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002 나약하디 나약한 육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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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뜨겁다. 온 몸의 근육이 찢어질 듯 요동쳤다.
온 몸의 뼈가 깨어지고 다시 맞춰지고, 근육이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며, 마나는 마치 불을 붙인 것처럼 격렬하게 전신을 내달리는 감각.
번갯불이 눈앞에 번뜩이고, 온 몸의 근육은 지옥의 불길에서 제련하듯 망치로 때리는 것만 같다.
그 와중에도 기절은 허락되지 않았다.
정신을 잃을 찰나가 되면 뒤통수를 후려치는 듯한 충격과 함께, 나는 다시 격통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러기를,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며칠?
몇 달?
혹은… 불과 몇 초?
……….
………….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점차 고통이 사그라들 즈음에야 나는 다른 곳으로 생각을 돌릴 수 있었다. 여전히 온 몸의 근육이 삐걱였지만, 사람은 역시 반복되는 것에는 적응하는 법이었다.
…아무리 끔찍한 고통이라고 해도 말이다.
‘썩을. 살아는 있는 건가?’
당장은 확신할 수 없었으나, 대답은 곧 스스로에게 들을 수 있었다.
고통에 적응되어가던 찰나, 말단부터 서서히 감각이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손가락 관절이 한둘씩 삐걱이고,그 다음에는 발가락, 무릎…….
천천히 근육의 일부가 떨려 오기 시작했고, 나 스스로의 심장 박동을 느낄 수 있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나는 눈을 떴다.
“………….”
하늘은 검게 물들어 별과 달이 세상을 굽이보고 있었으나, 주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밝았다.
별빛 때문은 아니었다. 주변을 비추고 있는 것은 푸른 색의 불꽃이었다.
그것은 따스하지 않았으며, 도리어 시리도록 차가워 조금씩 돌아온 내 손끝의 감각을 다시 얼려놓고 있었다.
나는 가까스로 주먹을 쥐고 몸을 일으켰다. 부스스, 흙과 모래먼지가 몸에서 떨어져 흘러내린 다음에야, 내 시선은 비로소 주변을 돌아볼 수 있었다.
상황은 처참했다.
‘……망할.’
당장 시야에 스치는 것은 직경 수십 미터는 될 법한 거대한 벽이었다.
아니, 벽이 아닌가.
정정하자. 그것은 구덩이였다.
깎아지른 절벽처럼 만들어진 거대한 구덩이의 한복판에… 내가 있었다.
이곳에 사람의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부숴진 집과, 쓰러진 나무, 그리고 흙더미 사이의 돌덩이들…….
이곳에 살아 있는 생명체는 나뿐이다. 다른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이 멍청한 일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눈 앞에 벌어진 참극은 이루 말로 형용하기가 힘들었다.
……오히려, 내가 살아 있는 것이 놀랍기까지 하다.
나는 본능적으로 상황을 파악했다. 결코 우연히 일어날 수는 없는 폭발이다.
즉 이것은 습격. 혹은 계획된 암살.
‘……벗어나야 한다. 빨리.’
강렬한 충격만큼이나 판단 또한 신속했다.
폭발을 계획한 범인이 이 근처에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정말 끔찍하고 상상하기 싫은 경우지만, 말론을 비롯한 기사 놈들이 귀족의 사주를 받고 이 일을 벌였다는 경우도… 가능성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
‘부디 아니길 바란다만.’
어찌 되었든, 벗어나야만 한다.
나는 천천히 다리로 땅을 딛었다.
처음은 실패했다. 다리에 힘이 없어서, 고통스럽게 무릎을 바닥에 찧을 뿐이었다.
나는 세 번째 시도에서 겨우내 두 다리로 일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폭발의 충격 때문인가?’
나는 그리 자문했지만, 곧 누구의 대답 없이도 답을 알 수 있었다. 내 시야의 한구석에, 은색의 머리칼이 흘러내린 순간이었다.
나는 순간 그것이 커튼의 술 같은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멍청한 생각이다. 집이 폭삭 내려앉은 마당에 그딴 게 남아 있을 리가.
아무튼, 나는 시야에 방해되는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날리려 시도했지만— 그것은 순간 펄럭일 뿐, 곧 원래 시야를 가리던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기묘하게도, 오히려 시야의 반대쪽과 위쪽에서도 그 길다란 머리칼이 흘러내렸다.
‘이게… 뭐야.’
숨이 빌어먹게도 가빠온다.
무릎을 꿇은 채로, 나는 계속해서 시야를 가리우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것을 이마 위로 쓸어 올릴 즈음에야 나는 그것이 내 머리카락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곧, 그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내 팔도…….
……어딘가 이상했다.
‘내… 팔이?’
팔.
다음은 손.
납득하지 못하며, 가슴,
그리고 다음은, 몸 전체를.
내 시선은 그 모든 것을 훑었다. 당연하게도 옷은 전부 폭발에 휩쓸려 없어졌으니, 내 몸을 덮고 있는 것은 약간의 흙먼지와 차디찬 공기 뿐,
나는 내 몸의 모든 것을 여과없이 바라볼 수 있었다.
……뭐지?
꿈인가?
한 순간, 나는 내 팔이 뼈만 남기고 전부 사라진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한 살이었으며, 멀쩡한 사람의 팔이었다.
도리어 차가운 불빛에 반사되는 그 피부는 너무나도 새하얗고 부드러워서, 마치 갓난쟁이의 피부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마지막 부정을 외치듯 입을 열었다.
그것은 이를 테면 갓난아기의 배냇짓이었으며, 현실을 부정하는 한 번의 탄식이기도 했다.
“이런, 미친…….”
나는, 여자아이가 되어 있었다.
거친 발걸음 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어떤 훈련도, 연습도 하지 않은 그저 도망을 위한 발악의 몸부림.
빌어먹게도, 그것은 내 발소리였다.
낙엽을 밟고, 돌맹이를 밟고, 그저 지칠 새도 없이 산길을 달린다. 굳은살 없는 발바닥에서는 피가 흥건히 흘러 흙바닥을 적시고 있었지만, 쉬고 있을 겨를은 없다. 도망쳐야 했다.
굴욕적인 일이라고?
씨발, 알 게 뭐냐!
내가 언제나 애새끼들에게 가르치는 첫 번째는, ‘자존심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내 두뇌는, 내 경험은 당장 이 장소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 직감을 믿을 뿐이었으니, 온갖 나뭇가지에 살갗이 찢겨지고 발바닥이 흉측하게 뒤틀려도 계속 숲길을 내달릴 뿐이었다.
“허억… 허억…….”
높은 음의 신음이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온몸이 만신창이였다. 구덩이를 오를 때 까진 무릎과 손바닥은 여전히 쓰라렸고, 발바닥은 말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이 와중에도 여전히 온몸의 근육들은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내가 멈춰선 것은, 내 오두막에서 한참은 벗어난 장소. 숲의 외곽에 있는 작은 샘에 다다랐을 때였다.
아마, 이 정도까지 오면 이미 포위망은 벗어났을 것이다. 추적대가 따라붙을 가능성이 있으니 안심하고 쉴 수는 없지만, 조금 정도는 숨을 돌려도 되리라.
“……물.”
손을 뻗어 한가득 퍼 올린다고 올렸으나, 작은 손바닥에 고인 물은 고작해야 한 모금 정도다.
망할.
나는 그냥 그대로 쓰러져 샘에 대가리를 박았다.
이대로 뒤질 생각이야 없다만, 팔다리를 다시금 움직이는 것보다는 이 쪽이 더 편했다.
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
그렇게 몇 초가 지났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물 속에서 눈을 떴다.
그리고…….
…앗 씨발 눈 따가.
“푸우! 아, 눈! 아악…….”
나는 발악하듯 눈을 비비며 물 위로 튀어올랐다.
허리가 순간 우드득, 하고 비끗한 것 같았지만, 그것보다도 눈의 고통이 더 컸다.
뭔가에 찔렸냐고?
아니.
그냥, 마치 비눗물이 눈에 들어간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그저 척수반사적인 행동이었다.
눈을 몇 번이고 비비고 나서야 나는 눈을 다시 깜빡일 수 있었다.
‘망할, 이딴 게 내 몸이라니.’
예전에는 바닷물에서 눈을 떠도 전혀 끄떡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전장은 하늘과 바다를 가리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 굳은살 하나 없는 몸은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하아…….”
빌어먹을.
비참하기 짝이 없군.
나는 눈을 비비며 내 손과 팔을, 그리고 몸을 돌아보았다.
유려한 곡선을 타고 흘러내리는 이 몸은, 분명한 여자의— 그것도 어린 소녀의 것이었다.
하얗디 하얗고, 조금의 상처도 흉터도 없는 새하얀 몸.
“이게… 나라니.”
나는 천천히 수면 위로 얼굴을 비춰 보았다.
잔뜩 묻었던 검댕은 이미 조금이나마 씻겨나간 이후였다.
그곳에는 소녀가 있었다.
등허리까지 내려오는 머리칼은 수면에 맞닿아 미묘한 촉감을 머리에 전해오고 있었고, 지칠대로 지친 기색이 눈꼬리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인상은 전체적으로 퍽 예쁘다— 라는 말을 아끼지 않을 정도는 된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는 되었지만.
…그럼 뭐 하는가?
내 몸인데.
강건하던 근육은 이제 없었다. 반백년 넘게 평생 단련해 오던 강철 같은 용사의 신체는 온데간데 없었으며,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은 어째서인지 연약한 소녀의 육체.
이 와중에도 나를 분노케 하고 있는 것은, 이게 정말로 ‘내’ 몸이었다는 점이었다.
‘변명할 여지도, 부정할 나위도 없군. 이건… 나다.’
환생, 전생, 윤회…….
내가 써먹으려 한 것은 아니지만, ‘부활’에 관한 온갖 전승은 들은 바가 있었다.
수십 년을 전장과 여행길에서 생활하다 보면, 싫어도 소문에는 빠삭해지기 마련이니까.
아무튼, 그것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몸으로 두 번째 인생을 산다는 점이었다.
부활이라는 놈들은 대체로 그러했다.
온전한 부활이라는 녀석은 신의 기적으로도 만들어낼 수 없는지라, 흑마법사들도 연명을 위해 다른 육체를 찾는 것을 몇 번인가 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가.’
연약하디 연약한 소녀의 몸. 그러나, 이것은 여전히 나의 몸이었다.
확신하는 이유?
단순하다.
나는 물가에 비친 소녀의 큰 눈동자를 응시했다.
보라색과 황금색이 섞인, 인간의 것이 아닌 것 같은 신기한 눈동자. 사람들이 이르기를, 새벽빛 같다고 일컫던 눈동자가 그곳에 있었다.
새벽빛의 동공.
유전학적으로도, 그리고 어떤 마법으로도 이 눈을 위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잘 알고 있지. 모를 수가 없어.’
내 입으로 말하긴 뭣하지만 나는 어딘가에서는 우상처럼 떠받들어지는 모양이고, 나를 따라하려는 미련한 젊은이들은 도처에 널려 있는 모양이니.
이미, 몇 번이고 따라해보려 헛짓거리를 반복하는 멍청이들을 수도 없이 보아 왔다.
이것은 여명 식(?)의 계승자들에게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다.
나의 검술, 론하르트의 방식. 여명(?).
엄밀히 말하자면 내게만 있는 눈동자는 아니지만, 이 나이대의 소녀가 이만큼 뚜렷하게 새벽빛의 눈동자를 지니는 것은 불가능하다.
평생동안 쌓아온 수련과, 마나 서클에 깃든 마나가 흘러넘쳐 겉으로 표현되는 과정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확신했다. 이것은, 내 몸이라고.
“대체… 무슨 일이냐. 이게.”
이성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아니, 납득할 수 있으면 그게 미친 놈 아닌가?
뒤지면 뒤지는 거지, 여자애가 되는 건 대체 무슨 좆 같은 상황이란 말인가.
물론 이 노년에 전쟁터에서 뒤지는 걸 바라지는 않았지만…….
‘이런 꼴로 죽는 건 더더욱 사양이다.’
후우.
피 섞인 침과 한숨이 한 데 뒤섞여 토해졌다.
충분히 쉬었다. 나는 흙먼지를 털고 일어났고, 물로 대충 상처 부위를 닦아냈다. 전부 타박상이었기에, 출혈로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죽지 않는다면, 사람은 달릴 수 있다.
나는 동이 트기 전에 마을로 내려갔다.
해가 고개를 들이밀기 직전의 새벽, 대도시의 위병들도 가장 경계가 헤이해지는 시점이다.
하물며 작은 마을임에야, 굳이 주의할 요소도 없었다.
그렇기에, 누군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과도한 경계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담벼락 하나하나를 지날 때마다 주변을 돌아보며 발소리는 있지 않은가 주의하는 지금의 나를 본다면 말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이 새벽에 전라의 나체로 돌아다니는 소녀라는 것은, 어떤 사건이 생겨나더라도 썩 건전한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못하게 하는 마력이 있었으니.
‘미안한 일이지만.’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창틀에 널려 있는 빨랫감 몇 개를 훔치는 일이었다.
열댓 살 여자아이의 옷이라는 것은 비교적 귀하지만, 굳이 그것이 집착하지 않으면 입을 만한 옷은 얼마든지 있었다.
“……좀 낫네.”
조금은 따쓰해져 가라앉은 귀여운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렸다.
그리고 곧, 자괴감이 밀려왔다.
망할, 이딴 게 내 목소리라는 게 아직도 적응되지 않는다.
억지로 목소리를 깔아 봐도 결국은 성숙한 ‘척’하는 어린아이의 흉내일 뿐.
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갔지만, 나는 의식해서 악쥔 주먹을 풀었다.
그러지 않아도 피투성이인 몸, 구태여 상처를 늘릴 필요는 없으므로.
“킥.”
헛웃음이 나온다.
한순간의 따스함 뒤에 잇따르는 것은, 끔찍할 만큼의 박탈감이었다.
피부를 스치는 옷감의 이 사소한 따뜻함에 안도하는 꼴이라니.
다른 누구도 아닌, 이 내가 말이다.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나는 다시금 발을 내딛었다. 전부 까진 것을 모자라 푸르게 변색된 발바닥이 끔찍하게 쓰라렸지만, 나는 달려야만 했다.
추한 도망, 비참한 도주.
상관없다.
그 뒤에는 더더욱 끔찍한 복수로 되갚아줄 테니까.
복수는 살아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반드시 복수할 것이다.
‘어떤 새끼든지, 반드시 찾아서…….’
도륙을 내 버릴 것이다.
반드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