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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 오랑캐가 입학했다-39화 (39/100)

제 39화

조별과제는 적당히 묻어가는 것이 최고다

회색 숲은 제국이 관리하는 비경 중 하나이다.

카롤루스 대제의 열두 기사 중 하나가, 수많은 마을을 짓밟은 바위 거룡을 쓰러트려 마침내 땅속에 매장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

거대한 나무들 사이로 수없이 많은 기암괴석이 솟아나, 녹색과 회색의 두 가지 색을 이루며 뒤섞인 드넓고 험준한 지형이었다.

한때 아인종들의 은신처로 쓰였던 수많은 동굴들은, 아인종이 모두 처리된 지금은 그저 아카데미의 실습을 위한 장소로 변해 있었다.

나는 숲의 입구에 서서, 눈앞을 가득 채우는 웅장한 풍광을 바라보았다.

햇빛 한 줌 들지 않게 빽빽하게 자란 거대한 나무들 사이로, 거대한 바위언덕들의 모습이 보였다.

회색 바위언덕 여기저기에 동굴로 보이는 구멍이 나 있었고, 그 사이로 작은 생물들이 들락날락거렸다.

나무 사이에서 무더기로 솟구친 까마귀 무리가 까악거리며 하늘을 메우고, 숲 속에선 벌레들이 찌르륵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은신과 기습, 도주에 최적화된 지형이었다.

여기에 코볼트와 트롤을 풀었다 이거지.

운이 없거나 경계심이 부족한 놈들은 정말 죽어나갈 수도 있겠는데.

숲 속에 들어가기 전에, 조원들과 간단하게 자기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들 서로 간에 할 수 있는 일들을 알아두어야, 최소한의 연계 정도는 할 수 있을 테니.

"일단 나부터 시작하지. 하샬르 아이샨기오르다. 장검과 단검, 활을 쓰고. 딱히 열심히 할 생각은 없으니 의지하진 마라. 트롤 정도는 도와주겠지만."

대놓고 대충하겠다는 말에 분위기가 조금 차가워졌다.

번복할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내가 제대로 싸우거나 하면, 이 녀석들은 전부 무임승차나 다름없어지니까.

그래서야 오히려 이들에게 도움이 안 된다.

지금에야 편하고 좋겠지만, 나중을 생각하면 결국 본인들의 전투경험 자체를 늘려둘 필요가 있으니.

"...밀리아야. 세검이랑 작은 방패를 쓰고. 잘 부탁해."

떨떠름하게 날 쳐다보던 밀리아가 한숨을 쉬며 자기소개를 이어나갔다.

야외 실전훈련이라 그런가, 아카데미의 제복이 아닌 본인의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래봐야 가죽 코트 위에 보호구를 덧댄 정도였지만.

"한스다. 방패랑 도끼, 그리고 트롤을 대비해 횃불을 좀 챙겨왔지."

나한테 손가락과 갈비뼈가 날아갔던 녀석이었다.

치료가 잘 되었는지, 손가락은 다시 멀쩡하게 붙어있었다.

그때 박살 났던 방패는 강철을 둘러 보강했고, 도끼 역시 날 반대편에 단검 같은 찍개가 추가되었다.

누비 갑옷 위에 조잡한 흉갑을 걸치고, 등 뒤에 커다란 배낭을 매고 있었다.

횃불이라 했었나. 준비성이 철저한 타입인가 본데.

나한테 당했던 기억이 아픈 추억으로 남았는지, 도통 내 쪽을 쳐다보려 하지 않았다.

"라, 라나에요! 샤울리테 님을 섬기는 수습 전투사제랍니다. 치유술이 특기이니 회복은 맡겨주세요!"

핑크머리 소녀가 분위기를 띄우려는 듯, 과장된 태도로 가슴을 두드렸다.

주황색 사제복을 입고, 목에는 샤울리테의 성표를 걸고 있었다.

치유술이 특기인 게 아니라 치유술만 특기인 거겠지.

치유 원툴 사제 캐릭터.

공격력이 없다시피 한 대신, 치유의 축복 하나는 나중에 성녀마저 넘어서는 수준까지 성장하는 녀석이었다.

무기는 아예 단검 하나밖에 들고 오지 않았다.

어차피 둔기나 검 같은 걸 줘도 제대로 쓰지도 못할 테니 그러려니 해야겠지.

그래도 포션이 효과가 없는 내 입장 상, 파티에 치유술사가 있다는 것은 꽤 달가운 일이었다.

짧은 자기소개를 마치고, 아카데미에서 제공해준 소량의 보급품을 챙겨 숲으로 향했다

아카데미에서 준 물건들은 닷새 치 전투식량과 가죽 침낭, 소형 랜턴 하나가 전부였다.

식량을 줬다는 건...저 숲 속에 딱히 먹을 만한 건 없다는 뜻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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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안쪽은 해가 지기 직전의 초저녁처럼 어두웠다.

여기저기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났고, 수많은 벌레들이 날아다녔다.

그나마 공기는 좀 상쾌한 편이라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려나.

튼튼한 방패를 가진 한스가 선두에 섰고, 밀리아와 라나가 그 뒤쪽에 늘어섰다.

나야 뭐, 맨 뒤에서 느긋하게 걷고 있었고.

다들 긴장한 것인지, 한 손에 무기를 뽑아들고 목울대를 꿀꺽이며 두리번거렸다.

이마에도 식은땀이 살짝 맺혀 있었다.

그렇게 떨지 않아도 될 텐데.

도와주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몬스터가 찾아오는 것 정도는 경고해줄 생각이니까.

"그래서, 일단 숲에 들어오기는 했는데. 이제부터 어쩔 거냐?"

"...무작정 걷지 말고, 일단은 목표부터 정하고 움직이자."

내 물음에 대답한 밀리아가, 한스와 라나 쪽을 쳐다보았다.

잠시 고민하던 한스가 입을 열었다.

"일단은...물이랑, 잘 곳이겠지. 작은 동굴 같은 게 가장 좋긴 한데."

"동굴이면 몬스터들이 있지 않을까요?"

라나가 조금 불안한 듯이 반문했다.

"너무 크지 않은 동굴을 고른다면, 최소한 트롤은 없을 테니 나와 밀리아 양 둘만으로도 상대할만하겠지."

"언니하고 이 아저씨만 믿으렴."

밀리아가 웃으며 라나를 다독였다.

아저씨라, 말이 심하네.

너희들 아마 많아 봐야 4살 차이일 텐데. 한스가 노안이긴 하지만.

한스 표정을 좀 봐, 급격히 시무룩해졌잖아.

"일단 물이란 말이지. 그럼 아마 저쪽으로 가면 될 거야."

젖은 냄새와 옅은 시냇물 소리가 감지되던 방향을 가리켰다.

열심히 도와줄 생각은 없다고 했지만, 이 정도야 상관없겠지.

제대로 된 정찰능력도 없는 이놈들이 숲 속에서 수원지를 찾으려면 하루종일은 걸릴 테니.

그 귀찮음을 감수하느니, 그냥 정찰 역할 정도는 적당히 해 주는 게 훨씬 편하지.

한스나 밀리아도 딱히 이견은 없는지, 얌전히 내가 지시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다른 조들이 먼저 차지하고 있으면 어떡하죠...?"

라나가 조금 걱정이 되는지, 내게 조용히 질문했다.

다른 조들?

"딱히 상관없지 않나?

"그, 그게. 성적을 잘 받으려고 찾아온 사람들을 쫓아내려 할지도 모르잖아요. 목이 마르면 몬스터와 싸우기도 힘들어질 테니까요."

"날 상대로?"

라나가 입을 다물었다.

그래. 나를 보고도 감히 꺼지라고 지껄일 수 있는 놈이라면, 그건 뇌가 너무 작거나 간이 너무 부었거나. 둘 중 하나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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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가로 향하는 도중, 사람과는 전혀 다른 기척과 조우했다.

사람이라기엔 작은 발소리. 캑캑대는 숨소리. 짐승 누린내와 젖은 흙냄새.

이게 코볼트의 기척이려나. 열 마리쯤 되는 것 같은데.

서로 뭉쳐 있어서 정확히 파악하긴 어렵지만.

"잠깐 멈춰봐, 앞쪽에서 몬스터들이 오고 있으니까. 소형이고, 숫자는 대략 열 마리 정도."

"코볼트인가! 밀리아 양, 내 옆으로!"

"알았어."

내 경고를 들은 한스와 밀리아가 무기를 치켜들고 앞으로 나섰다.

역삼각형을 이루듯, 그들의 뒤쪽에 자리 잡은 라나가 단검을 꼭 움켜쥐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풀을 헤치며 작은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린아이처럼 작은 키. 구부정하고 빼빼 마른 녹황색의 몸.

길쭉한 팔이 종아리까지 닿을 듯했고, 손발은 팔다리에 비해 지나치게 큼지막했다.

뾰족한 턱과 침을 질질 흘리는 입 위쪽에, 길쭉한 코가 솟아 있었고. 축 처진 귀는 어깨까지 늘어졌다.

개구리처럼 불룩 튀어나온 눈이 눈동자를 연신 뒤룩뒤룩 굴려댔다.

손에는 어설프고 조잡한 무기들을 들고 있었다.

쪼갠 돌이나 잡철조각들을 나무 막대기에 묶은 창과 같은 것들이었다.

트롤이나 오거를 보다가 이것들을 보니까, 진짜 한심해 보이는데.

한스가 방패를 정면으로 치켜세웠고, 밀리아가 자세를 낮추며 코볼트들에게 검을 겨누었다.

라나야 뭐, 내 옆에 딱 붙어 있었고.

코볼트 여덟 마리가 캐르륵거리며 일제히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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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에 걸맞게, 역시나 별로 위험한 적은 아니었다.

몸놀림은 나름 재빨랐지만, 그것도 결국 야생동물 수준이었고.

"하압!"

한스가 휘두른 방패에 코볼트 하나가 찌그러지듯 튕겨 나가고, 연이어 내려찍는 도끼에 다른 하나의 상체가 쪼개지며 피 분수를 뿜는다.

빈틈을 노린 코볼트가 창을 내질러 한스의 누비갑옷을 길게 찢었다.

창날이 다리를 스쳤는지 살짝 인상을 찌푸린 한스가 방패로 그 코볼트를 내려찍었다.

사과를 으깨는 듯한 소리와 함께 코볼트의 두개골이 방패 두께만큼 움푹 파였다.

눈알이 팍 튀어나온 코볼트가, 얼굴에 나 있는 모든 구멍으로 피와 체액을 뿜어대며 절명했다.

"야아앗!"

코볼트의 창을 피한 밀리아가 세검을 내지르자, 꼬치처럼 꿰뚫린 코볼트가 버르적거린다.

기껏 휘두르는 조잡한 창들은 가죽 코트를 조금 찢는 정도가 전부였다.

별거 아니라고 확신한 것인지, 밀리아가 미소 지으며 경쾌하게 움직였다.

코볼트의 공격들을 피하고, 때로는 버클러로 튕겨내며 틈을 보인 코볼트들을 쿡쿡 찔러댄다.

세검이 번뜩일 때마다, 몸에 숨구멍이 늘어난 코볼트들이 구멍 사이로 새빨간 물줄기를 뿜어냈다.

순식간에, 다섯 마리의 코볼트가 하루살이 같은 목숨을 허무하게 흩뿌렸다.

남은 세 마리를 향해 한스와 밀리아가 달려들었다.

...이 녀석들, 어느새 내 말은 까맣게 잊어버린 모양인데.

열 마리라니까.

"캬아아악!"

라나의 양옆 수풀에서, 숨어있던 코볼트 두 마리가 튀어나오며 창을 내질렀다.

"히익!"

깜짝 놀란 라나가 어깨를 덜컥였다.

"이런!"

"라나!"

그제서야 기습을 눈치챈 한스와 밀리아가, 다급하게 라나 쪽을 쳐다보았다.

"얼간이들."

손을 뻗어 한 마리의 머리통을 붙잡고, 다른 한 마리를 힘껏 걷어찼다.

- 퍼엉!

코볼트가 폭산했다.

산산히 터져나간 피와 내장조각이 지저분한 불꽃놀이를 연출했다.

왼손에 붙들린 코볼트가 날뛰려 하기에, 두개골을 조금 어루만져 주었다.

머리통이 토마토처럼 작아진 코볼트가 바르르 떨다 축 늘어졌다.

적당히 수풀 쪽에 던져버렸다.

"괜찮냐?"

가볍게 손을 털어내며 라나 쪽을 쳐다보았다.

"네, 네! 완전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황급히 끄덕이는 라나의 눈가에 눈물이 한 방울 맺혀 있었다.

코볼트의 기습 따위에 울 정도로 깜짝 놀랐던 건가.

이렇게 겁이 많아서야, 언제쯤 쓸만해 질런지 모르겠네.

남은 세 마리를 처리한 밀리아가 라나를 다독였다.

한스는 코볼트들의 엄지손가락을 하나씩 잘라 모으고 있었다.

아까 베였던 것인지, 벌어진 누비옷 틈으로 보이는 종아리엔 옅은 자상이 나 피가 흐르고 있었다.

밀리아 덕분에 진정한 라나가 한스에게 치유의 축복을 걸자, 얼마 지나지 않아 상처는 흔적조차 없이 아물었다.

찢어진 갑옷까지 고쳐지지는 않았지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님 안녕하세요! 슬슬 토요일이 다가오네요...!

비축을...모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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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볼트는 개구리와 고블린과 도비가 악의적으로 뒤섞인 것처럼 생겼습니다!

고블린과 코볼트를 따로 구분해 놓았었는데, 사실 둘의 어원이 같다는 설이 있네요...!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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