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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 오랑캐가 입학했다-22화 (22/100)

제 22화

이건 졸업시험이 아니라 입학시험일텐데

조금,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증오라는 감정에 대해 나는 아는 것이 없었으니까.

공포를 알고. 혐오를 알고. 분노를 알고. 경멸을 알고 있었지만, 증오는 알지 못했다.

알고 있다고 멋대로 착각했을 뿐.

심장을 움켜쥐려는 것처럼 선명한, 안구를 파헤치려는 것처럼 집요한 증오를 직접 마주하는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마차에서 내렸을 당시 보았던 시선들은 어디까지나 내 악명을 전해 들은 제삼자들의 혐오였을 뿐.

저것이야말로 당사자의 눈.

숨이 멎을 듯한 살의가 소리 없이, 그러나 격렬하게 포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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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이쪽을 보는 것 같소만, 혹시 하샬르 공과 구면인 사이오?"

"...모르는 녀석인데."

칼릭스가 떨떠름한 듯 손가락으로 아래턱을 두드리며 내게 질문해왔다.

나직하게 부정했다.

입학시험이니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게임 본편에서 저런 캐릭터를 본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어차피 탈락할 녀석이라는 건가?

아니,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사내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정제되지 않은 거친 살의와 함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력적인 압박감이, 오히려 주인공인 데미안보다 더욱 강렬한 무게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민족의 은원인가...업이 깊어 보이는 눈이오. 저 청년이 합격한다면 꽤 고생하시겠소."

"그러게요. 당장에라도 이쪽으로 달려들 것 같은 표정인데요?"

칼릭스가 진중한 태도로 고개를 깊이 끄덕였다.

날 걱정해준 것인지, 눈매가 살짝 굳어 있었다.

고생이라. 그렇겠지.

딱 봐도 저 도끼를 이쪽으로 집어던지고 싶어서 안달이 난 눈치인데.

날카로워진 신경이 사내의 적의에 반응해, 당장 검을 뽑으라는 듯 오른팔이 조금씩 꿈틀거리고 있었다.

"하, 모르는 녀석이라. 재밌네. 저쪽은 아무래도 널 잘 아는 모양인데."

프리데가 코웃음 치며 비아냥거렸다.

"뭐, 가해자는 기억 못 하겠지. 너희 아인종들에겐 일상일 테니 말이야. 아무래도 저 남자는 나랑 마음이 잘 맞을 것 같은걸."

"카`하르도 이제 제국이 인정한 유사인종이다만. 페일룬 공국은 제국의 뜻에 잘 따른다고 들었는데, 널 보니 꼭 그런 것도 아닌가 봐?"

"......"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는지, 프리데가 불만스러운 기색을 드러내며 입을 다물었다.

쟤한테는 크게 신경 쓰지 말자.

정 선을 넘으면 나중에 결투라도 신청하면 되겠지만. 아직은 싸워봐야 내 이미지만 더 악화될 테니까.

지금 신경 써야 할 곳은 데미안이 있는 쪽이었다.

주인공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날 적대하는 것이 분명한 저 데인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양 쪽 모두를 확인해두어야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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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보는 거지? 네 상대는 나일 텐데."

데미안이 데인인 청년을 향해 담담하게 읊조렸다.

자신을 앞에 두고도 다른 쪽만을 신경 쓰던 청년의 모습이 꽤 눈에 거슬렸던 듯, 대검을 쥔 오른팔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나를 노려보던 데인인 청년이 이를 악물고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래...아직은 아니지. 아직은......!"

억지로 씹어삼키는 듯한 낮게 억눌린 목소리였다.

데미안 쪽을 향한 청년이 엄숙하게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

"...실례했다. 그래, 전사라면 먼저 눈앞의 적에 전념해야 하는 법."

말을 마친 청년이 두 손으로 짚고 있던 도끼를 집어들고 전투태세를 취했다.

"내 이름은 크누트. 스벤의 아들, 크누트다. 이름을 말하라, 적이여."

"데미안."

데미안이 왼손을 검자루로 가져가 두 손으로 대검을 단단히 움켜쥔 뒤, 자세를 낮추었다.

땅을 박차는 굉음과 함께, 대검과 도끼가 맹렬하게 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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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어 터져 나오는 폭풍과도 같은 굉음이 시험장의 벽을 뒤흔들었다.

입학시험에선 보기 드문 실력자들의 격돌에, 흥분한 관중들이 팔을 뒤흔들며 열광했다.

대검이 허공을 가르며 귀청을 찢는 파공음을 울리고, 내려찍는 도끼가 대지를 뒤흔들었다.

그들의 전투에 압도된 것인지. 다른 응시자들은 자신들의 싸움조차 잊은 채,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데미안의 공격은 날뛰는 소용돌이와도 같았다.

거대한 대검의 무게에 휘둘리듯, 맹렬하게 회전하며 후려치는 묵직한 검격.

명백하게 빈틈투성이인 과장된 동작들이었다.

그럼에도, 접근조차 어려운 맹렬한 기세와 육중한 대검의 풍압이 그 틈을 메꾸며, 막무가내에 가까운 일격 일격을 아슬아슬하게 검술의 형태로 성립시키고 있었다.

반면, 크누트의 전투방식은 데미안과는 상당히 대조적이었다.

도끼를 두 손에 단단히 움켜쥔 채, 신중한 눈으로 상대의 공격을 파악하여 막을 수 있는 공격은 막아내고, 막을 수 없는 공격은 땅을 굴러서라도 피해낸다.

섣부르게 먼저 공격하는 일 없이, 어디까지나 먼저 상대의 공격을 회피한 뒤 그 빈틈을 노려 반격하는 전법.

외형에서 연상되는 거친 사나움과는 달리, 침착하기 그지없는 전투방식이었다.

"하아아아앗!"

대검을 축으로 삼아 도약한 데미안이 수직으로 회전하며 벼락같은 기세로 검을 내려친다.

막지 못할 공격임을 직감했는지, 크누트가 옆으로 굴러 피해낸다.

-쿠우우웅!

지면을 내리찍은 대검이 굉음과 함께 암석 파편을 토해냈다.

땅을 구른 크누트가 그 기세를 실어 휘두른 도끼를, 데미안이 대검의 검면으로 막아낸다.

나무와 나무의 충돌임에도, 강철과도 같은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

격돌의 충격을 이기지 못한 무기들이 비명처럼 나뭇조각을 흩뿌리며 내부의 금속 뼈대를 드러냈다.

두 남자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전투를 계속했다.

땅을 박차고 돌진하며 쏘아낸 데미안의 찌르기를, 크누트가 도낏자루를 회전시키듯 비틀며 흘려낸다.

데미안의 신형이 크게 휘청였다.

그대로 머리를 노려오는 도끼날을, 황급히 회수한 대검을 들어 간신히 비껴낸다.

-카가가각!

도끼날이 검면을 긁어내며 거친 불협화음을 토해냈다.

떨쳐내듯 거리를 벌리고 크게 도약하며 내리 꽃히는 검 끝을, 사선으로 올려치는 도끼날이 받아낸다.

-콰아아아앙!

빗나간 대검이 지면에 절반 가까이 틀어박히며, 데미안의 몸이 순간적으로 정지했다.

그 틈을 노리듯 휘둘러진 크누트의 도끼를, 데미안이 칼자루를 잡고 회전해 피해내며 크누트의 몸통을 걷어찼다.

"큭..!"

비틀대며 두세 걸음 뒤로 물러난 크누트가 태세를 가다듬고, 대검을 뽑아낸 데미안이 검을 다시 쳐들었다.

두 남자의 무기는 어느새 나무 부분이라고는 다 떨어져 나가, 강철 둔기나 다름없는 형태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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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싸우네."

나는 둘의 전투를 보며 감탄과 난감함이 뒤섞인 심정으로 중얼거렸다.

데미안은 원작 주인공이자 용사가 되실 몸이니 그렇다 치자.

그러나 저 크누트라는 데인인 역시 데미안에 버금가는. 아니, 오히려 데미안 이상으로도 보이는 강함을 선보이고 있었다.

둘 모두 나이젤보다 약하긴 했지만.

"확실히, 둘 다 훌륭한 무예로군. 이미 기사들 기준에서도 상당히 강한 축에 속할 실력들이니. 올해 신입생은 저 둘만 건져도 성공이겠소."

"둘을 건져? 저렇게 싸우면 둘 중 한 명은 탈락 아닌가?"

입학시험이 대련이라는 건 둘 중 승자를 합격시키겠다는 뜻 아니었나?

그래서 나로서는 제발 데미안이 이겨주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아, 모르시오? 하긴 특례입학생이니 그럴 수도 있겠군.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은 총 2번의 대련으로 결정된다오. 단 한 번의 대련으로는 대진운이 좋은 자가 무조건 합격할 테니. 운도 실력의 일부라지만, 그래서야 제대로 된 인재를 선발할 수 없지 않겠소?"

칼릭스가 흡족한 듯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두 남자의 전투를 응시했다.

"2승을 달성한 자는 합격. 1승 1패인 자는 시험관의 재량에 맡기고,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자들만 탈락이라오. 최소 3번의 대련이 필요하다는 의견들도 있었소만, 그래서야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 말이오."

그렇구나. 묘하게 일리가 있는 설명이었다.

결국 여기서 저 크누트라는 데인인이 패한다 해도, 다음 대진운이 어지간히 나쁘지 않은 한 합격은 따 놓은 당상이라 이거네.

한숨이 나올 것 같은데.

"그래서, 누가 이길 것 같아요?

아샤가 눈을 반짝이며 물어봐 왔다.

그러게, 누가 이길까. 역시 데미안이 주인공이니 그래도 이겨주지 않으려나?

"글쎄, 데미안 아닐까? 공격하는 기세 자체는 훨씬 강렬한데."

"......크누트."

내 말에 반박하려는 듯, 프리데가 한마디 중얼거렸다.

"흠...확실히 소승이 보기에도 크누트라는 청년이 이길 것 같소. 실력 자체는 비슷하지만, 대검을 든 소협 쪽은 동작이 하나같이 너무 컸으니. 슬슬 체력이 달릴 것이오."

칼릭스가 프리데의 말에 동의했다.

자세히 보니 확실히, 데미안의 어깨가 가늘게 흔들리고 있었다.

두통이 일었다. 원작 주인공의 첫 등장이 원작엔 등장하지도 않던 캐릭터로 인한 패배라니.

역시 아마 나 때문 아닐까.

원작에 없던 데인인이 갑자기 아카데미에 찾아왔다면, 그 이유라 할 만한 건 카`하르인의 입학 소문뿐일 테니까.

벌써부터 스토리가 뒤틀리는 느낌이라 앞으로가 걱정되었다.

"와! 저거 보세요. 일격에 승부를 내려나 본데요!"

아샤의 호들갑에 다시 시합장을 내려다보았다.

대검을 늘어트린 데미안과 도끼를 높이 쳐든 크누트가 전력을 담은 기세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둘의 기세에 몰입하듯, 시합장이 일순 고요에 빠져들었다.

다음 순간, 두 사람이 동시에 격돌했다.

"하아아아앗-!"

"뵐베르크여어어어어!"

거센 함성을 내지르며 데미안이 땅을 박차고, 이에 맞서듯 크누트가 전사신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도끼를 내려찍었다.

-콰아아아아앙!

천장을 뒤흔드는 폭음과 함께, 두 조각난 대검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랫만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전투신이었네요.

전투신. 영상매체랑 달리 일일연재인 소설에선 의외로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이기도 하죠.

주인공의 전투는 아니지만, 주요 캐릭터들의 전투이니만큼 적당한 분량으로 써 봤답니다.

일단 액션 판타지 계통을 지향하는 작품이니까요.

의성어를 넣어보기도 하고, 동작을 현재시제로 써 보기도 하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는 있는데 조금 애매한 기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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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보통 전투신을 쓸 때, 게임이나 만화, 영화 등에서 모티브를 얻는 편인데,

이번 전투신의 모티브는 아실 분은 아실 꽤 유명한 게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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