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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 오랑캐가 입학했다-85화 (85/100)

제 85화

매지컬 VR

"그러고 보니 연회에 참석할 준비는 끝냈어? 이제 열흘쯤 남았으니, 슬슬 신경 쓸 때가 되었을 텐데."

"...열흘?"

"제도 복구를 기념하는 연회 말이야. 열흘 후라 적혀 있던데, 네겐 아직 초대장이 가지 않았나 봐? 아니면, 다른 편지들을 읽느라 아직 못 봤으려나?"

프리데가 어깨를 으쓱였다.

열흘 후 기념 연회라니, 벌써 그런 짓을 벌일 정도로 복구작업이 진척된 건가.

최소한 한 달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가기 싫다...내가 꼭 가야 하려나?"

"글쎄, 아마 그래야겠지? 제도 내의 귀족들은 전부 초대받았을 테니까. 너는 이번 일의 주역이기도 하고 말이야."

그래. 가자.

까짓거 춤 신청은 거절하고 구석에 서 있으면 그만이지.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기사의 경우 드레스가 아닌 제복 차림으로 참석해도 되는 모양이었다.

레이디가 아닌 기사로 대우해달라는 의미라던가. 별종 취급을 받긴 하는 모양이지만.

돌아와서 확인해보니, 확실히 초대장이 와 있긴 하더라.

다른 편지들 사이에 아주 자연스럽게 파묻혀 있었지만.

이래서야 눈치채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누굴 원망하겠어, 전해 받은 편지들을 일단 한구석에 몰아놨던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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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 뒤.

오랜만에 다시 강의에 참석했다.

원래라면 굳이 나올 생각이 없었지만, 오늘 강의계획서에 적혀 있던 '대 마물전 가상 체험 실습'이 대체 무슨 내용일지 아주 궁금해서 말이지.

솔직히 VR 강의를 어떻게 참아.

학생들은 상당히 줄어 있었다. 대충 한 육칠십 명쯤 되려나.

구호소에 나가 있는 사제 지망생들을 제하더라도 꽤 많은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만둔 건가. 하긴, 그럴 수도 있는 거겠지.

눈앞에서 마주한 실전의 참상은 그들의 기대와는 꽤 달랐을 테니까.

ptsd를 견디지 못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지.

오히려 아직 남아 있는 이들이 특출나게 의지가 강한 애들인 것이다.

여전히 나를 보고 잠시 술렁이긴 했지만.

"저놈들, 날 힐끔힐끔 쳐다보는 건 여전하네. 안 무섭나? 슬슬 기력도 거의 다 회복되었는데."

"그야 뭐, 다들 네 얼굴에는 이미 익숙해졌을 테니까. 무서워서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던 때와는 다르겠지?"

데미안이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예전에야 기세랑 눈빛 때문에 얼굴이 아예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으니, 그저 무섭기만 했을 테지만...

지금은 내 얼굴을 이미 알고 있는 상황이니까.

그렇기에 내 기세나 눈빛이 다시 강해진다 해도, 기억에 남아있는 외모부터 먼저 눈에 들어와 딱히 공포감을 느끼지 않을 거라나.

"거기에 그때 이후로 하샬르 네 분위기가 조금 바뀌기도 했거든."

밀리아가 말을 더했다.

예전의 그 살기등등하던 모습과 달리, 요즘은 분위기 자체가 좀 부드러워진 것 같다고.

무슨 뜻인지는 이해가 갔다.

제어하지 못해 줄줄 흘러나오던 살업의 기세가 가라앉았다는 소리겠지.

업을 깨닫게 되면서 그 힘을 자연스럽게 갈무리하는 것이 가능해졌으니까.

한마디로 이제 아카데미 내에서는 항상 저런 시선이 따라오게 되었다는 뜻이네...

굳이 살의를 드러내지 않는 이상에는 말이야.

그래도 아예 약골 모습이던 때보다는 좀 나아졌으니 다행인가.

저 눈빛들은 그때와 달리 애욕 따위가 아닌 동경이나 경탄 쪽에 가까웠으니까.

그래. 익숙해져야겠지.

좋게 생각하자. 성욕이나 혐오 따위보다야 감탄 쪽이 낫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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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칼라인 교수가 들어와 강의를 시작했다.

"금일 강의는 미리 공지한 것처럼 마물과의 전투를 대비한 체험훈련이다. 아카데미의 방침이 변경된 이상, 귀관들 역시 일찌감치 몬스터 및 마물 토벌에 보다 익숙해져야 할 필요가 있으니."

그렇긴 해.

1학년은 아직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은 전력이니, 당장 파견을 보내기는 솔직히 좀 불안할 테니까.

그저 2학년들의 보조에 그치는 역할이라 해도...변수투성이인 실전 상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고.

"다만, 현 사정상 당장 실전 훈련을 실시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아카데미 측에선 논의 끝에 새로운 강의 방법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그것이 가상 체험 실습. 환각 계통의 정신 마법을 활용해 실전과 유사한 전투를 경험하는 훈련이지. 마법학부에서 많은 수고를 들여주었다."

칼라인 교수가 투구와 비슷하게 생긴 마도구를 들어 올렸다.

"MT-V. 정식 명칭은 마니퓰레이트 탄티부스-바이저. 마도구의 효과는...투구를 착용한 자를 강제적으로 수면 상태에 빠트린 뒤, 미리 설정한 악몽을 꿈꾸게 하는 것이다. 거기에, 꿈을 보는 주술을 더해 귀관들의 대응을 확인하며 평가할 계획이고. 혹시 몰라 통각 부분은 격감시켰다고 들었으니 두려워 말고 싸우도록."

교수가 등 뒤에 내걸린 거대한 흰 천을 가리켰다.

가운데가 텅 비어 있고, 귀퉁이마다 온갖 술식이 빼곡히 적혀 있는 천이었다.

"본관은 마물보다는 수인과의 전투 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안타깝게도 이는 기각되었으니."

안타깝긴 뭐가 안타까워.

아직 수인 ptsd를 겪는 얘들에게 벌써부터 수인과의 전투를 시키려 했다니.

아카데미생 전원 사퇴라도 노리고 있는 거냐.

"말로 설명하기보단 직접 경험해보는 쪽이 빠르겠지. 학번 순으로 훈련을 시행하고 평가 및 분석을 실시하겠다. 그리고...아이샨기오르 왕녀는 열외하도록."

뭐?

아니 어째서 나만 열외인데. 나도 한번 해 보고 싶었는데.

"열외사유를 질문드려도 되겠습니까?"

"그야 당연하지 않나. 항마력자에게 공격형 정신 마법이 통할 리가 없으니."

아 그렇네...

본질적으로는 무력화에 더해 고통을 주는 악몽까지 선사하는 마법이니까...막혀버리겠구나.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달인급 강자를 대상으로 한 적성체는 준비해오지도 않았다. 금일 준비된 적성체는 트롤과 오거, 소형 마물종 정도이니 왕녀에겐 훈련의 의미도 없겠지."

"...이해했습니다."

조금 허탈했다.

내심 꽤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세계식 VR 체험.

...이렇게 된 거 그냥 데미안과 밀리아의 전투나 구경해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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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된 훈련은 멀찍이서 보고 있자니 꽤 기묘한 광경이었다.

빛나는 투구를 쓴 학생이 강당 앞에 놓인 매트 위에 누워 신음하며 움찔거린다.

다른 학생들은 조용히 그 뒤쪽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배후에 위치한 거대한 천에 꿈속 내용이 생생하게 투사된다.

마치 영화나 게임 영상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두운 동굴 속, 누워 있는 학생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몬스터와 싸우는 모습이 재생된다.

적을 쓰러트릴 때마다 동굴 저편에서 새로운 적이 나타나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트롤, 그 뒤에는 오거. 마물은 그 이후에 나오나 본데...아직 거기까지 간 학생은 없었다.

대부분은 트롤과 싸우다가 허리가 접혔고, 나머지도 오거에게 찢겨나갔다.

"으아아악!"

오거에게 목이 뽑혀 나간 학생이 벌떡 일어났다. 작동을 멈춘 마도구가 깜빡였다.

"허억...허억...!"

투구를 벗은 학생이 숨을 몰아쉬며 목을 매만졌다.

임사체험의 공포감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이거 괜찮은 건가? 통증을 줄여놓았다고 듣긴 했지만, 심리적인 충격은 꽤 큰 것 같은데.

"고생했다. 자리로 돌아가도록."

"예..."

서서히 몸을 일으킨 학생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조금 비틀대긴 했지만, 심장박동과 호흡은 조금씩 안정되어가는 모습이었다.

음...저 정도면 괜찮겠네. 하긴 이걸 못 버틸 학생이었으면 진작 자퇴했으려나.

"트롤에 대한 대처는 우수했다. 다만 재생력이 없는 오거라고 해서, 그 생명력이 약한 것은 아니니 방심하지 말도록."

칼라인 교수가 짧은 평가를 내렸다. 정확한 평론이다.

트롤의 경우 그 재생력을 경계하여 신중하게 싸웠지만, 오거 상대로는 치명상을 입히고 방심하다가 그대로 붙들렸으니까.

"다음은 데미안인가. 앞으로 나오도록."

"예!"

슬슬 데미안의 차례인가. 이제야 좀 볼 만한 내용이 나오겠네.

투구를 쓴 데미안이 매트 위에 드러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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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드드득!

바위 파편이 튀어 오른다.

대검에 스친 벽이 갈려 나가며 맹렬한 불꽃을 튀겼다.

트롤의 포효가 동굴 전체를 쩌렁쩌렁 울렸으나 그것은 전의를 불태우는 함성도, 분노의 울부짖음도 아니었다.

오히려, 위협을 느낀 동물들이 맹렬하게 짖는 것처럼 공포감에 몰려 내지르는 비명에 가까웠다.

첫 공격에 무기를 잃고, 다음 순간 한쪽 다리마저 잘려 나갔으니.

"그아아아악!"

고함을 내지르며 휘두른 트롤의 오른팔이 허무하게 허공을 가른다.

두꺼운 회색 팔뚝이 데미안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반 바퀴 회전하며 공격을 피해낸 데미안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대검을 내리쳤다.

피 분수가 뿜어지며 트롤의 손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면에 틀어박히려던 대검이, 데미안의 회전에 이끌려 다시 호를 그린다.

끊어짐 없이 반복적으로. 프리데가 조언했던 것처럼.

잘 갈린 식칼로 채소를 썰어내듯이, 트롤의 팔이 토막토막 조각났다.

솟구친 피보라에 비명이 섞여 나온다.

그래도 고통스러운 시간이 길지는 않았으리라.

다음 순간 곧바로 목이 날아갔으니.

"훌륭하군."

칼라인 교수의 혼잣말에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트롤 하나를 해치우는데 단 네 번의 공격이라. 그나마도 일방적으로.

나쁘지 않은 성과였다.

"크오오오오......"

오거 역시 얼마 버티지 못했다.

트롤보다 신체능력이 뛰어난 만큼, 공방이 성립하기는 했다.

의미는 없었지만.

팔다리를 잃은 오거가 단말마와 함께 침몰했다.

데미안은 대검을 휘둘러 검신에 엉긴 피를 털어내었다.

그가 입은 부상이라고는, 검면으로 공격을 막아내려다 튕겨나 벽에 충돌한 것이 전부였다.

그러면 이제 드디어, 마물인가.

소형종이라고 했으니 별 거 없긴 하겠지만.

이윽고, 꿈 속의 배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님 안녕하세요. 오늘도 좋은 하루가 되셨다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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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동대님 후원 정말 감사드립니다!!

lera님 후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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