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1 5-5 미하일 =========================================================================
5장 미하일 - 2
“괜찮아. 대충 소독만 하면 돼.”
“아니에요. 손가락에는 힘줄이 섬세하게 붙어 있어 잘못 베이면 끊어질 수도 있어서 무시하고 넘어갔다가 나중에 큰일 날 수도 있어요. 하여튼 어쩌다 이렇게 깊게 베인 거예요? 검술 연습을 해도 검제라고 방심 말고 꼭 조심해서 해야 한다고요. 알았어요, 밀?”
잔소리.
하지만 기분 좋은, 걱정 어린 잔소리에 미하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알겠습니다. 꼭 주의하지요, 선생님.”
그 장난 섞인 대답에 엘리제는 입술을 삐죽했다.
“하여튼…… 어쨌든 다행히 힘줄은 괜찮아요. 하지만 살이 들릴 정도로 베어져 꿰매야 할 것 같아요.”
“꿰매?”
미하일은 일순 움찔했다.
“네, 왜요?”
“그거…… 혹시 주사 맞고, 막막 바늘로 살 찌르고 그래야 하는 것 아니야?”
“당연하죠.”
왜 저러지?
엘리제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미하일은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 착각일까? 왠지 얼굴이 살짝 하얗게 질린 것 같다.
“괘, 괜찮아, 리제. 내 생각에는 그냥 소독만 하면 될 것 같아.”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너무 깊게 베여 그냥 소독만 하면 절대 제대로 안 붙어요. 펄럭거릴 정도로 살이 떨어졌다고요.”
“아니야. 붙을 것 같은데…….”
“안 된다고요. 저 바쁘니 빨리 이리로 와요. 금방 꿰매 드릴게요.”
엘리제는 안 다친 팔의 손목을 덥석 잡고 처치실로 그를 이끌었다.
그녀에게 끌려가며 미하일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 잠깐! 리제, 리제!”
“왜 그래요?”
결국, 그가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참 검제답지 않은 고백이었다.
“주사랑 바늘 찔리는 것 싫단 말이야!”
“…….”
엘리제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무슨…… 애도 아니고…….
“농담하지 말고 빨리 오세요.”
“농담 아니야! 진짜야!”
그는 마치 크림전쟁 당시 갈트 준장에게 영창으로 끌려갈 때처럼 반항했다.
“저…… 밀? 아니, 전하?”
“……왜?”
“검제 아니셨나요? 서대륙에서 가장 강한 기사라는…….”
“그거랑 이거는 별개야! 차라리 검에 맞는 게 낫지. 그리고 난 워낙 강해 칼빵 맞을 일도 거의 없었다고!”
“…….”
참 대단하시다.
그녀는 떼쓰는 애기 환자를 보는 것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밀.”
“왜?”
“싫어해도 소용없어요. 빨리 오세요.”
“잠깐! 잠깐!”
그렇게 엘리제는 강제로 그를 처치실로 끌고 갔다.
잠시 후, 엘리제는 다친 손가락 모두 깔끔히 꿰맨 후 말했다.
“다 됐어요.”
“……몇 바늘이나 꿰맨 거야?”
“양 손가락마다 깊숙한 피하 층에 5바늘, 그리고 피부에 5바늘씩요?”
총 20바늘이다.
어쩐지 아프더라며 미하일이 투덜거리자 엘리제가 고개를 저었다.
“뭘 그렇게 엄살이에요? 예전에 전쟁 때 전염병에 걸렸을 때는 주사 잘 맞았잖아요.”
루이 니콜라스의 전염병 계책 때 미하일은 거의 첫 번째 감염자로 무수히 많은 주사 치료를 받았다.
“당시엔 정신도 비몽사몽했고, 어쩔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때도 싫긴 마찬가지였어. 하여튼 얼굴이나 보러 왔다가 이게 무슨 꼴이야.”
계속 구시렁대는 그를 보며 엘리제는 쿡쿡 웃었다.
“어쨌든 붕대로 고정해 놨으니 당분간 손가락 움직이면 안 돼요. 검술 훈련도 최소 10일은 자제하시고요.”
“10일이나?”
“네, 움직이다 실밥 터지면 다시 꿰매야 하니 조심하세요. 한 3~4일 정도 있다가 다시 오세요. 상처 봐 드릴게요.”
그렇게 엘리제는 주의사항을 일러주었다.
그리고 알아야 할 내용을 다 언급한 후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러면 조심히 돌아가세요. 나중에 다시 뵐게요.”
그런데 그의 반응이 이상했다.
엘리제가 일어났는데도, 같이 일어나지 않고 빤히 그녀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밀?”
“…….”
“밀? 왜 그러세요?”
재차 부르자 그가 미소를 지었다.
방금 투덜거릴 때와는 조금은 다른 얼굴.
“리제.”
“네?”
미하일이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닫았다.
엘리제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 순간, 그가 말했다.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안 돼?”
“네? 말하세요. 들어줄게요.”
그녀는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하일은 자신의 친구였다. 그러니 부탁 정도야.
그런데 무슨 부탁을 하려는 것이지?
“이렇게…… 잠시만 보고 있으면 안 돼?”
“……?”
엘리제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부탁이지?
“제 얼굴을요?”
“응.”
“……왜요?”
“그냥.”
엘리제의 얼굴이 더 아리송해졌다.
미하일의 눈동자는 평소와 달랐다.
무언가 아련한…….
‘뭐지?’
“네, 그러세요. 그런데…… 왜?”
“고마워.”
미하일은 정말로 가만히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장난스러운 평소와는 다른 눈빛으로.
어딘지 깊은 금안으로. 그녀의 얼굴을 자신의 눈에 새기기라도 하려는 듯이.
“……밀?”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왠지 어색한 느낌이 들어 엘리제는 그를 불렀다.
그 부름에 미하일의 눈동자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장난기와 밝음이 담긴 평소의 눈으로.
“갑자기 왜 그러세요?”
“아, 오늘따라 예뻐 보여서.”
“네? 거짓말하지 마요.”
“정말이야. 원래도 예뻤지만 오늘은 너무너무 예뻐 보이는걸. 한눈에 반할 정도로.”
낯빛 하나 안 바꾸고 내뱉는 말에 엘리제는 고개를 저었다.
“하여튼 장난은.”
“쿡쿡. 장난치는 것 아닌데. 어쨌든 이만 가볼게. 다음에 보자고. 너무 무리하지 말고.”
그러고 미하일은 등을 돌려 나가려했다.
“…….”
왜일까? 엘리제는 그의 등이 무언가 쓸쓸해 보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딘지 평소와 다른 행동도 그렇고.
“저, 밀!”
“응?”
미하일이 고개만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엘리제가 말했다.
“꼭 손가락 조심하시고요. 손가락 다 나으면 언제 술…… 아니, 식사라도 한번 같이해요.”
“식사?”
“네, 크림반도에서 귀국하면 같이 술이나 식사하기로 해놓고 한 번도 못했잖아요.”
그 말에 미하일은 미소를 지었다.
아까 전 왠지 억지로 지은 듯한 웃음과는 다른, 진심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그래, 꼭 그러자. 식사 말고 술로. 고마워.”
***
병원에서 나온 후, 미하일은 복잡한 심경을 정리하기 위해 론도 시내 거리를 걸었다.
그렇게 정처 없이 얼마나 걸었을까?
어슴푸레 어둠이 깔리며 뚜둑뚜둑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군.”
그는 손을 들어 빗방울을 받았다.
생각보다 줄기가 거셌다.
소나기인 것 같아 잠시 비를 피하려고 건물 처마 밑에 몸을 숨겼다.
“오래 오네.”
하지만 기다려도 비는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홀딱 젖을 것을 각오하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끼잉. 끼잉.
작은 소리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뭐야?”
고개를 돌리니, 작은 강아지가 다리에 상처를 입고 자신을 보고 있었다.
애완용인 것 같지는 않고, 그냥 어미 없는 길 강아지 같았다.
무시하고 그냥 갈 길 가려다, 미하일은 잠시 머뭇거렸다.
비에 젖어 오돌오돌 떠는 모습이 불쌍하단 생각이 든 것이다.
“에휴, 내가 원래 좀 착해서.”
한숨을 내쉰 그는 강아지를 품 안에 안았다.
“다리 나을 때까지만 돌봐주마. 운 좋은 줄 알아.”
끼잉.
낯도 안 가리는지 강아지는 그의 품에 얼굴을 비볐다.
미하일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왠지 답답한 마음이 조금 풀리는 듯한 느낌이다.
“이름을 뭐라고 하지? 론?”
짓궂은 마음으로 형님의 아명을 불러봤다.
“아니면 린덴?”
론, 아니면 린덴으로 강아지 이름을 지을까 하다 왠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리제?”
오, 이건 좋은 것 같았다.
귀엽게 생긴 게 어울리기도 하고.
“강아지에 자기 이름 붙였다고 싫어하진 않겠지? 아, 몰라. 없을 때만 부르면 되지.”
그렇게 강아지의 이름이 정해졌다.
그는 장난스레 말했다.
“리제, 이제 네 이름은 리제다. 알았지?”
끼잉.
“말 잘 들어야 해? 응?”
추운지 강아지 리제가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미하일은 강아지를 손으로 감싸고 자신의 궁으로 돌아갔다.
***
추위가 완전히 꺾이고, 봄이 다가왔다.
황궁 정원에 붉은 장미들이 화려하게 피어올랐고, 론도 시내 여기저기에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했다.
사람을 저절로 행복하게 하는 봄기운.
하지만 그런 따뜻한 봄기운을 받으며 린덴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예쁜 초식 동물이 자꾸 자신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안 돼요. 그날은. 다음에 해요.”
“어째서지?”
“오전에 배닐 남작의 수술이 예정되어 있어요. 오후에는 천연두 예방 관련한 미팅이 있고요. 의과대학 설립에 대한 계획서도 써야 하고요. 그리고 곧 있을 궁전 연회에 대해 궁내부장과 상의도 해야 해요.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엘리제의 말을 듣고 린덴은 속으로 욕설을 삼켰다.
뭐 이렇게 할 일이 많단 말인가? 이 일중독 같으니라고!
제국의 국정을 보는 자신보다 그녀가 훨씬 바쁘게 일하는 것 같았다.
“……다 미뤄.”
“안 돼요. 지난번에도 미루라고 해서 다 한 번씩 미룬 일들이란 말이에요. 제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세요?”
“……그러면 우리 일은?”
“그거야 다음에 하면 되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한 그녀의 말에 린덴은 얼굴을 구겼다.
물론 그들의 일은 중요한 용무는 아니었다.
그저 론도 시내로 나가 맛있는 밥과 디저트를 먹고, 공연을 보기로 한 데이트 약속이었으니까.
별것 아닌,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닌 용무.
하지만 린덴에게는 중요했다.
얄미운 크리스가 던져준 정책 검토 따위보다는 훨씬!
‘젠장. 도대체 저 일중독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서로 마음을 확인하고, 입맞춤까지 나눴으나 어째 관계에 진전이 없는 것 같다.
늘 그녀를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자신이고, 갈망하는 것도 자신이었다.
물론 그거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간절히 갈망함에도 그녀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굉장히 적었다.
엘리제가 너무 바빴던 탓이다.
어의에 수석교수, 수술, 외래 진료, 입원 환자 회진, 아카데미 강의, 보건 정책 프로젝트 진행, 의학 논문 작성.
거기에 최근에는 황제의 재가를 받아 정식 의과대학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
‘아바마마는 왜 의과대학 설립을 허가하셔서!’
물론 필요한 일이긴 하다.
현행 의사 양성 방식은 주먹구구인 면이 있었으니까.
아예 전문 아카데미처럼 의과대학을 설립하면 양질의 의사를 육성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 의과대학 설립을 진행하면서 그녀가 더욱 바빠졌단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려 해도, 그럴 수도 없었다. 가장 체계적이고 확고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게 그녀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내명부 일까지.’
그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현재 브리티아 황실은 안주인이 부재했다.
1황비 마리엔이 있었지만, 광증에 빠져 칩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황실 내부의 일은 황제와 황태자, 그리고 늙은 궁내부장이 대충대충 처리해 왔다.
어차피 제국을 경영하는 것이 중요하지, 안살림이야 아무려면 어떠냐는 것이 황제의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엘리제, 그녀가 있기 때문이다.
황후와 황비가 부재하니 그녀가 황태자비가 되면 이 황실의 안주인이 된다.
‘그래도 아직 식을 안 올렸으니 원래는 벌써 내명부 일을 할 필요는 없지만. 젠장, 귀족파 메르키트 백작, 그놈 때문에.’
얼마 전, 대전 회의 때 엘리제의 끝없는 지지율 상승을 걱정한 메르키트 백작이 결국 일을 쳤다.
‘레이디 클로랜스가 의사로서 훌륭한 인물인 것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렇게 병원 일에만 열중이어서, 과연 이 브리티아 제국의 퍼스트레이디로서의 소임을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어떻게든 엘리제의 평판을 떨어뜨리려는 의도였다.
인품이든 전공이든 의학적 업적이든, 외적으로는 도저히 흠잡을 거리가 없으니, 황궁 안주인으로서의 자질을 공격한 것이다.
틀린 지적은 아니었다.
그녀가 의사 일에만 열중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그래서 그 공격에 엘리제는 이렇게 대응했다.
‘타당하신 지적입니다. 부족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궁의 일을 배워 향후 제국의 퍼스트레이디로서 부끄럽지 않은 이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렇게 아직은 이르지만 예비 황태자비로서 조금씩 황궁의 일을 배우기로 한 것이다.
귀족파 서열 2위 메르키트 백작은 당시 쾌재를 불렀었다.
제대로 된 사교 활동도 하지 않던 그녀가 궁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그녀가 궁의 일을 배우며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그걸 최대한 부풀려 평판을 깎으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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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09시 07분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