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0 5-5 미하일 =========================================================================
5장 미하일 - 1
첫 키스.
강렬한 느낌에 그녀의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짜릿? 전기가 흐르는 듯한? 아니, 고작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그의 혀가 그녀의 입술을 열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와 거침없이 그녀를 농락했다.
“아…… 아…….”
그녀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머리가 마비되며,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영혼의 뿌리까지 그에게 침범당하는 느낌, 정복당하는 느낌이었다.
다리에 힘이 탁 풀리며,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어 그의 팔뚝을 잡았다.
그가 한쪽 팔로 허리를 강하게 감싸 안아 그녀를 지탱해 주었다.
그리고 짧은 입맞춤에 아쉬운 얼굴을 하며 입술을 떼고 살포시 이마에 다시 입 맞추며 말했다.
“사랑한다.”
“……!”
그녀는 한마디의 답도 못했다.
온몸의 힘이 쫘악 빠졌다.
‘아…… 나 몰라…… 어떻게 하지…….’
그와 입맞춤을 했다.
그것도 개선 행진에서. 상상도 못한 대형 사고를 친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이전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거센 환호성이 대광장에 울렸다.
“휘익! 황태자 전하 만세! 황태자비 만세!”
“더 뽀뽀해라!”
“만세!”
그들의 입맞춤을 본 군웅들이 광적으로 열광한 것이다.
망측하게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다른 이들끼리면 몰라도, 그들은 서로 하나가 되기로 예정된 황태자와 황태자비가 아닌가?
금실이 좋은 것은 오히려 마뜩해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애초에 황태자와 그녀의 로맨스를 기뻐하던 시민들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눈앞에서 사랑의 키스까지 보자 아예 난리가 났다.
“뽀뽀해!”
“한 번 더 해라!”
“오늘 바로 결혼해라!“
그들의 외침을 들으며 엘리제는 귀 끝까지 얼굴을 붉혔다.
나 도대체 무슨 사고를 친 거지.
황태자가 그런 그녀를 돌아봤다.
“한 번 더 하라는데?”
“……안 돼요!”
엘리제는 허겁지겁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한 번 더 하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린덴은.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될 이로서 시민들의 요구를 거부할 수는 없지.”
“……!”
그녀는 화들짝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무리였다.
그가 그녀의 입술에 다시 입을 맞췄고, 그녀의 머리가 하얘졌다.
‘아…… 정말 미워…….’
정말 미웠다.
정말. 정말.
그렇게 크림전쟁의 승전 기념식과 개선 행진이 마무리되었다.
시민들 사이에서 우레와 같은, 아니, 광적인 환호를 받으며.
그리고 그날, 황태자와 예비 황태자비의 사랑은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었고, 황태자는 다시금 황태자비를 열렬히 사랑하는 로맨티스트로서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
그렇게 개선식이 화려하게 마무리된 후, 론도에 봄이 오기 시작했다. 아직 쌀쌀함이 가시지 않았지만 여기저기서 봉우리를 여는 꽃들이 보였다.
그날의 개선식 후, 엘리제와 린덴의 사이는 조금 더 가까워졌다.
눈에 띄는 특별한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간 느낌이었다.
워낙에 바쁜 엘리제의 일정 탓에 만나기 어려운 것은 여전했지만 늦은 밤 정원의 깊은 곳, 밀회를 갖는 둘이 목격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글쎄, 전하와 레이디 클로랜스께서.”
“어머, 정말?”
시녀들은 웃으며 그들의 로맨스를 떠들었다.
한편, 황궁에 인접한 곳에 자리한 검기사단의 병영.
연무장에서 3명의 오러 나이츠가 삼재진(三才陣)을 이룬 채 한 남자를 상대하고 있었다.
“조심하십시오, 전하!”
“하압!”
검기사단의 부단장 로버트가 기합을 지르며 검을 내질렀다.
파앗!
오러가 맺힌 진검이 공기를 꿰뚫었고, 곧바로 양옆에서 다른 두 명의 기사가 상단세와 하단세로 검을 휘둘렀다.
강철이라도 찢어발길 기세.
하지만 단신으로 그들을 상대하는 금발 금안의 남자, 검제 미하일은 가볍게 그 공격들을 피했다.
“……!”
부단장 로버트는 이를 악물었다.
자신들 3명은 오러 나이츠로만 구성된 검기사단에서도 최강의 기사들이었다.
그런데 저 검제는 늘 그렇지만, 너무나 쉽게 자신들을 상대했다.
‘초상능력을 사용하는 것도 아닌데.’
초상능력이 뭔가? 미하일이 단원들을 상대할 때는 오러도 잘 사용하지 않는다.
오로지 순수한 무술의 힘만으로 그들을 압도하는 것이다.
‘오늘만큼은 반드시!’
옷깃이라도 자르리라!
그런 의지로 기사들은 미하일에게 검을 휘둘렀다.
반면, 미하일은 약간은 멍한 눈으로 그 공격들을 바라봤다. 무언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눈치.
까앙! 까앙!
진검 대련 중에 한눈을 파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그는 검제(劍帝).
서대륙 최강검이자, 동방 청에서도 검룡(劍龍)과 검마(劍魔)를 제외하고는 적수가 없었던 초절정의 검수(劍手)였다.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몸이 움직이며 기사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리제.’
그가 정신이 팔린 이유.
그건 다름 아닌 작은 소녀, 엘리제 때문이었다.
‘하아.’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가 복잡했다.
어젯밤 귀족파 서열 2위인 메르키트 백작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것이 떠올랐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전하! 승전 기념식과 개선식 이후 황태자의 지지율이 급상승했습니다! 모두 레이디 클로랜스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무슨 수라도 내야 합니다! 이대로라면 저희는 손도 못 쓰고 무너집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3황자 미하일이 황태자에게 앞서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통성도, 정치력도.
배경 세력도 이전에는 차일드 가를 위시한 귀족파가 우세했으나, 황태자의 십 년을 넘는 노력 덕에 그 우세도 사라졌다.
그런 상황에서 그나마 그가 오로지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지지.
그런데 그 시민들의 지지마저 황태자에게로 넘어가고 있었다.
‘아시지 않습니까? 현시대에서 시민들의 지지는 정권 승계에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란 것을.’
백작의 말이 옳았다. 시민들의 지지는 권력 승계에 굉장히 중요한 요소였다.
시대가 변한 탓이다.
전통의 서대륙 강국이었던 프랑소엔 제국은 시민들의 혁명으로 황실이 무너졌다.
그뿐 아니라 서대륙 전체에서 시민들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었다.
심지어 브리티아 제국에서 독립한 신대륙의 신 연방의 경우, 오로지 시민들의 투표만으로 국가 지도자를 선출한다.
그런 시대 배경에서 아무리 브리티아 제국이라도 시민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그는 황태자에 비해 정통성도 밀리지 않는가?
이렇게 시민들의 지지가 넘어간 상태에서 정권 다툼을 벌이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다.
‘그래서? 그래서 어쩌라고.’
미하일은 입술을 깨물었다.
까앙!
자신도 모르게 그의 검에 힘이 들어가며 맞상대하던 로버트는 신음을 삼켰다.
“크윽!”
‘무슨 수라도 내야 합니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안다. 알아.
하지만 무슨 수? 자신이 사랑하는 그녀를 상대로?
지난밤, 얼마나 답답했는지 메르키트 백작은 심지어 이런 이야기도 했었다.
‘정 방법이 없다면 전하께서 엘리제 자작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십시오!’
그 말을 떠올린 미하일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정말 급하긴 급했나 보다. 물론 리제와 자신이 친하긴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예비 형수님인데…….
‘사실 그거야말로 내가 바라는 것이긴 하지만.’
미하일의 얼굴이 씁쓸해졌다.
그래, 이 순간 그의 기분이 가라앉아 있는 진정한 이유.
그건 지지율이 떨어져서도, 그래서 정권 다툼에 불리해져서도 아니다.
오로지 단 하나.
얼마 전 개선식 때 목격했던 엘리제와 린덴의 입맞춤 장면 때문이었다.
‘하아.’
당시 마차 거리 행진 때, 전공 서열 4위였던 미하일은 둘의 바로 뒤 마차에서 따라가고 있었다.
그래서 똑똑히 목격했다.
둘의 입맞춤 장면을.
“…….”
수많은 시민이 광적으로 열광했지만 그 순간 미하일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알고 있었다.
형님이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의 마음도 형님에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알고 있어도, 사랑하는 여자가 눈앞에서 다른 남자와 키스하는 것을 보는 것은 가슴이 아플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그때 그녀의 눈빛.
떨리는 빛으로 린덴을 마주하던 그녀의 눈동자를 본 순간, 미하일은 깨달았다.
이미 그녀의 마음속에 린덴이 가득 들어가 있음을.
‘하아.’
가슴이 쓰려도 어찌하겠는가?
다 자신의 잘못이다.
진즉 그녀의 마음을 얻지 못한 자신의 탓.
‘그래도 이렇게 아플 줄은 몰랐는데.’
그는 씁쓸히 웃었다.
자신은 언제부터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이리저리 친구처럼 친하게 지내면서?
알버트의 수술을 같이하면서?
아니면 전염병에 걸린 걸 치료해 주었을 때?
모르겠다.
처음엔 그냥 마음 가는 친구로만 생각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하아.’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저, 전하! 조심!”
로버트가 비명을 질렀다.
워낙 생각에 깊게 잠긴 탓이었는지, 미하일의 검이 일순 멈추었고, 로버트의 검이 그대로 그의 목으로 찔러 들어간 것이다.
자신의 손으로 3황자의 목을 찌를 상황에 부닥친 로버트는 검의 방향을 틀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대련을 목격하던 모두가 비명을 질렀다.
“안 돼!”
그리고 검극이 목을 꿰뚫기 직전!
미하일의 눈이 낮게 가라앉으며 손이 움직였다.
잔상도 남지 않을 정도의 극쾌의 움직임.
탓!
엄지와 검지가 검극을 정확히 움켜쥐었다.
“……!”
그 모습을 본 로버트와 기사들은 눈을 부릅떴다.
찔러 들어오는 검을 손가락으로 잡다니?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은 무위였다.
“저, 전하. 괜찮으십니까?”
미하일은 고개를 저어 우울한 생각을 떨치고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위험했잖아. 많이 늘었네, 부단장?”
“…….”
“원래 옷깃 베면 부단장이 이긴 걸로 하기로 했는데, 이것도 내가 진 걸로 쳐야 하는 건가?”
미하일은 웃으며 말했다.
그는 목 앞의 겨눠진 검을 치우고, 자신의 비천검을 검집에 밀어 넣었다.
“오늘 대련은 여기까지 하지. 내가 진 걸로 할 테니 다음에 술이나 살게.”
“……어디 나가십니까?”
대련장을 나가는 미하일에게 로버트가 물었다.
“응, 나갔다 오려고. 연습 열심히 하고 있어.”
“어디로 가십니까?”
미하일은 지나가듯 말했다.
“황실십자병원.”
“병원이요? 어째서?”
그는 방금 검을 잡은 손가락을 보여줬다.
“치료받아야지.”
“아…….”
로버트는 입을 벌렸다.
완벽히 막은 줄 알았는데, 엄지와 검지, 위아래로 기다란 열상이 나 있었다. 피도 흘렀다.
미하일은 미소를 지었다.
“마침 병원에서 제일 예쁜 의사의 얼굴이 보고 싶어지기도 했고 말이야.”
병원에서 제일 예쁜 의사.
그건 바로 엘리제였다.
***
“아니, 밀?”
그가 병원에 왔다는 이야기에 황족을 담당하는 어의인 엘리제가 곧바로 나왔다.
손가락에 난 기다란 열상을 보며 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
상처가 꽤 깊었다.
“어쩌다 이렇게?”
“아아, 검술 연습을 하다 어쩌다 보니. 별건 아니야. 겸사겸사 네 얼굴도 볼 겸해서 왔어.”
“별거 아니긴요! 상처가 이렇게 깊게 났는데.”
엘리제는 그의 손을 잡고 상처를 이리저리 살폈다.
미하일은 그녀가 자신을 걱정해 주자 슬쩍 미소를 지었다.
‘온 보람이 있군.’
사람의 마음이 참 웃기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그녀 때문에 죽을상이었는데, 이렇게 얼굴을 보니 세상이 밝아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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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09시 07분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