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155화 (155/334)

〈 155화 〉 반지 (1)

* * *

메르헨 아카데미는 단 하루도 휴교하지 않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대형 사고가 숱하게 발생했던 탓에 잦은 빈도로 휴교했던 작년과는 달랐다. 올해에는 국가멸망급 위기 상황까지 상정하여 탄탄하고도 구체적인 체계를 갖추었으니.

작년에도 메르헨 아카데미에 재학했던 학생들은 그 변화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엘트라 해안은 일시적으로 출입 금지 구역이 되었다.

학사 인력과 황실 기사단이 마탑 인력까지 동원하여 심해괴수 마족이 출현했던 원인을 조사하기 시작한 까닭이었다.

학생들 사이에선 마족이 출현하는 원인, 이름 없는 영웅의 정체를 두고 온갖 이야기가 오갔다.

특히.

아카데미 측에서 얼음 속성 학생들을 따로 모아 두고, 어떻게든 손을 써서 영웅의 정체를 밝혀내야 한다는 주장.

이름 없는 영웅이 정체를 숨기는 데엔 깊은 뜻이 있을 테니, 대마법사이자 우리를 지켜 주고 있는 그를 굳이 파헤쳐서 심기를 건드려선 안 된다는 주장 등.

학생들은 이름 없는 영웅을 두고 많은 생각을 주고받았다.

그 속에서 이름 없는 영웅을 찬양하는 부류, 그가 아군인지 적인지 여전히 확신할 수 없어 의심의 뿌리를 깊이 내린 부류 등. 또 여러 갈래의 학생으로 나뉘기까지 하며.

이름 없는 영웅은 메르헨 아카데미의 가장 중점적인 화제로 자리매김했다.

……

메르헨 아카데미는 대륙 최고의 명문 아카데미라는 위상을 자랑하는 만큼 교장의 지위도 드높은 편이다.

뒷머리를 동그랗게 말아 올린 로즈레드색 머리의 미인, 교장 엘레나 우드라인.

나이는 70대이나,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불로(不老)]의 힘으로 그녀는 20대 전성기의 미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메르헨 아카데미라는 공간에 한정해서 그녀보다도 우위에 있는 권력자는 없었다. 그야말로 미(美)와 능력, 모든 걸 겸비한 우월한 존재였다.

…겉보기에만.

“바, 반갑습니다! 마그리오 경! 아하하! 아, 아주 좋은 날씨입니다!”

막상 그녀는, 한낱 돈과 권력에 쩔쩔 매는 사람이었다.

학사 행정의 중심지, 바르토스관. 응접실.

출입문이 열리고, 어깨에 걸친 하얀 코트를 나부끼며 한 여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메르헨 아카데미의 교장, 엘레나 우드라인이었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 있는 황실 기사단 4번대, 펜리르 기사단 부단장인 마그리오에게 활기차게 인사를 건넸다.

쾌활한 목소리는 습관이었다. 몹시 긴장한 탓에 목소리가 기계처럼 삐걱댔다. ‘교장님…’하고 엘레나의 여비서가 나직하게 투덜댄다.

중년 남성 부단장, 마그리오는 편하게 팔을 들어 엘레나를 맞이했다. 그 뒤에는 허리춤에 검을 찬 기사 셋이 나란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엘레나는 마그리오 맞은편에 앉았다.

“반갑소, 엘레나 경.”

“차는 뭐가 좋으세요?!”

“허브티로.”

“네에! 여기! 허브티 두 잔!”

자기 여비서를 향해 호들갑스럽게 주문하는 교장 엘레나. 자신이 긴장했다는 사실을 표정과 몸짓으로 여실히 표현하는 중이었다.

‘제발 체통 좀 지켜 주십시오, 교장님….’

여비서는 끄응, 하고 침음을 흘리면서 이마를 짚은 채 허브티를 타러 갔다. 교장의 꼬락서니를 보고 있으니 절로 현기증이 났다.

“그, 마그리오 경? 절 부르신 이유가…?”

“엘트라 해 사건도 조사 중이고, 피차 시간도 없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소.”

“어, 얼마든지요!”

엘레나는 애써 여유롭게 웃고자 노력했으나,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막아 내진 못했다.

공기가 무겁다. 그러나 이제는 익숙해진 분위기이기도 했다.

학사 재정을 위해 떠나가는 투자자들을 붙잡고 사정하길 수십 번. 메르헨 아카데미가 지금의 방위 체계를 갖추게 될 때까지 얼마나 무릎이 닳도록 일해 왔는가.

힘들 때 웃는 게 일류라던가. 한껏 웃어내며 이 빌어먹을 현실을 감당하고 있던 엘레나였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뭐어얼까요오, 마그리오 경께서 직접 제게 묻고 싶으시다는 게…?”

“…왜 이름 없는 영웅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소?”

고개를 흠칫 떠는 엘레나.

“알고 있겠지만, 우린 조약에 따라 학사 행정에 관여할 수 없소. 거기다 아카데미의 기밀 자료도 3등급까지밖에 공유 받을 수 없는 처지지. 그래서 영웅이 누군지 조사하는 데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소.”

카를로스 폰 카이로스 에펠토 황제가 황실 기사단을 파견 보내며 내린 명은 크게 두 가지였다.

메르헨 아카데미를 지원하라.

마족의 잦은 출몰 원인을 조사하라.

아카데미하고는 좋은 협력 관계를 유지해야 하며, 그들에게 부담을 주어선 안 된다는 주의사항이 있었다.

아카데미는 학생들이 학문을 배우는 장소. 어딜 가나 배움의 터전은 신성한 법이었으니.

처음에 아카데미와 맺었던 조약에는, 황실 기사단에 공유되는 기밀 자료는 최대 3등급까지로 제한한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그 이상의 자료 공유는 비밀 정보의 누출 우려가 컸고, 아카데미 측에서도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

하물며 학사 행정에 관여할 수 있는 자들 중 ‘내통자’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으니.

아카데미로선 자료 공유로 인한 정보 유출 및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보수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영웅은 메르헨 아카데미 재학생으로 추정되고 있지. 학사 측에선 학생들을 판별하는 데 능통할 거 아니오?”

파견 온 황실 기사단은 아카데미의 힘겨운 사정을 가까이서 지켜봐 오고, 이해하고 있었다.

다만, 이토록 시간을 쏟아부었음에도 여전히 이름 없는 영웅의 실마리 하나 잡아내지 못하는 아카데미의 행적 만큼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 그건 그렇지요…. 그으, 마그리오 경? 이름 없는 영웅의 정체를 궁금해 하시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다, 당연히, 여러분의 목적과도 긴밀한 연관성이 있겠지요.”

때마침 여비서가 허브티를 타와 엘레나와 마그리오에게 건넸다.

잔을 쥔 채 덜덜 떨리고 있는 엘레나의 손. 그녀는 혀가 데이는 감각조차 잊고 뜨거운 허브티를 후루룹 들이켰다.

데인 혀를 놀리며 말을 이어가는 엘레나.

“하지만 어찌 됐든 그를 조사하는 건 어디까지나 저희의 역할. 관여 받을 사항은 아닐 텐….”

“엘레나 경.”

“네, 네…?”

“자네의 혜안과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소. 힘을 잃고 은퇴한 뒤, 지금은 미래에 황국을 이끌 인재들을 위해 불철주야 힘쓰고 있지.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사람이라오.”

“아아, 네, 감사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네 같은 자가 가만히 시간을 보냈을 리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소. 그러니 실례를 무릅쓰고 묻겠다만.”

마그리오는 눈을 좁히고 날이 선 목소리로 물었다.

“일부러 그를 찾지 않고 있는 건 아닌지?”

“아하하하핫!! 농담도 참! 절대로 아닙니다!”

엘레나는 당황한 얼굴로 호쾌한 헛웃음을 터뜨렸다.

눈을 지그시 깜박이는 마그리오.

“사정을 모르고 하는 소린 아니오. 이름 없는 영웅은 이 세계조차 멸망시킬 수 있는 강력한 대마법사. 우리 따위가 감히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지. 그런 자가 아카데미를 지키고 있으니, 일부러 추적을 느슨하게 하고 있어도 이해할 순 있소.”

“우와하! 재, 재밌으셔라!"

“뭐, 조약상 우리로선 학생들을 건드릴 수 없으니 말이오.”

마그리오는 턱을 쓰다듬었다. 짧고 까끌까끌한 턱수염이 유독 돋보였다.

“엘레나 경. 우리가 여기에 온 목적은, 왜 마족이 여기서만 자주 출몰하는지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오. 황명이지.”

“그렇…죠.”

“황국 최고의 아카데미로서 학생들의 안전과 교육의 기회를 더욱이 보장해야 하지 않겠소? 우리가 실패하면 이 아카데미는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없소. 그건 학생에게 있어서도, 교육자에게 있어서도, 황국에 있어서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오. 이름 없는 영웅. 그는 이 사태를 해결할 실마리일 수도, 이 사태의 원인일 수도, 이 사태의 근본을 가리켜 줄 열쇠일 수도 있잖은가?”

검에 비할 수 없는 가벼운 찻잔을 미동조차 없이 들고 있다. 마그리오는 고요한 호수처럼 물결조차 일렁이지 않는 허브티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이제까지 자연재해로 여겨지는 마족이 메르헨 아카데미에 수차례 출현했다.

이는 겉보기엔 아카데미 방위 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치명적인 이야기로 비쳐지나, 실제로 황실 기사단에서 조사해 본 결과 그런 문제는 아니었다.

메르헨 아카데미는 헤겔 마탑의 마탑주, 아리아 릴리아스의 마법과 더불어 교장 엘레나의 마법으로 높은 상공까지 감지망이 설치되어 있다.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투명한 막 같은 형태다.

덕분에 외부 침입이 있으면 아카데미에선 곧바로 파악할 수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지금껏 출현했던 마족들 중 대부분은 교장 엘레나의 감지망에 걸려들지 않았었다.

교장 엘레나의 감지망은 그녀의 통제에서 벗어나 독단적으로 구축된 고차원적인 마법.

감지망을 유지하려면 가끔 마력만 충전해주면 되므로, 엘레나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도 감지망이 해제될 일은 없었다.

“이 아카데미엔 비밀이 숨어 있소. 생각해 보지. 바다에서 출현했던 거대 마족은 넘어가더라도, 작년의 마족 출현 사건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방학 때나 외부 물자를 반입할 때만 연륙교 쪽 경계망을 조금 풀어둘 뿐이었는데, 그때 마족이 몰래 침입했던 건가? 제 발로 멀쩡히 기어들어왔을 리는 없겠고, 수하물은 꼼꼼히 검사했을 텐데?”

마그리오는 허브티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아니면 ‘내통자’라는 존재가 경비들을 매수했나? 그럴 리가. 수하물 검사 체계는 이중, 삼중으로 겹쳐 있고, 경비가 또 몇 명이나 되는지는 우리 쪽에서 모두 파악하고 있소. 원거리 시야를 제공하는 마도구나, 전달꾼을 통해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경비들까지 있을 정도잖소. 그들 모두를 매수한다는 건 금전적인 문제는 둘째치고, 물리적으로 어렵지.”

마그리오가 한 마디씩 이어갈 때마다 교장 엘레나의 얼굴에 식은땀이 한 방울씩 흘러내렸다.

“그렇다면 마법 주머니에 숨어서 내통자의 도움을 받아 잠입하기? 그 또한 어렵지. 그런 수납 마법이 걸려 있는 것엔 생명체를 집어넣을 수 없으니 말이오. 마나 역장이 수납 마법을 거스르니까.

남은 건 마족들이 진작 내부에 있었다는 섬뜩한 가능성이다만…. 이제까지 그런 사실이 어떻게 들키지 않았는지도 의문이오. 설령 우리 같은 자들이 찾아낼 수 없을 정도로 이 섬에 마족들이 꽁꽁 숨겨져 있다고 하더라도, 왜 하필 ‘지금’ 난리를 피우고 있는지도 고민해볼 문제지.”

마그리오는 허브티를 한 모금도 들이키지 않은 채, 잔을 테이블에 올려 두었다.

“그 모든 해답을… 이름 없는 영웅이 가르쳐 줄 수 있을지도 모르오.”

이름 없는 영웅.

그는 마족이 출현할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가까운 곳에서 나타난다.

미래를 알고 있다는 듯이. 최소한 마족이 어디에 출현할지 정도는 알고 있다는 듯이.

마치… 모든 진실을 알고 있다는 듯이.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름 없는 영웅은 메르헨 아카데미 재학생이라고 의심받고 있지 않소? 우리로선 아카데미 측에서 일부러 그를 안 찾고 있다는 생각을, 도저히 지울 수 없소.”

“그, 그건…! 저희도 섣불리 판단할 수도 없는 문제고, 학생들을 마구 신문할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내 생각엔.”

마그리오는 팔꿈치를 다리에 대고, 깍지 낀 양손으로 턱을 괴며 엘레나를 노려보았다.

수많은 전투와 피비린내 나는 과거가 그의 눈동자에 담겨 있었다.

“가장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야 할 아카데미라는 곳이, 이름 없는 영웅에게 호의를 품고 있는 것 같다만….”

“그건….”

“쓸데없는 대화.”

엘레나가 대답을 망설이고 있을 때, 엉뚱한 곳에서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의 시선이 그 소리가 들린 창가 쪽으로 돌아갔다.

묵직한 마력이 응접실을 감돌고.

마법사 로브에 가려진 왜소한 체격의 한 여인이 창가를 밟고 안으로 들어왔다.

머리에 쓴 고풍스러운 고깔모자. 바람에 흩날리는 적갈색 머리칼.

헤겔 마탑의 마탑주, 아리아 릴리아스였다.

“아리아 경…?”

마그리오의 눈이 살짝 크게 뜨였다.

“아리아?! 네가 왜 여기에?”

“제자 엿 먹이고 마실 좀 나왔더니 같잖은 얘기가 들려온 것.”

“넌 훔쳐 듣는 게 취미니…?!”

아리아 릴리아스는 창가에서 내려오곤, 교장 엘레나의 핀잔을 무시하고 소파 쪽으로 태평하게 걸어갔다.

그러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교장 엘레나 옆에 나앉았다.

“어디….”

다리를 꼬고서, 여느 때와 같은 무표정으로 마그리오를 쳐다보는 아리아.

“한 번 더 씨부려 보길. 이름 없는 영웅이 뭐라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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