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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엘리제-185화 (185/194)

00185  외전1 길거리 데이트  =========================================================================

1장 길거리 데이트-3

생각지도 못한 목소리에 유리엔과 크리스는 고개를 돌렸다.

“리제? 아, 아니, 마마?”

유리엔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애칭으로 부르다 뒤에 서 있는 황제를 보고 깜짝 놀라 예를 표했다. 크리스도 같이 예를 표했다.

“제국의 황제 폐하와 황후 마마를 뵙습니다.”

“일어나라.”

유리엔, 이제는 암셀 후작의 뒤를 이어 여후작이 된 그녀는 조심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린덴은 그녀의 얄미운 오라버니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곳에는 무슨 일이지?”

“연극을 관람하러 왔습니다. 폐하께서도?”

“그래.”

린덴은 유리엔의 손을 잡고 있는 크리스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둘이 무슨 사이인 거지?

그의 시선에 유리엔이 얼굴을 붉히며 급히 손을 빼내었다. 그리고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변명하듯 말했다.

“보고 싶은 연극이 있어서 우연히 함께 오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크리스 경과 같이 오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

“네, 네. 폐하.”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의구심만 키웠다.

린덴은 피식 웃었다.

‘크리스, 저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데?’

크리스는 평소처럼 옅게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빛은 뜨거웠다. 저 눈빛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면 바보였다.

‘괜히 방해하고 싶군.’

이전 크리스가 자신과 엘리제 사이를 방해했던 일이 떠올랐다.

분위기 좋게 무언가를 하려고만 하면 귀신같이 나타나 분위기를 깼었지.

‘황명으로 일이나 잔뜩 던져줄까. 연애 따위는 꿈도 못 꿀 정도로 바쁘게.’

참 황제답지 않게 린덴이 쪼잔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엘리제가 말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연극 같이 볼래요? 자리가 넓어서 4명이 충분히 같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아, 그럴까요, 마마?”

유리엔이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순간, 두 남자가 동시에 답했다.

“이놈이랑? 싫다.”

“아니, 괜찮습니다, 마마.”

두 남자의 완강한 거절에 엘리제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만났는데 다 같이 보면 좋을 텐데…….”

린덴은 팍 인상을 찌푸렸다.

좋긴 뭐가 좋단 말인가? 자신이 관심도 없는 연극을 보러 온 것은 그녀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을 즐기기 위해서인데.

저 얄미운 크리스 놈이 끼는 것은 절대로 사절이었다.

그가 그런 생각으로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크리스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먼저 끼어들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마마. 하지만 오늘은 레이디 차일드와 단둘이 극을 관람하기로 약속을 한지라 다음 기회로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 나는 상관…….”

유리엔이 뭐라 말을 하려 했지만, 크리스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 상관있습니다.”

“네?”

“전 레이디 차일드, 당신과 함께 보고 싶어 연극을 보러 온 것이니까요.”

유리엔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 모습을 보며 린덴은 입꼬리를 올렸다.

‘저놈의 연애사라면 무엇이라도 방해하고 싶지만…….’

둘만의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인지라, 그는 엘리제의 손을 잡아끌었다.

“가지.”

“아, 아, 네.”

유리엔을 향한 작은오라버니의 애정 표현에 놀란 엘리제는 얼떨떨하게 린덴을 따라갔다.

그리고 복도에는 크리스와 유리엔만 남게 되었다.

유리엔이 여전히 홍조를 띤 얼굴로 따지듯 말했다.

“가, 갑자기 폐하와 마마 앞에서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말은 삼가주세요.”

“오해 아닙니다.”

“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제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는.”

그 말에 유리엔은 크리스의 시선을 피했다. 이상하게 자꾸만 가슴이 뛰어서 저 푸른 눈동자를 마주하기가 어려웠다.

“모, 몰라요.”

“그렇습니까?”

“네, 몰라요. 아니, 알고 싶지 않아요.”

“그러면 다시 말씀드리죠.”

크리스는 말했다.

“전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항상. 언제나. 아니, 정확히 말씀드리죠.”

파르르 떨리는 그녀의 가슴 위로 크리스의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전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모르고 계십니까?”

“……!”

유리엔은 입술을 깨물었다.

처음 듣는 고백은 아니었다. 저 남자가 자신에게 다가온 지도 벌써 3년이나 지났으니까.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자신은 그를 밀어내기만 하였다. 반대 계파인 클로랜스 가의 차남인 그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무엇보다 그녀의 마음엔 린덴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일까?

늦은 밤, 홀로 있을 때 떠오르는 얼굴이 검은 머리의 린덴이 아니라, 저 백금발의 크리스로 변한 것은?

문득문득 그의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은?

저 크리스의 말 한마디에 가슴이 떨리기 시작한 것은?

“뭐, 상관없습니다. 얼마든지 차여도.”

크리스는 미소를 지었다.

그의 웃음은 당신을 사랑하니, 언제까지든 기다리겠다, 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그가 하얀 장갑을 낀 손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시간이 많이 늦었군요. 이미 시작했겠습니다. 가시죠, 레이디.”

유리엔은 말없이 그의 에스코트를 받아 공연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공연장에 도착해 들어가기 전이었다.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크리스 경.”

“네?”

“혹시 다음 주에 저희 차일드가에 방문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크리스가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유리엔은 어딘지 모르게 붉어진 얼굴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아…… 다른 건 아니고, 혹시나 시간이 괜찮으시면…… 식사나 한번 대접하고 싶어서요.”

그녀는 변명하듯 입을 열었다.

“다, 다른 의미는 아니고…… 오늘 보는 연극에 대한 답례로요.”

“…….”

크리스는 잠시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유리엔은 떠듬떠듬 말했다.

“요즘 정무가 많은 것 같은데, 시간이 안 되면 괜찮고요. 그냥 특별한 의미는 없으니…….”

크리스가 웃음을 지었다. 크림 같이 달콤한 미소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는 유리엔의 손을 자신 쪽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녀의 하얀 손등에 부드럽게 입술을 맞추며 말했다.

“설사 황명이 있어도 방문하겠습니다.”

***

린덴이 잔뜩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연극 관람은 즐겁지 않았다.

‘이게 뭐야.’

린덴은 인상을 구겼다.

연극 수준이 떨어졌던 것은 아니다. 아니, 연극 자체는 훌륭했다. 사랑과 비극을 다룬 주제도 좋았고, 배우들의 연기도 멋졌다.

다만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으니, 그것은.

‘자리 배치가 왜 이렇게 되었냐고.’

린덴은 고개를 돌렸다. 그의 옆에는 크리스가 린덴과 같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왜 하필 좌석에 문제가 생기느냐고. 극장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분명 따로 보려고 했으나, 크리스가 예약한 자리에 문제가 발생해 근처로 옮기게 된 것이다. 남는 자리가 그들 주위밖에 없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결혼 전에도 사사건건 훼방하더니. 이 소중한 시간까지.’

린덴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크리스를 바라보았다.

원래 예약했던 자리에 문제가 생긴 것은 크리스가 아닌, 극장 관리자의 잘못이지만 그냥 마음에 안 들었다.

물론 황족과 최고위 귀족만을 위한 VVIP석인지라, 좌석 사이에 공간은 널찍하니 쾌적했다.

그래도 옆에 저렇게 아는 사람들이 앉아 있으니, 신경이 쓰였다.

‘그녀와 단둘이 공연을 즐기고 싶었는데…….’

린덴은 한숨을 내쉬고 엘리제를 힐끗 바라봤다.

자신의 불만은 전혀 모르는지 그녀는 연극에 완전히 열중해 있었다.

연극을 보러 왔으니, 집중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린덴은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뭘, 저렇게 집중하고 있는 거야. 나도 좀 봐달라고.’

그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생각했다.

그렇게 뭔가 불만족스러운 연극 공연이 끝났다.

“아, 너무 좋았어요. 그렇죠, 레이디 차일드?”

“네, 마마.”

“배우들 연기도 훌륭하고, 내용도 너무 가슴 아프고…….”

두 여자는 크게 감동했는지, 붉어진 눈으로 연극에 대해 말했다.

물론 감동한 것은 그녀들뿐, 두 남자는 별로 만족한 표정은 아니었다.

특히 린덴은 밉상스런 크리스를 얄미운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크리스.”

“네, 폐하.”

“다음에 연극을 보러 올 때는 꼭 미리 좌석을 확인하도록.”

“……네, 명심하겠습니다.”

불만족스러웠기는 자신도 마찬가지였던지라 크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엘리제가 유리엔에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식사하러 안 가세요?”

3시간짜리 공연이라 어느덧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아, 네. 그렇지 않아도 시간이…….”

유리엔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려는 순간. 린덴이 말을 잘랐다.

“그러면 좋은 시간 보내도록. 크리스, 레이디 차일드.”

크리스는 황제의 의도를 바로 알아챘다.

얼른 다른 곳으로 사라지라는 뜻이렷다.

“가시죠, 레이디 차일드. 그렇지 않아도 지난번 말씀드렸던 레스토랑을 예약해 놓았습니다.”

“경?”

그리고 그는 엘리제가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유리엔의 손을 잡고 사라져 버렸다.

“…….”

엘리제는 번개같이 사라지는 그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린덴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후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불청객도 사라졌으니, 이제 제대로 시간을 보내볼까?”

연극 관람 후 다음 코스는 멋들어진 저녁 식사였다. 식사 메뉴는 그녀의 취향을 잔뜩 고려한 스테이크 코스에 달달한 디저트.

“어서 오십시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들은 시종장 란돌이 예약한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비밀 데이트를 즐기고 싶은지라, 정체는 식당에 말하지 않았다.

“와, 분위기가 좋아요.”

엘리제는 즐거운 얼굴로 말했다.

귀족과 상류 부르주아층을 대상으로 하는 레스토랑은 옅은 조명과 고풍스러운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었다.

론도의 최고 번화가, 피카딜리에서 최근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답게 식당은 만석이었다.

주로 젊은 귀족 남녀가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듯했다.

“이쪽으로 앉으시면 됩니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종업원이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좌석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식사는 예약하신 코스 요리로 내드리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주도록.”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좋은 시간 되십시오.”

종업원은 식전 와인을 따른 후, 사라졌다.

“맛있을 것 같아요. 기대돼요.”

엘리제의 말에 린덴은 살짝 웃었다.

‘맛이야 황궁이 더 맛있겠지.’

브리티아 전역에서 최고라 칭송받는 쉐프들이 황궁의 요리를 담당하고 있었다. 음식을 특히나 좋아하는 엘리제를 위해 그가 일부러 초빙한 것이다.

‘그래도 가끔 이런 것도 나쁘지 않지.’

린덴은 사랑이 담긴 눈으로 자신의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와 함께 평범한 사람들처럼 식당에서 음식을 먹는 것도 그의 즐거움이었다.

음식의 맛보다는 밖에서 그녀와 함께하는 식사와 대화가 기분이 좋았다.

“옆 테이블도 예약석인가 봐요.”

“그런가 보군.”

식당 전체가 만석이었지만, 그들 옆 테이블만 ‘예약’이란 팻말과 함께 비어 있었다.

‘설마 또 아는 사람이 오는 건 아니겠지?’

린덴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예를 들면, 그녀의 또 다른 오라버니인 렌이라든지 말이다.

============================ 작품 후기 ============================

수요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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