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283화 (328/334)

〈 283화 〉 올드렉으로 (1)

* * *

깊은 밤. 샤를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는 때였다.

상태창 [고유 특성] 칸을 확인했다.

‘[밤의 칼날]….’

고유 특성 [밤의 칼날]. 흔한 표현으로 히든 피스다.

요정에게 유효한 데미지를 줄 수 있는 효과를 지녔다.

내가 스노우화이트의 마력을 쐬며 쌓아온 부산물들이 드디어 결과물로 드러난 것이었다.

나처럼 평범하게 원소 마법이나 휘두르는 사람은 이런 게 없으면 요정에게 대항하기 버거워진다.

‘예상보다 더 빨리 얻었어.’

뭐, 더 빨리 얻었다고 더 좋은 건 없다.

단지 ‘얻었구나’하는 안정감만 들 뿐이지.

‘이안이 이 특성 얻었으면 공격력 버프가 됐겠지.’

우리의 주인공 이안이라면, 신성력과 페어리테일 가문에 내려오는 요정의 힘 덕분에 [밤의 칼날] 없이도 요정에게 유효타를 먹일 수 있다.

그래서 이안이 [밤의 칼날]을 얻었다면 공격력 버프 정도의 메리트만 얻었을 터였다.

툭툭.

별안간 창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몸에 가방을 멘 조류 마수가 부리로 창문을 연신 두들기고 있었다.

‘브이?’

브이. 시급히 서신을 보낼 때 이용하는 우편 배달부였다.

휙. 손을 휘저어 상태창을 없애고 침대에서 내려가 창가로 향했다.

창문을 열자 브이가 길쭉한 부리로 몸에 멘 가방에서 편지 하나를 꺼내 내게 건넸다.

편지를 받고 브이가 내민 서류에 수령 완료 사인을 했다. 브이는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날갯짓하며 창가를 떠나갔다.

‘뭐지?’

편지에 찍힌 헤겔 마탑주의 인장. 발신인은 아리아 릴리아스인가.

그녀가 단순히 안부나 물으러 편지를 보냈을 리 없었다. 비밀 연구에 이변이 생겼거나, 내게 보고해야만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편지 봉투를 열어 안에 든 편지지를 꺼내 읽었다. 내용은 짧았다.

[ 알아낸 정보를 공유하고자 편지를 보냄.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 것. ]

인사 없이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익숙했다. 아리아는 겉치레 따윈 신경 쓰지 않으니까.

[ 좋은 소식은 네가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명계의 균열을 넓힐 방법을 찾아냈다는 것. ]

[ 나쁜 소식은, 네가 원하는 때 균열을 넓힐 수 없다는 것. ]

[ 조만간 정확한 정보를 얻은 뒤 내가 찾아갈 테니, 자세한 이야기는 그때. ]

내용이 끝났다.

편지지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마력의 흐름도 느껴봤으나 특별한 건 없었다.

‘균열을 넓힐 순 있지만 원하는 타이밍에 그럴 수 없다?’

즉, 명계로 갈 수 있는 시기가 강제된다는 얘기였다.

뷔엘이 있는 이상 섣불리 헤겔 마탑에 찾아갈 수 없다는 건 아리아도 잘 안다. 명계로 이어지는 균열을 뷔엘이 발견한다면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니까.

그렇기에 아리아는 상황을 봐서 날 찾아오겠다고 언급한 것 같았다.

한동안 아리아를 기다리기로 했다. 적절한 때, 그녀는 내게 찾아올 것이었다.

……

푸르게 피어난 잎이 서서히 붉게 물들어갔다. 비가 오고 더위가 물러나니, 점차 서늘한 계절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 몇 주가 흘러, 아침이었다.

메르헨 아카데미 교문엔 많은 마차가 대기 중이었다. 저마다 메르헨 아카데미 소유의 마차였다.

오늘은 아카데미 대항전이 열리는 도시, 올드렉으로 떠나는 날이었다.

교복 차림의 학생들은 자신에게 배정된 마차에 올라탔다.

아카데미 대항전의 참가자로 정해진 학생들은 앞 열에 있는 마차에. 관객으로서 참가 의사를 밝힌 학생들은 나머지 마차에.

“나는… 저거네.”

교직원에게서 받은 쪽지엔 숫자 4가 적혀 있었다.

4번 마차를 찾았다. 앞 열에 있는 마차였다.

참가자 선출 테스트가 진행된 결과, 나는 아카데미 대항전 참가 자격을 얻었다.

내 실력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선출되지 않는 편이 이상하지.

“아이작 선배님?”

돌연 뒤에서 귀여운 음성이 들렸다.

발을 멈추고 고개를 뒤로 돌렸다. 흑진주빛 머리칼의 소녀가 시야에 들어왔다.

무녀 미야였다.

“미야?”

내가 이름을 불러준 게 기분 좋은지, 미야는 엉덩이 뒤로 두 손을 모으고는 환하게 미소 지었다.

“몇 번 마차세요?”

“4번. 근데 넌 알 필요 없지 않아? 동승할 일 없을 텐데.”

미야는 견학생. 메르헨 아카데미 소속이 아니므로 아카데미 대항전에 참가할 수 없다.

즉, 미야가 마차들의 행렬 사이에 있다는 건 관중으로서 참가한다는 의미일 터.

“몇 번 마차인지 알면, 올드렉까지 가는 길에 아이작 선배님이 어디쯤 가고 계시는지 알 수 있게 되잖아요?”

손가락을 휙휙 휘저으며 대답하는 미야.

그 손가락의 움직임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의미 없는 제스처 같았다.

“그런 건 알아서 뭐 하게?”

“그냥요.”

음흉한 뜻 같은 건… 없네. 단순한 재미, 친근감의 표현에 불과했다.

매번 루체와 함께 다니다 보니, 의미심장한 말을 들으면 음습한 뜻이라도 품은 건 아닌지 지레 의심해 버리고 마는 버릇이 생겼다.

재수 없는 메이의 얼굴과 목소리가 퍽 각인된 까닭도 있을 것이었다.

미야는 천연이라는 표현에 가까운 애라, 딱히 사고방식이 복잡하거나 음습하지 않았다.

“그리고.”

미야는 내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손차양으로 입을 가리고 나지막이 말했다.

“아이작 선배님, 너무 바쁘신 거 아니에요? 저희, 언제쯤 제대로 얘기 나눠요?”

단둘이 반드시 해야 할 얘기가 있지만, 굳이 지금 할 필요가 없는 얘기다 보니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다. 신경 쓸 일이 많아서 그랬다.

“미안해. 다음에 시간 될 때.”

“저, 기다리기 힘든데.”

얘도 칭얼대는구나.

“마에한테 아이작 선배님 얘기 많이 들었어요. 둘이서 얘기 나누는 거, 사실 엄청 기대하고 있었거든요.”

마에는 구미호 사역마의 이름이다. 오랜만에 들어보네.

“되도록 빠른 시일 내로. 부탁 드려도 되죠?”

“…응.”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동료 될 애다. 나중에 이야기는 재밌고 실감 나게 해줄 작정이었다.

“기다린 만큼 보람 있길 바랄게요. 그럼, 조심히 가요.”

미야는 내게서 떨어지며 웃는 얼굴로 인사하곤 등을 돌리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떠나갔다.

메이의 인상이 떠오르는 탓에 여전히 미야가 영 적응되지 않았다. 얘가 이렇게 순한 애가 맞나, 하는 엉뚱한 의문만 머릿속을 메워갔다.

마차 뒤에 숨어서 나와 미야를 몰래 노려보던 루체를 무시하고, 나는 4번 마차로 향했다.

아무리 귀여워도 저 상태의 루체는 경험상 피하는 편이 좋았다.

“아얏!”

마차 뒤에서 튀어나온 여자애와 부딪히며 실수로 그 애의 발을 밟아버렸다.

그녀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나는 다급히 발을 뺐다.

“미안, 괜찮아?”

“으으…, 어? 아, 아이작 선배님?”

상체를 숙이고 신음하며 고통을 참던 여자애, 타린 바르탕은 나를 보더니 흠칫 놀랐다. 그녀는 미야와 같은 마법학부 견학생이었다.

타린은 눈을 한껏 반짝였다. 존경심이 담긴 눈빛이었다.

“와아…. 괜찮아요! 저야말로 밟혀서 죄송합니다!”

“어?”

영문 모를 사과였다.

“타린 바르탕, 어서 이쪽으로 와라.”

“앗, 네엣! 아이작 선배님, 다음에 뵐게요!”

타린은 감독관의 부름을 받고서 나를 제치고 떠나갔다.

타린 바르탕.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별다른 비중이 없던 애다.

‘노아가 대항전 참가하는 게 쟤 때문이었나?’

문득 철의 마력을 보유한 인물, 노아 바르탕의 행동 원인이 바로 저 여동생이었다는 기억이 났다. 별로 안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굳이 상기하고 있진 않았다.

내가 아카데미 대항전에 참가하는 가장 큰 목적은 단연 경험치다. 다만, 부차적인 목적도 있었다.

‘노아하고도 제대로 붙어야 하는데.’

노아 바르탕과의 격돌.

철의 요정 라크닐과 싸우기 전에 진정한 힘을 개방한 노아와 맞붙는다면, 철 마법을 상대하는 데 연습이 될 것이었다.

어느 마차 뒤에 숨은 채 나와 타린을 지켜보던 루체를 무시하고, 다시 4번 마차로 향했다.

‘동승자는….’

학생 중 감독관 역할로 뽑힌 사람이 있다. 도로시라는 이름의 여신님이다.

기왕이면 그 분이 동승자면 좋을 텐데. 올드렉까지 가는 내내 눈 호강하면서 행복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기적이 일어날 리는 없겠지. 그냥 어색한 사이가 아닌 동승자면 다행이었다.

4번 마차에 이르고서, 마부와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마차 문을 열었다.

“오오, 아이작 선배님 아니십니까?!”

“아벨?”

마차 안에 있던 사람은 셋. 그중 한 명은 시엘의 동생인 아벨 카르네다스였다.

아벨은 들뜬 목소리로 날 반갑게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또 다른 한 명은 차가운 인상을 지닌 연두색 머리칼의 여학생, 로앤나 셸턴이었다. 그녀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나도 고개를 까딱거렸다.

합동 전술 평가 때 나한테 쓸렸던 멤버였다. 화이트까지 있으면 완벽할 것이었다.

문제는 남은 한 명이었다.

“반갑군, 아이작 학생.”

갈색 머리의 론자이너스 강사가 입꼬리를 올리며 나를 맞이했다.

하필 이놈이냐.

“…마차 바꾸는 거 가능합니까?”

“그건 원칙상 어렵겠는데?”

빌어먹을 론 강사는 시시덕거리며 이 상황을 즐거워했다. 교수 대용이다 보니 감독관으로도 선출된 건가.

다른 동승자가 있으니 딱히 흉흉한 짓은 안 하리라고 생각하지만, 론 강사와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 영 께름칙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에이, 아이작 선배님! 그런 말씀 마시고~.”

내 사정을 모르는 아벨은 웃는 얼굴로 나를 채근했다.

론 강사와 천위 시계를 지닌 아벨이 같이 있어도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이다.

제2의 시간이 이미 흘러가기 시작한 이상, 누가 천위 시계에 무슨 짓을 벌여도 예정된 힘의 방출을 막는 건 불가능하니까.

애당초 론 강사는 자기 신념에 따라 나를 제외하곤 아무에게도 해를 가할 생각이 없으리라. …지금은.

“안 타고 뭐하고 있어? 어서 타라.”

“예, 뭐….”

론 강사 또한 채근하자, 나는 안경을 한 차례 들치며 선한 미소를 내보였다. 겉치레였다.

여태 괴묘-체셔가 지켜본 바, 론 강사는 아카데미에 온 뒤로 수상쩍은 행동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는 아카데미 사람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고 있으며, 강의까지 잘하는 까닭에 그야말로 완벽한 시간강사로 평가 받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고 마차에 올라탔다.

푸욱.

내가 앉은 자리가 푹 꺼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부는 의아해하며 우리 쪽을 돌아보았다.

“음?”

“……?”

아벨과 로앤나도 마차의 기울임을 느꼈는지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내가 입은 옷 때문이었다.

마력을 담은 만큼 무게가 늘어나는 마도구로, 아침에 미리 마력을 빼놔서 무게를 조절해 놨다.

그러나 여전히 한 사람 무게 치곤 무거운 모양이었다.

마부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이작 선배님, 혹시 아침에 과식…?”

로앤나는 멍청한 질문을 하려는 아벨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 * *

베텔 아카데미의 교문에 마차 여러 대가 질서정연하게 세워져 있었다.

잿빛 머리칼을 뒤로 묶은 남학생, 노아 바르탕은 썩은 동태 같은 눈으로 마차 한 대에 탑승했다.

동승자인 여학생들은 한창 수다를 떨던 중, 노아가 나타나자 목소리를 확 낮추고 서로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왜 하필 쟤야…?”

“음침해서 싫어….”

노아의 귀에도 그 작은 목소리가 들렸으나, 그는 조용히 창밖에 시선을 고정했다.

사람들이 자신을 거부하는 소리는 노아에겐 일상이나 다름없었다

마치 새의 지저귐이나 시냇물 흐르는 소리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자자, 다 왔지? 빠뜨린 건 없고?”

“네에.”

감독관 역할의 교관이 마차에 탑승하며 묻자 여학생들이 대답했다.

교관은 노아의 옆자리에 앉았다. 노아는 교관을 일별하고는 다시 창밖을 응시했다.

“크크. 이 녀석, 음침한 건 여전하구먼.”

“교관님…, 머리….”

교관은 호탕하게 웃으며 노아의 잿빛 머리칼을 마구 쓰다듬었다. 노아는 퉁명스럽게 투덜대며 머리칼을 정리했다.

“인마, 너 왜 갑자기 대항전에 참가할 마음이 든 거냐? 항상 하위권이나 전전하고 소극적이던 놈이.”

교관은 웃는 얼굴로 노아에게 물었다.

아카데미 대항전 참가자 명단에 노아의 이름이 적혔던 때, 베텔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혀를 내둘렀다.

어찌 보면 최약체. 참가 자격 심사도 재주껏 아슬아슬하게 통과한 남자다. 만약 실력자들이 좀 더 지원했더라면 노아의 자리는 없었으리라.

명문 아카데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승부를 겨루는 대형 행사에서, 아카데미의 수치를 보이고 싶지 않다는 건 모든 학생이 동감하는 바였다.

결국, 노아처럼 실력이 부족하고 음침한 학생은 대항전 참가자로서 환영받지 못했다.

노아도 그 사실을 알았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노아는 평상시와는 달리 의욕을 내보였고, 굳이 대항전에 참가하려고 했다. 교관은 그 연유가 궁금했다.

“…여동생이 올 것 같아서요.”

“여동생?”

메르헨 아카데미에 견학 중인 여동생, 타린 바르탕.

그녀가 관중으로 올 가능성이 높다고 노아는 판단했다.

“적어도 오빠로서, 이런 행사에 빠지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항상 틈만 나면 싸우곤 했던 여동생이었지만, 적어도 녀석에게 열심히 하는 모습 만큼은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이 오빠 된 도리라고 노아는 생각했다.

노아의 마음가짐에 교관은 피식 웃었다.

“열심히 하려는 놈한테 뭐라 안 한다. 모쪼록 참가자 된 거, 한번 제대로 해 봐라.”

“…예.”

노아는 무덤덤하게 대답하고 다시 창밖을 응시했다.

철의 마력을 보유한 남자.

힘을 숨기고 다니는 탓에 자각하지 못했으며, 아직 아무도 알지 못 하는 사실이 있었다.

노아는, 베텔 아카데미에서 누구보다도 강한 인물이었다.

한편, 라이젤 아카데미.

올드렉으로 출발하는 마차들 중 선두로 나아가는 마차 내부.

한 남학생이 쭈뼛거리며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한스 님, 아까부터 말씀드릴까 고민했는데….”

“뭐가?”

“정말로 메르헨 아카데미의 빙제가 대항전에 출전할 거라 보십니까? 소문이 사실이라면, 아무도 이길 사람이 없지 않을까, 해서…. 아무리 한스 님이라고 해도….”

“참가해줘야 해. 그래야 우리가 대항전에 참가하는 보람이 있지.”

“예?”

나란히 앉은 쌍둥이 남학생 중 한 명, 한스는 창가에 팔꿈치를 올리고 턱을 굈다.

“우리 형제는 뭉치면 무적이야. 상대가 누구든, 우린 지지 않는다.”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천재들이 메르헨 아카데미에 몰리라는 법은 없다.

메르헨 아카데미 이외의 명문 아카데미들도 저마다 강력한 학생들을 품고 있기 마련이었다.

라이젤 아카데미의 최대 전력, 맥그리거 쌍둥이 형제.

그들은 빙제와의 승부를 바라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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