 안 된다.

따라서 가능하다면 전신 마취 후 차분히 진행해야 하는 게 원칙이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온 정신을 집중하며 단숨에 나이프를 아래로 움직였다.

찌익!

다시 피가 울컥 솟아 나왔고, 연회장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저, 저거 빨리 말려! 빨리!”

그러나 그 순간.

엘리제는 속으로 외쳤다.

‘정확히 됐어! 이제 숨구멍만 확보해 주면 돼!’

숨구멍, 기도가 목의 상처를 따라 가지런히 절개되었다.

급하게 했는데도 다행히 아무런 문제없이 성공한 것이다!

절개 창 위로 음식물이 흐릿하게 보였다. 아마 저게 기도를 막고 있었던 것 같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10초 남짓.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숨구멍을 유지하는 튜브를 넣어줘야 한다.

지구라면 기관절개 전용 의료용 캐뉼라를 넣었겠지만, 그녀는 마침 테이블 위에 놓인 딱딱하고 굵은 대롱을 대용으로 기관으로 밀어 넣었다.

‘제발! 호흡이 돌아오길!’

할 수 있는 조치는 모두 했다.

그녀는 간절한 마음으로 공작부인의 호흡이 회복되길 기원했다.

숨구멍을 뚫어주었으니, 이제 공작부인의 몸이 숨을 쉬어내야 했다.

만약 길을 뚫어주었는데도, 숨을 쉬지 못한다면 그때는 인공호흡을 포함한 심폐소생술을 시행해야 하는데, 생존률이 급격히 낮아진다.

‘제발!’

그리고……!

억겁과도 같은 몇 초의 시간 후.

“후우.”

공작부인이 기도로 난 구멍을 통해 길게 숨을 내쉬었다.

“……!”

그 소리를 들은 엘리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간신히 살려낸 것이다.

‘다행이다. 정말로.’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이 한줄기 흘러내렸다. 얼마나 급박했는지, 땀이 송골송골 수도 없이 맺혀 있었다.

그리고 그건 땀뿐이 아니었다.

밀착하여 응급하게 수술을 한 탓에, 얼굴과 드레스에 온통 피가 묻어 있었다.

하지만 그걸 닦을 여유는 없었다.

그녀는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을 바라봤다. 모두 경악과 혼란이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했다.

황실의 친척인 공작부인의 목을 나이프로 꿰뚫었다.

뭔가 응급처치를 하려는 의도였던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황족의 몸을 시해한 것이다.

‘아직 기관절개술이 시행되지 않을 때이니.’

현대 지구에서야 기관절개술이 굉장히 흔한 의료 처치였지만, 이곳은 아니었다.

곧 자신에게 닥칠 후폭풍에 그녀는 눈을 감았다.

‘고생 좀 하겠구나.’

고생 정도가 아니었다.

황족의 몸을 상하게 한 죄로, 잘못하면 황족시해죄로 중벌을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내가 모른 척했으면 공작부인은 사망했을 거야.’

능력이 없다면 모를까, 살릴 수 있는데 어떻게 환자의 죽음을 외면하겠는가?

외과의사의 영혼을 가진 그녀로서는 절대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저벅저벅.

무거운 군화 소리가 들려오더니, 그녀의 목덜미에 섬뜩한 느낌의 금속이 내려앉았다.

“……!”

근위병, 로열 가드였다.

그녀에게 검을 겨눈 로열 가드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

“우리와 함께 가주셔야겠습니다, 영애.”

목에 닿는 금속의 느낌이, 이전 단두대의 기억을 떠올리게 해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떨리는 마음을 참으며 그녀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안내해 주십시오.”

로열 가드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목에 검이 겨누어져 있는데, 너무나 차분한 음색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잘못한 것은 없으니까.’

남들이 오해하기 충분한 상황이지만, 그녀는 오로지 환자를 살리기 위해 한 행동이었다.

그러니 주눅이 들 필요 없다 생각했다.

다만 압송되기 전, 반드시 일러둘 말이 있었다.

“가기 전 부탁드릴게 있어요. 공작부인의 상처를 소독해 주세요.”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로열 가드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반문했다.

목에 칼이 겨눠진 채 끌려가는 상황에서 지금 뭐라고?

하지만 잘못들은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오히려 상세하게 설명했다.

“응급 상황이라 소독을 못하고 수술했어요. 저대로 두면 감염증이 생길 수 있어요. 황궁의 의사들에게 일러 반드시 소독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

“가죠. 안내해 주세요.”

로열 가드는 당황한 얼굴로 엘리제를 압송했다.

당황한 것은 로열 가드만이 아니었다.

연회장 모두가 경악과 혼란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2-2 뜻밖의 대형사고(?) - fin>

<2-3 검제(劍帝) - start>

============================ 작품 후기 ============================

내일 금요일 09:07분에 뵙겠습니다.

드디어 탄신연회 파트가 끝났네요.

사실 지금 출장을 나왔습니다. 오늘 연재분과 내일 연재분은 예약 연재로 올리겠습니다.^^

리플 달아주신 분들, 추천해주신 분들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추운데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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