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에 오랑캐가 입학했다-79화 (79/100)

제 79화

성녀 후보의 연설, 엘피넬의 자비.

그런 날이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인데도, 올려다볼 때마다 오히려 더욱 침울해지는 날들이.

고난에 지쳤을 때, 차라리 잊고 싶었던 기억을 떠올릴 때, 눅진한 우울감이 몸을 적셔올 때, 사람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대답 없는 하늘이 그들에게 작은 위로라도 건네주기를 바라면서.

익사하는 자가 수면을 향해 고개를 쳐들듯이.

그리고 다시 가라앉는다. 끝없이.

내리쬐는 태양빛이 따스한 온기가 아니라, 불쾌한 열기처럼 다가왔던 아침.

그날 제도의 시민들은 모두 같은 감상에 빠졌으리라.

가슴 속에 화인처럼 남아버린 상처자국을 드러내듯이.

수십 일 동안 억지로 눈을 돌려왔던, 저미는 슬픔과 끝 모를 원망을 되새기며.

온갖 감정이 넘실거리는 음울한 분위기 속에서 마침내 장례 미사가 거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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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는 없었다.

전염병을 우려해 이미 다 태워버린 지 오래였으니까.

유골의 가루조차 남기지 않고.

어차피 신원을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제대로 된 형상이 남아있는 시신은 거의 없었으니.

그렇기에 이 미사는 그저, 죽은 이 모두의 영혼이 무사히 하늘로 올라가기를 기원하는 의식이었다.

엑스라샤펠 대성당 앞의 드넓은 광장에, 거대한 위령비가 세워졌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으나 그들 중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아직은 눈물을 흘릴 때가 아니었으니까.

엄숙한 침묵 속에서 예식이 거행되었다.

"―그리하여, 모든 이들이 하늘에 올라 안식을 취할 수 있기를. 모시는 신은 다를지라도, 그분들의 품에 안겨 각자의 천국에 닿기를 이곳에서 기원합니다. 카롤루스 대제와 열두 기사들이 그분들을 인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미사를 담당하는 것은 엘피넬 교의 성녀 후보, 레이시 엘메인 스타돌프였다.

평소와 달리 새하얀 성복 대신 검은 수도복을 입은 채, 머리에도 검은 베일을 쓰고 있었다.

눈을 감은 채 고개 숙여 기도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성녀와도 같았다.

그녀를 따라, 장례 미사에 참여한 모든 사제들이 각자의 신을 부르며 기도했다.

이에 응하듯 하늘에서 열한 개의 빛기둥이 내리꽂혔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사제들이 시전한 연출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통곡을 가까스로 참고 있던 유가족들에게는, 마치 신들께서 그들의 기도에 답하신 것처럼 보였으리라.

한동안 오열이 울려 퍼졌다. 수만의 사람들이 주저앉아 눈물 흘리며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비통한 합주가 광장을 울렸다.

사제들은 그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슬픔을 모두 토해내고, 다시 일어서기 위한 자리였기에.

나는 그저 멍한 기분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눈물 한 방울마다 비극이 있었다.

오열 하나하나에 담긴 이름들이 귓가를 울렸다.

아마 나는 이 광경을 평생 잊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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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빛기둥이 잦아들었다.

이에 맞추듯 사람들의 울음소리 역시 조금씩 줄어들었다.

누구도 그리하자 말을 꺼내지 않았음에도, 마치 모두가 그러기로 이미 약속한 것처럼.

그들 사이에 엉켜 든 기묘한 일체감이 그런 현상을 불러왔으리라.

그렇게 장례 미사가 계속되었다.

각 교단의 주교들이 연이어 애도를 표하고, 마지막으로 황제가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제국의 황제, 페르디난트 2세는 병색이 완연해 보이는 남성이었다.

아직 쉰 살 정도임에도, 예순이 훌쩍 넘어 보일 정도로.

희게 세어버린 수염과 숱이 적은 머리카락. 푹 야윈 뺨에 살짝 굽은 허리까지.

머리 위에 쓰고 있는 왕관이 아니었다면 이자가 황제라고는 믿기 어려웠으리라.

그는 상복 위에 검은 망토를 걸친 채, 왕홀을 들고 앞으로 걸어 나왔다.

네 명의 달인과 스무 명의 기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로열 가드들이었다.

"800년 전. 위대한 조상 카롤루스 대제와 열두 기사분들이 바로 이곳, 엑스라샤펠 대성당 앞에서 영광스러운 첫 발걸음을 시작했소."

황제가 연설을 시작했다.

지친 듯이 힘 빠진 목소리였으나,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그로부터 수십 년. 인류는 존엄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의 생존이 아닌 인류 전체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끝없이 투쟁했고...마침내 결코 사라지지 않을 영광스러운 안식처, 칼 로스 제국을 만들어냈소. 그날 이후로 오늘날까지, 이러한 참상은 일어난 적도,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이었소. 인류는 그 적이 누구더라도 항상 승리해 왔으니."

그리고 그가 고개를 숙였다.

제국에서 가장 존귀한 인간이, 모두에게.

"단 한 번의 칼자국도 허락하지 않았던 영광스러운 땅. 엑스라샤펠에 남은 흉터는 모두 짐이 부덕하였기에 일어난 일. 통탄스러움과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소. 이 땅을 수호했던 선조들에게, 가족을 잃어버린 그대들에게 고개 숙여 사죄드리오."

연설을 마친 황제가 비석에 다가가 그 아래에 성유를 부었다.

죽은 자들에게 마지막 축복이 함께하길 빌듯이.

저런 모습을 보면 젊었을 적에는 꽤 괜찮은 황제였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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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을 마친 황제가 떠난 뒤, 레이시가 다시 앞으로 나섰다.

"이것으로 장례 미사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간원하고자 하는 바를 전하겠습니다."

마무리 연설이라도 할 모양이었다.

유가족들이 숨을 죽인 채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여러분들의 비통함은 제게도 절절하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엘피넬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원수를 용서하는 이는 복되도다.' 그것이 엘피넬님의 자비이자, 사람이 품어야 하는 바른 마음입니다."

...조금 이상한 내용인데.

이 자리에서 수인들을 용서하라고 말하기라도 할 셈인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것인지 모여있던 사람들이 술렁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여러분의 혼란을 이해합니다. 수인들을 용서하라니, 차마 그리하기 어려운 말이겠지요. 허나 제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레이시가 고개를 내저었다. 눈을 반쯤 감고 엄숙하게.

"그분께선 또 이런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학살은 미워하되 수인들은 자비롭게 용서해주라는 뜻인가?

이 사람들이 그 말을 납득할 것 같지는 않은데.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그렇습니다. 미워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오직 사람뿐입니다!"

어, 어어?

지금 뭐라고?

"그렇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요? 그분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는 원수를 용서해야 합니다. 하지만, 용서할 수 있는 것, 미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사람뿐이라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백합니다. 그들을, 수인들을 사람으로 만들어야겠지요!"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 또한 그녀를 바라보았다.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이미 열한 분의 신들께서 말씀하신 바 있으니, '신께 귀의하여 죽은 이들은 하늘에 올라 당신의 품에 안기리라. 그곳의 심판대에서, 스스로의 삶에 따라 천국에 발을 들이거나 지옥으로 떨어지리라. 그러나, 신을 믿지 않는 자들, 신앙이 없는 동물들은 영원토록 죽고 살아나며 신앙에 닿을 때까지 윤회를 반복하리라!'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이 해답입니다!"

레이시의 목소리에 점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자기 확신이 그녀의 연설에 깃들어 있었다.

그 확신이 점점 대중에게 전파되며, 그들을 공감하게 만들고 있었다.

레이시의 연설이 옳을지도 모른다고.

광장이 점점 열기로 달아올랐다. 슬픔과는 다른, 선연한 감정이었다.

나는 황망한 기분으로 성녀 후보의 연설과, 그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수인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종족 가운데 가장 사악한 이들입니다! 먹지 않아도 죽이며, 대화할 수 있는 이들을 잡아먹고, 그 비명과 유혈을 즐기는 자들! 오로지 본능만으로 살아가는 끔찍한 악종들! 그들은 그야말로 짐승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니, 수인을 용서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모두 죽여, 짐승의 길에서 벗어나 마침내 사람에 이를 때까지 윤회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열기가 분노로 바뀌었다.

지난날의 참상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표정에 뚜렷한 적의가 피어올랐다.

"이것이야말로 인류의 제국이 팔백 년간 지켜온 우리의 신념이자 의지입니다. 전장에서 힘이 다한 자들이 쓰러질 때, 그들의 검을 이어받은 젊은이들이 다시 일어서, 태양처럼 몸을 불살라 투쟁하며 끝없이 지켜왔던 단 하나의 결의!"

레이시가 선언하듯 양팔을 좌우로 넓게 뻗었다.

새하얀 후광이 그녀의 등 뒤를 비추었다. 마치 천사의 날개처럼.

딱히 엘피넬의 의사는 아니었고, 레이시 스스로가 발한 성광이었지만.

"하나의 종족! 하나의 세계! 하나의 믿음! 그것이야말로 인류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미래입니다! 그러니, 모든 수인들을 이 세상에서 박멸해야 합니다! 한 마리도 남김없이, 그것들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때까지! 사람이 되어 마침내 용서받을 자격을 얻을 때까지!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엘피넬의 자비인 것입니다!"

모두가 눈물을 흘리며 그녀를 칭송했다.

나는 그저 당혹스러웠다.

마침내, 그녀의 이름에 얽힌 진실을 깨달을 수 있었기에.

레이시 엘메인 스타돌프.

다시 말해서, 엘피넬에게 선택받은...레이시 스타돌프.

레이시...스ㅌ ㅏ돌프.

그래.

레이시스트 아돌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님 안녕하세요! 오늘도 하늘이 맑네요. 다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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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시스트 아돌프...!

그렇습니다!!

물리성녀를 초월한, 차별주의 성녀...!

이것이 그녀의 정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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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믿음이라는 것은 일단 11주신교를 말하는 겁니다!

열 하나의 인류신앙을 통합해 하나의 종교로 만들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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