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144화 (144/334)

EP.144 합동 전술 평가 (1)

합동 전술 평가 도중.

“으아아아악!!”

차아악──!

날카로운 물의 검기가 마물 환상을 갈랐다.

황녀 스노우화이트가 갑자기 툭 튀어나온 마물 환상의 징그러운 외형을 보고 비명을 지를 때였다.

마물 환상이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능글맞은 인상의 청회색 머리 남학생, 아벨 카르네다스는 곤란한 표정으로 화이트를 쳐다보았다.

“화이트 황녀님, 괜찮으세요?”

“황녀님, 마물 환상은 능글이가 해치웠으니 안심하시길.”

“황녀님 앞에서 능글이가 뭐냐, 능글이가….”

아벨과 팀원 중 한 명, 연두색 머리의 여학생 로앤나 앞에서.

화이트는 흠흠, 하고 헛기침하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한심한 꼴을 보이고 말았네요….”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눈가에 눈물을 머금은 화이트.

아벨은 검에 스민 물 마력을 없앤 뒤, 검을 검집에 집어넣으며 로앤나에게 어색한 미소를 보였다.

로앤나는 친구의 미소에도 그저 무뚝뚝한 반응만 보일 뿐이었다. 아벨에게 있어서 그녀는 매사에 그리 담담한 친구였다.

“황녀님, 여기.”

“앗.”

어둑한 통로에서 오로지 로앤나가 든 램프만이 주위에 은은한 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그녀는 램프로 지면을 비추었다.

“한 명이 여기서 기습당했나 봐요. 먼저 발견했어야 했는데. 주의가 부족했어. 죄송합니다, 황녀님.”

지면에는 생채기처럼 생긴 기다란 붉은빛 마력의 흔적이 있었다.

아까 전에 설명을 들었길, ‘탈락의 상흔’이었다.

한 학생이 모종의 이유로 탈락했을 경우.

그를 탈락시킨 요소가 튀어나온 장소에 이르기 전 위치에, 시험 감독관이 흔적을 새겨두는 것이었다.

“아뇨아뇨! 미안한 건 저죠! 어서 가요.”

화이트는 팀원들과 함께 어둑한 통로를 가로질렀다.

약 1시간 전.

[지금부터 합동 전술 평가를 시작하죠.]

하나의 거대한 외딴섬은 온전히 메르헨 아카데미의 부지이며.

밑쪽으로는 길쭉한 지하 시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문어발처럼 뻗어 있는 미로 같은 시설, ‘옥토버스관’.

그곳은 과거에 만들어진 비상용 대피시설이자, 훈련용으로도 설계된 장소였다.

교장 엘레나 우드라인의 마력이 상시 들어차 있어서 누구라도 옥토버스관에 진입하면 위치가 감지될 터였으나.

오늘은 시험 날이라 그녀의 마력은 거둬진 상태였다.

옥토버스관, 13번 출입구.

벽면에 가득 새겨진 발광 램프들이 좁은 복도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습기를 머금은 공기와 잔잔하게 감도는 긴장감 속.

4명의 학생들은 벌새처럼 빠르게 날갯짓하는 원형 마도구, 전달꾼이 전달하는 내용을 전해 들었다.

마법학부 1학년 2명. 황녀 스노우화이트 폰 카이로스 에펠토, 셰라 헥토리카.

기사학부 1학년 2명. 아벨 카르네다스, 로앤나 셸턴.

제비뽑기와 성적을 고려하여 학사 측에서 결성해준 팀이었다.

“으….”

스노우화이트는 입술을 우물거리며 떨리는 심장을 애써 잠재우려 했다.

이 아카데미에 입학한 후로 아이작 밑에서 죽어라 단련해온 성과를 발휘할 수 있는 자리다. 노력한 만큼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화이트는 심호흡하며 감정을 가다듬은 뒤, 다짐을 되새겼다. 이번 시험에서 반드시 최하위권만은 면하리라고.

[시험 방식은 간단합니다. 목적지까지 도달하면 끝이에요.]

전달꾼에게서 중년 여성 교수의 친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법학부 2학년 D 클래스 교수였다.

[이곳은 저희의 지하 기지, 옥토버스관. 길이 미로처럼 복잡하게 설계되어 있지만, 제공해드린 나침반이 목적지 방향을 안내할 거랍니다.

목적지까지 빠르게 도달할수록 획득 점수가 늘어날 테니 모두 서둘러 주세요~.]

청회색 머리 남학생, 아벨 카르네다스는 손에 쥐어진 나침반을 내려다보았다.

나침반은 한 방향만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중도탈락할 경우엔 목적지까지 얼마나 가까이, 얼마나 빨리 이동했는지로 성적을 매길 거예요.]

어쨌든지 간에 빨리 이동할수록 좋다는 얘기이리라.

그나저나.

“중도탈락?”

화이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 중도탈락이 웬 말이냐.

이곳엔 온갖 마물 환상과 미궁 함정을 본 따 만든 장치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지식과 지혜로 극복해 내지 못한다면 탈락하고 말겠죠?

또한, 여러분을 제외한 모든 학생은 적이랍니다.

만약 여러분이 다른 학생을 기절시키거나 무력화시켜서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었다면 해당 학생은 탈락이며.

여러분은 그 학생의 성적과 클래스에 비례하여 가산점을 부여 받을 거예요.

물론 목적지까지 얼마나 가까이 갔는지가 배점이 가장 크고 중요하다는 점, 유념해주세요!]

역시. 이름부터 ‘합동 전술 평가’이니 전투가 빠질 리 없었다.

[그렇다고 고의로 진로를 차단하는 행위는 부정행위예요. 즉시 탈락 처리가 될 수 있으니 이 점도 유의해주세요!]

당연한 얘기였다.

어느 상위권 학생이 마법의 벽 같은 걸 끌어올려 다른 학생들의 진로를 차단했다면, 그들로선 손 쓸 도리가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길을 가다 보면 붉은 마력이 흘러나오는 부분이 있을 텐데, 그게 무엇이냐. 바로 ‘탈락의 상흔’입니다.

만약 앞서갔던 학생이 모종의 이유로 탈락했을 경우, 그 탈락 요소와 마주치기 전 위치에 탈락의 상흔이 새겨집니다. 그걸 주의 깊게 살피면 생존 확률이 급격히 올라가겠지요?]

즉, 목적지까지 빠르게 이동할수록 얻는 점수가 늘어나지만 탈락할 위험이 커진다.

목적지까지 느리게 이동할수록 ‘탈락의 상흔’이란 걸 더욱 많이 볼 수 있어서 생존율은 높아지지만, 그만큼 높은 점수를 기대하긴 힘들다.

[그리고 팀원이 탈락해도 계속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팀원을 불필요하게 희생시킬 시 협동 점수가 크게 깎이거나 아예 0점 처리가 될 수도 있으니 유의하시길.

다른 학생을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어도, 팀의 잔여 인원과는 상관없이 똑같은 점수가 부여되므로 허튼 생각은 금물입니다.]

각 조마다 실력이 떨어져 도태되는 학생이 분명 나올 것이었다. 그런 학생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한 장치인 듯했다.

[그리고, 이건 가장 집중해서 들어 주세요. 주요 구역마다 시험 감독관분들이 대기하고 있을 거예요.

만약 시험과 무관한 위험한 사고가 벌어진다면 1차적으로 도망치는 데 주력하시고, 이후 팔찌로 저희에게 상황을 보고해주세요. 시험 감독관이 여러분을 지켜줄 거랍니다.]

위험한 일이란 대체로 마족 출현을 상정한 것일 터.

문득 화이트의 머릿속에 메르헨 아카데미 입학시험 공고가 떠올랐다. ‘에펠토 황실과 주신 만할라의 가호 아래, 그 어떤 위험이 닥쳐온다 한들 반드시 학생들을 보호하고 교육의 기회를 보장하겠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지.

화이트는 왼쪽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시험용 마도구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학생들에게 메르헨 아카데미의 교육 커리큘럼을 보장해주기 위해서, 동시에 안전을 책임져 주기 위해서, 아카데미에서 여러 방안을 마련해 뒀다는 게 내심 실감이 났다.

이제 시작일까, 하고 화이트가 마른침을 삼킬 때였다.

[마지막으로, 이 시험에는 ‘포식자’가 있습니다.]

“포식자?”

이름부터 불길했다.

[포식자는 여러분의 한 학년 선배 중 A 클래스이거나, A 클래스에 버금가는 실력자로 구성되어 있답니다.

만약 포식자를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든다면? 여러분은 대량의 가산점을 획득할 수 있을 거예요!

그들을 피해 도망쳐 다니는 피식자가 될지, 그들을 잡아먹는 사냥꾼이 될지는 여러분 선택입니다.]

포식자를 마련해 둔 의미는 명확했다.

이 시험은 미궁 탐색을 본 따 만든 느낌.

포식자 같은 위험 요소에 어떻게 대처할지도 중요한 성적 산정 기준임이 틀림없었다.

[그럼.]

전달꾼은 구석으로 날아가 길을 터주었다.

어두운 통로가 화이트와 셰라, 아벨, 로앤나 앞에 펼쳐졌다.

[행운을 빕니다.]

전달꾼의 목소리가 뚝 꺼졌다.

그렇게 합동 전술 평가가 시작되자마자.

“자, 그럼….”

“난 개별 행동 할래~.”

“…예?”

아벨 카르네다스가 말을 꺼내자, 새빨간 머리칼을 가진 소녀가 가볍게 팔을 들고 웃는 얼굴로 탈퇴 선언을 했다. 셰라 헥토리카였다.

새빨간색 단발. 일부를 뒤로 땋은 머리. 그녀는 붉은 귀걸이를 귀에 걸고 금색 머리핀을 머리에 꽂은 채였다. 모두 하트 모양이었다.

체구는 작았으며, 붉은 눈동자엔 금빛이 노을 낀 하늘처럼 감돌고 있었다. 동급생이 맞나, 싶을 만큼 무척 어리고 귀여워 보이는 소녀였다.

“너희들, 재미없어 보이거든.”

버르장머리 없는 말버릇까지 완벽한 어린애 같았다.

화이트와 아벨, 로앤나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실력도 내가 가장 좋은 것 같고. 이거 분명 내가 너네를 이끌어야 할 게 뻔하잖아~. 그런 건 재미없어!”

“훌륭한 농담이네요. 웃기지 않는다는 점만 빼면요.”

아벨은 멋쩍은 미소를 지은 채 광대뼈 부위를 살살 긁적였다.

황녀 스노우화이트를 앞에 두고도 이런 뻔뻔한 태도를 보이는 싸이코가 나타날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

“저, 저기! 아까 자기소개 할 때 셰라 헥토리카라고 했죠? 다시 생각해 보세요!”

화이트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끼어들었다.

“성적 제대로 받아야죠…? 호, 혼자는 위험하다구요…? 포식자도 돌아다니는 마당에, 다 같이 움직이는 편이 가장 안전하고 합리적….”

“포식자 잡을 건뎅?”

헤헤, 하고 웃는 셰라.

화이트와 아벨, 로앤나는 할 말을 잃었다.

“너희는 짐밖에 안 돼~. 알아서 잘해!”

그 말을 끝으로, 셰라는 들뜬 발걸음으로 먼저 통로로 들어섰다.

너무나도 어이가 없었기에, 남은 세 사람은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잠시간 고민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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