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과의사 엘리제-48화 (48/194)

00048  2-5 변곡점  =========================================================================

[2막 : 小和田 雅子???]

[2-5장 : 변곡점 (2)]

***

어린 도제의 의견이라고 터무니없다 무시할 수도 없었다.

출제위원들은 모두 각 분야의 대가들.

그들 모두 저 답안에 적힌 내용의 의미를 알아볼 수 있었다.

하나하나가 기존 학설을 통째로 흔들 혁명적 가설과 이론이었다.

“나는…… 이 답안의 내용을 학회의 의학자들과 상의해 볼 생각이오.”

“저도 그래야겠습니다. 이건 저 혼자서 알고 있을 내용이 아니니까요.”

해당 분야의 전문 교수들이 그렇게 말했다.

이 답안의 내용은 단지 자신들만 알고 있을 내용이 아니었다. 반드시 학회에 보고해야 했다. 그만큼 대단한 이론들이었다.

그때 한 위원이 물었다.

“그러면 이 답안은 모두 정답으로 처리하면 되겠죠?”

“그거야 당연하지 않소? 이런 답안을 정답 처리하지 않으면 뭘 정답 처리한단 말이오?”

“하지만 그러면…….”

말을 꺼냈던 위원이 주저하며 말했다.

“이걸 다 정답처리 해버리면 너무 고득점이 됩니다.”

“이렇게 뛰어난 답안을 적었으니, 고득점이 아닌 게 이상하지 않겠소? 몇 점이길래 그러오?”

“……99점입니다.”

잠시 불신에 찬 침묵이 장내에 내려앉았다.

한 위원이 떠듬떠듬 물었다.

“구십…… 몇 점이라고요?”

“99점입니다.”

“자, 잘못 채점한 것 아니오? 이번 시험 차석이 82점으로 알고 있는데?”

“정확합니다. 혹시나 오류가 있을까 5번이나 채점했습니다.”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제국 의사자격시험 역대 최고점이 95점인가 그렇다.

그런데 99점이라고? 이렇게 어렵게 낸 시험에서? 200문항 중 딱 2개만 틀렸단 소리 아닌가?

“아, 아무리 저런 뛰어난 답안을 적어내었다 해도 말도 안 되는 점수인데…….”

한 교수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물었다.

“그러면 틀린 2문제는 뭡니까?”

채점을 맡은 교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폐렴의 증상을 묻는 문제와 단순 감기의 치료법 문제입니다.”

“뭐요? 그건 그냥 거저 주는 최저난이도의 문제 아닙니까? 다른 문제는 다 맞추고 왜 그런 문제를?”

“답안에 쓴 글씨가 삐뚤삐뚤해 도저히 알아볼 수가 없어서... 부득이 오답처리 했습니다. 왜 이렇게 글씨를 못 쓰는지 채점하기 진짜 힘들더군요.”

“... ... .”

교수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 저 쉬운 문제들을 제외하고는 다 맞혔다고? 정말로?

위원들의 반응에 위원장 에릭 준남작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도 처음 채점 결과를 들었을 때 저런 반응이었다.

“그만. 답안 내용은 제가 몇 번이나 검토했으니, 틀림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마 우리 브리티아 제국 의학계에 ‘선구자’ 그라함 백작을 능가하는 천재가 나타난 것 같습니다.”

반쯤 농담 섞인 말투였지만, 그 말은 위원장의 진심이었다.

이 답안의 내용을 보면 천재란 말도 오히려 부족했다.

‘더구나 이 답안을 쓴 분은.’

이 답안의 주인공은 애초에 어느 이름 없는 도제가 아니었다.

진즉부터 제국 수도 론도의 의학계, 아니, 제국 전역에서 유명한 이였다.

위원장 에릭 준남작은 답안 주인공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데임(Dame) 클로랜스.”

데임 엘리제 드 클로랜스.

시대를 뛰어넘는 비장절제술로 론도의 의학계를 경악에 빠뜨린 소녀.

그리고 그 경악이 가라앉기도 전에, 과감한 기관절개술로 하버 공작부인의 목숨을 구해 여성 최초의 황실장미훈장과 명예기사 작위를 받은 이.

‘또…… 황태자비가 될 분이시기도 하지.’

제국 최고 명문 클로랜스 가문의 영애인 그녀는 이번 탄신연회 때 황태자비로 ‘사실상’ 내정되었다. 즉, 단순한 의사 지망생이 아닌, 제국의 퍼스트레이디가 될 지고한 여인이었다.

‘왠지 아깝구나. 이런 능력을 가진 분이 황태자비가 되신다니.’

위원장은 속으로 생각했다.

지고한 황태자비가 되는 것이 아깝다니. 누가 들으면 황당해할 생각이지만 진심이었다.

‘처음 기관절개술로 하버 공작부인을 살려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그저 대단하신 분이 황태자비로 내정되었구나, 라고만 생각했지만.’

이 패러다임을 뛰어넘는 혁명과도 같은 답안들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만약 의사가 된다면 의학계의 발전에 크나큰 이바지를 할 것 같은데.’

그는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

엘리제의 수석 합격 소식은 제국 의학계를 강타했다.

[황태자비가 될 데임 클로랜스! 최고 난이도의 의사자격시험에서 역대 최고점으로 수석을 차지하다!]

이번 시험은 극악한 난이도로 합격률이 바닥을 기었다. 단순히 합격만 해도 주목을 받았을 텐데, 역대 최고점이라니?

그리고 단순히 최고점으로 수석만 한 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답안에 적었던 내용들은 곧바로 제국 의학계 학회에 보고돼 혁명적 논란을 일으켰다.

“말도 안 돼. 이게 정말 데임 클로랜스께서 생각해 낸 발상들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저도 이번에 학회에 보고된 내용을 보고 눈을 의심했습니다. 지금껏 고민하던 문제들을 이렇게 풀어내다니!”

“그런데 데임 클로랜스라면 이번에 황태자비로 내정되신 분 아닙니까? 그 명문 클로랜스 가문의?”

“네, 맞습니다. 참 대단하시지요? 황태자비가 되실 분이 이렇게 의학적으로도 뛰어나시다니.”

“하!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지만…… 조금 아쉽구려. 이 답안의 내용을 보고서 우리 황실 십자 병원으로 데려오려고 했는데. 하필 데임 클로랜스라니.”

“그러게 말입니다. 저희 로즈데일 병원도 교수직을 제안하려 했는데.”

제국 의학계에 어느 정도 영향력 있는 의사들은 서로 만날 때마다 그녀에 대해 떠들었다.

그만큼 이번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수석 합격 소식은 단순히 의학계에서만 회자된 것이 아닌, 일반 제국 시민들에게도 퍼졌다.

특종의 냄새를 맡은 하이에나 기자들이 번개같이 기사를 써서 낸 것이다.

[데임 클로랜스! 역대 최고점으로 의사자격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함! 황태자비가 된 이후가 기대돼!]

수석 합격과 황태자비가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그런 사소한(?)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최근 제국의 최고 유명인인 엘리제가 또 일을 터뜨렸다는 것이 중요했다.

기자들은 마치 인기 배우의 가십이라도 터진 것처럼 기사를 퍼뜨렸다.

덕분에 일반 시민들도 모두 엘리제의 수석 합격 소식을 알게 되었다.

“하, 정말 대단하시네. 우리 황태자비님.”

“그러게. 잘은 모르지만, 엄청 어려운 시험이라고 하던데.”

“그래, 내가 아는 부르주아 가문의 차남은 벌써 4번째 낙방하고 있어. 그런데 수석 합격이라고?”

“이렇게 총명하신 분이니 황태자비가 되어서도 잘하시겠지?”

“그럼! 마음도 천사 같다지 않은가? 빈민 구제 병원인 테레사 병원에서 몇 달째 봉사 중이시니.”

“정말 이런 분이 황후가 되셔야 하는데. 금번 황후와 황비께서는…….”

그런데 그 말을 하던 시민이 주변의 눈초리를 받았다.

현 황실의 황후와 1황비, 그리고 1황녀에 대해 말하는 것은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암묵적인 금기였기 때문이다.

그건 시민들이 로마노프 황가와 희대의 명군(名君) 민체스터 황제를 존경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크흠, 내가 실수했군. 그런데 데임 클로랜스께서는 어째서 의사자격시험까지 치르신 거지? 단순히 봉사활동이 아니라, 정말 의사가 되려는 건가?”

“그러고 보니 그러네. 어차피 곧 황태자비가 되실 텐데, 왜 시험까지 치르신 거지? 그것도 수석 합격까지 하면서?”

시민들은 의문을 가졌다.

뭔가 앞뒤가 안 맞았던 것이다.

“몰라. 뭔가 큰 뜻이 있으시겠지. 어쨌든 우리 브리티아 제국의 황태자비가 되실 데임 클로랜스를 위해 건배!”

엘리제의 가족들도 크게 기뻐했다.

특히 노심초사하던 엘 후작의 기쁨은 특히 컸다.

“크하하! 역시 우리 딸이구나!”

과거 근엄함의 대명사였던,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딸 바보로 변한 제국의 명재상은 체통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여봐라! 오늘은 가문의 잔치다! 창고의 술통을 모두 열어라! 하하! 좋은 날이니 모두 다 같이 먹고 즐기자!”

“와! 엘리제 아가씨 만세!”

고용인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렇게 클로랜스 가문의 저택에 갑작스러운 잔치가 열렸다.

맛있는 음식과 질 좋은 술에 가문의 모두가 기분 좋게 취해 갔다.

작은오빠, 크리스가 와인에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그녀를 걱정했다.

“리제, 의사가 되어서도 꼭 몸조심해야 해.”

“네, 작은오라버니도요.”

“내가 몸조심할 게 뭐가 있니? 네가 걱정이지. 하여튼 위험해 보이는 환자에겐 절대로 접근하지 말고.”

작은오빠는 동생이 물가에 내놓은 애처럼 느껴지는 듯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잔소리에 엘리제는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행복했다.

‘작은오라버니. 이번엔 절대 그렇게 되지 않게 할 거야.’

그녀의 추측이지만, 이제 곧 크림원정은 확전된다.

‘지난 삶에선 내가 한 실수를 무마하기 위해 작은오빠가 그 확전된 전쟁에 참전했었지.’

과거, 그녀는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큰 실수를 했었고, 그걸 만회하기 위해 작은오빠가 전쟁에 참전했다.

그리고…… 돌아오지 못했다.

‘이번엔 작은오라버니가 참전할 일은 없을 테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그때 간만에 집에 돌아온 큰오라버니, 렌 남작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합격 축하한다. 못난 줄만 알았더니, 잘하는 것도 있구나.”

그 축하에 엘리제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원체 무뚝뚝한 큰오라버니라 아무 말도 없이 지나갈 줄 알았었는데.

“고마워요, 오라버니.”

그런데 큰오라버니가 오늘따라 이상했다.

머뭇거리며 이상한 것을 물은 것이다.

“음…… 엘리제.”

“네?”

“너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

“……네?”

“좋아하는 공연은? 혹시 좋아하는 취미는 없느냐?”

엘리제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의심했다.

하지만 민망해하는 얼굴을 보니,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갑자기…… 그건 왜요?”

“…….”

꿀 먹은 벙어리.

‘나도 몰라.’

렌 남작 본인도 왜 이런 쓸데없는 질문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전하는 왜 이런 걸 궁금해하시는 거지?’

동생이 뭘 좋아하든 자신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각자 좋아하는 것 알아서 하며 잘 살면 되지!

하지만 자꾸 물으니 신하 된 입장에서 곤란하기 짝이 없었다.

‘차라리 테르시오의 파훼법이나 포병대의 운영, 공화국의 경기병에 대한 대처, 이런 질문이 낫지.’

렌 남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그렇게 클로랜스 가문의 밤이 행복하게 물들어갔다.

즐거운 밤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모두가 행복해하고 있을 때, 엘리제의 합격 소식을 듣고 우울해하는 이가 있었다.

만 제국민의 경외와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명군 민체스터 황제였다.

‘수석 합격이라고?’

그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것도 역대 최고점? 그렇게 시험 문제를 어렵게 냈는데? 정말 대단하군.’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엘리제, 그 아이는 도대체 얼마나 자신을 놀라게 할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아직 내기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엘리제는 그저 의사자격시험에 합격한 것일 뿐이니까.

물론 수석 합격이 대단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매년 한 명씩 꼭 나오는 수석 합격자이다.

내기의 조건, ‘황태자비, 후에 황후가 되는 것보다 의사로서 더 가치 있는 일을 해낼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 그것에는 한참 못 미쳤다.

하지만…….

민체스터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러다…… 엘리제 그 아이가 정말로 내기에서 건 조건을 뛰어넘는 일을 해내는 것은 아니겠지?’

물론 그럴 리는 없다.

성인식까지 이제 고작 4개월.

그 안에 대단한 일을 해봤자, 얼마나 해낼 수 있겠는가?

그녀가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2달 남짓한 시간 동안 그 아이가 보여준 모습들.

어쩌면…….

민체스터의 마음속에 자신이 내기에서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떠올랐다.

그는 괜히 이유 없이 뒷머리가 아파져 오는 것 같았다.

============================ 작품 후기 ============================

내일 토요일 09:07분에 올라옵니다.

읽어주시는 분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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