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004 까마귀 둥지, 뱀의 동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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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하늘 높이 떠오른 광휘의 총체와, 밤의 어둠을 수놓는 그의 남매,
그리고 산에 뛰노는 들짐승부터— 길가에 채이는 돌멩이까지.
이 세상 어딘가에서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신앙이 형태의 일종을 이루고 있지만, ‘신’의 존재에 대한 토론을 하자면 그것은 분명히 지루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어찌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마법의 진리로도, 강건한 육체로도 증명할 수 없는 질문만이 무한히 반복될 터인데.
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들은 인간을 보살피지 않는가.
우리의 신앙은 어디로 가는가.
그러한 종류의… 수많은 질문들에 대해서 내려지는 대답은, 결국은 ‘무의미하다’혹은 ‘모른다’로 귀결될 것이 분명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누구도 신을 직접 목도한 일은 없고, 그저 ‘신탁이 내려왔다’라는 풍문만이 시대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흩날려 스러진다.
그런 와중에, 신에 대한 믿음을 묶어 놓는 것은 그저 인간의 믿음.
그리고 그런 믿음이 한 데 모여 형태를 이룬 것이, ‘신전’이라는 구조물이었다.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가르치고,
사람에게 희망을 심는 역할의 총체.
그리고 그 신전은, 이 변방의 도시에도 존재했다.
도시의 풍광처럼 평화롭고 고요하게, 언덕의 한켠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면서 말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태양신의 신전은, 갑작스러운 환자로 인해 때아닌 열병을 앓고 있었다.
“세, 세상에! 자매님! 어서 물과 붕대를!”
“어쩌다 이런 상처를…!!”
“일단 신관님을 불러! 얘, 정신 차려 보렴! 괜찮니?”
수녀 여럿이 모여 소녀를 신전 안쪽으로 안고 들어갔다.
이 소녀가 언제부터 신전 앞에 쓰러져 있었는지는 누구도 보지 못했다.
자신 몸에 맞지 않는 크기의 셔츠와 바지를 입고, 온 몸을 다 가리는 망토를 두른 은발의 소녀.
그 행색은 퍽 수상하여, 일견 보기에는 타국에서 도망친 노예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무어 중요할까.
처음 발견했을 때 그녀는 전신에 온갖 상처를 입고 정신을 잃어 있었다. 그녀가 누구든, 어떤 일을 당했든, 지금은 당장 살려 놓아야만 했다.
“대체 누가 이런 끔찍한 짓을……!!”
팔과 다리에 무수히 난자된 타박상은 대체 무슨 일을 당한 것인지 짐작도 되지 않았고, 헐 대로 헐어 뭉개진 발바닥은 분명히 흉터가 되어 영원히 그 몸에 남을 것이 분명했다.
헐레벌떡 달려온 신관이 그 손에서 신의 은총을 흩뿌리기 시작했지만, 소녀의 의식은 돌아올 줄을 몰랐다…….
내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신전이었다.
어디 가서 뭘 하든 간에, 이 상처들을 가지고는 성공할 일도 실패하게 될 테니까.
우선 순위를 따지자면 당연히 치료가 먼저다.
문제는, 신관의 치유나 축복은 애미 뒤지게… 아니, 어마어마하게 비싸다는 점이다.
이 태양신의 신전이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성왕이 바뀌어서 그런지 점점 속물적이고 염세적으로 바뀌어 갔다.
말이야 '헌금'이라며 신에 대한 감사의 표시라지만, 스스로 내야 헌금이지 강제로 뜯으면 그건 그냥 삥 아닌가.
‘이게 다 카를로스 그 개새끼 때문이야.’
우리 파티일 때 콱 조져 놨어야 했는데… 아무튼.
그렇다 보니, ‘약간’의 꼼수가 필요했다. 돈이 없는데 어쩌냐!
'양심을 팔아야지!'
대략 십 분 전, 나는 아무도 모르게 신전 앞에 엎어져 쓰러졌다.
도시에서 누가 뒤지든 간에 그게 곧바로 신전 탓이 되지는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인간은 언제 어디서든 죽기 마련이고, 아무도 모르게 스러지는 생명까지 신전이 챙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다만, 신전의 코앞에서 뒤지면 그건 좀 문제가 된다.
태양신의 신전은 기본적으로 찾아오는 자를 내치지 않는다.
신자의 맞이는 태양신의 자비로움을 헌사하는 상징과도 마찬가지이며, 찾아온 신자를 박대하는 것은 곧 신관의 무능을 입증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에.
그러니까— 신전의 앞에서 누가 죽는다는 것은, 곧 태양신의 자비에 의심을 가게 만드는 행동과 다름이 없다는 소리다.
어디사는 누군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일단은 살려놔야 한다.
그게 신전의 생리고, 생태인 법이다.
……라고, 카를로스가 삼십 년쯤 전에 나한테 말한 게 기억이 난다.
'그 씹새끼가 치료비랍시고 헌금을 뜯는 게 잘못이니까, 나는 당당해도 돼.'
여행길에 그놈한테 뜯긴 돈만 합쳐도 작은 성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모자라면 뭐…….
부족한 치료비는 신이랑 일대일 기도로 해결했다고 치자.
내가 그렇게 했다는데 뭘 어쩔 건가? 꼬우면 신한테 대답이라도 들어 오던가.
‘자, 어디 볼까…….’
나는 침대에 누운 채로 게슴츠레 눈을 떴다.
이곳은 병실로 사용하는 공동 공간인 듯 보였고, 방의 한켠에서 수녀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것이 귓가에 들려왔다.
“어쩌다 저런 걸까요?”
“글쎄요, 몸에 낙인이 없는 걸 보면 도주 노예는 아닌데…….”
“메델론 국경이 근처니까, 어쩌면 납치되었다가 도망친 아이일지도 몰라요.”
“머릿결을 보면 귀족 아이 같기도 하고.”
다행히도, 그녀들은 좋을 대로 오해하고 있었다.
그 입에서 ‘실베스터’의 이름 따위는 그 토씨 하나조차 거론되지 않았다.
그저 알 수 없는 소녀, 라는 주어만이 반복될 뿐이었다.
당연한 일이기는 하다.
이 소녀의 몸을 보고서 '실베스터'라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은 상당히 생뚱맞은 일이니까.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내가 이 꼴이 된 걸 들킨다면…….’
그건 좀끔찍하겠군.
뭐가 어찌 되더라도 썩 좋은 결말을 맞이하지는 못할 것이다.
두 손으로 채 다 못 샐 원수들은 칼을 갈고 내 목을 치러 올 테고, 혈기어린 멍청이 놈들도 내 목을 노리고 달려들 테지.
명성이라는 것은 그만큼 무섭고, 때로는 내 목을 노리는 칼이 되기도 하는 법이니.
‘하지만 뭐… 어쨌든 간에.’
그게 당장 일어날 일은 아니다.
최소한 이 신전에 있는 누군가가 내 정체를 의심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누구인지, 어쩌다 이렇게 다쳤는지는 의심하긴 하겠지만—
‘상관없지.’
당장 해가 지는 대로, 아니면 감시하는 사람이 줄어드는 대로…….
도망쳐 버릴 테니까.
“신관님! 신관님! 아이가… 아이가 사라졌습니다!!”
“뭐라고?!”
저만치 멀리에서 그런 소란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굳이 청력을 강화해가면서 까지 듣고 싶지는 않았으니 그저 짐작일 뿐이었다만, 빈 침대를 발견했다면 분명 난리가 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나를 본격적으로 수색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에는 부외자고, 내가 뭐 특별한 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니까.
오늘 밤, 아니면 길어 봤자 하루이틀 정도 소란스럽고 말겠지.
‘그리고 나는 그때쯤 도시를 떠났을 거고.’
휘유.
나는 맑은 밤공기를 마시며 거리를 걸었다.
이미 깊은 밤이어서, 거리를 거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주정뱅이의 술주정이나,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노상들의 신음소리가 간간히 들려올 뿐이다.
하지만 그것도 내가 지금 걷고 있는 뒷골목에는 닿지 않는다.
거리 사이의 어둠으로 파고들어, 더욱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골목.
끔찍한 악취가 코를 찔러온다. 시체의 냄새, 피의 냄새, 질병과 가난의 냄새.
과거의 나에게는 미치도록 익숙한 냄새였지만, 지금은 헛구역질을 애써 참는 것이 한계였다.
“……우웩.”
결국은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위액을 개워내고, 나는 어떤 나무 문의 앞에 섰다.
그리고 구역질을 하느라 숙여져 있던 시선은, 문의 아래에 양각되어 있는 문양을 발견했다.
검을 타고 교차하는 뱀의 문양.
이 문과 이 거리가, 의심할 나위 없는 ‘진짜’라는 표식이었다.
‘……망할, 빨리 해결하고 떠야겠어.’
끔찍한 냄새가 내 머리를 미치게 만들기 전에 말이야.
“흐읍.”
나는 문을 두드리는 대신, 옆의 벽을 짓밟고 맞닿아 있는 건물의 위로 도약했다.
팔과 다리를 강화하여, 한 순간이나마 근력을 끌어올렸고— 건물과 건물의 사이를 몇 번이고 박차, 결국에는 그 지붕에까지 다다랐다.
삼 층짜리 건물의 지붕의 아래에는 작은 공간이 나 있었다.
그곳은 어떤 새의 둥지처럼 보이는 것이 있었지만, 그곳에 있는 것은 새의 알이 아니었다.
대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특이하게 생긴 검은 색의 구슬.
‘아직 남아 있군. 수십 년이 지났는데… 다행이야.’
나는 그것을 하나 챙겨, 골목의 아래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는 문의 옆에 난 작은 구멍에 그 구슬을 굴려 보냈다.
도르르르륵.
맑고 즐거운 소리가 관을 타고 떨어져 내렸고, 다음 순간.
—덜커덕.
문의 위쪽에 달린 창이 살짝 열리며, 누군가의 시선이 나를 향해왔다.
“호오, 생각지도 못한 손님이 왔군.”
사내는 기분 나쁜 시선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앙상하고 깡마른 체형에 무척이나 어울리는 비열한 눈초리는, 눈앞의 손님을 등쳐먹을 수 있을지 생각하는 뭇 상인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저열하고, 또 끈적한.
…잠시 후 그런 종류의 계산이 끝난 것일까.
그는 킥킥 하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리군. 상당히 의외야. 이 루트는 '까마귀'의 것인데… 그들의 심부름꾼인가? 아니면 상품?
“당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닐 텐데.”
“하하, 미안. 기분 나빴다면 사과하지. 하긴, 까마귀 놈들이 여자애를 ‘상품’취급 하는 건 본 적이 없으니… 심부름꾼이겠지? 이 여린 소녀가 까마귀는 아닐 테고. 그렇지?”
“글쎄, 어떨까. 감당할 자신이 있나?”
“큭큭… 허세는.”
사내는 비웃음을 흘리며 창문을 거칠게 닫았다.
그리고 곧, 굳게 닫혀 있던 나무 문은 나를 환영한다는 듯 그 아가리를 쩍 벌렸고.
"어서 들어오라고. 귀여운 아가씨."
"………."
나는, 스스로 그 심연에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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