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4 6-6 민체스터 =========================================================================
6장 민체스터 - 1
두근.
경동맥을 짚고 있는 밴 자작의 손가락에서 희미한 맥박이 느껴졌다.
심장이 돌아온 것이다!
“맥이 느껴집니다!”
“아아……!”
의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심장이 돌아왔다고 안심할 때가 아니었다.
엘리제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지시했다.
“급성 심장마비가 발생한 뒤라 언제 다시 문제가 생길지 몰라요! 지금 바로 활력 징후 먼저 확인해 주세요.”
“네! 지금 바로 확인하겠습니다.”
의사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수축기 혈압 60입니다! 맥박은 140회. 호흡수 30회입니다!”
엘리제의 얼굴이 굳어졌다.
심각한 쇼크였다.
간신히 심장박동만 돌아온 상태인 것이다. 지금 민체스터의 몸의 기능은 모두 엉망이라고 봐야 했다.
‘빨리 쇼크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야 해. 그래야 후유증 없이 폐하의 몸을 회복시킬 수 있어.’
물론 원래부터 쇠약했던 민체스터다.
이번 심장마비로부터 회복된다 해도 완벽히 건강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돌아가게 할 수는 없었다.
의사로서, 아니, 이제 그의 새로운 딸이 될 마음으로서!
“지금 바로 황실십자병원으로 이송하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움직여 주세요.”
“네!”
“이동하는 중에도 계속 맥을 체크해 주세요. 혹시라도 맥의 횟수가 줄어들거나 약해지는 느낌이 들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엘리제는 하얀 예식 드레스를 입은 상태 그대로 의사들을 지휘해 민체스터를 이송했다.
“…….”
예식장에 모여 있던 귀족들은 황망한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지금 우리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황제 폐하께서 왜 저렇게 갑자기…….
“이, 이거……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원래 건강이 안 좋긴 하셨지만 왜 이렇게 갑자기……?”
“다, 다시 일어나실 수 있을까? 등불을 든 여인이 같이 가긴 했지만 심장마비가 오셨던 것 같은데…….”
“도대체 왜?”
물론 민체스터의 몸이 원래 안 좋은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단순 실신도 아니라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라니? 당황스러울 정도로 급작스러웠다.
“병이 갑자기 더 악화하신 건가?”
“그럴 지도. 하지만…… 혹시…….”
모두가 침을 꿀꺽 삼켰다.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의문.
-혹시 술에 문제가?
하필 공교롭게 민체스터는 황태자가 바친 술을 마시고 곧바로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마치 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독을 마셨을 때와 비슷한 증상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단상의 황태자에게 향했다.
린덴은 평소의 냉철한 모습과 다르게 하얗게 질린 얼굴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
순간 대성당에 죽을 듯한 침묵이 흘렀다.
모두가 황태자의 얼굴만 바라봤다.
물론 아닐 거다. 독살이라니?
황태자인 그가 그럴 이유가 없다. 모든 이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이 너무 공교로웠다.
그때, 로열 가드의 수장인 길버트 백작이 황태자에게 다가갔다.
“……전하.”
“길버트 백작.”
길버트 백작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죄송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저희와 함께 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린덴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네, 그러면 실례하겠습니다.”
그렇게 황태자도 로열 가드의 인도를 받고 대성당에서 사라졌다.
남겨진 귀족들이 웅성웅성거렸다.
“뭐지?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설마 정말 황태자 전하가 그러신 것은 아니겠지?”
“아니야, 그럴 리가 없잖아.”
“하지만 왜 하필…….”
“폐하는 회복되실까?”
사람들이 중구난방으로 떠들었다. 모두의 얼굴이 혼란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자리의 모두가 직감했다.
고요한 전야가 끝났음을.
황제가 저런 일을 당한 이상, 이제 론도에 진정한 폭풍이 몰아닥칠 것임을.
황제파와 귀족파의 인물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각자 이 사태에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고민하며.
그렇게 모두의 축복을 받던 약혼식이 생각지도 못한 사고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그날의 일을 기점으로, 론도 정국에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
그날의 사건은 론도, 아니, 제국 전체를 뒤흔들었다.
[황제 폐하, 황태자가 바친 축배를 마시고 심장마비로 쓰러지다!]
온 시민이 경악했다.
모두가 축복하던 약혼식 날 이런 끔찍한 일이 발생하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폐하께서는 어떻게 되시는 거야?”
“그러게. 정말 이대로 승하하시는 것은 아니겠지?”
시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그날의 일에 대해 떠들었다.
황제 민체스터는 시민들의 존경을 받는 명군이다. 그런 명군이 아들이 바친 축배를 마시고 쓰러지다니! 세상에 이렇게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가.
“설마…… 황태자 전하가 일으킨 일은 아니겠지?”
“에이, 이 사람아! 무슨 큰일 날 소리를! 전하가 왜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른단 말인가?”
“그렇긴 하지만…… 상황이…….”
“난 오히려 다른 게 의심되는데.”
한 시민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뭐가 의심된다는 말인가?”
“이게 황태자 전하를 음해하려는 음모가 아닐까 하고 말이야.”
“……!”
그 이야기를 들은 다른 이들이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음모라고? 누구의?”
“지금 상황에서 전하를 음해할 이들은 단 하나 아닌가.”
모두의 머리에 한 단어가 떠올랐다.
귀족파.
만약 이게 정말 음모라면 그들 아니면 이 음모를 꾸밀 이들이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 고개를 저었다.
“너무 앞서 생각하지 말게. 그렇게 함부로 이야기하고 다니다 경을 칠 수도 있어. 당분간 입조심하고 다니게.”
“…….”
“이제 곧 론도의 분위기가 흉흉해질 테니까.”
그 말이 옳았다.
황제가 이렇게 쓰러진 이상, 그리고 이런 사건이 일어난 이상 정국은 폭풍을 만난 것처럼 요동칠 것이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몸조심해야 해.”
시민들은 모두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시각, 차일드 가문의 저택.
이 중대한 사태에 귀족파 인물들이 모여 회동을 가졌다.
3황자 미하일도, 암셀 후작도, 몸이 불편한 메르키트 백작도, 핵심 인물들은 단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모두 모였다. 그만큼 심각한 사태였으니까.
“…….”
기다란 테이블에 앉은 그들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황제의 심장마비라니.
엄청난 일이기도 했고, 사안이 너무 예민했다.
하필 황태자가 건넨 축배를 마시고 발생했으니까.
모두 각자의 생각을 정리하며 자신들의 주인인 3황자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
3황자 미하일은 말이 없었다.
그의 표정은 딱딱하기 그지없었다.
‘아버지.’
정치적 파장을 떠나, 자신의 아버지가 쓰러진 일이다. 가슴이 요동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가만히 암셀 후작에게 물었다.
“외숙부.”
“네, 전하.”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혹시 손을 쓴 것은 아니시지요?”
듣던 귀족파의 인물들이 숨을 흡 하고 들이켰다.
황제의 독살.
지금 미하일은 그걸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암셀 후작은 이전보다 더욱 마른 얼굴을 저었다.
“아닙니다. 물론 상황이 안 좋아 이런저런 생각을 안 해봤던 것은 아니지만 아닙니다.”
“그러면?”
“원래 앓고 있던 병환과 연관되어 일어난 일이겠죠.”
귀족파의 인물들도 황태자가 설마 술에 독을 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일단 그럴 이유가 없었다. 모든 것을 가진 황태자가 왜 술에 독을 타겠는가?
이번 일은 다소 이상하긴 하지만 원래 앓고 있던 병이 악화되어 생긴 일이라 보는 것이 합당하다.
문제는 상황이 너무 공교롭다는 것이다. 하필 황태자가 건넨 축배를 마시자마자 심장마비가 일어나다니.
“하지만.”
암셀 후작이 나직이 말했다.
“이 기회를 그냥 넘기면 안 되겠죠.”
“……!”
암셀 후작은 ‘기회’란 단어를 사용했다.
귀족파의 인물들이 흠칫 그를 바라봤다.
그렇다. 급작스럽긴 하지만 이건 그들에게 있어 기회였다. 어쩌면 황태자를 실각시킬 수도 있는.
“실제로 폐하가 어떤 이유로 심장마비를 일으켰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있죠.”
“…….”
“원래부터 중병을 앓던 폐하가 회복될 확률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등불을 든 여인이 옆에 있다고 해도 말이지요. 어쩌면 오늘이나 내일 당장 승하하실 수도 있습니다.”
귀족파 인물들은 쥐 죽은 듯이 그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황태자는 자신의 무죄를 증명해야 합니다. 하지만 무죄를 증명하려면 황제 폐하가 왜 심장마비를 일으켰는지를 밝혀내야 하는데, 그게 과연 쉬운 일일까요?”
어려울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변수는 등불을 든 여인인데. 아무리 그녀라도 심장마비의 원인을 밝히긴 쉽지 않을 것입니다. 대부분 급성 심장마비는 원인 불명으로 결론 내려지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
“그래서 만약 황태자가 폐하의 심장마비 원인을 밝혀내지 못해 본인의 무죄를 입증하지 못한다면 혐의를 벗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면…… 그걸 빌미로 그를 폐위시킬 수도 있습니다.”
“……!”
모두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렇다. 어쩌면 황제가 사망할 수도 있는 사건.
그러니 혐의를 벗지 못한다면 폐위까지 갈 수도 있었다. 아니, 그들 귀족파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암셀 후작이 지병인 폐병으로 쿨럭쿨럭 기침을 하더니 3황자에게 말했다.
“어쨌든 이 기회를 절대 놓쳐서는 안 됩니다. 전하께서 허락하신다면 제가 손을 쓰겠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황태자를 폐위로 몰아가겠습니다.”
미하일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형님.’
아비의 병환을 이용해 형님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일이다. 그게 그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약혼식 때 환히 웃던 엘리제의 얼굴도 떠올랐다.
하지만.
둘은 이미 전쟁을 시작했다. 지는 쪽이 모든 것을 잃는 전쟁을.
미하일은 씁쓸한 입맛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진행하도록 하십시오, 외숙부.”
***
차일드 가문은 먼저 신문사를 움직였다. 일단 자신들 소유의 신문사를 움직였고, 그 밖에 신문사에도 손을 썼다.
곧 오묘한 느낌의 기사들이 거리를 장악했다.
[의문의 심장마비. 축배와의 관련성은 정말 없는 것인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 평소 질병 양상으로는 설명되지 않아.]
딱히 결론을 단정 짓기보다는 의문을 제기하는 기사들.
하지만 의문에 불과하지만 파장은 컸다.
원체 상황이 공교로웠던지라 아니라 생각하던 시민들도 기사를 보며 조금씩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 그때 폐하께서 마셨던 술과 전혀 연관이 없는 걸까?”
“그러게. 하지만 황태자 전하께서 그럴 이유가 없으시잖아.”
“그렇긴 하지만 왜 하필…….”
그렇게 시민들은 목소리를 낮춰 의문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차일드 가문은 교묘히 시민들 사이에 소문을 냈다.
어쩌면 황태자가 정말로 황제를 독살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사자궁의 시종이 시장에서 정체불명의 물체를 사는 것을 목격.]
[황태자가 마련한 축배는 이전에 예식 때 사용한 술과는 전혀 다른 종류라 함.]
명확한 근거는 없었다.
차라리 가십에 가까운 소문들. 처음에 시민들은 에이, 설마 하면서 그 소문들을 흘려들었다.
하지만 소문은 끝이 없었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점점 의구심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정말 황태자가 꾸민 짓이 아닐까? 아니라면 왜 하필 술을 마시자마자 황제가 쓰러졌단 말인가?
시민들은 조심히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래서 대중심리가 무섭다. 설마가 의혹으로, 의혹이 의심으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때, 차일드 가문은 선동꾼을 움직였다.
============================ 작품 후기 ============================
내일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