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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엘리제-127화 (127/194)

00127  5-4 첫키스  =========================================================================

4장 첫키스 - 2

린덴은 거침없이 밖에 말했다.

“들어오라고 해라!”

“네, 전하.”

문이 끼익 열리며 내무대신이 들어왔다.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 다?”

예를 올리던 내무대신은 황태자의 무릎을 베고 있는 엘리제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엘리제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졌다.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다.

‘아…… 진짜 미워.’

내무대신은 곧 정신을 차리고 부드럽게 웃었다.

“두 분이 사이가 좋으시군요. 전하와 비가 되실 분 사이의 금실이 이토록 화목하니 나라의 경사입니다.”

나쁘게 보는 눈치는 전혀 아니었다.

당연했다.

다른 여인도 아니고, 그녀가 누군가.

데임 클로랜스.

황태자와 결혼이 예정되어 있고, 현재 제국에서 가장 많은 존경을 받는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자신의 주군인 황태자와 좋은 금슬을 가지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아, 몰라.’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엘리제는 더욱더 얼굴이 화끈화끈해졌다.

반면 황태자는 뻔뻔하게 말했다.

“무슨 일인가?”

“아, 네. 지난번에 명하신 재무 지표 변경 사항에 대하여 보고드리러 왔습니다. 특별한 내용은 없습니다. 여기 변동 사항을 모두 적어두었으니, 가볍게 검토해 보시면 될 듯합니다.”

내무대신은 빠르게 말을 마쳤다.

그 눈치 빠른 모습에 황태자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수고했네. 언제 식사라도 같이 한번 하지.”

“네, 영광입니다, 전하. 소신은 이만 물러갈 테니 좋은 시간 되십시오!”

내무대신은 행복한 한 때를 보내는 젊은 한 쌍을 보며 오늘은 자신도 일찍 퇴근해 부인과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집무실에서 물러났다.

“…….”

내무대신이 나간 후, 엘리제는 입을 다물었다.

황태자는 그녀를 불렀다.

“엘리제.”

“…….”

“엘리제?”

하지만 답이 없었다.

그는 눈썹을 찌푸렸다.

“엘리제? 왜 답이 없지?”

“…….”

“방금 일로 기분이 상했나? 왜 그러지?”

그 말에 엘리제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기분이 상하진 않았다. 그가 자신을 갈망해서 그러는 것인 것을 아니까. 싫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제는 어느 정도는 확실히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전하.”

“왜 그러지?”

그녀는 조심히 그의 무릎에서 일어나고 말했다.

“저 전하가 싫지 않아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좋아해요.

이렇게 손끝이 스치는 것만으로도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하지만.

“그래도 방금 같은 경우엔 조금 주위를 신경 써주셨으면 좋겠어요.”

“……왜지?”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부끄럽단 말이에요.”

그 말에 린덴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엘리제는 혹시 그의 기분이 상했을까 봐 눈치를 봤다.

“죄송해요. 하지만 그래도 저…… 부끄러워서…….”

그러나 린덴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미안하다.”

“……!”

그 사과에 그녀의 눈이 커졌다.

자존심이 강한 황태자다. 그런데 저런 선선한 사과라니?

“아, 아니에요. 그냥…….”

“내가 내 생각만 해서 네 배려를 하지 못한 것 같군.”

그가 미안해하자, 엘리제는 괜히 자신이 더 미안해져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저도 싫지는 않아요. 그냥…….”

그런데 그 말을 꺼낸 순간이었다.

황태자의 눈이 번뜩였다.

“……싫지 않아?”

“……?!”

엘리제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나 지금…… 말실수한 건가?

그녀는 당황해 횡설수설했다.

“아니, 그게…… 둘이 있을 때면 몰라도…… 다른 사람 앞에서는…….”

“그러니까 둘이 있을 때는 괜찮다는 거지?”

“……!”

그게 왜 그런 말이 되는데?!

아니, 그런 뜻인 게 마, 맞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바라보면?

엘리제는 갑자기 이글이글 타오르는 그의 눈빛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같은 소파 안에서 어딜 도망가겠는가?

더구나 그가 한 손을 들어 그녀가 도망 못 가게 머리 뒤를 감쌌다.

“엘리제.”

“……전하.”

자신을 향하는 맹수의 눈빛에 그녀는 가슴이 파르르 떨렸다.

그의 얼굴이 그녀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그러고 보니 아까 말했지?”

“무슨?”

“바동거리면 벌을 주겠다고.”

“……!”

그는 낮게 말하며 더욱 다가왔다.

“벌을 받아야지.”

“……!”

아.

점점 다가오는. 그의 얼굴을 보며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나 어떻게 해야지?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 바로 앞에서 잠시 멈추어 섰다. 그의 입김이 입술로 느껴졌다.

“엘리제…….”

낮고 달콤한 목소리.

엘리제의 몸이 살짝 떨렸다.

이대로……? 이대로 입맞춤을?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한 가지 생각이 퍼뜩 들며 그녀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뭐지?”

린덴은 와락 인상을 구겼다.

그녀는 사과처럼 붉어진 얼굴로 허겁지겁 말했다.

“감기 옮아요.”

“감기?”

“네, 지금…… 입…… 그러니까…… 그걸 하면 감기 옮을 거예요. 절대 안 돼요.”

린덴은 피식 웃었다.

“괜찮다. 감기. 그대의 감기면 옮아도 돼.”

그러며 다시 다가오는 그의 얼굴에 엘리제는 고개를 저었다. 이전과 다르게 완강한 거부였다.

“절대. 절대로 안 돼요.”

그렇지 않아도 단둘이 한 방에 있어 감기를 옮길까 걱정되던 차였다.

입맞춤하면 무조건 감기를 옮기게 될 것이다. 자신 때문에 그가 아프게 되다니. 그건 죽어도 싫었다.

그녀가 정말로 거부하는 것을 깨달은 황태자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따위 감기! 걸려도 상관없는데!

“너한테서 옮는 감기는 기쁘게 걸릴 수 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세요? 절대 안 돼요.”

린덴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감기가 나으면 괜찮은 건가?”

별 기대 없이 던진 질문. 고개를 끄덕일 거라고는 당연히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그…… 네.”

“……!”

놀라 그녀를 바라보니, 엘리제가 얼굴을 사과처럼 붉힌 채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떠듬떠듬 말했다.

“스…… 승전식쯤엔 감기가 다 나을 테니…….”

“그러면 승전식 날엔 괜찮다는 건가?”

린덴이 활화산 같은 눈빛으로 말했다.

엘리제는 뭔가 큰 실수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그러니까 감기가 나으면…….”

“그래, 승전식 날. 알겠다.”

린덴은 ‘승전식 날’이란 단어를 몇 번이고 되뇌었다. 뭔가 승전식 날 해가 밝자마자 사고를 칠 것 같은 말투였다.

참고로 승전식은 며칠도 남지 않았다.

“아, 아니. 꼭 그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 알겠다.”

하지만 전혀 알아듣는 눈치가 아니었다.

엘리제의 얼굴이 귓불까지 터질 것처럼 붉어졌다. 지금 내가 무슨 사고를 친 것이지?

그런 그녀를 보며 린덴은 피식 웃었다.

저렇게 귀엽게 얼굴을 붉히면 자꾸 괴롭혀지고 싶지 않은가? 원래는 이쯤 하려 했으나 더 그녀를 괴롭히고 싶었다.

“그러면 벌은 어떻게 할 것이지?”

“네, 벌이요?”

“바동거리면 벌을 받기로 했잖아. 그건 어떻게 할 것이지?”

무슨?!

엘리제는 말도 안 된다는 눈빛을 보였으나, 그는 맹수이자 폭군이었다.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는 울상을 지었다. 도대체 내가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된 거야?

“어떻게 할 것이지?”

“뭐, 뭘요?”

“벌 말이야.”

“몰라요.”

“몰라? 그러면 아까 하려던 것을 그대로 하면 되겠군.”

오히려 마뜩해하며 자신에게 다가오려 하자, 그녀는 화들짝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입맞춤은 절대 안 돼요.”

“그러면?”

엘리제는 정말 울 것처럼 울상을 지웠다. 미웠다.

그런 그녀를 보며, 황태자는 피식 웃었다. 왜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멈춰야 하는데.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더. 더 괴롭히고 사랑하고 싶었다. 품에서 놔주고 싶지 않았다.

“알겠다. 그러면 이렇게 하지.”

“네?”

“입맞춤은 네 말대로 기다릴 테니, 대신.”

엘리제는 그가 과연 무슨 말을 할까 마음을 졸였다.

린덴은 씨익 웃으며 짓궂게 말했다.

“네가 내 볼에 입을 맞춰주면 되겠군.”

“……!”

“그건 감기를 옮길 일도 없지 않은가?”

엘리제의 얼굴이 하얘졌다.

지금 나보고 볼에 입을 맞추라고?

모, 못할 거야 없지만.

‘미워. 정말 미워.’

지금껏 그를 보고 싶어 했던 것 취소. 가슴 떨려 했던 것 취소. 마음 고백했던 것 모두 취소!

물론 싫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미웠다.

“하, 한 번만이에요.”

엘리제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의 얼굴이 다시 사과처럼 붉어졌다.

그리고 천천히 그의 볼에 입술을 가져갔다.

그녀의 입술과 그의 차가운 볼이 닿았고, 정전기가 일어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놀라 화급히 입술을 떼었다.

“돼, 됐죠?”

린덴도 놀라 자신의 볼을 만졌다.

이게 도대체 무슨 느낌이지?

입술끼리 닿은 것도 아니고 겨우 볼에 닿은 것이건만, 마치 찰나 간 몽롱한 꿈을 꾼 것 같다. 멍해지는 느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부족한데?”

엘리제는 결국 빽 소리 질렀다.

“뭐에요! 이제는 정말 몰라요!”

그 반응에 린덴은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너무나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어 와락 껴안았다.

갑작스러운 껴안음에 놀란 엘리제가 그를 불렀다.

“전하?”

린덴이 나직이 말했다.

“사랑한다.”

“……!”

그 말에 엘리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가 다시 말했다.

“사랑한다. 정말로. 엘리제.”

짧지만 깊은 목소리.

내 목숨보다도.

너를 사랑해.

그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계속해서 속삭였다.

“난 너와 함께하고 싶은 게 많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네 얼굴을 보고 싶고, 식사도 매끼 같이 먹고 싶으며, 차도 함께 마시고 싶다. 그리고 맛있는 디저트도 함께 먹고 싶고, 예쁜 길을 손 잡고 걷고 싶고, 재미있는 공연도 보고 싶어. 바로 너와 함께. 영원히 너와 함께하며 모든 것을 같이하고 싶으니. 절대 너를 놓아주지 않을 거다. 그러니 각오해.”

낮지만 달콤한 목소리.

그리고 그 사랑을 듣는 순간.

왜일까?

뚜욱.

엘리제의 눈동자에서 한 방울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

그녀는 당황해 눈물을 닦았다. 왜 눈물이?

하지만 그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뚝뚝 떨어졌다.

“엘리제?”

린덴은 갑자기 엘리제가 울자 당황했다.

엘리제는 허겁지겁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저었다.

“왜 갑자기? 혹시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아무것도 아니에요.”

자신의 눈물을 보며 당황하며 안절부절못하는 그를 보자, 그녀는 왜 자신이 눈물을 흘렸는지 깨달았다.

행복했다.

그와 함께하는 이 순간이.

자신을 향해 웃어주는 그를 보는 것이. 가슴이 터질 것처럼 행복했다.

지난 삶 그토록 바라던 행복.

‘앞으로 그와 내 앞에 무슨 일이 펼쳐질지는 모르지만.’

그래, 그와 자신 앞에는 장밋빛 미래만 남아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속에 어떤 상처를 안고 있는지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너무나 행복했다.

‘앞으로도 계속 행복했으면.’

그런 마음을 담아 엘리제는 그에게 미소를 지었다.

눈물을 흘려 추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저도요, 전하.”

“……!”

뚝. 다시 눈물이 흘렀다.

그래도 그녀는 더욱 짙게 웃었다.

그를 향해.

“영원히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사랑해요.

그러며 그녀는 속으로 기도했다.

그와 내 앞에 행복한 축복이 가득하길. 그리고 그의 상처가 따뜻해지길.

그렇게 그녀는 간절히 빌었다.

***

이후 며칠간의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린덴이 고대하고 고대하던 승전식 날이 다가왔다.

<다음주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 작품 후기 ============================

주말은 쉽니다. 다음주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키스는 다음주 월요일에 합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ㅠ)

좋은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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