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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 오랑캐가 입학했다-97화 (97/100)

제 97화

열두 살 차이면 완전 도둑놈 아닌가?

털어도 털어도 희뿌연 흔적이 얼룩처럼 남아있었기에, 결국 드레스룸에서 기사단의 제복을 한 벌 건네받아 그걸로 갈아입었다.

공식적으로 제국 기사단에 속한 몸은 아니지만, 일단 기사 직위를 받은 만큼 제복 한 벌쯤 내주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

갑작스러운 요청이었을 텐데도, 시녀들이 입혀준 검푸른 제복은 그럭저럭 몸에 잘 들어맞았다.

딱 한 곳만 빼고.

"가슴팍이 좀 답답한데..."

"좋으시겠네?"

프리데가 슬쩍 비꼬았다.

좋긴 뭐가 좋아. 답답하다니까.

"기사단 제복은 맞춤복이 아니기에 그렇습니다. 그대로 기왕 제복을 받았으니, 나중에 딱 맞게 수선하면 될 것 같군요."

"이걸 걸치고 다닐 일이 오늘 말고 또 있을지 모르겠는데."

"글쎄, 북부에 오면 입게 되지 않을까? 거기서도 평소처럼 입고 다니면 얼어 죽을걸?

그야 북부에 짧은 천 옷을 입고 가는 건 광인이나 할 짓이긴 하지.

벗어버린 아카데미 제복은 황실의 하녀들이 말끔하게 세탁한 뒤 아카데미로 보내준다고 하더라.

어차피 두 벌이기도 하고, 자주 입고 다니는 옷도 아니었으니 상관없겠지.

요즘은 묘하게 입는 일이 잦아졌지만.

연회장으로 돌아와 레오폴트 황자를 찾아보았다.

황자는 이층의 소파에 앉은 채 비엔 공작의 영애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열여섯 살 소녀에게 작업을 거는 이십 대 후반 아저씨라니.

솔직히 보기 좀 그렇긴 한데...

"그러면 난 잠시 레오폴트 전하를 만나고 올 테니까, 나이젤 네가 프리데의 일일 친구가 되어주렴."

"아니, 일일 친구는 또 뭐야!"

"그리하겠습니다."

발끈하는 프리데를 나이젤에게 맡겨버리고 이층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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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격조하셨는지요. 레오폴트 황자 전하."

"음? 이거, 하샬르 왕녀 아니오. 오랜만이오. 수여식 이후 처음인가."

"레오폴트 전하? 이 기사분은 누구신가요?"

비엔 공작의 영애가 고개를 갸웃하며 내 쪽을 바라보았다.

짙은 갈색의 곱슬머리가 부드럽게 흔들거린다.

강아지처럼 서글서글한 눈매 탓에 실제보다도 어려 보이는 소녀였다.

목에는 심플한 은목걸이를 걸고 있었고 크림색 드레스 역시 공작의 딸치고는 수수한 디자인이었다.

클레어야 그렇다 쳐도, 이 여자도 보통 담력은 아니네.

베일 덕분에 눈빛이 보이지 않는다지만 소름 끼치는 기세는 여전히 약하게나마 흘러나오고 있을 텐데.

"아아, 그러고 보니 아델라이드 양은 만나본 적이 없겠군. 카`하르의 왕녀이자 메디안 남작, 하샬르 아이샨기오르 왕녀라오."

"아! 그 수인 포...! 아니, 수인 습격을 막아낸 공으로 무공 훈장을 받았던 왕녀님이군요!"

아델라이드라 불린 소녀가 감탄하듯 두 손을 마주 잡았다.

방금 수인 포식자라 하려다가 은근슬쩍 말을 바꾸지 않았나?

"하샬르 아이샨기오르랍니다. 원하신다면 하샬르라 부르시지요."

"저는 아델라이드 드 비엔이에요. 반가워요, 하샬르 왕녀님."

손을 가슴에 얹고 그녀에게 목례했다. 아델라이드가 해맑게 웃었다.

음...내 안에서 레오폴트의 소아성애자 의혹이 점점 더 짙어지는 느낌인데. 설마 아니겠지.

"그래서,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물어보아도 되겠소?"

"...이 자리에서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겠네요. 잠시 독대를 요청해도 괜찮을까요?"

아델라이드를 슬쩍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어린 소녀 앞에서 꺼낼 만한 내용은 아니었으니까.

"흠...긴 회화라면 좀 곤란하다오. 아델라이드 양을 홀로 기다리게 할 수는 없으니."

"저는 괜찮아요. 왕녀님께서 홀로 찾아오신 걸 보면 중요한 용무가 있으신것 같은데, 전하의 일에 방해가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상냥한 목소리였다. 재주도 좋네 레오폴트.

이 아이, 벌써부터 네게 완전히 넘어간 것 같은데. 어린 소녀를 유혹하는 데 천재구나.

"그리 긴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이치고 정말 짧은 대화로 끝나는 경우는 보지 못했소만...어쩔 수 없군. 아델라이드 양, 정말 미안하오. 최대한 빨리 돌아오겠소. 그리고 헥터 경, 아델라이드 양을 잠시 부탁하겠네."

가벼운 한숨을 내쉰 레오폴트가 아델라이드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아델라이드는 미소 지으며 괜찮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명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짧게 대답한 로얄 가드가 아델라이드의 옆에 시립했다.

"그럼, 따라와 주시오. 뒤쪽 발코니라면 문제없겠지."

레오폴트를 뒤따라 이층의 발코니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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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코니에 나와보니, 적막했던 아까와 달리 이런저런 소음이 나고 있었다.

귀족들의 비밀스러운 대화 소리.

밀어를 속삭이는 연인들의...아니, 들어보니 저거 불륜이네...?

아무튼 그런 느끼하고 달달한 사랑고백들.

거기에 정원 너머에서 들려오는 신음 소리까지.

일반인들이라면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작은 소리였지만...내 청각이 좋은 탓에 적나라하게 들렸다.

발정 난 것들. 이런 장소에서 거사를 치를 정도면 부부는 아니겠고. 음탕하기는.

"그래서, 전하고자 하는 용건이 대체 무엇이오?"

"세 가지 정도인데,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시니 요점만 간단히 말하죠."

첫째는 내가 이자벨라의 초대를 거절했고, 그로 인해 본격적으로 에른스트파와 적대관계가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내게는 달가운 이야기로군. 나를 지지하는 귀족들이 왕녀의 행적을 미심쩍어했었으니 말이오. 허나 그리된 이상 이자벨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앞으로 더욱 주의하시는 편이 좋겠소."

"이미 시그밀러스 영애를 보내와 저를 유혹하려 하더군요."

"흐음? 남자가 안 통한다면 여자를 보낸다라, 분명 그 여자가 할 법한 발상이긴 하지만...왕녀를 유혹한다니, 그게 사람에게 가능한 일이긴 하오?"

레오폴트가 어이없어했다.

그야 뭐 당연히 실패하긴 했지만...

사람에게 가능한 일이냐니, 이걸 감탄이라고 봐야 하나.

두 번째 화제는 이자벨라가 저지르는 악행에 대한 내용이었다.

여자들을 세뇌해 에른스트파의 결속에 활용한다는, 음란하고 꺼림칙한 이야기.

이것 때문에 아델라이드가 있는 자리에선 섣불리 말을 꺼내기 곤란했었다.

"용서할 수 없는 소행이로군. 어쩐지...!"

레오폴트는 심각하게 어두워진 표정이었다.

그의 얼굴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깊은 분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헌데, 그걸 누구에게 들었소?"

"레오노르 황녀에게 직접이요. 증거까지는 없지만...아무래도 사실인 것 같더군요."

레오폴트가 아래턱을 쓰다듬었다. 수염도 없으면서.

"흐으음...분한 일이지만, 증거가 없다면 추궁하기 어려울 것이오. 그래도, 아주 큰 가치가 있는 정보로군. 아델라이드 양에게도 가급적 그쪽 인사들과 접촉을 지양하라 조언해야겠소."

하긴, 아델라이드라면 이자벨라가 노리기 딱 좋은 대상이었다.

그녀만 타락시켜 끌어들인다면 레오폴트 쪽이 단번에 불리해질 테니까.

"아델라이드 양을 꽤 아끼시는군요?"

"선제후, 비엔 공작의 영애이지 않소. 내겐 과분한 레이디이기도 하고."

정치적 판단이라는 건지, 진심으로 아끼는 건지 모르겠네.

나로서는 전자 쪽이 차라리 낫지만...그 소녀는 후자 쪽이길 바라겠지 아마?

애초에 이런 세계에선 열여섯이면 혼인하고도 남을 나이이기도 하고.

내가 왈가왈부할 부분은 아니겠지.

"음...그렇겠지요. 그건 그렇다 치고, 그 일에 관해서 부탁드릴 일이 있는데요."

"부탁? 말해보시오."

"레오노르 황녀를 저쪽에서 빼내 오고 싶은데요. 그게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모든 일이 끝난 뒤에 휘말리지 않고 무사하길 바라고요."

그 여자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보다는, 당당하게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훨씬 잘 어울리니까.

생각보다 곤란한 요청이었는지 레오폴트의 안색이 침중해졌다.

"어려운 부탁이로군...에른스트를 무너트리고 이자벨라의 악행을 드러내 숙청한다면, 그 핏줄인 레오노르 역시 연좌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오. 다들 싹을 잘라내고 싶어 할 테니 말이오."

"그러니 전하께 부탁드리는 것이랍니다. 어렵겠습니까?"

일이 잘 풀리면 네가 황제가 되는 거잖아.

황제의 권위와 입지가 많이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는 가능하지 않아?

"레오노르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은 이해하오만, 그 아이 역시 동의한 일이오? 제 어미와 에른스트를 배신하고 내 편을 들겠다고 직접 말했소?"

"그렇지는...않습니다."

아직 누가 이길지 확정되지도 않은 상황인데, 제 혈육을 배신하면서까지 선뜻 이쪽으로 넘어올 리 없기는 해.

"그렇다면 불가하오. 그러니, 전할 수 있다면 레오노르에게 전해주시오. 내가 이겼을 때 살아남고 싶다면, 아직 형세가 결정되지 않은 지금 내 쪽으로 투신하라고 말이오. 그 아이가 그리한다면 고려해보겠소."

부드럽고 온화한 외모와는 달리, 생각 이상으로 냉정한 대답이었다.

"...네."

"좋은 대답을 들려줄 수 없어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오."

하긴 무리한 부탁이긴 했으니까.

아직 이 이상의 결과를 얻어내긴 힘들겠지.

"그러면, 마지막으로 할 이야기는 무엇이오?"

목소리를 확 낮추었다. 가능한 한 심각해 보이도록 말이지.

그가 명심해야 할 이야기였으니.

"이자벨라를 조심하세요. 지금 이상으로 훨씬 더. 그녀의 권력만이 아니라, 그녀 자체를요."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소만...?"

마녀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하게 말해줄 수는 없었다.

내가 아는 부분도 일부분에 불과했으니까.

그녀가 무슨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는 알지만, 그 힘을 어떻게 얻게 된 것인지는 모른다.

거기에, 그런 정보를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면 대답할 말도 없었고.

레오노르조차 알지 못하는 부분일 테니.

...에른스트는 알고 있으려나?

설령 알고 있다 하여도 내 쪽에서 그걸 확인할 방도는 없지만.

그러니 결국, 두리뭉실하게 이야기할 수밖에.

"아마도, 뭔지 모를 힘을 감추고 있을 겁니다. 제 직감에 불과하지만...그녀를 보았을 때, 기묘한 위협을 느꼈으니까요."

"왕녀의 직감이라면 믿어볼 만하겠지. 새겨두도록 하겠소."

다행히도, 레오폴트는 내 말을 신뢰해주는 것 같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님 안녕하세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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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I]

레오폴트는 소아성애자가...아닐 것이다. 아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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