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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엘리제-43화 (43/194)

00043  2-4 데임(Dame) 클로랜스  =========================================================================

[2막 : 小和田 雅子 ???]

[2-4장 : 데임(Dame) 클로랜스 (1)]

***

술자리가 끝났다.

아니, 정확히는 엘리제가 술기운을 못 이겨 잠들어 버렸다.

“얌전히도 잠들었군.”

미하일은 그녀를 침대에 눕혀주기 위해 두 손으로 안아 들어 올렸다.

“얼씨구? 왜 이렇게 가벼워? 내 약혼녀였으면 가만히 안 두었을 텐데.”

가만히 안 두고 매일매일 맛있는 것을 먹였을 것이다. 절대 이렇게 마른 상태로 못 있게.

“이건 다 형님 잘못이라니까. 얼마나 잘 못하면 절대 결혼 안 할 거라고 그래?”

그는 엘리제를 침대에 눕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백금발이 기분 좋게 와 닿았다.

“이렇게나 귀여운데 말이야. 내가 형님이라면 애지중지 참 잘해주었을 텐데. 절대 도망 못 가게.”

얌전히 잠들어 있는 모습이 참 귀여웠다. 술기운 때문인지 창백한 피부의 홍조는 사랑스러움을 더했다.

“물론 귀엽기만 한 것은 아니지.”

그는 최근 며칠간 그녀가 보여주었던 모습들을 떠올렸다.

여러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방금 전 의술에 대한 강한 의지.

‘제가 의사가 될 수 없다면, 저는 새장에 갇힌 새처럼, 영혼이 말라 버릴 거예요.’

“과연 어떻게 될는지.”

3황자도 부황과 그녀 사이의 내기를 알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조건이기에 당연히 부황이 승리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될지 궁금하군.”

그는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방문 넘어, 어둠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없는 깊은 어둠.

“어쨌든 형님.”

중얼거렸다.

“잘 간수하셔야겠어요. 품 안에 보물, 제대로 간수 안 하다 잃어버리면 속상하지. 그렇지 않아요?”

아무도 없는 허공에 한 장난스러운 물음.

당연히 아무런 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3황자는 쿡쿡 웃더니 잠들어 있는 엘리제에게 인사했다.

“난 내일 아침 이곳, 백원의 궁을 떠나니 당분간 못 보겠네. 안녕히. 또 봐요, 레이디.”

그리고 말했다.

“기대하고 있을 테니.”

***

다음 날, 엘리제는 숙취에 시달리며 일어났다.

‘으, 머리가…….’

어린 몸으로 과음한 탓일까. 머리가 깨질 듯 아팠고 속도 안 좋았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지? 꿀물 먹고 싶다.’

하지만 혈탑에 꿀물이 있을 리가 없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부스스한 얼굴로 물병의 물이나 들이켰다. 술은 마실 때는 좋지만 항상 다음 날이 좋지 않았다.

“영애, 일어나셨습니까?”

그때, 로열 가드가 문밖에서 그녀를 불렀다.

“무슨 일이시죠?”

“면회객이 왔습니다. 들어와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엘리제는 오늘 의학 연구원에서 사람들이 오기로 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숙취에 정신이 없는데... .

‘좀 적당히 마실걸.’

후회가 들었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아, 네. 들어오라고 하세요.”

“그러면 들어가겠습니다.”

문이 열리고 3명의 남자가 그녀의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상대의 얼굴을 본 엘리제는 경악했다.

“……?!”

들어온 이들은 다름 아닌, 황궁 어의인 밴 자작과 그녀의 스승인 그레이엄 남작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테레사 병원의 고트 병원장도 있었다!

“어? 로제?”

들어온 그들은 잠시 상황 파악이 안 된 듯했다.

자신들이 방을 잘못 찾아왔나? 왜 테레사 병원의 천재 도제 로제가 여기에 있지? 하는 눈치.

고트 병원장이 로열 가드에게 물었다.

“우리는 클로랜스 영애를 뵈러 왔는데? 저 레이디가 아니지 않은가.”

“저분이 클로랜스 가문의 영애가 맞으십니다.”

“저 레이디가?”

“네.”

“저 레이디가 클로랜스 후작가의 영애라고? 황태자 전하와 결혼이 예정된?”

“네, 맞습니다.”

“…….”

잠시 정적이 방에 흘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저 소녀가 클로랜스 영애라고? 레이디 로제가 아니라?

하지만 혼란 섞인 그 시선도 잠시.

그들은 곧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경악에 빠졌다.

도제 로제가 클로랜스 가문의 영애였다고?!

‘아. 망했다.’

엘리제는 질끈 눈을 감았다. 난감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갑자기 들키다니.’

언젠가 자신이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때 들키다니. 도대체 뭐라고 설명해야지?

그렇게 3명의 남자와 1명의 소녀는 당황과 경악에 섞여 잠시 말을 잊고 서로만 바라봤다.

“허허, 역시 클로랜스 영애였구려! 어쩐지 이상하다 했소.”

가장 먼저 정신 차린 밴 남작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나 닮았었는데, 눈치를 못 챘다니. 미안하오, 못 알아봐서.”

“아, 아닙니다, 자작님. 먼저 말씀을 드리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면서 엘리제는 허겁지겁 인사를 했다.

“다시 인사드립니다. 클로랜스 가문의 딸, 엘리제라고 합니다.”

클로랜스 가문의 영애로 처음 하는 정식 인사였다.

그 인사를 받고, 완전히 상황을 받아들인 고트가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그, 그러면 영애가 정말로 클로랜스 가문의?”

“네, 이전 개인적 사정으로 말씀드리지 못한 점 정말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사죄드리니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고트의 얼굴이 하얘졌다.

그러면 이전에 후작과 황제가 자신을 불러 물었던 것이?

‘이런, 난 그런 것도 모르고! 내가 혹시 저 영애에게 잘못한 것이 있었나?’

그는 허겁지겁 생각했다.

물론 그가 엘리제에게 딱히 잘못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딱히 잘한 것도 없었다. 가장 아래 교수인 그레이엄에게 떠넘기듯 맡기고 큰 관심을 두지 않았으니까.

‘클로랜스 가문의 가신(家臣)인 케이트 자작이 추천했을 때부터 눈치를 챘어야 하는데!’

올곧으며 권세가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의 그였지만 딱 하나 눈치를 보는 곳이 있었다.

바로 클로랜스 가문.

클로랜스는 테레사 병원의 모든 것을 후원하는 주인 가문이었으니까. 그런 가문의 딸을 대충 내버려 두었다니!

‘내가 직접 도제로 삼아 가르쳤어야 하는 건데!’

뒤늦은 후회였다.

한편 고트 병원장의 반응을 보며 엘리제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모든 것은 정체를 숨긴 그녀의 책임이었으니까.

‘저러실까 봐 정체를 숨긴 거였는데.’

만약 그녀가 처음부터 클로랜스 가문의 딸인 것을 밝혔으면 애초에 정상적인 도제 생활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병원장님, 모두 다 제가 가문을 밝히지 않은 탓이니 마음 쓰지 마세요. 아버지도 다 허락하신 일이고, 병원장님께는 항상 고마워하고 있으세요.”

“그, 그렇습니까?”

엘리제는 이번엔 스승, 그레이엄의 안색을 살폈다.

그 역시 경악한 표정이었다.

단순히 놀라기만 한 것이 아닌, 알 수 없는 심란함과 충격이 섞인 얼굴? 정확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음에 기회를 봐서 따로 사죄를 드려야겠구나.’

그녀는 그렇게 다짐했다.

“그런데 자작님, 오늘은 어떤 일로 오신 건가요? 기관절개에 대해 논하기 위해 오신다 들었는데...”

엘리제는 어의에게 물었다.

비교적 가장 덜 놀란 어의가 답했다.

“아, 네. 영애가 처치한 공작부인의 기관절개 때문에 왔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나눌 말이 많았는데, 한 가지만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영애에 대한 판결이 결정되었습니다.”

“어떻게 되었나요?”

어의는 대답 대신 먼저 미소를 지었다.

“축하합니다.”

“……?”

“당연히 무죄로 판명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뿐이 아니라.”

밴 자작은 잠시 뜸을 들였다.

“황실에서 영애에게 황실장미훈장(皇室薔薇勳章, Royal rose medal)과 명예기사 작위를 수여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

“제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황실장미훈장의 수훈자와 데임(Dame)이 되신 것을 축하합니다.”

데임(Dame).

브리티아 제국에서 명예기사 작위를 받은 여성에게 붙이는 영광된 존칭으로, 귀족 여성에게 있어서 최고의 명예라 할 수 있는 호칭이었다.

***

보상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훈장 수여에 따라 황실에서 매달 일정액의 급료가 나오게 되었다. 클로랜스 가문의 딸인 그녀에게 큰 의미는 없었지만, 평생 나오는 연금이었다.

일시금으로 나오는 보상도 상당했다. 평민이라면 평생 먹고살 걱정이 없는 금액이었다.

‘너무 많아. 왜 이렇게 액수가 크게 책정되었지?’

아마 황족의 생명을 구해서인 것 같았다.

황족을 구했는데, 쩨쩨한 보상을 하면 오히려 황실의 체면이 구겨지게 되니까.

‘그런데 폐하께서 생각보다 큰 보상을 해주시네. 마음에 안 들어 하실 줄 알았는데.’

무죄 선고를 받을 줄은 짐작했지만, 이런 큰 보상까지 받을 줄은 몰랐다.

황실에 공을 세운 이들에게만 주는 황실장미훈장(皇室薔薇勳章)에 명예기사 작위까지!

물론 아무도 손을 못 쓰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황족의 생명을 구했으니, 충분히 훈장과 명예기사 작위 정도는 받을 만했지만, 자신이 의사가 되는 것을 못마땅해하는 황제를 생각하면 의외긴 했다.

‘어떻게 된 일이지? 내가 의사가 되는 것을 용납한다는 뜻일까?’

그녀는 그렇게 희망적인 생각을 잠시 하였다.

하지만 물론 그건 그녀의 희망 섞인 착각이었다.

황제가 이런 상을 내린 것은 오로지 단 하나. 조사단의 판결이 너무 완벽하게 결론 나고, 여론이 그녀에게 호의적으로 몰린 탓이었다.

[황태자비가 될 클로랜스 영애, 과감한 조처로 황실의 어른을 구하다!]

[역시 황태자비로 내정된 클로랜스 영애. 공작부인의 목숨을 구해.]

그녀가 백원의 궁에 갇혀 있을 당시, 이런 기사가 수도 없이 신문에 났던 것이다.

결국, 황제는 쓰린 속을 숨기고 그녀에게 큰 상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엘리제는 백원의 궁에서 풀려났고, 곧바로 훈장 수여식이 예정되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녀는 또 다른 감사를 받았다.

“영애, 정말 감사하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네.”

생각지도 못한 손님이 그녀를 맞이했다.

그녀가 목숨을 구한 공작부인의 남편, 웨일 지방의 대귀족, 하버 공작이 직접 그녀를 찾아와 감사를 표한 것이다!

“아, 아닙니다, 전하.”

하버 가문은 정말 어마어마한 역사를 가진 전통의 대귀족이었다.

280년 전, 브리티아 섬이 통일되기 전, 웨일 왕국의 왕가였으니까. 지금도 웨일 지방의 시민들은 로마노프 황가보다 하버 공작가를 더 존경하고 따랐다.

그런 대귀족이, 웨일 지방의 분봉왕(分封王)이나 다름없는 그가 어린 소녀를 찾아와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송, 송구합니다, 공작 전하.”

클로랜스 가문의 가주인 천하의 엘 후작도 이 사태에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전하.”

“당연하긴. 영애 덕분에 부인이 살았네. 물론 병이 치료된 것은 아니지만 조심하면 앞으로 몇 년은 더 본 공작과 시간을 보낼 수 있겠지. 정말 고맙네.”

그의 목소리엔 부인을 향한 사랑이 가득했다.

그 말을 듣고 엘리제는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보람 때문에 그녀는 의사의 길에 매료된 것이다. 절대 이 길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버 공작은 한참을 진심 어린 감사의 말을 전하고 돌아갔다.

떠날 때 감사의 선물도 주려 했다.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목걸이였는데, 장신구라기보단 보물이란 단어에 더 가까운 물건이었다.

그것만은 극구 사양했다.

무조건 주겠다는 공작과 실랑이가 있었으나, 엘리제도 그것만은 양보하지 않았고, 결국 공작이 졌다.

“그러면 내 이 빚은 절대 잊지 않겠네. 만약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언제든 나에게 말하게. 하버 공작 가문은, 그리고 웨일은 주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한, 무슨 일이라도 영애를 도울 걸세.”

하버 공작가와 웨일의 도움.

어마어마한 약속이었다.

하지만 엘리제는 그저 웃으며 넘길 뿐이었다. 애초에 보상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공작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의사가 되고 싶다고, 영애?”

“네, 공작 전하.”

그는 얼마 전 탄신연회 때 발표된 그녀와 황태자의 약혼 내용을 떠올렸다.

황태자비로 내정되었으니, 의사가 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겠지만 그 사실을 언급하진 않고 이렇게 응원하였다.

“기대되는군. 영애는 정말 좋은 의사가 될 것 같아. 꼭 원하는 바 이루길 바라네. 만약 정말 의사가 된다면 하나만 부탁해도 되겠나?”

“말씀하십시오.”

“만약 우리 가문의 사람이 또 아픈 일이 있으면 영애의 진료를 받을 수 있겠나?”

엘리제는 미소를 지었다.

“네, 얼마든지요. 오히려 제가 영광입니다, 전하.”

그리고 그녀의 훈장 수여와 작위 수여 결정은 곧 론도 전체로 퍼져 나갔다.

신문사가 앞다투어 보도했던 탓이다.

============================ 작품 후기 ============================

바로 한편 더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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