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26화 (26/334)

EP.26 대련 신청

익숙한 풍경에 이상한 게 생겼다.

“난 신경 안 써도 돼~.”

햇볕이 내리쬐고 있는 오후.

오늘은 마지막 수업이 공강이었기에, 평소보다 일찍 정원 구석에 가서 마법을 단련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나무들 사이로 도로시 하트노바가 튀어나왔다.

그녀는 뒤편에 있는 나무에 기대고 앉아 내가 단련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누가 지켜보고 있는 상황 자체가 영 껄끄러워서, 도저히 단련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신경 어떻게 안 쓰는데?’

내가 불편해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 걸까. 대뜸 도로시는 어디서 꺼낸 건지도 모를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어 봤자 거기 있다는 사실만으로 불편한 건 매한가지인데.

“···선배, 계속 여기 계실 거예요?”

“응, 심심하니까.”

“여긴 왜 오신 건데요?”

“응, 심심하니까.”

“그럼 오늘 보자고 한 게···.”

“응, 심심하니까.”

책을 읽으면서 대충대충 대답하는 도로시. 계속 저 대답만 할까 궁금해서 ‘오늘 저녁 뭐 드실 거예요?’라고 물으니 ‘닭고기’라는 정상적인 대답이 들려왔다.

어쨌든··· 후배이자 팬으로서 뭐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마인드 컨트롤. 도로시를 무시하자. 막상 시야에 들어와도 그냥 평범한 풍경 정도로만 여기는 거다. 그럼 어떻게든 되겠지.

“후우.”

깊은 숨을 내쉬며 양손에 [서리불꽃]을 일으키고, 다시 단련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40분 뒤. 하늘이 노을빛으로 물든 시각.

“으으윽···.”

코피가 흘러나왔다. 온몸이 격하게 뻐근해지기 시작하고 마법 출력에 이상도 생겼다. 거기다 조금만 마법을 휘둘러도 몸 안에서 강한 거부 반응이 일어난다.

이제는 일상이다.

이 구간에서 조금만 더 분발하면 강해질 수 있다.

마치 근력 운동하다가 더 이상 못할 것 같을 때 1회라도 더 하면 근육이 늘어나는 것과 같은 이치.

오늘은 소모 마력량이 높은 마법들을 위주로 쓰다 보니 한계가 평소보다 일찍 온 듯했다.

나는 코피를 닦은 뒤, 마법을 시전하기 위한 준비 자세를 취했다.

“괜찮아?”

“……!”

그때, 어느새 내 옆으로 온 도로시가 말을 걸어왔다. 깜짝 놀라서 그쪽을 돌아보자, 그녀가 가까이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너무 무리하지 마. 그러다 마나 회로 망가진다?”

도로시는 은은한 미소를 흘리면서, 자기 손수건으로 내 코밑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친절하고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왠지 어안이 벙벙해져서, 가만히 그녀를 지켜보기만 했다.

“평소에도 이렇게 무리해?”

“아, 네. 아무래도 그렇죠?”

“으음.”

도로시는 내 코피를 다 닦고 나서 손수건을 도로 가져갔다. 분홍색 손수건에 빨간 핏자국이 묻어났다.

그때, 갑자기 가슴팍 쪽에 녹색 마나가 흐르기 시작했다. 도로시가 뻗은 손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마나였다.

‘오, 뭐야?’

갑자기 힘이 샘솟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몸의 뻐근함이 가셨다!

“버프. 내일 컨디션에 무리 없을 정도로만 썼어~.”

야, 이거 최곤데? 공부하다가 카페인 보충하고 정신이 번쩍 들게 된 기분이다.

좀 더 강도 높은 단련을 할 수 있겠···!

“무리하면 안 된다, 회장?”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건가.

“감사합니다, 선배.”

“히히, 단련 재개!”

찰싹─!

도로시는 실실 웃으면서 내 등판을 세게 때리더니 다시 원래 있던 나무로 향했다.

손맛이 좀 맵긴 한데···, 아무튼 덕분에 큰 도움이 됐다.

단련할 때마다 도로시가 근처에 있으면 버프 신세 좀 져도 되려나.

일단 눈치껏 말은 안 꺼내겠지만, 기회 되면 부탁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 * *

익숙한 풍경에 이상한 게 생겼다.

루체 엘타니아는 정원 구석에서 단련 중이던 청은발의 남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돌담에 앉아 있었다. 정원 구석에서 거리가 꽤 떨어져 있으며, 나무들이 시야를 방해하는 장소였다. 그래도 청은발 남자를 지켜보는 데 무리는 없었다.

이 주변은 인적이 드문 편이라 한동안 오가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좋은 관람석 중 한 곳인 셈이었다.

청은발 남자는 저번에 봤을 때보다 마법 숙련도가 올라간 듯 보였다. 눈에 띄는 성장 속도였다.

그를 볼 때마다 묘한 자극이 된다. 자신도 점점 열심히 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게 되고, 그래서인지 그가 노력하는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히게 된다.

최근에 번개 마법에 열을 올리게 된 계기도 전부 그였다.

“···어?”

그런데 어느 틈엔가, 반대편에서 한 여성이 나타났다.

마녀 모자를 쓰고 있는 연보랏빛 머리칼의 여성. 뛰어난 시력으로 자세히 살펴보니, 그녀는 교복 리본에 파란색 브로치를 달고 있었다. 2학년 선배였다.

그녀는 청은발 남자와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더니, 그의 뒤편에 있는 나무에 기대 앉았다.

그러고는 특등석에서 그가 단련하는 모습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뭐야, 저 사람?’

여태 저런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청은발 남자의 친구? 아니면 연인?

잘 모르겠지만, 여자 쪽은 남자 쪽에 관심이 있어 보였다.

그 관심이 우정에서 비롯된 것인지, 호감에서 비롯된 것인지, 완전히 다른 감정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코피가 난다고 손수건으로 닦아주는 모습은 아무래도 범상치 않았다.

“흐음.”

남자에게 연인이 생기는 건 별로 상관없는 사안이었다. 단지 구경하는 데 실례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만 들 뿐.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 문득 어린 시절의 기억이 루체의 눈앞에 아른거렸다.

─ ‘그레텔, 이거 봐라! 얍!’

─ ‘멋있어, 오빠…!’

가난했던 집.

나무 막대기를 검처럼 휘두르던 어린 친오빠의 모습이.

나무에 기대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감탄하던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이.

이미 과거와 함께 버려버린 자신의 이전 이름이.

다시금 기억 속을 헤집으며 가슴속을 옥죄어 왔다.

“…….”

루체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1, 2, 3.

고작 3초.

그녀가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마음속 깊은 곳에 집어 넣고, 감정을 갈무리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 * *

“다음 수행평가 내용을 발표하겠다.”

이튿날 오전, D 클래스 강의실.

페르난도 교수가 단상 앞에 서서 학생들에게 공지사항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모두 놀란 눈치였다. 처음부터 수행평가 내용을 알려주겠다고 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 여태 당일 공개였으니 말이다.

때가 된 것이다. 매 학기마다 반드시 치러져야 하는 그것.

“‘대련’. 1대 1 결투다. 너희들의 전투 센스, 실전 능력을 평가할 예정이다.”

대련. 그 말을 듣자마자 ‘드디어 이때가 왔구나’라면서 기뻐하는 학생들도 있었고, 질색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나는 굳이 따지자면 기쁜 쪽이었다. 이번 대련 평가는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판단할 수 있는 좋은 지표가 될 테니까.

‘자신 있어.’

지금의 난 공격 마법, 방어 마법을 두루 사용할 수 있는 상태. 심지어 5성급 마법 [빙결 폭발]까지 사용할 수 있다.

자신감이 용솟음친다. 당장에 반 배정 평가 때와 지금을 비교해 봐라. 지금의 난 얼마나 번듯한가!

“방금 나눠준 티켓은 대련 신청권이다. 각자 2장씩 나눠갖는다.”

페르난도 교수 옆에 작은 티켓 두 장이 떠다녔다. 염동 마법으로 띄운 것이다.

내 주머니에도 아까 배분 받은 대련 신청권 2장이 들어 있었다.

“한 장을 써서 원하는 상대에게 대련을 신청할 수 있다. 상대가 수락하면 그대로 수행평가 당일 날 대련 진행. 상대가 거절하면 소모한 대련 신청권은 당사자에게 반납되고 끝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러나 대련 신청권을 2장 써서 대련을 신청했을 경우, 상대는 무조건 수락해 줘야만 한다.”

대련을 통해 심사관들에게 특히나 좋은 점수를 받으려면 다채로운 전투 방식을 보여주는 게 최고다. 그러니 대련 수행평가는 대련 횟수가 많을수록 좋은 성적을 받기 유리해지는 구조였다.

대련 신청권을 2장 다 써가면서까지 대련을 신청한다는 건, 진짜로 특정한 상대와 맞붙고 싶어서 작정한 경우뿐. 아카데미는 그런 학생의 의사를 존중해주고자 대련 강제 룰을 만든 것이다.

참고로 이안 페어리테일은 신청권 2장 다 써서 루체 엘타니아에게 대련을 신청한다. 가장 강한 사람과 싸워 보고 싶다는 게 그 이유다. 좋게 말하자면 패기나 열정, 나쁘게 말하자면 만용이나 허세다.

그래도 주인공이니까 멋있게 연출되긴 한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를 플레이할 땐 ‘크으, 주인공이면 이 정도 패기는 있어야지’하고 뽕 차오르게 만드는 장면이기도 했다.

“한 사람당 할 수 있는 대련은 최대 4번까지. 좋은 상대가 있으면 최대한 빨리 대련을 신청하는 게 좋을 거다.”

대련 신청이 몰리면 안 되니까 생긴 규정이다.

“대련 신청은 마법학부 1학년생들끼리만 하면 된다. 클래스는 무관이다. 단, 상위권 학생이 하위권 학생과의 대련에서 승리했을 시, 마력량과 성적 차이만큼 점수를 덜 받게 될 거다. 반대로 하위권 학생이 상위권 학생과의 대련에서 승리한다면, 대량의 점수를 획득하게 되겠지.”

이러한 룰 때문에 대부분 자기 클래스 학생에게 대련을 거는 경우가 태반이다. 자신보다 상위 클래스인 학생에게 싸움을 걸기엔 두렵고, 하위 클래스인 학생에게 싸움을 걸기엔 점수가 안 되니까.

그래서 이안이 루체에게 대련을 신청한 경우가 이례적이었던 것이다.

“대련 상대가 결정되면 나한테 보고해라. 조만간 이 시간대는 공강으로 두겠다. 오르핀관 내에서만 움직이도록. 뭘 하든 좋으나, 대련 상대를 모으는 데 치중하길 바란다. 이상.”

페르난도 교수가 공지사항 전달을 마치는 순간.

쾅─!

문이 거칠게 열리고, 페르난도 교수와 D 클래스 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문 쪽으로 돌아갔다.

이어지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

“하! 여기가 D 클래스인가! 이것이 밑바닥의 공기로군!”

갑작스레 문을 열고 등장한 사람은 허영심 많은 금발 귀족, 트리스탄 험프레이였다.

오랜만에 보네. 반 배정 평가 이후로 뭘 하나 싶었는데.

“트리스탄 험프레이?”

“완전 상위권이잖아?”

“그런 사람이 여긴 왜 와···?”

트리스탄은 B 클래스 상위권 학생이다. 그래선지 학생들이 죄다 흥미와 동시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듯 보였다.

“여기 있었군.”

트리스탄은 학생들을 둘러보더니, 내 쪽으로 시선이 꽂혔다.

성큼성큼 내 쪽으로 다가오는 녀석.

설마···?

“고귀한 이 몸께서, 하찮은 E급 평민인 네놈한테 대련을 신청하마.”

쾅─.

내가 있는 책상을 세게 짚고서 거만한 미소를 내보이는 녀석.

“감사히 여기도록.”

이 자식, 벼르고 있었구나···?

“뭐야? E급한테 대련 신청한 거야?”

“메리트가 전혀 없는데···? 얼마나 싫으면 저러냐?”

“언제 트리스탄 님께 밉보인 거야, 쟤?”

“당연히 거절하겠지? E급이 저분을 어떻게 이겨?”

페르난도 교수의 나름 흥미가 담긴 눈빛, 학생들의 관심과 수군거림 속에서.

꿋꿋하게 나를 쳐다보며 씨익 웃고 있는 트리스탄.

벌써부터 나를 실컷 두들겨 팰 생각에 무척이나 기쁜 모양이었다.

반 배정 평가 때 오죽 서러웠으면 저럴까···.

그래도 나름 커리큘럼을 통해서 합법적으로 괴롭히려는 모습은 그나마 기특하다고 해야 할지···.

“…….”

···잠깐만.

잠깐만, 잠깐만.

요새 마족이나 마물 환상 잡으면서 조금 우쭐해졌던 것 같은데, 이거 큰일 난 거 아니냐?

트리스탄이 여태 싸워 본 마족들보다 훨씬 약하긴 해도, 나보다는 훨씬 강하잖아.

[ 트리스탄 험프레이 ]

Lv : 76

종족 : 인간

속성 : 바람

위험도 : X

심리 : [ 당신을 때려눕힐 생각에 기뻐하고 있습니다. ]

레벨은 언제 이렇게 올랐대냐. 저번엔 71이었던 것 같은데.

물론 나한테 당한 뒤로 가만히 있진 않았겠지. 놈의 성질이라면 이 악물고 노력했을 게 뻔하다. 필시 방어 마법도 익혀뒀을 거다.

‘···큰일 났네.’

이거 아무래도 개털릴 각···.

“거절은 받지 않겠다! 끄하하하─!”

트리스탄은 깔깔 웃어대며 대련 신청권 2장을 꺼내 들더니 내게로 냅다 던져 버렸다.

얇은 종잇장이 뺨을 스치고 내 무릎 위로 떨어진다.

“…….”

···꼴 받게 하네?

개털릴 각이고 나발이고, 이 자식은 기필코 때려 눕혀줘야겠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