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234화 (234/334)

〈 234화 〉 도전

* * *

황실 마탑에는 마법을 기반으로 한 효율적인 건축 지식이 있었다. 빠른 건축 속도, 탄탄한 건축물 내구성, 미학을 모두 챙긴 기술적 지식이었다.

새로운 메르헨 아카데미 캠퍼스를 건축하는 일에도 그 기술이 사용되고 있었다. 메르헨 아카데미가 황실의 지원을 받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앨리스 캐럴 사건 때 부서진 여러 건물도 그 기술이 적용되어 이전보다 말끔한 외관으로 보수되었다.

얼마 안 가 마르지오관을 임시 행정실로 쓰던 교직원들은 바르토스관으로 복귀했다.

한낮. 바르토스관 학생회실의 문이 열렸다.

얼떨결에 학생회장 업무를 일부 대행하던 여학생 에린이 출입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회장님…?”

앨리스 캐럴이 돌아왔다.

* * *

바르토스관 보수 완료, 학생회장의 복귀로 행정 체계의 균열은 금세 해소되었다.

앨리스는 물 흐르듯 밀린 일들을 처리했고, 학생회는 체계적으로 돌아가며 행정 복구에 힘을 실었다.

도로시는 징계가 끝나자마자 나를 만나 앨리스와 아무 일도 없었는지 돌려서 물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하자, 거짓말을 간파할 줄 아는 도로시는 안도하며 넘어갔다.

어느덧 학기말 평가가 끝나고 방학식을 앞둔 시기가 되었다.

한 학기 동안 치렀던 모든 평가의 점수를 종합한 결과, 마법학부 내에서 내 등수는 전교 3등으로 확정 났다. 나름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다음 학기에 최상위권 기숙사인 샤를관에 입주하는 것은 확정 사항. 반 배정 평가도 무난히 잘 보면 A 클래스에 들어갈 것이었다.

“붙잡아서 미안하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그동안 피해 다녀서 죄송했습니다…!”

교정 인근, 조세나 숲에 있는 아지트 앞.

야외 테이블에 앉은 카야에게 차를 우려 왔다. 바짝 굳어서 상체를 꼿꼿이 세운 모습. 마치 회사 면접 보러 온 구직자처럼 긴장감이 넘쳐 보였다.

나는 카야의 맞은편에 앉아 차를 홀짝였다.

평소에 카야는 내가 다가가면 피해 다녔고, 멀리선 짝사랑하는 소녀처럼 날 몰래 지켜봤다. 최근엔 날 찬양하고 다닌다는 소식도 귀에 들어왔다.

그래서 아예 손목을 붙잡고 강제로 데려온 것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

카야가 쌩얼 문제로 부끄러움 탔던 건 그렇다 치고.

“네 다른 인격, 요즘 안 보이지 않아?”

“그걸 어떻게…?”

카야는 놀라워했다.

왜 모르겠냐. 악식의 인격이 떡하니 있는데 카야가 계속 날 피해 다니도록 내버려 둘 리 없었다.

평상시 악식의 카야는 갑작스레 찾아와 애정 공세를 펼치는 편이었다. 하물며 내 정체까지 드러난 지금, 내 일상에 개입하지 않을 리 없었다.

“…사실 앨리스 캐럴 사건 이후로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작년 합동 실습 평가 때랑 증상도 비슷하고요. 또 마족을 집어삼켜야 나아질지….”

“방학 때 집에 돌아가지?”

“네.”

“어느 정도 마력이 많이 담긴 마수 고기를 먹어 봐. 그럼 괜찮아질 거야.”

“……?”

마력이 감돌았던 생물은 맛이 없다. 질 좋은 마력을 가졌던 마수라면 특히 그러했다.

영양분도 평범한 동물에 비해 부족하고, 먹는 사람의 마력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마수 고기는 수요가 몹시 적은 편이라 공급도 없다시피 했다.

하지만 땅이 넓은 아스트레앙 공작령엔 인간에게 흉포한 마수도 서식하고 있을 터. 어차피 그런 마수는 사냥해야 할 테니, 기왕이면 요리해 먹어보라고 조언했다.

그 정도만 해 줘도 악식의 인격은 멀쩡히 부활할 것이었다.

카야는 입을 헤 벌리고 여느 때의 곱고 귀여운 목소리로 감탄사를 흘렸다.

“역시 아이작 님은 많은 걸 아시는군요…! 제 인격에 대한 것까지도 간파하시다니….”

“합동 실습 평가 때 알아챈 거야.”

다행히 카야가 마음이 풀린 듯하여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내가 무저갱에 잡아먹혔던 일로 마음 고생시켜서 미안하다고 했다. 앞으로도 적들이 나오긴 하는데, 아카데미 밖에서 출현할 것이라고도 설명했다. 예쁘다는 말도 에둘러서 했다. 카야는 얼굴을 확 붉히며 입술을 우물거렸다.

카야는 우리의 관계를 수직적으로 보는 편이다. 나처럼 존경하는 사람을 격이 다른 존재처럼 여기므로. 마치 일반인이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을 대하는 것과 비슷했다.

카야의 행동 패턴도 그러한 심리에서 기인했다. 그러니 나로선 도로시나 루체처럼 편하게 대하기엔 어려운 감이 있었다.

‘그래도 귀엽지만.’

내 애정캐 답게 귀여운데 무슨 상관일까.

이야기가 다 끝나자 카야는 양손으로 찻잔을 쥐고 소심하게 차를 마셨다. 내가 외모를 칭찬한 게 기분 좋은지 내내 헤실거렸다.

……

학생 대부분이 푹 쉬고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텅 빈 훈련장의 풍경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저녁부터 우중충해진 하늘은 조금씩 비를 퍼부었다. 훈련장 내부, 막막한 적막과 축축한 습기가 썩 기분 좋게 다가왔다.

목표물을 두고 7성급 얼음 원소 마법 [빙뢰]를 발사하는 단련부터 시작했다.

50m 떨어진 표적은 수월하게 맞혔지만, 100m가 넘어가면 난도가 급격히 상승했다.

마력이 난폭하게 퍼져나가는 감각이 영 익숙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아직 7성급 마법을 무난히 다루기엔 마력 운용력이 부족하다는 실감이 났다.

마물 환상 웨이브도 진행했다. 천족에 대비하기 위해 마법은 최소한으로 쓰고, 가능한 한 육탄전으로 마물 환상을 격파해 나갔다. 공격을 피하고, 막고, 반격하면서.

그러던 중, 한 웨이브의 마지막 마물 환상이 덮쳐올 때.

휘웅! 콰각!

바람의 칼날이 날아와 마물 환상을 양단했다. 마물 환상은 가루가 되어 스르르 사라졌다.

3성급 바람 원소 마법, [풍검]이었다. 나는 호흡을 갈무리하면서 [풍검]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허영심 많은 금발 귀족, 트리스탄 험프레이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할 말 있어?”

또 시비라도 걸러 온 걸까.

트리스탄은 내 쪽으로 다가왔다. 녀석의 저벅저벅, 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훈련장을 울렸다.

마침내 내 앞에 이른 트리스탄은 진중한 얼굴로 말을 꺼냈다.

“나와 대련해라, 아이작.”

이미 [심리 간파]로 알아챘기에 놀라진 않았다.

트리스탄의 몸을 살폈다. 멀쩡한 교복 밖으로 보이는 그의 목, 손. 살이 찢어지고 베였던 흔적이 다분했다. 매일 치유를 받아도 감당이 안 될 만큼 고되게 단련해온 것이 분명했다.

나를 목표로 삼았던 트리스탄이다. 어쩌면 내 정체가 드러나고 가장 크게 충격을 받은 사람이 이 녀석인지도 몰랐다. 한동안 머릿속이 많이 복잡해 보이기도 했으니.

물론 트리스탄에겐 게임에서 보았던 정 말고는 딱히 느껴지는 게 없었다. 녀석과는 동료애도 없었기에 내 비밀을 공유할 상대도 아니었다.

하지만 방학 전 트리스탄의 마지막 각오 정도는 받아주고 싶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훈련장을 나섰다.

여전히 밤하늘을 뒤덮은 먹구름이 비를 쏟아 내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몸에 원소 보호막을 씌운 채 교정을 가로질렀다.

트리스탄을 뒤따라 도착한 곳은 야외 대련장이었다.

대련장 위, 우리는 멈춰 섰고.

나는 트리스탄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 * *

“무슨 기분이 들었나?”

“뭐가?”

트리스탄의 목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아이작에게 전해졌다.

“지금까지 난 네놈에게 전력을 다해 부딪쳐 왔다. 그리고 네놈은 대마법사의 위치에서 내게 어울려 줬지. 그럴 때마다 무슨 기분이 들었나?”

“…하고 싶은 얘기가 뭐냐? 내가 무슨 기분을 느꼈는지가 너랑 무슨 상관인데?”

트리스탄은 아이작과 거리를 벌리고 몸을 돌렸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며 섰고.

트리스탄은 입가에 조소를 띠었다.

“아무 상관 없다.”

휘우우우우!!

트리스탄은 마력을 끌어올렸다. 매서운 바람이 그를 중심으로 휘몰아쳤고, 눈 깜짝할 새에 그의 몸이 자취를 감추었다.

현란한 연녹빛 강풍이 빗물을 몰아내며 허공에서 격렬한 춤사위를 벌였다. 트리스탄의 속도가 예전보다 한층 올라가 아이작의 눈을 속이기 위해 미친 듯이 허공을 휘젓고 있는 것이었다.

트리스탄은 관중석을 박차고, 대련장을 박차고, 점차 가속하며 자신이 죽을 힘을 다해 이루어낸 성과를 아이작에게 내보였다.

아이작은 가만히 선 채 태평한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휘우우우우!! 화아악!!

트리스탄은 아이작 뒤로 엄청난 속도로 날아들어 거센 발차기를 날렸다.

바람 마력의 폭발을 동반한 발차기였으나, 아이작은 가볍게 옆으로 빠져 그 공격을 피했다.

“뒤통수에 눈이라도 달린 거냐?!”

트리스탄은 당황했으나, 바람 마력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가속했다.

연이어 아이작을 향해 온갖 바람 마력을 퍼부었다.

아이작은 날카롭게 들이닥치는 [풍검]과 [질풍 엄니], 트리스탄의 육탄 공세를 간단히 피했고.

광범위한 [돌풍]은 얼음의 벽 [빙벽]을 끌어올려 막아 냈다.

“강해지긴 했네.”

아이작의 무덤덤한 평가가 트리스탄의 분노를 자극했다.

“네놈한테 듣고 싶지 않다!!”

트리스탄은 이를 꽉 깨물고 아이작을 향해 돌격했다. 오른손에 바람 마력을 뭉치고 뭉쳐, 그대로 주먹을 휘두를 셈이었다.

그 순간, 아이작은 트리스탄이 파고드는 방향을 향해 손을 뻗었다. 트리스탄이 마음을 정리할 수 있도록 압도적인 격차를 보여 줄 생각이었다.

엄지로 중지를 고정한 채 그 앞에 얼음 마력을 응축하는 아이작. 연이어 구축되는 건 5성급 얼음 원소 마법 [빙결 폭발]의 마법진이었다.

반응 속도, 마법 연산 속도, 마력 운용력. 모두 믿을 수 없는 수준. 트리스탄은 순간 감탄했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고 아이작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동시에, 아이작은 손가락을 튕겼다.

콰아아아아!!!

차가운 폭발과 거센 빙결이 트리스탄을 덮쳤다. 그가 모아 놨던 고밀도의 바람 마력이 허무하리만치 순식간에 무너졌다.

적당히 위력을 가다듬은 [빙결 폭발]이었으나, 트리스탄의 몸은 무력하게 폭발에 휩쓸려 대련장 너머 벽면에 꽂혀 버렸다.

아이작이 딱밤을 친 방향을 따라 빙괴가 생겨나 있었다. 그는 곧바로 빙괴를 풀었고, 피어오르는 연푸른빛 가루는 빗물에 씻기며 사라졌다.

관중석 아래. 트리스탄은 벽면에 기댄 채 쓰러져 있었다.

그득한 한기가 트리스탄의 몸속을 파고들어 뼛속까지 뒤덮었다. 격한 추위에 그의 몸이 파들파들 떨렸다.

“아직…!”

쏟아지는 비를 흠뻑 맞으면서, 트리스탄은 질퍼덕거리는 바닥을 짚고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곧바로 몸의 한계를 딛고 일어서긴 어려운 법이었고, 하물며 기절할 것 같은 의식을 붙잡는 것만으로 그는 남은 힘을 쏟아야만 했다.

초점이 잘 맞지 않는 시야. 고개를 들면 대련장 위에 아이작이 보였다. 그는 고고한 자태로 우뚝 서 있는 얼음의 원왕이다.

말도 안 되는 격차가 두 사람 사이에 있었다. 마치 하늘과 땅의 높낮이처럼.

트리스탄의 전력은 너무도 간단히, 무참히 짓밟혔다.

“내가 이겼어, 트리스탄.”

아이작의 담담한 선언은 어느 때 들어 본 말이었다.

마치 포기하라고 종용하는 것만 같았다.

이 구도도 저번 대련과 똑같지 않은가.

그때는 금방 아이작을 넘어설 수 있겠다고 호기롭게 선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 아득히 높은 격차 앞에선, 절대로 저번 대련에서와 똑같은 선언을 내뱉을 수 없었다.

트리스탄의 두 눈에 핏줄이 어렸다. 그는 끔찍한 통증도 무시하고 아이작을 노려보았다.

아이작은 이제 됐다는 듯, 등을 돌리고 대련장을 떠나갔다.

트리스탄은 멀어지는 아이작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빗물이 머리칼을 타고, 뺨을 타고 졸졸 흘러내렸다. 이를 악물어보지만 쓸모없는 기적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머릿속이 점차 방향을 잡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윽고, 트리스탄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흘렀다. 이 웃음이 무슨 의미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보잘것없는 자조에 불과했다.

괜찮았다, 우스꽝스러운 자기 자신을 비웃어도. 이미 제 주제에 맞지 않는 목표를 품고 추잡한 꼴이 되지 않았는가.

그러니 지금 만큼은 원왕을 목표로 삼았던 미련한 자신을 실컷 비웃고.

일어서면 된다.

일어서면 그만이었다.

“하!”

트리스탄은 일부러 자신감 넘치는 실소 소리를 내뱉었다.

아이작은 발을 멈추고 트리스탄을 쳐다보았다. 트리스탄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벽을 짚고 가까스로 일어나고 있었다.

[빙결 폭발]에 휩쓸려 살이 얼고 찢어진 트리스탄의 얼굴엔 평소의 자만심 넘치는 미소가 가득했다. 그는 삼류 악역처럼 낄낄 웃고 있었다.

“희대의 대마법사, 얼음의 원왕, 빙제…! 그딴 게 뭐가 대수냐?”

트리스탄은 결심했다.

저 재수 없는 놈에게서 진정한 승리를 거두겠다고.

인생을 걸고, 아이작에게 도전해 이기는 것을 목표로 삼은 것이었다.

“아이작!!”

트리스탄은 분한 감정에 목이 메어 왔으나, 잠시 뜸을 들여 울먹이는 목소리를 가다듬었고.

“언젠가 위대한 마법사가 돼서 네놈한테 다시 도전하겠다! 그러니 기억해라…!”

확고히 다짐하며, 선언했다.

“내가 널 뛰어넘겠다.”

대마법사조차 뛰어넘는 위대한 마법사가 되겠노라고.

최약체에서 급 성장을 이룬 아이작이 아닌, 빙제 아이작을 향한 처음이자 마지막 선언이었다.

아이작은 냉철한 적안으로 트리스탄을 쏘아보았다.

“…열심히 해라.”

아이작은 무덤덤하게 그 자리를 떠나갔다.

* *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