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과의사 엘리제-47화 (47/194)

00047  2-5 변곡점  =========================================================================

[2막 : 小和田 雅子???]

[2-5장 : 변곡점 (1)]

***

두근.

혹시나 하는 생각이 떠오르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서, 설마? 날?’

그녀는 애써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날 본 것이라곤 병원에서밖에 없는데, 그런 마음을 가질 리가 없잖아.’

하지만 그러고 보니 오늘 그가 보여준 모습이 이상하긴 했다. 이유 없이 보러 온 것이나, 디저트를 사준 것이나…….

‘아, 아니야. 정말 설마?’

두근거리는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여전히 무뚝뚝한 얼굴이었다.

방금 자신이 낯 뜨거운 말을 했다는 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한 표정. 아니, ‘같이 보고 싶을 수도 있지, 그런 걸 가지고 뭐?’라는 느낌.

“왜? 같이 보고 싶으면 안 되는 건가?”

“아, 아니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안 될 이유는 없다. 아니, 없나? 있나? 뭐가 뭔지 모르겠다.

“혹시 나와 공연을 보기 싫어 그러는 건가?”

그가 불쾌한 듯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화들짝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 그건 아니에요!”

“그러면 됐군.”

고개를 끄덕인 남자는 표를 끊었다.

가장 비싼 VVIP석으로.

“들어가지.”

입구에서 그가 손을 내밀었다. 마치 레이디를 에스코트하는 신사처럼.

엘리제는 알 수 없는 떨림을 느끼며 그 손을 잡았다.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 드는 손이었다.

***

연극이 끝나고, 엘리제를 집 근처로 데려다 준 황태자는 마차에 몸을 기대었다.

최근 초상(超上) 능력을 너무 자주 사용해서인지 피로했다.

“즐거우셨습니까, 전하?”

시종이 웃으며 물었다.

그 물음에 린덴은 고민했다.

즐거웠냐고?

“글쎄.”

나쁘진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좋았다.

그녀의 밝은 표정을 보는 것이, 그녀의 놀란 눈을 보는 것이, 옆에서 걷는 것이, 목소리를 듣는 것이.

그 모든 것이 즐거웠다.

자신도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놀랄 정도로. ‘그날’ 이후 이런 즐거움은 처음인데.

“저…… 그런데 전하.”

“왜 그러지?”

“너무 변검(變臉, Changing Face) 능력을 자주 사용하는 것은 아니온지? 주제넘은 걱정인지 모르겠으나, 혹시라도 몸에 무리가 갈까 걱정입니다.”

황태자는 부정하진 않았다.

확실히 최근 무리하긴 했다.

그가 아무리 강력한 초상능력자라도 외향을 바꾸는 변검 능력은 쉬운 것이 아니었으니까. 아니, 애초에 그이니까 변검을 이렇게나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변검을 너무 자주 사용하긴 했지.’

다른 것은 몰라도 변검의 매개체가 되는 아티팩트에 무리가 가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조금 조심하긴 해야겠군.’

만약 아티팩트에 문제라도 생기면 강제휴지기가 와 한동안 변검 능력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이렇게 그녀를 찾아갈 수가 없겠군.’

그 생각이 들자, 갑작스레 기분이 나빠졌다.

‘조심해야겠어, 꼭.’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

그렇게 여러 일이 있었던 의사자격시험 날 이후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엘리제는 일상생활을 하며 시험 결과를 기다렸다.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답이 확실하지 않은 문제들 때문에 불안한 마음이 들었으나, 애써 감추었다.

‘아니야. 괜찮을 거야. 기다려 보자.’

그리고 시험 결과를 기다리는 것은 엘리제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아버지, 엘 후작도 노심초사하며 시험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아, 우리 리제가 붙기는 아무래도 어렵겠지?’

그는 딸의 합격 가능성을 희박하다고 보고 있었다.

물론 그녀가 병원 사람들에게 상식 밖의 천재라 불리며 여러 대단한 일들을 해낸 것은 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제 의학의 길에 접어든 지 몇 달 되지도 않지 않았는가? 붙는다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더구나 이번 시험은 과도하게 어려웠다는 이야기가 많고.’

얼핏 연구원에 확인해 보니 합격률이 역대 최악을 넘어, 바닥을 길 것이란 이야기가 있었다.

난이도 문제로 몇 달 뒤 재시험을 치러야 할 것 같다고.

그런 고난이도 시험을 과연 엘리제가 붙을 수 있을까?

‘리제가 꼭 의사가 되길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엘 후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딸이 병원에서 훌륭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자랑스럽기는 하지만, 동시에 의사가 되어 고생하는 것은 싫다.

안 좋은 감염성 질병들을 진료하며, 건강이라도 상할까 걱정이었으니까.

그의 솔직한 심정으로는 의사는 무슨? 평생 품에 넣고 살고 싶다.

하지만 딸이 너무 원하므로. 너무나도 소망하므로.

그녀가 의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꿈이 꺾여 눈물 흘리는 딸의 모습 따위는 절대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설사 이 제국의 황제가 딸을 황태자비로 간절히 원한다고 해도 말이다.

‘만약 엘리제, 네가…… 정말로 폐하와의 내기에 승리한다면, 그때는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황태자 전하와의 결혼을 막아주마. 이 클로랜스 가문을 걸고서라도 말이다.’

물론 황제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그녀를 황태자비로 바라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평생을 충성했고, 앞으로도 영원히 충성을 바칠 황제이지만 이번만은 양보할 수 없었다.

그만큼 딸은 그에게 소중했다.

한편 느긋한 마음으로 시험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황제인 민체스터 드 로마노프였다.

“그래, 이제 곧 시험 결과 발표지?”

“네, 폐하.”

시종장 밴트가 공손히 답했다.

“그래. 엘리제, 그 아이가 어느 정도의 점수를 받았는지 궁금하군.”

총명한 아이이고, 여러 뛰어난 모습을 보여 왔으니 저득점을 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진 않는다.

분명 어느 정도 고득점은 했겠지. 하지만 합격까지는 무리일 터.

‘이걸로 이 내기도 끝이군.’

문득 황제는 개인적 내기 때문에 국가 공인 시험에 개입했다는 것에 살짝 가책을 느꼈으나,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뭐, 이 정도는 괜찮겠지.’

그는 이 나라의 황제다.

평생 사리사욕을 채우는 일 없이, 오로지 나라의 발전과 신민들의 영화를 위해 살아왔는데, 이 정도의 월권을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같이 시험을 쳐 피해를 본 도제들에게는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내기를 마무리 후 재시험을 볼 수 있게 할 예정이니 역시 큰 상관은 없을 것이다.

“저…… 폐하. 그렇지 않아도 연구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응? 무슨 일로?”

“조금 의외의 결과가 나와서…….”

황제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의외의 결과?

시종장은 조심히 입을 열었다.

“그게…….”

한편 그 시각, 의학연구원.

십여 명의 교수가 모여 심각한 얼굴로 논의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 재시험은 확정이군요.”

“네, 그렇게 해야겠습니다. 합격률이 너무 낮습니다. 예년의 반의반도 안 되는 합격률이라니.”

“반의 반이 뭡니까? 붙은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아무래도 그 환자 케이스 형태의 문제가 너무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환자 케이스 형태 문제의 의도가 나빴던 것은 아닌데. 기존의 단답형 문제보다는 환자를 진료하는 능력을 더 정확히 평가할 수 있지 않겠소?”

출제위원장인 에릭 준남작은 결론을 내렸다.

“어쨌든 행정부에 보고 후, 인가가 떨어지면 재시험 일정을 잡도록 해야겠습니다. 정확한 내용이 결정되면 각 병원에 공문을 보내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다음 사안을 이야기하죠.”

그 말에 모두의 얼굴이 진중해졌다.

다음 사안.

역대 최악을 기록한 합격률만큼 중요한 내용이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일개 신입의사들의 합격률보다 훨씬 중대한 사안이었다.

의학계가 발칵 뒤집힐 수도 있는 내용이었으니까.

“이번에 논의할 내용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면서 출제위원장 에릭 교수가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런데 그가 꺼낸 물건의 정체가 의외였다.

삐뚤삐뚤 못생긴 글씨가 써진 몇 장의 종이.

다름 아닌 이번 의사자격시험을 친 누군가의 답안인 것이다!

고작 수험생의 답안을 의학연구원의 최고위원들이 논의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으나, 교수들의 눈빛은 심각했다.

“모두 이 답안은 읽어보셨죠?”

“네, 다 읽어보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답안의 내용들을.”

“…….”

장내에 침묵이 흘렀다.

모두 서로의 눈치만 살필 뿐.

위원장 에릭이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먼저 말해보겠습니다. 솔직히 전 이 답안들을 보고 그날 밤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왜인지 아십니까?”

“…….”

에릭은 쓴웃음을 지었다.

“제가 10년 동안 고민하던 내용의 답이 정확히 적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문제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위장 절제술 후 담즙 역류를 방지할 방법을 기술하시오.>

위장절제술은 최근에야 시도되고 있는 최고 난이도의 수술이었다.

그런데 아직 초기 단계의 수술이어서인지 여러 부작용이 많았다.

그래서 제국과 공화국의 의학계에서는 그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법을 강구하고 있었고, 그런 최신 의학 지견을 알고 있는지 문제를 낸 것이었는데…….

‘기존 그 어떤 의사도 생각하지 못한 방안을 답안으로 적어 제출했지.’

처음엔 그냥 오답 처리 하려고 했다.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한 내용이었기에. 글씨도 알아보기 힘들게 엉망이었고.

하지만 이리저리 수술 도식도 그려져 있고, 전문 용어를 동반한 내용이 잔뜩 적혀 있길래, 삐뚤삐뚤한 글씨를 참아가며 한번 진지하게 읽어봤는데…… 경악했다.

‘어떻게 이런 발상을?!’

출제위원장인 에릭은 제국 내 위장절제술의 최고 대가였다.

그래서 답안에 적혀 있던 삐뚤삐뚤한 글씨가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그건 혁명이었다.

‘Roux-en-Y 위 우회술이라고? 분명 이렇게 수술하면 담즙 역류를 확실히 막을 수 있어. 수술의 난도야 훨씬 올라가겠지만.’

그리고 단지 이것뿐이 아니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10년을 고민한 내용이 이렇게 풀리다니. 허무할 지경이더군요.”

연구원의 또 다른 출제위원이자 로즈데일 병원의 저명한 교수 미크가 말했다.

그가 낸 문제는 바로 자신의 주력전공인 심장 부전 환자의 치료.

“대학자 프레밍이 개발한 약을 그렇게 사용하면 된다는 생각을 왜 지금까지 못했는지. 저 자신이 한심스럽더군요.”

이들 출제위원은 문제를 어렵게 내라는 황제의 황명을 받고 많은 방안을 고민했었다.

기존의 단답형에서 환자 케이스 형태로 추론 능력을 물었고, 희귀병의 비중도 높였다.

그리고 가장 최고 난이도의 문제들!

교수들이 각자 자신의 세부전공에서 아직 치료가 정립되지 않은, 의학계에 화두가 되고 있는 내용을 문제로 냈었다.

최신 의학 지견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그리고 그런 문제들에 대해 어떤 아이디어를 가졌는지 묻기 위해.

‘예상대로 최신 의학 지견을 묻는 문제를 푸는 도제들은 거의 없었지.’

끄적끄적 답안을 적어도, 말도 안 되는 공상이거나 황당한 내용뿐이었다.

개중 일부 몇 문제를 맞추는 이들도 있었으나, 극히 일부.

하지만…… 딱 한 명.

단 한 명만이 모든 문제에 답안을 적어 넣었고, 그리고 그 답안의 내용은 모든 출제위원을 경악에 빠뜨렸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출제위원장 에릭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떤 답들은 최신 의학 지견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아니, 그저 꿰뚫는 수준이 아닌, 답안자의 식견이 내용에 곁들어져 있는데, 그 내용이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물론 단지 그 정도만이었으면 이들 모두가 이렇게 심각하게 논의를 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저 대단한 수재가 나타났다고 여기면 그만이었을 테니.

하지만…… 몇몇 문제의 답안이 그들 모두를 경악에 빠뜨렸다.

‘이건…… 말도 안 돼.’

-위장절제술의 수술적 기법!

-심장 부전 환자의 치료!

-수술 중 감염증을 예방하기 위한 효과적인 소독법!

제국과 프랑소엔 공화국의 거장들이 오랫동안 갑론을박했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던, 모두 의학계의 큰 화두들이었다.

그런데…… 이 종이에.

고작 의사자격시험에 적힌 삐뚤삐뚤한 악필에 기존 패러다임을 아득히 뛰어넘는 가설과 이론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곧바로 한편 더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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