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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269화 (269/334)

〈 269화 〉 화이트는 강해지고 싶다 (1)

* * *

방학이 끝나간다.

많은 학생이 아카데미에 돌아오고 있다. 요새 부쩍 유동 인구가 많아졌다는 게 실감 난다.

여러모로 복잡한 방학이었지만 상념에 잠길 시간은 없었다. 여전히 내 일상은 단련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한편, 다행히 이안 페어리테일은 성공적으로 창명검을 획득했다. 일이 꼬이지만 않는다면 마족 타나토스에게 유효타를 먹여줄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된 것이다.

아카데미에 돌아온 이안에게 창명검을 써 보라고 지시했다. 그가 공터에서 창명검을 휘둘러 빛의 힘을 보여주니 안심되었다. 내가 생각해온 최소한의 위력은 갖추어져 있었으니.

“……?”

교정을 거닐던 중이었다. 건물 위에 있는 도로시를 발견했으나 말을 걸긴 어려웠다.

명상하는 모습. 주위론 별 무리가 떠올랐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별빛 마력 단련법 중 하나였다.

체감된다. 요즘 도로시는 명상하는 시간을 많이 늘렸다.

─ ‘…거짓말쟁이.’

뒤펜도르프에서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아마 도로시가 단련량을 늘린 건 나 때문인지도 몰랐다.

방해할 순 없었기에 도로시를 잠깐 지켜본 후 가던 길을 마저 나아갔다.

……

“아이작.”

“왔냐.”

루체 엘타니아가 마탑 수습을 마치고 돌아왔다. 나는 교문에 마중 나와 그녀를 반겼다.

행복한 미소가 루체의 얼굴에 번져 나갔다. 햇볕이 내리쬐어 빛나기까지 했다.

‘많이 화사해졌네, 그 음침했던 애가.’

1학년 때와 비교해서 눈에 띄게 밝아졌어.

…뭐지, 이 뭉클함은?

마치 음습하고 피폐했던 딸이 사람들과 교류하며 아픔을 딛고 일어선 드라마의 한 장면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왜 울려 그래, 아이작?”

“네가 어엿하게 큰 거 보니까 갑자기 기특해져서….”

“무슨, 아빠야? 기분 나빠….”

루체는 툴툴대며 내 옆에 붙어 걸었다. 넌 내 기분을 모를 거다.

우리는 아카데미 기숙사로 향했다.

“나 없을 때 크게 사고 쳤더라?”

“뭐, 그렇게 됐다.”

로펜하임 남작의 인신매매 사건은 황국에 소문이 퍼진 것 같았다.

헤겔 마탑에도 소문이 돌았나 보다.

“좋은 일 했네.”

“나름.”

루체는 그저 대화 화제를 꺼낸 것에 불과했는지 별 관심이 없다는 투였다. 얘한텐 누가 죽든 말든 상관할 일이 아닐 테니까.

“나 짐 정리하면 같이 점심 먹자.”

“그러자. 배고프다.”

“아이작, 오늘은 나랑 있어야 해.”

“그럴 생각이었는데?”

“좋은 대답이야.”

친구가 나뿐이라 나를 통해서 외로움을 해소하는 아웃사이더 루체다. 마탑 수습 때문에 도통 못 봤으니, 평소에 품어온 나를 향한 갈망도 오늘은 유독 심할 것이었다.

그 갈망엔 나를 향한 호감도 깃들어 있을 터다.

나도 오랜만에 보는 루체가 평소보다 반갑기도 했다. 되도록 오늘은 루체와 같이 있고 싶었다.

“아.”

아, 맞다.

“왜?”

“이따 멘토링 해야 해. 그때 빼곤 괜찮아.”

루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래 방학엔 멘토링 안 하잖아?”

“화이트가 실력 기른다고 맨날 진땀 빼면서 열심히 하는데, 나만 대충대충 할 순 없잖아. 성심성의껏 도와줘야 하지 않겠냐?”

물론 그렇게 만든 건 나다. 실상은 ‘흐에엥’거리는 화이트의 우는 소리 향연이지만. 그래도 향상심은 있는 애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넌 쓸데없이 정이 많아.”

“칭찬 고맙고.”

“따라가도 돼?”

음?

“멘토링 하는 거 따라간다고?”

루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부담될 것 같은데….”

내가 가르치는 모습 보여주는 것도 조금 쑥스럽기도 하고.

“나 방해돼?”

“그런 건 아닌데….”

“그럼 갈래.”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정해진 대답만 말하면 된다는 의미의 단호한 말투.

그간 마탑에서 많이 외로웠는지 루체는 한 시라도 내 곁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루체가 염치 없이 멘토링을 방해할 사람은 아니기도 하고, 이미 한번 고집 피우려는 그녀의 마음을 돌리긴 어렵기도 하다.

‘평소엔 루체가 나보다 더 실력자이기도 하고.’

오히려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네.

딱히 상관없을 것 같았다.

“뭐, 그래라.”

“응.”

루체는 담담하게 대답하곤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 * *

“마력을 너무 거칠게 방출했어. 연산 잘하고 마법진만 구축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힘 조절도 신경 써야 해. 다시.”

“네! 흐얏!”

“…손 줘 봐. 내 마력으로 틀을 잡아줄 테니까 거기에 마력을 흘려서, 그래, 느낌 새기고, 그 느낌을 반복해서 익히려 해 봐.”

“네! …흡?”

“화이트?”

야외 훈련장. 방학엔 사람이 거의 드나들지 않는 곳이었다. 아이작과 스노우화이트는 멘토링 중이었고, 루체와 메를린은 거리를 벌린 채 멘토링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돌연 화이트는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올라오는 오싹한 감각을 느꼈다.

‘아까부터 이 싸늘한 느낌은 뭐야…?’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었다. 그 오싹한 감각은 뒤통수 너머, 루체에게서 비롯된 것 같았다.

루체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멘토링 과정을 지켜볼 뿐이었다. 하지만 화이트는 아이작과 신체 접촉을 할 때마다 루체에게서 왠지 모를 오한을 느꼈다.

아이작을 제외한 사람들에겐 차가운 반응을 내보일 뿐인 압도적인 수석, 루체. 그녀는 후배들에게 있어서 동경과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루체를 그리 여기는 후배로서는 화이트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째선지 대화를 한 마디도 하지 않았음에도 귓가에 루체의 속삭임이 들려오는 듯했다.

오직 멘토링에만 집중해라. 아이작에게 딴 맘 먹지 마라. 절대 딴 맘 먹지 마라.

그것은 경고. 흡사 심리적인 결계.

그간 아이작을 향한 많은 여학생의 연심을 차단해 왔다는 점에서 그 효과는 이미 입증된 것. 도로시나 앨리스, 카야 정도는 되지 않는다면 루체의 눈빛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자가, 적어도 이 아카데미의 학생 중에선 찾아보기 힘들 것이었다.

한편, 아이작은 가르치는 데 여념이 없어서 그 오한을 느끼지 못했다. 한 가지 일을 시작하면 그 일에 매몰되고 마는 습성 탓이었다. 좋게 말하면 집중력이 좋고, 안 좋게 말하면 멀티 플레이가 안 된다.

“아, 아니에요. 계속하죠.”

“상태 안 좋으면 말해. 아프면 쉬는 게 우선이니까.”

“네…, 명심할게요.”

루체 쪽으로 돌아가려던 눈을 냉큼 아이작 쪽으로 되돌리는 화이트. 이마에서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심지어 자신은 아이작과 루체가 어떤 사이인지도 알고 있는 처지. 괜스레 루체에게 더욱 신경이 쓰이고 마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루체, 안 심심하냐?”

대뜸 아이작이 루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그녀는 세상 아름다운 선녀처럼 어여쁘게 웃어 보였다. 주위론 꽃잎이라도 흩날리는 것 같았다.

화이트만이 느꼈던 음울하고 무거운 공기가 단숨에 착 가라앉았다. 무서울 정도로 극적인 표정 변화였다.

“괜찮아. 아이작이 가르치는 모습 구경하는 거, 꽤 재밌어.”

“그럼 됐고.”

아이작이 다시 화이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멘토링을 계속하면, 루체의 표정은 다시 냉담하게 변해 버린다.

무서운 루체에 대고 뭐라 할 수 없었기에 화이트는 죽을 맛이었다.

“음.”

아이작은 화이트가 루체를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야, 루체.”

“응.”

다시 루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아이작. 다시 루체의 얼굴엔 따스함이 깃들었다.

“너 뭐 팁 같은 거 없어?”

“팁?”

“화이트에게 도움 될 만한 거. 얘가 어느 수준인지 너도 느꼈을 거 아니야? 나보다 네가 더 효과적으로 도움 줄 수 있는 게 있을지도 모르잖아.”

화이트 키우기에 좋은 꿀팁 좀 제공해 달라는 말이었다.

대마법사이자 얼음의 원왕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명을 가진 아이작도 막상 교육에 있어선 굉장히 정석적인 선배일 뿐이었다.

루체라면 좋은 교육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니 아이작이 그녀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도, 화이트나 메를린에겐 충분히 납득 가는 일이었다.

“도움이 될 만한 거….”

루체는 자기가 아이작의 멘토링을 도울 경우 무슨 이점을 얻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화이트는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미녀 콘테스트에서 1위를 차지한 뒤 우승 소감으로 ‘좋아하는 아이작’이란 표현을 썼으니까. 저렇게 순수한 척하는 애들이 오히려 여우 같은 본성을 숨기는 법일 터다. 절로 경계심이 들고 만다.

하지만. 어쨌든 아이작은 화이트를 성장시키는 데 힘쓰고 있다. 즉, 화이트를 도와주는 건 아이작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게다가 교육 방법에 따라 두 사람의 신체 접촉 빈도를 줄일 수도 있을 것이었다.

루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도와줘 볼게.”

“……!”

화이트는 어깨를 움찔 떨었다.

루체는 아이작에게 다가갔다. 화이트는 억지로 입꼬리를 들썩이며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밀물처럼 밀려드는 긴장감 탓에 차마 루체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에헤헤. 루루, 루체 선배가 도와주겠다니, 영광이에요…!”

애써 훈훈한 멘트를 꺼내는 화이트.

대인기피증이 심했던 루체는 예전처럼 미간을 찌푸리거나 살기를 내뿜진 않았다. 아이작과 함께 지내면서 그 마음의 병은 차차 나아지고 있었으니.

그러나 그뿐이었다. 루체는 얼음장 같은 눈매로 화이트를 노려보곤 아무런 호응도 하지 않았다.

‘무서워…!’

화이트는 그 위압감만으로 겁에 질릴 수밖에 없었다.

“일단, 마력 운용력이 형편없어.”

루체는 아이작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매도로 말문을 열었다.

“네…? 아, 네….”

“연산 속도도 너무 느려. 적어도 낮은 성급의 마법은 곧바로 튀어나와야 할 텐데. 꼭 거북이 같아.”

“거북이….”

“실전이었으면 캐스팅하다 죽었을 거야.”

“네….”

“아이작이 마력으로 틀까지 만들어줬는데 거기에 마력 흘리기조차 제대로 못해. 이제까지의 수련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증거야.”

“네에….”

“그렇다면.”

루체는 정면으로 왼팔을 뻗었다. 흑해 여제의 반지에 달린 흑진주빛 마석이 은은한 빛을 발했다.

차아아아!

허공에 아름답게 빛나는 물이 생성되고, 각각 독특한 형상을 갖추었다. 물 형상은 하나둘씩 늘어나더니, 멀리 날아가서 루체와 거리를 벌렸다.

모두 범고래 마수, 벨로가 보디 빌더처럼 근육을 뽐내는 자세를 취한 형태였다. 전부 다른 자세였다.

실제 모습과는 달리 뽐낼 근육이 돋보였다.

“물이 없는 곳에서 이만한 물 마법을…!”

화이트는 루체의 밀도 높은 마력과 정교한 마력 운용력에 감탄했다.

한편, 아이작은 수십 마리의 근육질 벨로 형상을 보고 당황했다. 수류로 이루어져 있어도 부담스러운 광경이었다.

“무작정 쏘아내는 것보다 목표물을 얼마나 빨리 처리하는지, 매일 시간을 재면서 기록하고 비교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봐. 그러다 보면 알아서 실력도 늘겠지.”

“다 좋은데…, 왜 표적이 저렇게 생겼냐?”

“벨로가 요즘 근육에 관심이 많아져서. 갑자기 생각났어.”

루체는 매일 책상에서 윗몸 일으키기를 하던 범고래 사역마 벨로를 떠올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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