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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엘리제-183화 (외전) (183/194)

00183  외전1 길거리 데이트  =========================================================================

1장 길거리 데이트-1

황궁의 평화로운 아침.

따사로운 햇살이 창틈 사이로 쏟아지고 있었다.

“음…….”

넓은 침대의 이불에 파묻혀 있던 백금발의 소녀는 눈부신 햇살에 인상을 찌푸렸다.

피곤한지 눈을 뜨기 힘든 모습이었다. 그때 조각 같은 인상의 남자가 소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조금 더 자도록.”

“으음, 지금 시간이……?”

소녀는 멍하니 눈을 뜨며 중얼거렸다.

“얼마 안 됐어. 더 자.”

그러며 남자의 손길이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그녀의 가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간지러운 느낌에 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몽롱한 정신 속에서도 몸에 전기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 마, 만지지 마요, 린덴.”

“뭘?”

“그, 그…….”

소녀는 민망함에 말을 더듬었다.

점점 더 자신의 민감한 부위로 와 닿는 그의 손길에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 그만…….”

“싫은데?”

결국, 소녀는 항의하듯 말했다.

“어, 어제 분명 그만한다고 약속하셨잖아요!”

밤새 괴롭혔으면서!

아무리 그만해 달라 애원해도 끝없이 괴롭혀서 도대체 몇 시에 잠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아침 해가 뜨자마자 또 괴롭히려 하다니!

하지만 남자, 황제 린덴은 짓궂게 말할 뿐이었다.

“내가 그랬나?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더 집요해지는 그의 손길에 소녀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정, 정말 그만하세요!”

싫은 것은 아니었다. 아니, 그 반대였다.

이제 그와 결혼한 지 벌써 3년.

그와의 사랑은 조금도 식지 않았다. 아니,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져만 갔다. 그가 없었던 과거를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

육체적인 사랑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쾌락을 위한 관계가 아닌, 사랑의 나눔이어서일까? 그 행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다만 문제는.

‘너무 힘들어.’

그녀는 울상을 지었다.

그는 도무지 자신을 가만히 놔두지를 않았다. 그것도 매일매일. 밤늦게까지.

물론 그를 사랑하니 자신도 싫지 않았으나…… 아니, 좋았으나 그에게 밤새도록 시달리고 나면 몸이 녹초가 되어 다음 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 린덴. 정말 그만하세요. 이제 더는 안 돼요.”

엘리제는 결국 달아오르는 몸을 못 참고 그의 손을 밀어냈다.

“왜?”

엘리제는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오늘 바쁘단 말이에요. 보건정책과와 회의도 해야 하고, 곧 다가올 탄신연회 예산도 검토해야 하고, 오후에는 수술도 잡혀 있어요. 그리고 수술 전에 잠깐 귀부인들과 다과회도…….”

줄줄이 나오는 그녀의 스케줄에 린덴은 미간을 좁혔다. 끝이 없었다.

도대체!

이전부터 늘 불만이었다. 이 소녀는 왜 항상 이렇게 바쁘단 말인가?!

결혼 전에도 그랬지만, 결혼 후 황후가 된 다음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내명부의 일만으로도 적은 양이 아니었고, 내명부의 일을 완벽히 하면서 의사 일까지 같이하려니,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물론 이전보다 의사 업무는 많이 줄였다. 현재 그녀의 주 업무는 의사가 아닌, 황후로서의 일이다.

그래도 오로지 그녀만이 가능한 업무나 수술이 아직도 많아, 적지 않은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고 있다.

‘도대체 황제인 나보다 더 바쁘니.’

린덴은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다.

‘마음에 안 들어. 정말로.’

의사 일을 겸업하면서도 황후로서의 일도 누구보다 완벽하게 처리하니 탓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원체 바쁘니, 자신과 보내는 시간이 적은 것이 불만이었다.

마음 같아선 품 안에 가둬놓고, 항상 같이 지내고 싶지만 현실은 저녁에나 간신히 얼굴을 보는 정도다.

“오늘 일은 몇 시쯤 끝나지? 저녁은 같이 먹을 수 있는 거겠지?”

“수술이 끝난 후, 저녁에는 예술 협회 후원회에 잠시 참석해야 할 것 같아서 늦을 거 같아요. 먼저 드세요.”

린덴은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또? 어제도 늦게 들어오지 않았는가? 그제도 일이 늦게 끝났던 것 같은데. 도대체 그대와 저녁을 같이 먹은 게 언제인지 모르겠군.”

그 불만 섞인 목소리에 엘리제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 죄송해요. 그래도…… 오늘 후원회는 꼭 참석해야 하는 모임이라…….”

그러며 엘리제는 린덴의 눈치를 살폈다.

확실히 본인이 생각해도 심하게 바쁘긴 했다. 황후의 일, 의사의 일 모두 완벽히 해내려니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그녀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린덴에게 쭈뼛쭈뼛 말했다.

“……죄송해요. 내일은 꼭 일찍 일을 끝낼게요.”

“…….”

그래도 그가 대답하지 않자 엘리제는 조심스럽게 애교를 부렸다.

“응? 응? 네? 화 푸세요. 미안하고 사랑해요. 네? 대신 내일은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연극 보러 가요. 일 꼭 일찍 끝낼 테니.”

“하아.”

린덴은 한숨을 내쉬었다.

서운하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런 그녀를 사랑한 것은 자신이니.

그는 한 손으로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았다.

얇은 파자마 너머로 느껴지는 그의 단단한 가슴에 엘리제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말로만?”

“네?”

엘리제는 잠시 말뜻을 이해 못하고 물었다.

“말로만 미안하다고 하는 것이냐?”

“아…….”

삐쭉한 말에 그가 원하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주저하다 고개를 들어 입술을 그의 뺨에 갖다 대었다. 뺨에 하는 베이비 키스였다. 입술에 닿는 그의 느낌에 엘리제의 가슴이 뛰었다.

“됐…… 죠?”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러면?”

“거기 말고 다른 곳에.”

그러며 그는 그녀의 입술을 바라봤다. 금색 눈동자 깊은 곳에 흐르는 갈망이 느껴져 엘리제의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그녀는 주저주저하다가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 대었다.

그리고 서로의 입술이 닿는 순간!

그가 그녀의 머리를 끌어안더니, 혀를 밀어 넣어 안으로 강렬하게 덮쳐 들어갔다.

“아…… 린덴…….”

전기에 감전되는 듯한 키스.

자신을 애태우는 것을 혼내주려는 듯 집요하고 강렬한 키스였다.

그는 마치 농락하듯 그녀의 입안 저 깊은 곳까지 철저히 괴롭혔다.

“리제.”

린덴은 그녀의 귓가로 입술을 가져갔다.

귀로 느껴지는 그의 입김에 엘리제는 몽롱하게 답했다.

“……네, 린덴.”

그는 그녀의 귓불을 지그시 깨물며 말했다.

“날 너무 애타게 하지 마라. 밤에 혼내줄 테니.”

***

린덴과 엘리제가 부부가 된 지 벌써 3년이 지났다.

린덴은 부부가 된 후,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의 궁을 찾았다. 아니, 찾았다기보다는 아예 그녀의 궁에서 살았다.

본인의 사자궁은 정무를 볼 때만 방문하고, 정무가 끝난 후에는 꼭 그녀의 백합궁으로 돌아왔다.

결혼해도 각자 다른 궁에 머무는 것이 아닌, 마치 한 집의 사는 일반 부부처럼 지냈다.

궁내부에서 예법에 어긋난다고 몇 차례나 상소를 올렸으나, 린덴은 들은 척도 안 했다.

결혼하기 전, 그가 간절히 바랐던 것.

삶을 그녀와 함께하는 것.

고작 예법 때문에 그 행복을 포기하라고? 절대 그럴 수 없었다.

결국, 시종들은 어쩔 수 없이 황제가 머무는 데 불편하지 않도록 물품들을 황후의 궁으로 조금씩 옮기기 시작했고, 3년이 지난 지금, 사자궁은 황제의 궁이라기보다는 정무만 보는 집무실이 되어버렸다.

‘엘리제.’

린덴은 사자궁의 회의실에서 대신들과 회의를 마치고 잠시 그녀를 떠올렸다.

‘보고 싶군.’

방금 봤는데, 또 보고 싶었다.

그녀와의 결혼 생활은 나날이 행복한 일상이었다.

아니, 이 벅차오르는 감정을 단순히 행복이란 한 단어로 표현할 수가 있을까?

지독한 중독, 갈망. 그녀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터질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심장이 고장 난 것 같았다.

복수만 바라던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모든 것이 벅차고 충만한 시간들.

‘그 문제만 아니면 완벽할 텐데.’

린덴은 그녀와의 유일한 문제를 떠올리고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은 그 문제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주변에서 압박이 들어오고 있었다.

물론 그런 압박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엘리제도 많이 걱정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난 엘리제, 너만 있으면 되는데 그까짓 게 뭐라고.’

린덴은 혀를 차며 생각을 돌렸다.

시간이 걸리는 것일 뿐,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니 곧 해결될 것이다.

‘지금쯤 수술하고 있으려나? 황실십자병원의 의사 놈들은 도대체 언제쯤 그녀 대신 수술을 완벽히 해낼 수 있는 거야.’

십자 병원의 의사들은 제국…… 아니, 세계 최고의 의사인 그녀의 수술을 배우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도 여전히 미흡했다.

그들의 실력이 나아지면 그녀가 바쁠 일도 많이 줄어들 텐데.

‘조금 더 닦달해야겠어.’

특히 그레이엄. 그놈을 독촉해야겠다.

이유 없이 마음에 안 드는 놈이었지만 그나마 가장 나은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렇게 린덴은 그녀에 대해 생각하며 정무를 보았다.

***

다음 날, 엘리제는 최대한 빨리 일을 마쳤다.

린덴과 이전부터 약속한 거리 데이트를 하기 위해서였다.

“일은 다 끝난 건가?”

“네, 다 마무리하고 왔어요. 많이 기다리셨죠? 죄송해요.”

린덴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 그나저나 오늘은 응급수술 때문에 중간에 안 돌아가도 되는 거지?”

“아…… 네. 아마도요.”

지난번 데이트 때는 갑자기 그녀 외에는 손쓸 수 없는 혈관 파열 환자가 발생해 연극 중간에 일어난 일이 있었다.

그가 항상 이 데이트를 얼마나 고대하는지 알고 있는 그녀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오늘은 괜찮을 것이다. 지난번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 린덴이 친히 황명으로 최고의 의사들이 철통같은 당직을 서도록 명령했으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드레스 갈아입고 올게요.”

병원에서 바로 돌아온 상태라 그녀는 간편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암행에 가까운 비공식적인 외출인지라, 황후로서 예복을 갖추어 입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간만에 데이트여서 그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린덴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그냥 그대로 나가지.”

“네? 하지만.”

린덴은 부드럽게 그녀를 감싸 안았다. 허리에 와 닿는 그의 단단한 팔에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그대로 그녀의 귓가를 살짝 깨물며 낮게 말했다.

“지금도 충분히 예뻐. 데이트 나가지 말고 바로 덮치고 싶을 정도로.”

“……!”

엘리제의 얼굴이 사과처럼 물들었다.

그녀는 민망한 마음에 그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말했다.

“지, 짐승.”

“뭐가?”

“어제도 그렇게나 힘들게 했으면서!”

“그런가?”

“그, 그래요.”

엘리제가 원망스럽게 답했다.

하지만 린덴은 씨익 웃었다.

“난 잘 모르겠는데. 왜냐하면…….”

그는 그녀의 귓불을 부드럽게 혀로 쓸어내렸다.

그의 혀에 닿은 귓불에 전기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어 그녀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아직도 난 모자라거든.”

“……!”

갈망이 담긴 목소리에 엘리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러다 데이트를 나가기도 전에 침실로 끌려갈 것 같다는 위기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일단 도망쳐야 했다.

“빠, 빨리 드레스 갈아입고 올게요.”

“괜찮다니까?”

“제, 제가 안 괜찮아요!”

엘리제는 도망치듯 그의 품에서 벗어나 드레스 룸으로 달아났다.

린덴은 아쉬운 듯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대로 덮쳐 버리고 싶은 충동이 굴뚝같았지만……

‘뭐, 오늘 밤도 있으니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아쉬움을 억눌렀다.

============================ 작품 후기 ============================

외전은 주3회(월수금) 연재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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