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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엘리제-184화 (184/194)

00184  외전1 길거리 데이트  =========================================================================

1장 길거리 데이트-2

그녀와의 외출은 린덴의 가장 큰 행복 중 하나였다. 그녀와 손을 잡고 거리를 구경하며, 연극을 관람하고, 맛있는 식사와 디저트를 먹는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 온 세상에 오로지 둘만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모든 것을 잊고 서로만 바라보게 된다.

“다 준비되었나?”

“네.”

귀족들의 외출복으로 차려입은 그녀가 그에게 다가왔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려고 챙이 넓은 모자를 깊숙이 눌러썼다.

물론 그 정도로 이목을 피할 수는 없다. 그들은 황제와 황후였으니까. 그것도 모든 시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그래서 린덴은 자신과 그녀에게 약한 변검(變劍) 능력을 걸었다.

이전 그녀와 가까워지기 전 정체를 숨기고 ‘론’으로 만나기 위해 사용했던 능력이었다.

린덴은 옆에 선 엘리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엘리제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 시선을 받았다.

“왜요? 혹시 뭐 이상해요?”

“손.”

“네?”

“팔짱 끼라고.”

그 말에 엘리제는 배시시 웃으며 그의 팔에 자신의 손을 걸었다.

그녀가 팔짱을 끼자 린덴의 무뚝뚝한 표정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사랑의 행복이 담긴 그 미소를 보며 엘리제는 말했다.

“그거 알아요?”

“뭐가?”

“고마워요.”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 사랑해 줘서. 그리고 같이 있어줘서 고마워요. 저도 정말로 많이 사랑해요.’

그 속마음을 들은 것일까? 린덴은 깊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왜요?”

괜히 민망한 마음에 엘리제는 고개를 돌리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차가운 손가락이 그녀의 얼굴을 잡고 자신 쪽으로 향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대로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아.”

생각지 않은 키스에 그녀는 옅은 신음을 흘렸다.

부드럽지만 정열적인 감촉. 결혼한 지 3년이란 세월이 지났음에도 그와의 키스는 도저히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언제나 뜨겁고, 전기가 흐르는 듯하고, 정신이 몽롱해졌다. 자신의 모든 것을 삼키는 듯한 입맞춤.

“그,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그의 팔목을 움켜잡는 순간, 린덴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랑한다, 정말로.”

“……!”

엘리제의 뺨이 살짝 붉어졌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요.”

그렇게 둘은 마차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마차는 고급스러운 자재를 썼지만 황가의 문양은 새겨져 있지 않았다. 황족이 암행을 나갈 때 이용하는 마차였다.

“…….”

엘리제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마차의 내부를 살폈다.

“왜 그러지?”

“아니, 그냥요. 옛날 생각이 나서요.”

‘로제’로 ‘론’을 만나던 때의 이야기였다.

당시 린덴은 ‘론’으로 그녀를 만나러 올 때 종종 이 마차를 이용했었다.

‘그때만 해도 폐하와 이렇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는데.’

론이 그였을 것이라고도 상상 못했다. 크림 반도에서 처음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얼마나 놀랐었는지.

당시만 해도 그가 자신에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몰랐었다. 아니, 스스로의 감정에 대해서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덕분에 많은 엇갈림이 있었고, 그에게 많은 상처를 주기도 하였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

그래,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고비도 많았고, 괴로운 일도 많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그의 옆에 있을 수 있게 된 것은 그가 자신을 사랑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고마웠다. 그의 곁에 있는 것이 행복했다.

‘한 가지 걱정만 아니면…… 모든 것이 행복할 텐데.’

엘리제는 살짝 어두운 얼굴을 했다.

행복 속에 숨어 있는 한 가지 걱정.

‘난 언제 아기가 생길까?’

그녀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것이 행복한 결혼 생활이었지만 큰 문제가 있었다. 금슬이 나쁜 것도 아닌데도, 도통 아기가 생길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갑작스레 어두워진 그녀의 얼굴을 보고 린덴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러지?”

“아…… 별것 아니에요.”

웃으며 고개를 저었으나 린덴은 속지 않았다.

“아기 문제 때문에 그러는가?”

“…….”

엘리제는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는 혀를 찼다.

“괜찮대도. 곧 생길 거다.”

“하지만 벌써 3년이잖아요…….”

엘리제는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이지.’

그녀는 한숨을 삼켰다.

처음에야 그러려니 생각했지만, 2년, 3년이 되어가니 점차 주변에서도 걱정하고 그녀도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괜찮다. 원래 우리 로마노프 가문이 손이 귀해. 곧 생길 거다.”

린덴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따뜻하게 말하며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난 그대만 있으면 돼. 후손 따위는 없어도 된다.”

엘리제는 거짓말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정말이야. 난 정말 너만 있으면 돼.”

린덴의 말은 거짓이 아닌 진심이었다.

물론 그도 안다.

황제로서 대를 잇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란 것을.

하지만 그의 개인적인 솔직한 심정으로는 아이는 안 갖고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바빠 자신에게 소홀한 그녀다.

만약 아이가 생기면 또 얼마나 그쪽에 관심을 쏟을 것인가! 자신은 한 걸음 더 관심에서 멀어질 게 분명하다.

태어나지도 않은 자식에게 질투하는 꼴이지만, 원래 그는 그녀의 일에 관해선 질투심이 넘쳤다.

‘정 안 되면 다른 황족을 입양해서 대를 이으면 되잖아. 로마노프령에 간 미하일, 그놈이 나중에 아들을 낳으면 데려와도 되고.’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 엘리제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가지고 싶단 말이에요. 저와 린덴의 아기…….”

그 말에 린덴은 자신에게 안긴 그녀의 이마에 부드럽게 입술을 맞추었다.

“걱정하지 말아라.”

“…….”

“아이는 생길 거다. 반드시.”

확신에 찬 어조에 엘리제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요?”

“오늘 밤도 노력하고, 내일 밤도 노력하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노력할 거거든.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는데 안 생길 리가 있느냐?”

엘리제의 뺨이 화악 붉어졌다.

린덴의 얼굴이 짓궂어졌다.

거리 데이트가 끝나고 궁으로 돌아가서 그녀를 괴롭힐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리, 린덴!”

“뭐가? 분명히 말하지만, 이건 제국의 미래를 위해서라고.”

엘리제는 붉어진 얼굴로 화제를 돌리기 위해 물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저희만 가는 것인가요?”

경호에 대한 물음이었다.

“저 뒤에서 로열 가드 몇 명이 따르고 있다.”

그러며 린덴은 혀를 찼다.

“그렇게 필요 없다는데도.”

둘만의 데이트를 즐기고 싶은데, 부득부득 따라오는 근위대가 마음에 안 드는 듯했다.

“하여튼 궁내부장 이놈을 갈아치워야지.”

엘리제는 그 말에 쿡쿡 웃었다.

둘이 이렇게 비공식 외출을 나갈 때마다 꼬장꼬장한 궁내부장은 펄쩍펄쩍 뛰었다.

혹시나 변고라도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이 론도에서 무슨 일이 생긴다고.”

선황 민체스터의 치적부터 그에게 이르기까지. 거듭된 선정으로 론도의 치안은 대륙 최고였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해도 군대가 몰아치지 않는 한 그의 털끝 하나 상하게 할 수 없거늘, 궁내부장은 막무가내였다.

‘절대 안 됩니다! 꼭 외출하셔야겠다면 근위대를 데리고 가십시오! 최소 100명은 데리고 가야 합니다!’

100명이라니! 그럴 바엔 외출을 안 하는 게 나았다.

결국, 황제는 궁내부장과 옥신각신한 끝에 최소의 경호 인원만 대동하기로 합의를 보았고, 로열 가드들은 변복한 후 멀찍이 그들을 따랐다.

“지금 바로 극장으로 가는 거죠?”

“그래야 할 것 같다. 시간이 얼마 없어서.”

시간이 있다면 전망 좋은 카페에서 간단히 차를 마시고 가는 것도 좋겠지만 연극 시작 시간에 도착하기 빠듯했다.

“그런데…… 린덴은 오늘 하는 연극 별로 안 보고 싶어 하지 않았나요? 그냥 다음번에 다른 연극을 볼까요?”

엘리제가 조심히 물었다.

그들이 지금 보려는 연극 제목은 ‘애절한 사랑.’

왠지 삼류극처럼 보이는 제목의 연극은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로 그가 아니라,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였다.

하지만 린덴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보고 싶다.”

“정말요? 저 때문에 보는 것 아니에요? 그런 거면 괜찮으니 그냥 다른 극을…….”

“아니야, 정말 좋아해.”

그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린덴은 그녀와 함께 보는 연극이라면 어떤 장르라도 다 좋았다. 애초에 그의 관심사는 연극이 아니라 그녀였으니까.

사실 연극의 내용은 먼지만큼의 흥미도 없었다. 그냥 그녀가 자신의 옆에 앉아 즐겁게 연극을 구경하고 있으면 그것만으로 자신은 행복했다.

연극을 보며 다채롭게 변하는 그녀의 사랑스러운 표정을 구경하는 것은 덤이고.

그녀의 얼굴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다. 아마 평생 봐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보고 또 봐도 갈망만 늘어나지.

단 하나 불만이 있다면 그녀의 눈이 자신을 향하지 않고 있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그녀의 마음에 자신이 있음을 알고 있지만, 그녀는 신경 쓰는 것이 너무 많았다. 나만 바라봐 줬으면 좋겠건만…….

‘콱 납치해 버릴까. 아무도 없는 곳으로.’

린덴은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미 같이 살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모자랐다.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곳으로 가서, 단둘이 서로만 보고 싶었다. 그녀의 눈이 자신만 향했으면 좋겠다.

물론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황제고, 그녀는 황후이자 제국 최고의 의사이니까. 잘 알고 있지만 종종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슨 생각하세요?”

린덴은 옆에 앉은 그녀의 어깨를 다시 껴안으며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잡아 옆에 두고 싶다고.”

“늘 옆에 있잖아요?”

“모자라.”

그리고 말했다.

“턱없이.”

***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대극장에 도착했다.

론도 최대 규모의 대극장은 프랑소엔의 자랑, 파리스의 오페라에 뒤지지 않는 웅장함을 지니고 있었다.

대극장의 관장인 랑콤 준남작이 그들을 맞았다.

“대브리티아 제국의 황제 폐하와 황후 마마를 모시게 되어 지극한 영광입니다.”

그러며 장황한 예를 다하려는 관장에게 린덴은 고개를 저었다.

“됐다. 한두 번 오는 것도 아니고. 조용히 시간을 보내다 가고 싶으니,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쓸데없는 소란을 삼가도록.”

“명을 다하겠습니다, 폐하! 그러면 늘 모시던 자리로 안내하겠습니다.”

“그래.”

엘리제가 연극을 좋아하기 때문에 둘은 대극장에 종종 방문했다.

그때마다 남들의 눈이 닿지 않는 사각에 위치한, 그러면서도 연극이 가장 잘 보이는 VVIP석에서 극을 관람했다.

그런데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였다.

그들은 뜻밖의 인물들을 발견했다.

“어?”

크림같이 부드러운 얼굴, 은은한 백금발. 따뜻한 느낌의 미남자가 도도한 인상의 아름다운 레이디를 에스코트하고 있었다.

“레이디 차일드, 이쪽으로 오십시오.”

“가고 있어요. 그리고 에스코트는 괜찮으니 손은 안 잡으셔도 돼요.”

쌀쌀한 말투였지만 부드러운 인상의 남자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무언가 귀엽다는 눈빛?

“어쨌든 늦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매진이라 간신히 표를 예매할 수 있었는데.”

“안 봐도 되는데, 왜 표를 예매해서.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제가 이 연극을 보러 온 것은 원래부터 보고 싶었던 극이어서 그렇지, 딱히 경과 함께 오려고 한 것은 아니에요. 절대로.”

“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네, 안 합니다.”

어쩐지 능글맞은 웃음으로 남자는 답했다.

여인은 그 대답이 불만족스러운지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리고 무언가 말을 하려는 찰나.

엘리제가 반가운 목소리로 그들을 불렀다.

“크리스 오라버니! 레이디 차일드!”

“……?!”

============================ 작품 후기 ============================

다음주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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