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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 오랑캐가 입학했다-40화 (40/100)

제 40화

적의

삼십 분쯤 걸었을까, 작은 시냇가에 도착했다.

무성한 수풀과 젖어있는 자갈들 사이로, 팔뚝만 한 너비의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위에서 떨어진 나뭇잎들이 물살을 따라 수면 위를 흔들거렸고, 조그마한 물고기들이 돌 틈 사이로 분주히 돌아다녔다.

좋아. 여기서 식수도 보충하고, 적당히 씻기도 하면 되겠네.

먼저 와 있던 조가 하나 있긴 했는데, 내 얼굴을 보더니 그냥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자기들 할 일을 했다.

굳이 신경 쓰지 않고 무시하는 편이 나을 거라고 판단한 거겠지.

코볼트의 피와 내장으로 지저분해졌던 얼굴과 갑옷을 살짝 닦아내고 마실 물을 챙겼다.

한스가 배낭 속에서 가죽으로 만든 물주머니들을 꺼내 나눠주었다.

실력은 약해도 준비성이 좋은 걸 보니, 얘는 전사보다는 길잡이가 딱일 것 같은데.

물도 확보했겠다, 밤이 오기 전까지 근처를 살피며 적당히 잘 곳을 찾아보았다.

중간에, 코볼트 한 무리가 다시 한번 습격해왔었다.

다섯 마리 정도가 나무에서 뛰어내리며 덤벼들었다.

라나 쪽으로 뛰어내리던 놈만 적당히 쳐냈고, 나머지는 밀리아와 한스에게 맡겼다.

내 손등에 얻어맞은 코볼트가 휙 날아가 나무둥치에 틀어박혔다.

뒤쪽으로 피가 쫙 퍼져 나갔다.

개중에는 마법을 쓰는 놈도 있었지만, 불화살도 아니고 불똥 정도 수준이기에 위협적이진 않았다.

숲 속에서 화염 마법을 쓰다니, 정신 나간 놈 아닌가 싶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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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쯤 걸었을까, 운 좋게도 작은 동굴 하나를 발견해 그리로 향했다.

코볼트들이 지내던 동굴인지, 입구 주변에 작은 발자국들이 나 있었다.

랜턴을 켜고, 라나에게 들려준 뒤 동굴 안쪽을 탐사했다.

축축하고 서늘한 벽에 이끼가 자라 미끌거렸고, 안쪽에선 누린내와 배설물 냄새가 났다.

내부엔 크고 작은 코볼트 스무 마리가 있었다.

동족 포식을 하는 종인지, 모닥불을 피워놓고 작은 코볼트 하나를 굽고 있었다.

연기가 천장의 틈으로 빠져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딱 좋네. 공간도 적당히 넓고, 입구가 좁으니 트롤은 못 들어올 테고, 환기구도 있으니.

청소만 좀 하면 되겠어.

한스와 밀리아를 보내 코볼트를 치우게 했다.

나? 나는 혹시 모를 기습에서 라나를 지킨다는 막중한 책임이 있으니 안 해도 된다.

캐륵거리는 고함과 남녀의 기합소리, 고기 찢는 소리가 동굴을 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청소를 끝낸 한스와 밀리아가 돌아왔다.

아무리 그래도 스물은 좀 많았는지 숨을 헐떡이고 여기저기 약간씩 다치긴 했지만, 그 정도야 라나가 치료해주면 그만이고.

코볼트들의 시체와 오물들을 적당히 한 곳으로 몰아놓고 숙영지를 준비했다.

숙영지라 해 봐야 모닥불 옆에 침낭을 깔아두고, 입구 쪽에 방울을 매단 밧줄을 설치해 두는 정도였지만.

동굴의 냄새가 마음에 영 안 들어, 한쪽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

화한 박하향이 냄새를 좀 지워주나 싶었는데, 마력초의 효과로 감각이 민감해진 탓에 결국 별 차이는 없었다.

...아샤에게 정화장치 좀 빨리 만들어달라고 해야겠네.

모닥불에 둘러앉아 전투식량을 불에 데워 먹으며 조원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자기만은 잘 보호해 준다는 걸 체감했는지, 라나가 제법 밝아진 태도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하샬르 님은 힘이 엄청나게 강하시네요. 카하르는 다들 그런가요?"

"아마 아닐걸."

자한은 잘 모르겠는데, 나머지 전사들이야 싸우는 모습을 보면 이곳의 기사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으니.

"그렇구나...그럼, 어떻게 해서 그렇게 강해진 거예요?"

"단련이랑 실전."

그 이상은 나도 몰라.

헤르셀라는 대체 무슨 방법으로 이 사람 같지 않은 몸뚱이를 만든 걸까.

내 대답이 별로 마음에 들진 않았는지, 라나가 살짝 뾰로통해졌다.

식사를 빠르게 마치고 자기 장비를 점검하던 밀리아가, 한스 쪽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불침번은 어떻게 해야 할까? 입구에 밧줄을 걸어두긴 했지만 그래도 한 명 정도는 필요할 텐데."

"셋이서 돌아가며 각자 세 시간 정도씩 서야 할 테지. 라나 양은 제외하고. 우리랑 달리 습격당하면 대처하기 힘들 테니."

"죄송해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원래 사제는 불침번을 서지 않는 게 일반적이라고 하니까."

불침번이라. 한 명당 세 시간......

조금 길긴 한데, 별수 없지.

"그럼 오늘은 내가 초번을 서도 되겠지? 남은 두 자리는 너희가 알아서 정하고."

일단 초번을 자처했다. 오늘 밤 동안 할 일이 있었으니.

6시간이면, 아마 충분하겠지.

밀리아가 중간을 자청했고, 한스가 말번초를 맡았다.

대신 불침번을 서는 동안 내일 탐사를 위한 준비를 미리 해 두겠다던가.

세 시간을 어떻게 재려나 했더니, 한스가 배낭 안에서 모래시계를 꺼내 들었다.

...이 정도면 정말 길잡이가 천직인 것 같은데.

이윽고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자, 조원들이 침낭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난 모닥불 앞에 앉아 담배를 꺼내물고 무기들을 점검하며 시간을 보냈다.

밤이 오기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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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시간이 지났다.

밀리아의 침낭 쪽으로 걸어가, 눈가에 불을 켠 랜턴을 들이대고 어깨를 흔들었다.

한 번쯤 이 짓을 해 보고 싶었지.

"야, 일어나. 밀리아."

"으으으...눈부셔어...!"

인상을 팍 찌푸린 밀리아가 비척비척 일어섰다.

랜턴불을 꺼버리고 밀리아가 장비를 갖춰 입기를 기다렸다.

"고생했어, 하샬르. 이제 내가 맡을게. 가서 자."

"아니, 난 볼일이 좀 있어서."

밤을 새울 정도로 긴 볼일이지.

검을 챙겨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볼일? 무슨 일인데."

불온한 어감을 느낀 것인지, 표정이 굳어진 밀리아가 조용히 되물었다.

"착한 아이들은 보면 안 되는 일. 아침까진 돌아오겠지만, 혹시 내가 안 돌아오면 그때부턴 여기서 트롤만 피하며 나흘간 적당히 지내고."

"...누굴 죽이러 가기라도 하려고?"

밀리아가 떨리는 손가락으로 내 허리춤을 슬쩍 가리켰다.

두 자루의 장검이 서로 부딪히며 움직일 때 마다 절그럭거리는 금속음을 울렸다.

"글쎄...그건 만나봐야 알겠지."

일단 대화 정도는 나누어 볼 생각이었으니까.

아마 결국은 싸우게 되겠지만.

"제국인을, 그것도 같은 아카데미 학생을 죽이려 하다니. 내가 그걸 내버려둘 거라고 생각해?"

밀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동자를 떨면서도 고집스러운 표정에, 손은 검자루를 향해 있었다.

역시 날 말리려고 하는군.

"내버려두지 않으면, 어쩔 건데? 날 막기라도 하려고?......네 실력으로?"

밀리아를 노려보며 이를 드러내듯 웃었다.

그녀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읏...! 그, 그렇다고 무고한 사람을 해치려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어! 데미안이라도 분명 널 말렸을 테니까!"

무고한 사람이라. 글쎄다.

적어도 나한테는 아니라서.

"딱히 무고한 놈은 아닐걸. 그쪽이 먼저 날 죽이려고 간을 보고 있으니까."

한 걸음 나아가 밀리아의 팔을 붙잡았다. 그녀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팔을 끌어당겨 이마가 맞닿을 정도로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고, 나직하게 으르렁댔다.

"아니면 뭐, 서부인이 카`하르를 죽이려 드는 건 정당하지만, 그 전에 내가 먼저 노리는 건 잘못되었다 이거야?"

밀리아가 호흡조차 멈춘 채 부들부들 떨었다.

그래. 할 말 없겠지. 이건 정당방위고, 나는 전사로서 당연한 일을 하는 것이니까.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입가를 달싹이는 밀리아를 놓아주었다.

밀리아가 털썩 주저앉았다.

동굴을 나서며 한마디만 남겼다.

"그렇게 걱정되면, 그놈 쪽이 날 죽일 생각이 없기를 한번 빌어보라고. 그러면 대화만 하고 올 테니까."

밀리아는 아무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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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위로 뛰어올라, 나뭇가지를 타넘으며 내달렸다.

발아래로 가끔씩 코볼트들의 모습이 보였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날 쫓아오진 못할 테니까.

놈이 있는 방향은 대충 짐작하고 있다.

냄새도 기억하고 있고, 특유의 사슬갑옷 소리에 계속 귀를 기울이고 있었으니.

본능이 시키는 대로, 감각을 끌어올린 채 숲을 가로지른다.

깜짝 놀란 새들이 홰를 치며 밤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흔들리던 나뭇잎들이 때 이른 낙엽처럼 떨어져 내렸다.

이게 맞는 걸까.

적의를 향해 달려가며, 가슴속으로 다시 한번 자문해본다.

이제까지의 싸움과는 다르다.

실수로, 등 떠밀려 저질렀던 동부에서의 살육과 달리, 이번에는 내 방해가 될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죽이러 가는 것이니까.

신경 쓰지 않겠다고, 이젠 나 자신을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건만.

그렇다 해도. 가슴 한구석, 얼룩처럼 남아있는 망설임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그 얼룩은 이제는 흐려지고 뒤틀려 잊혀져가는, 내 본모습을 기억하게 해 주는 마지막 잔재나 다름없었으니까.

피로 두 손을 물들여 그 얼룩을 지워내고 나면, 과연 무엇이 남을까?

아마도, 내일의 나는 여태까지의 나와 같지 않으리라. 그런 직감이 들었다.

어찌되었건,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그의 냄새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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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올 것을 짐작한 것일까.

크누트는 숲 한복판의 공터,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은 채 묵묵히 눈을 감고 있었다.

구멍 뚫린 하늘에선 시린 달빛이 쏟아져 내렸다.

검은빛이 감도는 도끼가 허벅지 위에 놓여 있었고, 창 한 자루가 바닥에 박혀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주위엔 참살당한 코볼트들의 시체가 나뒹굴었다.

...조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기척조차 없는 걸 보면 기습을 가할 생각은 아닌 것 같고, 아마도 나처럼 떼어두고 나온 것이겠지.

나무에서 뛰어내려 크누트의 앞에 착지했다.

"날 기다린거냐? 크누트."

깨어난 적의가 밤하늘을 메웠다.

"역시, 찾아왔는가..."

눈을 뜬 크누트가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옷의 사슬이 서로 부딫히며 차르륵거리는 소음을 내뱉었다.

"전사신, 뵐베르크의 인도에 답할 때가 왔노라."

두 손에 움켜쥔 도끼가, 묵직한 살의를 토해내며 검게 번뜩였다.

"아이샨기오르. 우리의 적이여."

나의 적.

크누트가 도끼를 치켜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님 저녁 맛있게 드세요!

저는 비축을 모으러 갑니다!

=======20:45=========

_676님 소중한 후원 정말 감사드립니다!

공모전 규정상 이 이상의 답변을 들려드릴 순 없지만 정말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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