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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엘리제-96화 (96/194)

00096  4-1 탈출  =========================================================================

1장 탈출 - 3

밖으로 나온 파비앙은 욕설을 삼켰다.

젠장, 안에서 잠기는 형태면 좋을 텐데, 불행히도 포로를 감금하기 위한 것이라 밖에서 잠기는 형태다.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각하를 막을 수 있을까.’

고개를 저었다.

답은 불가능이었다.

지금의 루이는 어떤 말도 듣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막아야 해. 무조건.’

저 추악한 루이에게 더럽혀질 소녀가 아니었다. 막아야 한다.

곧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의 루이가 건물 4층으로 올라왔다.

수술받은 오른손을 붕대로 감고 있었는데, 복도 멀리서도 술 냄새가 확 풍겼다.

“파비앙? 네놈이 왜 여기에?”

루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레이디 클로랜스에게 볼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그래?”

루이가 휘적휘적 파비앙에게 다가왔다.

그런 그의 뒤를 따라, 입구를 경호하던 병사들이 안절부절못하며 쫓아왔다.

루이는 비틀린 목소리로 말했다.

“비켜. 저 안에 레이디에게 나도 볼일이 있으니까 말이야.”

“……!”

파비앙의 얼굴이 굳어졌다.

“많이 취하셨습니다. 다음에 다시 오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루이가 입술을 비틀었다.

“내가 말했지. 비키라고. 아니면.”

그리고 섬뜩한 눈빛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죽고 싶어?”

“……!”

파비앙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레이디 클로랜스에게는 무슨 볼일이 있으신 것입니까?”

“무슨 볼일이냐고?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 빨리 비켜!”

하지만 파비앙은 고개를 저었다.

“비킬 수 없습니다.”

“뭐?”

루이는 헛웃음을 지었다.

파비앙은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레이디 클로랜스는 비록 포로이나, 제국의 퍼스트레이디가 될 여인입니다. 이런 밤에, 그것도 이렇게 술에 취해서 오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다음에 다시 오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 하하!”

루이는 허리를 굽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더니!

짜악!

파비앙의 뺨을 성한 왼손으로 갈겨버렸다.

“……!”

머리가 울리는 충격에 파비앙은 휘청거렸다.

주륵. 입술이 찢어졌는지 한줄기 피가 흘러내려 주먹으로 닦았다.

“진정하십시오, 각하.”

“닥쳐!”

짜악!

다시 따귀가 날아왔다.

“비켜. 좋은 말로 할 때.”

하지만 파비앙은 물러서지 않았다. 빨개진 뺨으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무리 각하의 명이라도 오늘만큼은 따를 수 없습니다.”

“너……!”

루이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는지, 뒤의 병사들에게 명했다.

“당장 이놈을 끌고 가 감옥에 가둬! 파비앙 네놈은 지금 이 순간부터 직위 해제다!”

“하, 하지만…… 각하.”

“어서!”

그러나 병사들은 머뭇거리며 따르지 않았다.

아무리 총사령관이라도, 말이 되는 명령이 있고, 말이 안 되는 명령이 있다.

그리고 지금의 루이는 존경받는 사막의 전갈이 아니라 연달은 패배로 추악하게 몰락한 폐인처럼만 보였다. 그들은 눈치만 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루이는 병사들마저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렸다.

철컥.

권총을 꺼내 들어 파비앙의 머리에 겨눈 것이다!

“가, 각하!”

병사들이 안절부절못하며 소리쳤다.

루이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마지막으로 명령하지. 꺼져.”

“…….”

자신의 이마에 겨누어진 총구를 본 파비앙의 눈이 흔들렸다.

시뻘게진 루이의 눈은 진심이었다.

자신이 물러서지 않으면 진짜로 쏠 것이다.

‘하. 내가 고작 이런 놈을 위해.’

파비앙은 속으로 탄식했다.

그는 죽음의 공포보단 허탈함을 느꼈다. 지금껏 그의 친우이자 수하로 살아온 자신의 인생은 무엇이었나.

“쏘십시오.”

“뭐?”

“쏘라고요, 개자식님아.”

“……!”

생각지도 못한 욕설에 루이의 눈이 멍해졌다.

지금…… 나한테 뭐라고?

“이이……! 너……! 파비앙!”

루이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한번 막 나간 파비앙은 계속 막 나갔다.

“어디 한번 쏴봐! 내가 눈 하나 깜짝 하나! 이 개자식아!”

“너, 너……!”

루이의 눈이 독해졌다.

그래, 내가 이런 꼴이 되니 파비앙마저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다. 다 엘리제, 그 계집 때문이다.

괴물은 그렇게 추하게 생각했다.

“좋아. 소원대로 죽여주지.”

“각하, 멈추십시오!”

병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루이는 무시했다. 그리고 그가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이었다!

끼익!

“잠시만요!”

방문이 열리며 다급한 목소리가 그들 사이를 갈랐다.

결국, 엘리제가 못 참고 방에서 뛰어 나온 것이다!

“레이디! 들어가 있으십시오!”

파비앙이 놀라 외쳤다.

작은 소녀의 눈동자에는 겁이 가득했다. 하지만 소녀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니콜라스 원수. 저한테 볼일이 있으신 것 아닌가요? 파비앙 중령님은 그만 놔주시고, 저와의 용무를 보시죠.”

“레이디! 들어가라니까요!”

파비앙이 다급히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나 소녀는 흔들리는 눈을 다 잡으며 굳은 표정으로 니콜라스를 노려볼 뿐이었다.

“하하! 그래! 내가 볼일이 있는 것은 그대이지! 이 파비앙 놈이 아니라!”

루이가 광소를 터뜨렸다.

그는 권총의 쇠뭉치로 파비앙의 머리를 후려쳤다.

“커억!”

파비앙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뇌진탕으로 기절했다.

“중령님!”

엘리제는 화급히 몸을 숙여 그의 상태를 살폈다.

하지만 그의 상태를 살피기도 전에 거친 손이 그녀의 손목을 잡아 들었다.

“꺄악!”

“이런 놈 살필 정신이 있어? 응?”

루이가 추악한 눈으로 그녀의 몸을 살폈다.

“이제 내 용무를 봐야지. 안 그래?”

“……!”

엘리제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는 그의 눈빛을 본 순간, 이제 자신에게 일어날 비극을 짐작했다.

‘아…… 안 돼!’

엘리제의 몸으로 다시 돌아온 후,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차라리 죽는 게 나아!’

그녀는 눈동자를 돌려 창문을 바라봤다.

4층 창문.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이 손을 뿌리치면 저 창문에 뛰어갈 수 있다.

물론 뛰어내리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그녀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았다. 살아 가족들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저 사막의 전갈에게 치욕을 당할 바엔 정말 죽는 게 나았다.

‘아아……!’

그리고 이 순간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한 얼굴이 있었다.

린덴 드 로마노프.

그녀의 눈에서 한 방울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정체 절명의 마지막 순간, 그녀는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졌다.

그가 보고 싶었다.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가 보고 싶었다. 딱 한 번만 마지막으로 그의 무뚝뚝한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주여, 제발!’

그 순간이었다.

기적이 일어났다.

“……그 더러운 손 놔라.”

지극히 차가운, 그러면서 억겁의 염화와도 같은 분노가 담긴 목소리.

도저히…… 이 자리에서 절대로 들릴 수 없는 목소리에 엘리제의 눈이 커졌다.

설마……? 설마……?

놀란 건 그 자리의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고, 공제?!”

“……!”

천상의 조각 같은, 그러면서도 시리도록 차가운 남자가 불같은 분노로 명했다.

“그 더러운 손 놔. 잘라 버리기 전에.”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엘리제는 왈칵 눈물을 흘렸다.

‘아아…… 전하!’

린덴 드 로마노프.

그녀를 사랑하는 그가 왔다.

***

모두가 유령을 보듯 린덴을 바라봤다.

헛것을 본 듯 눈을 비비는 병사도 있었다.

“어떻게? 공제가 이곳에?”

루이도 그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놀랐는지, 엘리제를 붙잡고 있던 팔을 자신도 모르게 풀었다.

“어떻게 이곳에 들어온 거지?”

하지만 린덴은 그들에게 신경도 쓰지 않았다.

푸른 눈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엘리제만 바라봤다.

“이리로 와.”

“……!”

낮지만 따뜻한 목소리.

엘리제는 다시 와락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으며 그에게 달려갔다.

모두 적의 총사령관 린덴이 출현했다는 사실에 놀라 그녀를 잡을 생각도 못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듯 경보를 울렸다.

“적이다! 적의 총사령관, 공제가 왔다!”

“비상! 관사의 4층이다!”

순식간에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사령부 옆의 관사는 병사들과 장교들의 숙소로 사용하는 곳이다. 따라서 머물고 있는 병사가 수도 없었다.

아까야 루이가 개인적으로 추태를 부리는 중이었던지라 별로 나와 있는 병사가 없었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달랐다.

적의 총사령관이 자국 사령부에 출현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아야 했다.

“뭐? 적의 총사령관이?”

“농담 아니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수도 없는 병사들이 놀라 관사의 방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얼핏 봐도 관사 건물 안에만 50이 넘어 보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경보에 놀란 인근의 병사들도 관사 근처로 달려왔다. 곧 건물 근처로 푸른 제복의 공화국군이 수도 없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사면초가(四面楚歌)의, 하늘로 솟아오르지 않는 한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린덴은 적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에게 달려온 소중한 소녀만 바라봤다.

“저, 전하?”

엘리제는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그녀는 지금 이 상황이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와락!

린덴이 그녀를 갑작스레 껴안았다.

“저, 전하?!”

그의 단단한 품이 그녀를 으스러지게 짓눌렀다. 그녀를 안은 그의 팔이 파르르 떨렸다.

“……괜찮았나?”

짧지만 낮은 떨림이 담긴 목소리.

그 음성에는 그간 그의 고통과 괴로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엘리제는 다시 한 번 가슴을 울컥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타앙!

날카로운 총소리가 울리며 그들이 서 있는 바닥 주변을 때렸다. 엘리제는 놀라 고개를 돌렸다.

루이 니콜라스였다.

그가 성한 한쪽 팔로 권총을 겨누고 있었다!

“어떻게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잘 됐군. 공제. 스스로 무덤 자리를 찾아온 건가?”

린덴은 가만히 니콜라스를 응시했다.

여전히 양팔로 엘리제를 감싸 안은 채로.

그 벌레를 보는 듯한 시선에 루이 니콜라스는 발끈했다.

“상황 판단이 안 되는가 보군. 먼저 그 건방진 눈알부터……!”

그때, 린덴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상황 판단이 안 되는 건 너다, 전갈.”

“뭐?”

“다치더니 머리도 나빠진 건가. 이 나와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여유가 있을 수 있는 거지? 신기하군.”

“……!”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하늘이 질긴 삶을 이어준 걸까?

린덴의 말을 듣는 순간, 루이는 본능적인 공포를 느꼈고, 머리를 뒤로 휙 젖혔다.

동시에 린덴의 눈이 금빛으로 물들었고, 공간이 갈라졌다.

서걱!

“크악!”

찢어지는 비명.

루이의 목이 있었던 부위의 공간이 통째로 베어진 것이다. 린덴의 무(無) 속성 초상 능력인 공간 베기였다!

초상 능력이 발현하기 전 뒤로 목을 젖힌 탓에 다행히 목숨을 건질 수는 있었지만, 기다란 자상을 입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목에 기다랗게 난 상처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왔다.

루이는 벌벌 떨며 외쳤다.

“모두 쏴! 뭐해?! 빨리! 쏘라고!”

그런데 그때, 린덴이 중얼거렸다. 정확히 루이 니콜라스의 목을 주시하며.

그러며 엘리제가 험한 꼴을 보지 못하도록 더욱 강하게 그녀를 안았다.

“피했어?”

“……?!”

그 말과 동시에 루이는 다시 한 번 죽음을 느꼈고, 이번엔 데굴데굴 바닥을 굴렀다.

하지만.

공간이 다시 한 번 뒤틀렸다. 그리고...!!

============================ 작품 후기 ============================

내일 10일 09시 07분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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