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5 합동 전술 평가 (2)
현재에 이르러. 옥토버스관 어느 통로.
화이트와 아벨, 로앤나는 팔찌를 쳐다보았다. 그저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뿐인데도 팔찌에 새겨진 점수가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었다.
팀원 중 한 명, 셰라 헥토리카가 학생들을 처치하고 있기에 그런 것일 터.
“실력이 있긴 있나 보네요, 셰라인가 뭔가, 그 마법학부 분이요.”
“강해요.”
화이트는 셰라 헥토리카를 알았다.
“최대 마력량은 S급인데, 시험에서 일부러 전력을 발휘하지 않았다고 했나? 그래서 기억에 남아요. B 클래스 상위권일 거예요, 그분.”
“마력량 S급이 B 클래스…?”
무뚝뚝하던 로앤나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놀란 눈치였다.
“이번 마법학부 신입 기수가 괴물들 천지라고 듣긴 했는데…, 마력량 S급이 B 클래스라는 건 상상 이상이네요.”
아벨은 허허, 하고 헛웃음소리를 냈다. 자기들 또래이면서 마력량 S급인 존재는 이미 규격을 아득히 벗어난 천재 중의 천재였으므로.
특히 아벨은 마법 기사 지망자로서, 높은 마력량에 동경심을 품는 경향이 있었다.
“점수를 잘 올릴 수 있어서 좋긴 한데, 그런 분이 떨어져 있으니까 안정성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네요. 뭐, 저나 로앤나도 나름 B 클래스에서 한 가닥 하긴 하는데. 마력량 S급은 차원이 다르니까요.”
“아아, 그렇죠….”
팀은 무작위로 정해졌으나, 성적과 실력도 감안된 것이었다.
B 클래스의 상위권 학생들이 모두 한 팀이 될 정도라는 건, 그만큼 화이트가 최약체 중에서도 최약체라는 사실을 의미했다.
“…….”
화이트의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이렇게나 나약하다니…’하고 회의감이 드는 까닭이었다.
“그나저나 아무도 대규모 마법을 쓰지 않네요. 마법학부라면 그런 꼼수를 쓸 거라고 생각했는데.”
“대규모 마법이요?”
“그런 거 있잖아요. 홍수를 일으켜서 다 휩쓴다든가….”
“아아.”하고 화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왜 아무도 그러지 않는 걸까.
섣부르게 마법을 사용하면 마나 감지력이 뛰어난 사람에게 들켜서 습격을 당할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마법은 자제해야 하지만.
반대로 대규모 마법을 퍼부으면 해결되는 문제 아니겠는가.
“멍청한 능글이.”
“왜 갑자기 매도인가요, 친구 님…?”
“아까 봤을 텐데. 체리버스 있었잖아.”
“그 예쁘게 생긴 벌레?”
“…….”
“그렇게 쳐다보지 말아 줄래? 자괴감 들거든.”
로앤나는 눈살을 찌푸리곤 혐오스럽다는 듯이 아벨을 노려보았다. 이 무식한 놈을 어쩌면 좋을까, 하고 고심하는 듯했다.
미궁에는 온갖 기상천외한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 ‘체리버스’도 이 시험에 구현되어 있었다.
마법으로 체리버스를 건드리면, 그것은 마력의 흐름을 쫓아 빠르게 날아가고.
마법을 사용한 사람에게 기생하면서 살점과 마력을 단숨에 파먹는다.
놈이 이미 몸 안에 들어왔다면 그 신체 부위를 절단하는 것 말고는 살 방도가 없었다.
그 위험한 체리버스도 여기선 가짜에 불과하므로 실제로 살점이나 마력이 파먹히진 않겠으나, 탈락 처리가 될 것은 분명했다.
즉, 대규모 마법은 탈락하기 좋은 자살기 중 하나인 것이었다.
“저도 몰랐어요….”
“화이트 황녀님은 괜찮습니다. 단지 이 녀석은 마수생태학을 그렇게 공부했으면서 미궁에 있는 위험요소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게 한심해서요.”
“친구야, 어쩔 수 없잖니? 체리버스인지 뭔지는 마수가 아니라 마물이잖아. 난 마물은 관심 없어.”
“그래, 마수성애….”
“쉿.”
그때, 별안간 아벨은 발을 멈추고 팔을 옆으로 뻗어 화이트와 로앤나를 멈춰 세웠다. 화이트는 깜짝 놀랐다.
“3시 방향, 기척이….”
아벨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로앤나가 빠른 속도로 활을 쥐고 마력이 담긴 화살을 쏘았다.
그녀의 연두색 머리칼이 바람 마력에 휘날렸다.
푸슉─!
[끼에에에엑!!]
연녹빛 바람 마력을 머금은 화살이 어둠 속에 숨어 있던 마물 환상에 명중했다.
마력의 빛이 마물 환상을 비추었다. 손톱이 길고 날카로우나, 몸은 삐쩍 마른 곰 형태의 마물.
놈은 시끄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단숨에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굉장해요, 로앤나 씨!”
“든든하다, 친구야!”
“그렇다고 반하지 마.”
환호하는 화이트와 아벨 앞에서, 도도하게 머리칼을 휙 털곤 활을 갈무리하는 로앤나.
그녀는 활을 다루는 데에는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기사학부 소녀였다. 아벨처럼 마법 기사 지망생이기도 했다.
“로앤나만 믿고 간다!”
“로앤나 씨만 믿고 갈게요!”
“…화이트 황녀님은 지켜드리겠지만. 능글이 넌 내 고기 방패가 돼야지?”
“고기 방패라니, 하핫. 농담도 잘해!”
아벨은 호들갑스럽게 웃으며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로앤나라면 진심으로 자신을 고기 방패로 쓸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그들은 어둠을 뚫고 나아갔다.
셰라 헥토리카가 없으니 생존을 위해 더욱 신중을 기해야만 했다.
그들은 차근차근 어둠 속에 숨은 마물 환상, 함정, 탈락의 상흔 등을 유심히 살피면서 전투를 반복해 나갔고.
화이트는 점점 시험에 적응해 가며 바람 마법으로 그들을 돕는 요령을 터득했다.
1시간 30분 뒤.
세 사람은 어느 통로 앞에 도달했다.
고풍스러운 램프가 벽면에 다닥다닥 붙은 채 연푸른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어째 이제까지와는 다른, 싸늘하고도 살벌한 분위기였다.
“에헤헤, 이대로면 무사히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 있겠어요~. …음?”
화이트가 웃으면서 뒤따르던 중, 아벨과 로앤나는 흠칫 놀라곤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앞에는 외길만이 놓여 있었고.
나침반을 보건대 이 길을 통해야만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뭐야…?”
마치 지면에 생채기라도 난 것처럼 붉은빛 마력이 길게 흩뿌려져 있었다. ‘탈락의 상흔’이었다.
그런데 어째 그 수가… 몹시 많았다.
탈락의 상흔은 난잡하게 느껴질 정도로 이리저리 새겨져 있었다. 잠깐 보고선 셀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 앞에 뭔가가 있어. 목적지로 가려면 이 길뿐인데도….”
나침반을 들여다보며, 아벨은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침반에는 주위의 길이 모두 표시되어 있었다.
이제까지의 길은 모두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아까 전, 길을 빙빙 돌아서 상대 학생들의 뒤를 치는 전술이 가능했던 것도 길이 하나가 아니었기에 가능했던 것.
하지만… 이 구간은 달랐다. 여기선 오로지 눈앞에 놓인 어두운 통로를 지나야만 목적지로 향할 수 있었다.
이 어두운 통로 너머, 아주 위험한 무언가가 있다는 게 분명한데도.
“포, 포식자일까요…?”
화이트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아벨과 로앤나는 화이트를 쳐다보았다. 포식자라. 당연히 떠오를 수밖에 없는 가능성이었다.
포식자는 A 클래스이거나 A 클래스에 버금가는 실력자. 이만큼 탈락의 상흔이 많이 남아 있는 것도 납득이 간다.
화이트는 루체 엘타니아나 무녀 미야를 떠올렸다. 모조리 괴물이었지. A 클래스는 그런 무시무시한 실력자뿐이었거늘….
“그렇다는 건…. 이 너머에 있는 포식자는 굳이 돌아다니지 않고, 한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단 건가?”
포식자라면 당연히 돌아다니고 있을 줄 알았는데.
설마 외길에서 문지기 역할을 자처한 자가 있을 줄은 몰랐다.
“…후우.”
비록 겁이 나는 상황이었지만 화이트는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아벨과 로앤나, 이 둘과 힘을 합친다면 어떻게든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화이트는 아이작과 했던 하이파이브를 떠올렸다.
이번 시험, 잘해 보자고.
그녀는 자신을 위해 힘써 준 아이작을 생각해서라도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괘괘, 괜찮아요…!”
다만, 화이트의 목소리는 아직 진정되지 못했다.
“포식자를 쓰러뜨릴 필요는 없으니까. 어떻게든 혼란시키고… 다음 루트로 빠르게 도망치는 게 좋은 방법일 거예요.”
“저도 동감!”
아벨은 양손을 얼굴 양옆으로 활짝 펼치곤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화이트의 말에 호응했다.
“길은 여기뿐이니까 물러설 순 없죠~. 로앤나, 너는 어쩌고 싶어?”
“능글이, 앞장서서 내 고기 방패가 돼줘.”
“하핫, 넌 정말 빌어먹을 친구야!”
아벨은 로앤나의 무뚝뚝한 어조에 유쾌하게 반응했다.
그들의 목적은 상위권. 아무리 이 앞에 포식자가 있다고 해도, 여기서 멈추고 싶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거기다 시간을 지체할 수록 획득 점수가 줄어드는 데다,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 여유롭게 치밀한 전략을 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였다.
세 사람은 간결하게 서로의 특기를 생각해 간단한 전술을 짜냈고.
아벨은 허리춤에 찬 검집을 쥐었다.
로앤나는 활을 꺼내 들어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화이트는 머릿속에서 온갖 술식을 계산하며 마법을 시전할 준비를 마쳤다.
“…가자.”
그들은 각오를 다지고서 어두운 통로로 들어섰다.
로앤나는 램프에 빛 가리개를 씌워 어둠에 스며들었다.
아벨과 로앤나는 기습이 좋지 못한 선택임을 느꼈다. 시야를 제대로 확보할 수 없었고, 위치도 좋지 않았다.
이 좁은 통로에서, 무작정 원거리 공격을 퍼붓고 반격을 당한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터였다.
아벨은 지면에 축축한 무언가가 맞닿는 걸 느꼈다. 신발창까지 잠길 만큼 얕은 해수가 지면에 깔려 있었다.
발걸음 소리를 조심해야 한다.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곤, 천천히,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발을 옮겨갔다.
이윽고, 빛이 드리우고.
그들이 통로를 지나자 시야가 확 트였다.
습하고도 차가운 공기가 피부를 에워쌌다.
지면에 해수가 얕게 고인 장소. 둥둥 떠다니고 있는 얼음 결정 모양 살얼음.
벽면 높은 곳, 여러 개의 호화로운 램프 속 발광석이 은은한 연푸른빛을 흩뿌리고 있는 깔끔한 시설.
그 한가운데, 얼음 마법으로 만들어 낸 주먹구구식 의자에 앉은 한 청은발의 남학생이 화이트와 아벨, 로앤나의 눈에 들어왔다.
청은발 남학생의 어깨에는 마도무기, 잔야의 지팡이가 걸쳐진 채였다. 그것에 달린 마석은 램프의 연푸른빛을 받으며 새벽녘 일출처럼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벨과 로앤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직감적으로 저 사내가 ‘포식자’임을 알아차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 와중에 화이트의 동공이 떨렸다. 그녀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왔구나.”
청은발의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넥타이에 달린 파란색 브로치. 2학년을 상징하는 색.
그는 동그란 안경을 쓴 데다 인상까지 순해서, 겉보기엔 그저 선량해 보이는 선배에 불과했다.
하지만 화이트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았다.
겉보기와는 달리 지나치게 단호하며.
무척이나 계획적이고, 치밀한 인간. 그래서 존경해 마지 않는 멘토.
“아이작 선배…?”
“아쉽게도.”
청은발의 사내는 얼음 의자에서 일어나곤, 잔야의 지팡이로 지면을 짚었다.
그리고 안경을 벗었다.
“여긴 못 지나간다.”
이곳은 엘트라 해(海)로 이어지는 유일한 길.
그는 이번 합동 전술 평가에서 아무도 이쪽 길로 지나가게 할 수 없었다.
그것이 심해괴수에게서 흑해 여제의 반지를 얻기 위한 조건 중 하나이자, 동시에 사람들을 지켜내기 위한 방안이기도 했으니까.
포식자.
마법학부 2학년 B 클래스 1등, 아이작.
그의 싸늘한 냉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