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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188화 (188/334)

〈 188화 〉 홍련의 무녀 (1)

* * *

“아이작 학생. 피에르 학생과 합의할 의사는…?”

“없습니다. 그런 흉악한 살인 미수범은 부디 신속히 감옥에 쳐 넣어 주셨으면 합니다.”

“그…, 상당히 차분하시네요. 단호하시고.”

해프닝은 축제 뒤편으로 넘어갔다.

해프닝의 주인공이었던 피에르 플랑체는 서글서글한 미소를 머금은 채 연행되었다.

피에르가 나를 죽여보겠다고 한 말은 현장에 출동했던 도로시와 루체, 카야, 여러 교직원이 들었고.

왜 그런 말을 했느냐고 교직원이 추궁하자 녀석은 대답했다.

화를 내서 죄송하다, 감정이 앞서 나가 말이 험해졌다…. 아이작 선배라면 당연히 대처할 것으로 생각했다고도.

‘믿을 만한 소릴 해야지.’

[심리 간파]로 살펴 보건대, 피에르는 분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내 분노를 자극할 계획이 무산되고, 감정적으로 벌인 섣부른 행동마저 허무한 결말을 맞이했기 때문이겠지.

나를 내몰면 내 숨겨진 전력이라도 드러날 줄 알았던 듯했다.

‘지금 이 상태가 내 전력이지만.’

피에르의 머릿속은 복잡해 보였다. 이번 일로 나를 향한 의심이 덜어질지는 지금은 알 수 없었다.

이어 도로시와 카야, 루체가 으르렁거리던 모습을 떠올렸다. 얘네들도 무서운 속도로 현장에 나타났지.

그녀들은 피에르가 6성급 마법진을 전개하자마자 날아왔다고 했다. 지금까지 내가 드러낸 실력으론 피에르의 [고래 비상]에 대항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모두 화가 난 듯했다. 나를 향한 적의를 자신을 향한 적의보다 더 예민하게 받아들이기라도 하듯.

진득한 애정이 느껴져서 절로 마음이 풍족해졌다.

진술 조사는 금방 끝마쳤다.

목격자가 전교생에 육박했기에 현장 상황보다는 나와 피에르 사이의 갈등 관계를 중점으로 조사받았다. 물론 우리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도 없었기에 대답할 거리는 아무것도 없었다.

진술 조사 도중, 아크볼 레이스 첫 경기가 끝났다.

리제타 라이온하트가 속한 팀이 1등, 우리 팀이 2등을 거머쥐었고.

피에르 플랑체 팀도 다음 경기의 참가 자격을 얻었지만 우려했던 일은 더 이상 벌어지지 않겠지.

‘피에르가 구치소 갔으니까.’

피에르 플랑체는 아카데미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그곳은 큰 사고를 벌인 학생 혹은 통제하기 어려운 학생을 일시적으로 가두고 통제하는 시설로, 현재는 아카데미와 황실이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었다.

중징계를 면하기는 어려우리라. 교직원에게 몰래 물어보고 받아 낸 답변이었다. 물론 자세한 건 진술 조사와 사실관계 파악을 마친 뒤에야 알 수 있다는 말도 덧붙었다.

적어도 공신제 기간 동안 피에르가 아크볼 레이스에 참가할 일은 생기지 않을 테니 목적은 달성한 셈.

조사에 협조한 후, 구치소 건물을 나섰다.

축제 분위기의 아카데미는 여전히 시끌벅적했다. 해프닝은 해프닝으로 넘어갈 뿐이니까. 다만, 피에르가 벌인 사고는 당분간 학생들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듯했다.

“아이작!”

기다렸다는 듯이 고혹적인 고성이 귀청을 간질였다.

아카데미 구치소 건물 벽면. 로즈골드색 머리칼의 여학생, 루체 엘타니아가 날 반겨 주었다. 그녀는 벽면에서 등을 떼더니 내게로 쫄쫄쫄 다가왔다.

“루체?”

“괜찮아?”

루체는 내 몸에 이상이 없는지 이리저리 살피면서 코를 킁킁 거렸다.

“괜찮아. 아까는 고마웠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돌아갔어.”

도로시는 얼굴 대표로서 돌아가야 했을 테고.

카야는 나와의 관계를 전교생 앞에서 대놓고 드러내지 않을 셈이었기에 떠난 거겠지.

근데 얜 왜 여기 있냐? 얘도 마법학부 2학년 얼굴 대표로서 팀에 남아 있어야 할 텐데.

“넌? 여기 있어도 돼? 넌 얼굴 대표….”

“아이작이 먼저야.”

무덤덤하고도 단호한 대답. 감동적인 대답이지만…, 금방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이럴 땐 본인 역할에 책임을 다해주는 편이 맞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쯤 루체 케어 담당 학생들이 얘 찾느라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을 걸 생각하니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다친 데는 없네. 다행이다, 무사해서.”

루체는 내게서 떨어지고는 진심으로 안도했다.

그 걱정이 고마워서 웃음이 툭 튀어나왔다.

“걱정해줘서 고맙다. 돌아가자, 루체.”

“응. 나한테서 떨어지지 마.”

“…근데 소매까지 잡을 필욘 없지 않냐. 내가 애도 아니고.”

“넌 강해졌어도 걱정돼. 그렇게 당하고 살 거면 내 곁에 좀 붙어 있어.”

“난 당해본 적 없는데?”

루체는 나를 힐끔 째려보았다. 클로버 팔라딘, 피에르의 마법에 당하기 직전까지 가긴 했지. 그 얘기인가.

뭐, 당하지 않은 건 결과론적인 얘기였다.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면 지금쯤 최악의 결과를 맞이했을까. 나도 나름대로 발악했겠지만, 좋은 결과로 이어지진 않았겠지.

그나저나, 사교회 때처럼 구속구 채울 기미는… 안 보이네.

이런 상황에서도 제멋대로 굴지 않는 걸 보면 루체도 나름 큰 성장을 이룬 듯했다.

“아이작, 물어볼 거 있는데.”

“뭔데?”

“그놈, 누구야?”

루체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차분하고도 냉소적인 어조였다.

여기서 ‘그놈’이라고 한다면 피에르 말고는 없었다.

“단 한 번도 너한테서 그놈 흔적 본 적 없는데. 그냥 아까 경주에서 당한 일로 너한테 복수하려고 한 거… 맞아?”

예리하네. 그 부분을 파고들다니.

“맞겠지. 걔랑 말 한번 섞어본 적 없으니까.”

“그런 이유로 너한테 6성급 마법을 휘두르려 한 거야? 죽이겠다고 하면서?”

마치 속삭이듯, 루체의 서늘한 음성이 내려앉았다.

“아마도.”

“…그래.”

단답. 침잠한 목소리였다. 그녀가 내 옷소매를 잡은 채 앞장서고 있어서 표정이 보이지 않았으나, 심리만큼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살의로 가득했다.

당장에라도 피에르를 찾아가 죽이겠다는 의지는 아니었다. 루체는 무분별하게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이 아니니까.

다만, 피에르를 집중적으로 마크하려는 건 분명해 보였다. 또다시 놈이 내게 무슨 짓을 벌이려 한다면, 루체는 놈을 진짜로 죽일 각오를 품을 것이었다.

그때는 온다.

그리고 그때는 아카데미 행정이 일시적으로 마비될 때일 테고.

내가 앨리스를 해치워야 할 때겠지.

“있지, 아이작.”

“응.”

“만약에 말이야, 너한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루체는 내게 조금도 시선을 주지 않고, 내 소매를 쥔 손가락을 내 손가락에 걸쳤다.

“난 아마…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낄 거야.”

그 말은 마치 경고 같았다.

맞닿은 루체의 손가락에서 얇고 단단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녀의 약지에 끼인 반지가 흑옥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 * *

“왜 그랬어?”

붉은색, 검은색 체크무늬로 이루어진 공간, 앨리스의 미궁.

고급스러운 붉은색 가구들이 늘어선 그곳에, 피에르 플랑체는 벽면에 구속된 상태로 앉아 있었다.

하트 팔라딘, 붉은색 단발머리 소녀, 셰라 헥토리카가 상체를 숙이고 물었다. 그러나 피에르는 사람 좋은 미소로 대답을 회피할 뿐이었다.

“너, 때문에, 심장, 내려앉는 줄, 알았다고, 병, 신아.”

셰라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피에르의 이마를 연신 손가락으로 밀어냈다. 그의 고개가 힘없이 까딱이길 반복했다.

면목이 없다는 듯, 피에르는 멋쩍은 미소를 머금은 채 사과했다.

“미안해.”

“아오! 미안하면 다야? 미안하면 다냐고? 왕국이 걸린 문제를, 너는…! 대장! 얘 좀 어떻게 할 수 없어? 우리도, 여왕님도 곤란하게 만들었다구!”

셰라는 스페이드 팔라딘에게 물었다. 그는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고 서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고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지적인 인상의 남학생, 스페이드 팔라딘은 한숨을 깊게 내뱉고는 대뜸 피에르에게 다가갔다.

서서히 그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러다 지나가는 길에 놓인 의자 손잡이를 붙잡더니, 발로 차 의자를 박살 냈다.

와르르 무너지는 의자. 그대로 스페이드 팔라딘은 의자 손잡이를 들고 피에르에게 다가가더니.

다짜고짜 피에르를 향해 손잡이를 거세게 휘둘렀다.

퍼억!

“끅!”

“꺄악!”

셰라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뒷걸음질 쳤다.

멀리서 피에르를 지켜보던 다이아몬드 팔라딘, 알렉사는 눈동자에 호기심을 담고서 스페이드 팔라딘을 쳐다보았다.

“깜짝이야…. 놀랐잖아, 대장!! 이 새끼 면상 후려칠 거면 미리 말하라고!”

셰라가 발로 지면을 콱콱 짓밟으며 씩씩댔으나, 스페이드 팔라딘은 아랑곳하지 않고 피에르의 머리를 향해 의자 손잡이를 재차 휘둘렀다.

퍼억, 하는 둔탁한 충격음이 울리며 피에르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정신만을 담은 공간이기에 실제 몸에 상처가 나지는 않았으나, 충격은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곳은 정신을 초대하는 미궁. 신체를 보호하는 [기초 보호 마법]과는 무관한 공간.

이곳에서의 충격은 정신적 피해로 치환된다. 피에르의 얼굴에 생긴 상처는 그의 정신을 좀먹을 것이었다.

스페이드 팔라딘의 안경 너머, 그의 싸늘한 군청색 눈동자가 내비쳤다.

“처음은 괜찮다. 알렉사가 저지른 미련한 짓 한번은, 치명적인 실수가 아니었으니 어떻게든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짓을 보고도 살인미수를 저지르는 건 도저히 납득이 안 간다. 심지어 우리와 상의한 작전도 아니었지. 오로지 네 독단이었어…. 도대체, 넌 자제력이란 게 없나?”

“죄송…. 윽!”

퍼억!

“합리적인 판단은?”

퍼억!

“감정에 치우쳐서 일을 그르쳐야만 속이 시원했나?”

퍼억!

“우리가, 이 빌어먹을 학생 연기나 하는 것도 전부 왕국의 건재를 위해서, 여왕님께 은혜를 갚기 위해서, 우리가 살기 위해서인데. 네놈은, 대체 뭐 하는 짓거리냐.”

고개를 푹 숙이는 피에르. 그 정신의 형상은 입술이 터져 핏물을 그렁그렁 맺힌 채였다.

스페이드 팔라딘은 의자 손잡이를 옆으로 휙 던졌다. 의자 손잡이가 바닥을 몇 차례 뒹굴었다.

“우리의 목적은 검은 괴물을 방해하는 것. 놈의 정체를 밝히고, 해치우는 것. 그 와중에 넌 꼴 좋게 중징계나 받게 생겼군. 여왕님께서 우릴 부르신 목적조차 잊고 말이다.”

스페이드 팔라딘은 쪼그려 앉아 피에르를 노려보았다.

“망할 새끼…. 그래도 난 널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날’이 오면 널 데리러 가마. 그때는, 반드시 이번 실수를 만회해라.”

“…알겠습니다.”

피에르는 피 가래 섞인 목소리로 힘없이 대답했다.

……

무녀 미야가 이상해졌다.

구미호-마에가 느끼기에 미야는 언제나 호기로운 주인이었다. 자신의 포부를 떠벌리며 명랑하게 타인을 짓밟는 소녀였다.

그러나 요새는 그저 조용할 뿐이었으니. 아무리 봐도 제 주인 답지 않았다.

앨리스 캐럴이라는 학생회장이 미야에게 귓속말로 떠든 때부터 쭉.

미야의 마음은 돌연 어느 때보다도 거무스름하게 물들어 버렸고, 그녀는 사람이 바뀐 것처럼 말주변이 사라져 버렸다.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앨리스가 말을 걸어왔을 때부터 미야의 마력 공급이 차단되어 형태를 유지할 수 없었으니까. 마치 검은 안개가 뭉게뭉게 끼어들며 주인과 자신 사이에 벽이 되어 버린 느낌이었다.

그리고 재소환된 후로 미야는 지금처럼 변해 버렸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어도 별일 없었다는 대답으로 일축하기만 할 뿐.

미야는 관중석 출입구 옆에 가만히 서서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기가 감돌지 않는 눈동자는 여전했다.

그녀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생동감 있는 반응을 보였을 때는 근래 들어 아주 잠시뿐.

아크볼 레이스에서 동기인 피에르 플랑체와 선배인 아이작이 대립했을 때였다.

하지만 피에르가 연행된 후로는 실망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

미야는 경기장을 가로지르는 아크볼 레이스 참가자들을 눈여겨 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화이트였다. 아이작 걱정에 후에에, 하고 안절부절못 하는 화이트의 모습에 미야는 미간을 찌푸렸다.

“버러지들.”

[미야…?]

구미호-마에의 걱정 어린 목소리. 그 사역마는 미야의 검지 손톱 속에 마력의 형태로 깃들어 있었다.

미야는 등을 휙 돌리고는 관중석 출입구로 빠져나갔다.

“…마에, 모든 꼬리에 마력 비축해 둬.”

[뭐 때문에 그러느냐?]

복도를 가로지르며, 미야는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는 청은발의 남학생, 아이작을 떠올렸다.

“조만간 정리할 게 있으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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