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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엘리제-141화 (141/194)

00141  5-7 달콤한 납치 (2)  =========================================================================

7장 달콤한 납치(2) - 3

어쨌든 그들은 케인즈 역에서 중부로 이동하는 기차에 올라탔다.

미리 예약되어 있었고, 최고급 VIP 객실 한 량을 통째로 이용했다.

“이렇게 한 칸을 다 이용해도 되는 거예요?”

“상관없다. 어차피 다 내 거다.”

그 말에 엘리제는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브리티아의 기차는 모두 국가 소유였으니까.

엘리제는 고급스러운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칙칙! 기관이 달아오르는 소리가 나며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미리 준비된 과자를 먹으며 나른히 시시각각 변하는 풍광을 감상했다.

“전하.”

“린덴. 린덴이라고 불러라.”

“아…….”

엘리제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린…… 덴.”

“더 자연스럽게. 한 번 더 불러봐라.”

“……린덴.”

엘리제는 이름을 부르며 살짝 얼굴을 붉혔다.

린덴은 그 귀여운 얼굴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얄밉긴 참 얄미웠지만 동시에 사랑스러웠다. 도대체 저 소녀를 어떻게 해야 할까?

“저…… 그런데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건가요? 론도에는 언제?”

“왜? 빨리 돌아가고 싶나?”

“그건 아니지만…….”

엘리제는 고개를 저었다.

솔직한 마음으로 계속해서 이렇게 그와 있고 싶었다.

영원히.

‘좋으니까.’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좋았다. 눈을 뜨면 그가 있고, 무엇을 해도 그와 함께라는 사실이 그녀의 가슴에 따뜻한 행복을 주었다.

하지만 린덴은 이렇게 답했다.

“내일 돌아갈 거다. 오늘이면 볼일이 끝날 거니.”

“아…….”

“지금 우리가 가는 곳은 클리우드 시이다.”

클리우드 시?

처음 들어보는 곳이다.

“그냥 특별할 것 없는 작은 도시다. 대양이 보이는 서부 해안가의.”

“그러면 그곳에는 왜?”

하지만 그건 답해주지 않았다.

“가보면 안다.”

“…….”

그리고 기차가 철로를 달렸다.

“그런데 엘리제.”

“리제.”

“응?”

엘리제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저한테도…… 엘리제…… 말고, 리제라고 불러주면 안 돼요?”

린덴은 옅게 미소를 지었다.

‘리제’는 가까운 사람이 그녀를 부르는 호칭이었다.

“그래, 리제.”

둘은 그렇게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기차 여행을 하였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배가 고프지 않게 틈틈이 단 과자를 먹고, 음료도 먹었다.

“리제, 이쪽으로 내 옆에 와서 앉아라.”

“왜요?”

“멀어서 이야기가 잘 안 들린다.”

거짓말.

엘리제는 입술을 삐쭉 내밀었으나, 모른 척 속아주었다.

그녀가 옆에 와서 앉자 린덴은 가만히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녀도 그에게 어깨를 기댔다.

그 상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날씨 이야기도 하고, 연극 이야기도 하고, 그녀가 좋아하는 디저트 이야기도 하고, 새로 생긴 스테이크 집 이야기도 하고. 야채는 싫다는 이야기도 하고.

어쨌든 그렇게 이런저런 잡다한 이야기를 하는 사이, 시간이 흘렀고, 낮게 황혼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 기차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클리우드 시는 서부 해안가에 위치한 예쁜 항구 도시였다.

갈매기가 기분 좋게 울며, 절벽 해안가에는 알록달록한 집들이 놓여 있었다.

마치 엽서 사진에 나올 듯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예뻐요.”

린덴은 잔잔히 웃었다.

“마음에 드나?”

“네, 너무 좋아요.”

“다행이군.”

린덴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일단 밥 먼저 먹지. 저녁 시간 때이니.”

그가 그녀를 데려간 곳은 서대륙 본토 라틴 지방의 전통 음식, 화덕 피자와 파스타 집이었다.

“와아.”

뜨끈뜨끈한 김을 내며 나온 피자를 보며 엘리제는 탄성을 지었다.

주방장이 사람 좋게 웃었다.

“맛있게 드십시오, 레이디.”

기다랗게 늘어지는 치즈가 미각을 만족하게 했다. 탄성이 절로 나오는 환상적인 맛이었다.

‘파스타도 맛있어.’

이런 시골 항구 도시에 이렇게 맛있는 집이 있다니?

엘리제는 행복해하며 피자와 파스타를 먹었다.

반면, 린덴은 그런 엘리제를 흐뭇하게 바라볼 뿐, 좀처럼 포크를 가져가지 않았다.

“전…… 아니, 린덴. 입맛에 안 맞으세요?”

“아니, 괜찮다.”

린덴은 고개를 저었지만, 엘리제는 그의 식성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전하는 이런 요리 안 좋아하시지.’

피자와 파스타뿐이 아니다.

그녀가 좋아하는 요리들. 달달한 디저트, 고기 요리들. 모두 그의 취향이 아니었다. 그는 그녀와 정반대인 담백하고 가벼운 요리를 좋아했으니까.

하지만 항상 그녀에게 맞춰주는 그였다.

식사뿐 아니라, 모든 것을.

그 사실을 떠올리자, 그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전하.’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왔다.

“그러면 이제?”

엘리제는 도대체 이 작은 항구 도시에 무슨 볼일이 있는 건지 궁금했다.

린덴은 웃으며 답했다.

“잠깐 먼저 조금만 걷자. 그 뒤에 이야기해 줄 테니.”

“……?”

식사를 하고 나오니 짙은 황혼이 깔려 있었다.

그는 그녀를 도시 뒤쪽으로 나 있는 오솔길로 이끌었다.

도시 사람들이 이용하는 산책로인지 양옆으로 푸른 나무들이 그들을 맞았다.

엘리제와 린덴은 그 호젓한 길을 걸었다.

그녀는 옆에서 걷는 그의 손을 조심히 움켜잡았다.

자신에게 닿는 그녀의 느낌에 린덴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녀의 하얀 이마에 입맞춤했다.

그렇게 둘은 말없이 서로를 공유하며 산책로를 걸었다.

특별한 대화는 없었지만, 황혼이 깔린 항구 도시의 산책로를 단둘이 걷는 것은 평온한 행복감을 주었다.

엘리제는 그의 손을 잡고 걷는 이 순간이 영원히 계속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린덴이 원하던 목적지가 나타났다.

“저기 잠시 앉을까?”

“아…… 네.”

산책로가 완만한 오르막길이어서인지, 도착한 곳은 전망대처럼 높은 지대의 절벽이었다.

시에서 만들어 놓은 것인지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벤치가 놓여 있었다.

린덴이 먼지를 닦아주었고, 둘은 벤치에 앉아 절벽 아래 풍경을 감상했다.

‘와…….’

엘리제는 감탄을 터뜨렸다.

아름다웠다.

절벽 아래 대양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옆으로는 아기자기하게 예쁜 항구 도시가 파노라마처럼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짙게 깔린 황혼.

붉게 물든 바다 도시가 그녀의 가슴을 울렁이게 했다.

“마음에 드는가?”

“네, 아름다워요. 정말로. 이렇게 아름다운 곳은 처음이에요.”

빈말이 아니었다.

많은 곳을 가본 그녀지만, 이렇게 가슴을 울리는 풍광은 처음이었다.

“다행이군. 사실 이곳은 예전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던 장소라 너와 같이 한번 와보고 싶었던 곳이다.”

린덴도 잔잔한 표정으로 황혼을 감상했다.

“저 바다가 대양인가요?”

“그래, 저 바다가 대양이다.”

“그러면 저 너머에 신대륙이 있는 거죠? 오대호가 있다는.”

“그렇지. 가보고 싶나?”

“네, 가보고 싶긴 한데…….”

그 말에 린덴이 말했다.

“가보고 싶으면 같이 가지.”

“네? 하지만…… 전하…… 아니, 린덴은…….”

황제가 될 그가 신대륙 여행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린덴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황제가 되더라도 가끔은 휴식이 필요한 법이니까. 아니면 외교 사절로 신 연방에 방문해도 되겠군.”

엘리제는 쿡쿡 웃었다.

말만이라도 고마웠다.

“린덴. 고마워요.”

“뭐가 고맙지?”

“그냥…… 전부 다요. 이번에 특히…… 저…… 많이 좋았어요. 갑자기 납치해서 놀라긴 했지만요.”

“…….”

“고마워요. 정말로.”

납치였지만 달콤한 납치였다.

‘론도로 돌아가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이 꿈같은 납치도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내일부터는 똑같은 일상이 시작될 것이다. 그녀는 환자를 볼 것이고, 그는…… 이제 곧 3황자 미하일과 본격적인 정권 다툼을 벌일 것이다.

그 사실이 엘리제의 마음을 한없이 무겁게 했지만, 그래도 이 순간만큼은 행복했다.

그녀는 그에게 몸을 기댔다. 그렇게 그에게 안긴 상태로 황혼에 물든 대양을 바라봤다.

“엘리제.”

“네, 린덴.”

“사랑한다.”

그러면서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겹쳐졌다.

평소와 다르게 한없이 부드러운 키스. 그의 혀가 그녀의 혀를 달콤하게 감쌌다.

엘리제는 그 부드러움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저도…… 저도요, 린덴.’

가슴이 찌르르 울렸다.

너무나 커 깨어질까 무서운 행복.

그때, 그가 그녀에게 말했다.

“엘리제, 사실 너에게 할 말이 있다.”

“네, 무엇인데요?”

“그게…….”

린덴은 그답지 않게 잠시 머뭇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엘리제가 의아한 표정을 지을 때.

그가 무언가를 주머니에서 꺼내, 그녀의 손 위에 올려주었다.

그리고 그 ‘무언가’를 본 순간, 엘리제의 눈이 파도를 만난 듯 흔들렸다.

“그것…… 혹시 받아줄 수 있겠나?”

“리, 린덴……?”

엘리제는 입을 가렸다.

그녀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린덴은 평소와 다른 머쓱한 얼굴을 했다.

“미안하다. 너도 알겠지만, 내가 원래 이런 데 말재주가 없어. 여자를 감동하게 하는 재주도 없고, 미사여구를 말하지도 못해. 그래서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마.”

린덴은 깊은 금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깊고 깊은 마음을 담고서.

“엘리제. 나와 결혼해 주겠나?”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엘리제의 눈에서 뚜욱 눈물이 떨어졌다.

생각지도 못한 프로포즈였다.

“아…….”

엘리제는 허겁지겁 눈물을 닦았다.

하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왜일까? 저 무뚝뚝한 목소리에 담긴 사랑이 느껴져서일까? 거창하지도, 달콤하지도 않은 프로포즈였건만 흔들리는 가슴을 도저히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린덴이 약간 불안한 눈빛으로 물었다.

“혹시…… 싫은 건 아니겠지? 싫어도 소용없다. 무조건 강제로 결혼할 거야.”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녀는 결국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끄윽. 흐윽. 저, 전하…… 린덴…….”

“에, 엘리제? 왜?”

돌연 울음을 흘리며 자신에게 안겨 드는 그녀에게 린덴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 아니. 프로포즈를 했는데 왜 기뻐하지 않고 우는 거지?

설마 싫은 건가?

린덴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 싫은가? 그래도 소용없다. 프로포즈지만, 선택 사항은 없어. 이미 넌 내 거야.”

엘리제는 자신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 이 여자 바보 남자에게 화급히 고개를 저었다.

“흐윽. 안 싫어요.”

“그러면 왜?”

“당연히 좋으니까 그렇죠!”

빽 말한 후 다시 그의 품 안에 안겨 들었다.

이전 삶이 떠올랐다.

그와 끝없이 엇나간 끝에 비극을 맞이했던 삶. 그때가 떠오르며 지금이 꿈처럼 느껴졌다.

아니, 정말 꿈인 것은 아니겠지? 이 행복이 환상인 것은 아니겠지?

한편 린덴은 그녀의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무뚝뚝하지만 평소와 다르게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엘리제. 울지 마라. 바보같이 왜 울어.”

“흐윽.”

그는 그녀를 몸에서 살짝 떼어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을 그녀의 얼굴에 밀착시켜 혀로 눈물을 닦았다.

“사랑한다. 정말로.”

“린덴…….”

다시 얽히는 그와 그녀의 입술.

몽롱한 키스 후, 그는 벨벳 반지 케이스에서 다이아몬드 반지를 꺼내 그녀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주었다.

손가락에 딱 맞는 금색 반지가 그녀를 속박하는 듯해 그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였다.

“엘리제. 이제 너는 완전히 내 거야. 그러니.”

린덴은 그녀를 가슴에 안았다.

“앞으로 영원히 내게서 벗어날 생각하지 마.”

============================ 작품 후기 ============================

내일 09시 07분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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