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218화 (218/334)

〈 218화 〉 앨리스 토벌전 (14)

* * *

나는 앨리스와 함께 영원의 감옥에서 끝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마법 주머니에서 휴대용 램프를 꺼내 옷에 고정해뒀다. 램프가 퍼뜨리는 불빛 덕분에 주위가 밝았다.

앨리스는 내가 꽉 붙잡고 있는 까닭인지 안정감을 느끼는 듯 보였다.

다만, 멍해 보였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직후 같았다. 자신이 어떻게 되살아난 건지 의문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대한 행성처럼 보이는 것이 아주 먼 곳에서 서늘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이어 다른 방향을 쳐다보았다. 앨리스의 고개도 내 시선을 따랐다.

멀리서 어마어마한 크기의 사람 머리 형상이 보였다. 으스스하게 흐르는 어둠 마력으로 이루어진 머리였으며, 눈과 입안은 칠흑 같은 어둠으로 가득 차 뻥 뚫린 것처럼 보였다.

사람 머리 형상은 4개가 서로서로 뒤통수가 달라붙은 채 동서남북을 바라보고 있는 형태였다. 내 전생에서, 불교 신화에 나오는 아수라 같았다.

그리 4개의 머리가 달라붙은 것이 한 층, 한 층… 셀 수 없이 이어져 기둥을 이루어 위아래로 쭉 뻗어 있었다. 위나 아래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득했다.

아무리 추락해도 사람 머리 형상은 아주 천천히 위로 멀어져 갔다. 그것이 지나치게 거대하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는 순전히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여긴…?”

“마족 뱃속.”

앨리스의 눈이 잠깐 떨렸다.

마족, ‘영원의 옴’. 통칭 무저갱. 여기는 그의 세계였다.

무저갱은 스노우화이트의 회중시계에 봉인되어 있었던 마족으로, 봉인이 풀리면 시계에서 벗어나 마력을 가진 생물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다.

그렇게 만족스러울 만큼 마력을 잡아먹었을 시 포만감을 느끼며 포식 행위를 며칠 중단한다. 한 끼 식사인 셈이었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선 이안 페어리테일과 스노우화이트, 그리고 여러 강자들을 잡아먹은 뒤 별하늘을 흉내 내며 가만히 있었다.

이안은 창명검이 없으면 무저갱한테 손도 쓸 수 없다. 무저갱은 굉장히 강하니까. 이는 반대로, 창명검이 있으면 녀석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무저갱은 봉인이 풀린 직후, 나와 앨리스를 잡아먹으며 상당한 포만감을 느꼈을 것이었다. 즉, 며칠 동안 포식 행위를 멈추기로 했겠지.

“하아.”

앨리스는 한숨을 내쉬며 염동력을 발휘했다.

위우우웅. 턱.

“음?”

앨리스의 염동력 덕분에 추락 속도가 확 늦춰졌다. 이내 허공에 생겨난 무형의 고체가 밟혔다.

아주 맑은 유리창 같은 투명한 땅이라도 밟은 듯했다. 내 발끝으로 아름다운 빛깔의 파문이 조금 퍼져나갔다.

“염동력으로 만든 기물이란다.”

툭 내뱉듯 말하는 앨리스. 그녀가 내 품에서 내려오려 하기에 내려주었다.

우리는 바닥이 없는 공간 한가운데에 우뚝 선 듯한 상태가 되었다.

“아….”

앨리스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유는 대충 짐작되었다. 무저갱한테 잡아먹히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렸다가 엄청난 허탈감을 느끼고 만 거겠지.

앨리스는 깊은숨을 내뱉으며 두 무릎을 껴안고는 고개를 파묻었다.

“괜찮냐?”

“응….”

앨리스의 등 뒤, 셔츠가 찢어져 살결이 보였다. 아까 메피스토의 팔이 옷을 뚫고 뻗어 나왔던 탓이었다.

마법 위장 복식을 벗어서 앨리스의 어깨에 덮어 주었다. 군청색 로브의 옷 자락이 그녀의 등을 가렸다. 그녀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옷에 고정해둔 휴대용 램프를 내려둔 뒤, 앨리스 뒤에서 그녀를 등지고 앉았다. 고개를 숙이자 새까만 어둠만이 시야에 가득 담겼다.

이곳은 바닥이 없는 영원한 감옥. 가만히 있으면 평생 추락하는 수밖에 없었다.

무섭긴 했다. 광대한 우주를 바라보았을 때 인간으로서의 초라함과 허무감을 실감하며 느끼는 바로 그 공포감이 스멀스멀 몰려왔다. 하지만 [빙제]의 효과 덕분에 그 감정은 금세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침묵이 흘렀다. 숨 막힐 듯 조용했다.

옷깃이 스치는 소리, 자그마한 숨소리.

그 불편한 침묵 속에서 이윽고 앨리스는 입을 열었다.

“애기야, 나 왜 안 죽은 거니?”

이제야 묻네.

앨리스 처지에선 어안이 벙벙할 것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은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으니까.

잠시 뜸을 들이고 대답했다.

“여기선 강제로 영원히 살아야 하는 것 같거든. 그래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이해할 수 없구나…. 그런 엄청난 걸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것도.”

“사실이니까.”

“그래…. 애기 같은 대마법사가 보고 느끼는 걸 내가 이해할 순 없겠지.”

앨리스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하게 대답할 필요는 없었기에 알아서 생각하라고 놔뒀다.

전술했듯, 무저갱의 몸 안은 영원한 생명력을 선사하는 곳.

그렇게 수만 년, 수억 년, 수십억 년…, 생물을 영영 가둘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배드 엔딩 「영원」의 배경이기도 했다.

이 감옥에 갇힌 채 오랜 세월을 살아가다 끝내 자아를 잃어 버린 생물은 영혼을 무저갱에게 빼앗기고, 그 마족의 영원한 장난감이 되고 만다.

이 모든 것이 무저갱이 가진 초월적인 마족으로서의 권능이었다.

그래서 나는 무저갱 안에 들어가면 앨리스가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발상을 떠올렸다.

앨리스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그녀를 냉동 인간으로 만들어 버렸던 게 그런 연유였다. 메피스토를 떠나보내고 무저갱에게 잡아먹히는 것 또한 예상했던 흐름이었다.

결과는 성공적인 듯했다. 앨리스가 멀쩡해졌으니.

제논, 앨리스와 싸우면서 뺨에 났던 상처를 만지작거렸다. 전부 아물었다. 상처의 흔적만 남았을 뿐.

부러진 뼈도 멀쩡해졌다. 포션의 효과라고는 볼 수 없는 엄청난 회복 속도였다. 무저갱이 선사해주는 생명력 덕분이리라.

문제는 마력이었다.

제논과 앨리스 상대로 싸우면서 마력을 많이 써버렸고, 멸악자 상태일 때는 상화의 검을 쓰는데 특히 많은 양의 마력을 소모해야만 했다.

물론 그때까지도 마력에 여유는 있었지만, 무저갱한테 잔여 마력을 많이 잡아먹히고 말았다.

앨리스도 처지는 마찬가지였다. 다행인 건 염동력으로 간단한 공중 기물을 만드는 행위에는 마력이 얼마 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앨리스는 엄청 세니까.

즉 이 투명한 염동력 기물을 유지하는 데 마력이 소모되는 속도보다, 앨리스의 마력 회복 속도가 더 빠를 것이었다.

‘어서 마력이나 회복해야지.’

지금은 조금이라도 빨리 마력을 회복하는 데 집중해야 했다.

무저갱은 대마법사의 경지보다 높은 불가사의, 초월의 경지에 이르러 있다. 부유섬보다 강하며, 악신의 바로 밑 단계라고 보아도 무방한 최상위 마족 중 하나였다.

그런 놈이니, 쓰러뜨리려면 만전의 상태로 내 최대 화력을 쏟아부어야만 할 터. 아마 그렇게 할 수 있을 때까지 며칠이 소요될 듯했다.

“…….”

고요 속에서 무저갱의 시선이 느껴졌다.

무저갱은 지금 내 마력이 온전히 회복되길 기다리고 있으리라. 나와의 결투도 말이다.

아직 싸울 생각이 없는 지금의 날 보면 진짜 별 볼일 없고 맛없게 보일 테지. 그래서 방관하는 중일 터.

내 만전의 상태에 얼마나 큰 기대감을 품고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 기대 이상의 보상을 선사해 줄 자신은 있었다.

시간이 흘러, 앨리스는 침묵을 깨뜨렸다.

“결국…, 이렇게 됐구나.”

“어?”

“난 패배했고, 애기는 나랑 같이 이런 마족한테 잡아먹혔잖니…. 잘못한 건 난데, 나만 벌을 받았어야 했는데…. 서로 안 좋은 결말뿐이네.”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네가 느끼는 죄책감을 곱씹으라는 의도였다.

“…….”

“…….”

다시 조용해졌다.

…육체 단련이라도 할까.

……

“애기야.”

“어.”

“내가 ‘애기’라고 불러 주는 거, 이상하지 않았니?”

“딱히 별생각 없었어.”

“그렇구나….”

“…말하고 보니까 궁금해지네. 이유가 뭐냐?”

“그냥 애칭이었단다. 나도 별생각 없었어.”

“그랬냐….”

……

“무슨 생각해?”

“내 사람들 잘 있을지. 나 때문에 죽지는 않았을지.”

“그렇겠네….”

“…애기는 걱정 안 되니? 지금쯤 널 걱정하는 사람도 많을 텐데.”

“걱정돼. 근데 지금은 어쩔 수 없잖아.”

“응, 그렇지.”

……

“애기야, 허공에 대고 손 움직이는 거. 왜 그러는 거니?”

“상태창이라고 알아?”

“응…? 그게 뭐니?”

“내 현재 상태를 알려주는 마음의 창? 내 눈에만 보이는 그런 게 있어.”

“…….”

“그렇게 이상한 사람 보듯 쳐다보지 마라…. 농담이니까.”

……

“애기야, 그거 아니?”

“뭐가?”

“나 사실 여왕이었단다. 내가 다스리는 왕국이 있었어. 그 왕국은… 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이야, 정말 놀라운 사실이군.”

“…반응이 굉장히 시원찮구나. 뭐니, 그 연극 톤은?”

……

“앨리스.”

“응.”

“넌 마족이 안 찾아왔으면 어떻게 살았을 거 같냐?”

“아마… 왕국에서 평화롭게 살았겠지. 마음에 드는 남자도 만났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무난하게 잘 살았을 거라 생각해.”

“…안타깝게 됐다.”

“그런 말 하지 말렴. 난 너한테 나쁜 짓만 저지른 사람이잖니.”

……

“애기는 생각보다 근육이 많구나?”

“뭐, 그렇지.”

“근데 여기서 그렇게 운동해도 소용 있니?”

“…어?”

……

“악신 잡는 게 목표였다니…. 그래서 아카데미에 온 거였니?”

“대충 비슷해. 아직 잡을 실력은 못 되지만.”

“애기처럼 강해도 못 잡는 존재를, 난 부활시키려고 했구나….”

“…그 죄책감을 기억해.”

“…….”

……

“근육통 없네.”

“거 봐.”

……

“시간 체감이 안 되는구나. 잠도 안 오고.”

“잠 안 오는 건 이 마족 힘일 거야. 시간은 지금… 이틀 됐네.”

“응? 그건 어떻게 알았니?”

“시계 있어.”

“그랬구나….”

……

“애기야. 궁금한 게 있단다.”

“뭔데?”

“애기는 도로시랑 루체 엘타니아, 카야 아스트레앙 중 누굴 좋아하니?”

“다 좋아해.”

“이성으로서 물은 거란다?”

“이성으로서 대답한 건데?”

“그래…?”

“그렇지.”

“설마 난봉꾼이란 소문이 사실이었니…?”

“반은? 심리적으론 그게 맞으니까.”

“푸흡…! 심리적 난봉꾼….”

“왜 웃어?”

“그냥, 의외여서. 되게 재밌네.”

“그러냐. …여기 들어오고 처음 웃었네.”

“응, 그러네. 덕분에.”

……

“꽤 낭만적인 분위기구나.”

“갑자기 왜?”

“우리 둘만 외딴 세상에 남겨진 거 같으니까.”

“저기 저 이상한 얼굴들 보고도 그런 생각이 드냐?”

“애기는 그렇게 강하면서 겁이 많구나?”

……

“우리, 여기서 나갈 수 있을까?”

“모르겠다.”

……

“엄마 아빠 보고 싶네….”

“…어떤 사람이었는데?”

“재미없는 이야기일 텐데, 들어주게?”

“들어줄게.”

“어릴 적 이야기부터 해야겠구나. 어렸을 때 헤어지고 쭉 못 봤으니까.”

……

“그렇게 괜찮은 척 안 해도 돼. 왕국 사람들, 부하들, 다 많이 걱정하고 있잖아.”

“히, 그렇지…. 내가 약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너한테도 피해만 끼치고….”

“솔직히, 네 왕국이 지금도 건재할지는 잘 모르겠다. 무책임한 소리지만, 그래도… 아마 괜찮을 거라 생각해.”

“위로해 줘서 고맙구나. 적이었는데도.”

“이젠 아니잖아.”

“…응.”

……

“우와아아악!!”

“우와아아아!!”

“와아아아악!!”

“으와아아악!!”

……

“하나 물어봐도 돼?”

“그런 건 굳이 허락 안 받아도 되잖니.”

“그래?”

“뭐가 궁금하니?”

“너 진짜로 나 좋아했냐?”

“…정정할게. 그런 질문 할 거면 앞으론 허락부터 받으렴.”

……

“애기야.”

“왜?”

“이런 얘기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내 곁에 있어 줘서 고맙구나.”

“…그러냐.”

……

스윽.

손가락을 휘저어 상태창을 치웠다.

마력이 회복되길 기다리는 동안 앨리스와 속에 담아 뒀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녀가 했던 이야기를 모두 기억했고, 그 무엇도 잊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발걸음을 옮겼고, 비극이라는 교차점에서 마주쳤다.

그리고 다행히도, 지금의 나는 그 비극을 뒤엎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럼….”

마력도, 컨디션도. 이 정도면 완벽했다.

이제 무저갱이 다시 포식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녀석을 쓰러뜨려야만 할 터.

카야, 루체, 도로시, 화이트…. 그 애들도 걱정됐다. 어서 보고 싶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앨리스가 만든 무형의 바닥을 밟아가며 앞으로 나아갔다.

“애기야?”

“준비해. 슬슬 나갈 거니까.”

“그게 무슨 소리니…?”

나는 고개를 뒤로 돌려 앨리스를 쳐다 보면서 한쪽 검지로 위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태평하게 대답했다.

“이 마족, 해치울 거야.”

앨리스의 얼굴이 돌처럼 굳었다.

* * *

“뭐…?”

이 마족을 해치우겠다니,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앨리스는 혼란스러워했으나, 이내 표정을 갈무리했다. 아이작이 그런 일로 농담할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작은 앨리스에게 자신의 빙결 마법을 모두 무력화하는 보호 마법 [빙결 차단막]을 씌운 후, 사람 머리 형상의 거대한 기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력을 끌어올렸다. 온화한 [빙제]의 기운이 아이작에게서 스멀스멀 피어올라 강물처럼 흘렀다.

앨리스로선 아이작의 진정한 마력을 가까이서 느껴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내달렸다. 상상을 초월하는 마력이었다.

아이작은 집중했다.

이제까지 중 가장 최대의 화력을 단번에 쏟아부을 작정이었으니.

끼이이익.

사람 머리 형상이 일제히 돌아가며 공허한 눈으로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무저갱이 적의를 감지한 까닭이었다.

아이작은 그저 냉철한 눈으로 그 머리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크하하하하!!]

별안간 사람 머리 형상들이 기괴하게 웃어대기 시작했다. 귀청을 찢을 듯한 폭소 소리에 앨리스는 깜짝 놀라며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사람 머리 형상 중 아이작으로부터 정면에 있는 것의 공허한 입이 새까만 구체를 토해냈다.

그것은 허공에 둥둥 떠오르더니 거인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칠흑 같은 몸체에 진보랏빛 마력으로 이루어진 신비로운 고리가 뒤따르며 이질적인 후광을 내비쳤다. 덕분에 형태가 구분되었다.

멋이라도 부린 듯 인간과 동물, 마수, 마물, 온갖 생물의 신체 부위로 이루어진 장신구를 몸에 덕지덕지 달아 놓은 채였다. 무저갱에 잡아먹히고 자아를 잃었던 자들의 말로 중 하나였다. 저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셀 수 없었다.

장신구가 된 자들은 여전히 생생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거인의 목걸이를 이루는 수많은 생물 머리가 흐느끼거나 침음을 흘리는 광경이, 거인의 공포스러운 위상을 드높이는 듯했다.

칠흑의 거인이 입을 열었다. 신묘하고도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기다렸다, 얼음의 왕이여.]

“그거 고맙네.”

칠흑의 거인에 비해 몹시 초라하고 작은 인간, 아이작은 어깨를 가볍게 돌리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두 지고의 존재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의사를 이미 느꼈던 것이었다.

앨리스는 무슨 상황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건 대체…?”

“저놈이 날 기다려줬거든.”

무저갱은 아이작을 잡아먹었을 때 그 마력을 맛보고 흥분했다. 그토록 맛있는 마력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잡아먹힌 아이작은 갑자기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수준으로 바뀌어 버렸다.

무저갱은 아이작이 온전한 상태가 되었을 때, 그 마력을 게걸스레 먹어 치우리라고 결정했다. 필시 천상의 맛이리라.

하물며 아이작이란 사내는 강대한 힘을 지닌 인간이었다. 무저갱은 그 최고의 적수를 앞에 두고 호승심마저 불태우고 있었다.

필요했던 건 오로지 짧은 시간.

무저갱이 살아온 세월에 비한다면 섬광과도 같은, 아주 짧은 시간만이 필요할 뿐이었다.

그렇기에 무저갱은 아이작을 기다리기로 했고, 아이작은 그 뜻을 파악했다.

“이제 끝내자.”

아이작은 스트레칭을 마쳤다.

무저갱의 바람에 보답해 줄 때였다.

쿠우우웅!!

머리 위 아주 먼 곳에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철문이 생겨났다.

그 철문을 발견한 앨리스는 두 눈을 의심했다.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이질감과 함께 헤아릴 수 없는 양의 강대한 얼음 마력이 느껴졌다.

갑자기 나타난 저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분명한 건, 저 철문을 소환한 자가 아이작이라는 사실이었다.

아이작은 서서히 오른팔을 위로 뻗었다.

그리고, 담담한 어조로 나지막이 읊조렸다.

─ 엄한뿐이었던 생애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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