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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소녀검성-6화 (6/47)

〈 6화 〉 #005 까마귀 둥지, 뱀의 동굴(2)

* * *

5화

나는 골목길의 나무문 안으로 들어가사내의 뒤를 걸었다.

골목이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대도시에 위치한 놈들의 본부는 마법으로 그 공간을 확장하여 사용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지만, 당연히이런 시골의 작은 지부에까지 활용할 수 있는 코스트의 마법은 아니다.

대신 나타난 것은 하수구—지하 수로의 입구.

사내는 철창을 거칠게 잡아당겨 열고는, 먼저 들어간 채 내게 손짓했다.

“들어오라고. 해치지 않아요~”

“……….”

당장 저 능글맞은 면상에 주먹을 꽂아 넣고 싶다는 감정이 솟구쳤지만,지금은 참을 때다.

놈이 저렇게 즐겁다는 듯 나올 수 있는 것도나를 만만히 보기 때문이니까.

하지만 마나를 사용한다면 삼류 양아치들 따위는 가볍게 잡아 죽일 수 있다.

통나무를 부수는 근력이다.

숫자로 밀어붙이면 곤란하겠다만, 눈앞의 저 놈 쯤이야.

“………….”

나는 코를 막은 채로 놈을 따라 걸었다.

불결하게 이끼와 곰팡이가 슨 강철의 통로가 이어져 있었고,종종 어디론가 달려가는 생쥐 무리가 보였다.

꼴에 ‘뱀의 동굴’의 지부인지, 코너를 돌 때마다 경비인지 감시인지 모를 떨거지들이 한두 명씩 모여 앉아 있었다.

‘입구에 둘, 방금 정면에 하나, 코너에 둘……. 그리고 다시 둘.’

지형과 사물, 인원을 파악하는 것은 이제는 거의 본능이나 다름없게 된 습관이다.

베스트는 활용할 상황이 안 오는 것이다만,‘만약’이라는 놈은 언제나 많아도 나쁠 것이 없다.

그리고 잠시 후.

“여기 앉아서 잠시 기다리라고. 보스께 전할 테니.”

놈은 하수도를 파내어 만든 작은 방 안에 나를 두고 밖으로 나갔다.

작은 탁자와 의자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 아마도 생색이나마 내기 위해 만든 접견실이다.

덜커덕, 하고 나무 문이 닫혔고, 발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이 끔찍한 악취 속에서 기다리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만, 기다림이 길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이곳에 ‘까마귀’의 대리인으로서 왔으니까.

아무리 어린 소녀라곤 해도, 그 입장은 상당한 위치를 지닌다.

‘까마귀 둥지’와 ‘뱀의 동굴’.

그것은, 이 제국의 뒷세계를 주무르는 두 조직의 이름이다.

뒷골목의 왈패들 몇을 잡고 그 이름을 아느냐 물어본다면, 그것을 모른다 답하는 이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아마도.

십 오년 쯤 전을 기준으로 한다면. 맞을 거다. 아마도.

지금에 와서는 확신이 없기는 한데…….

‘이 변방 지부가 아직 망하지 않은 걸 보면 뭐.’

옛날과 다름없다고 생각해도 무리는 없겠지. 아마.

나는 구석에 있는 의자를 끌어다 벽에 대고 앉았다.

정보의 ‘까마귀’와 대행의 ‘뱀’.

서로 다른 분야에서 뒷세계를 양분한 두 조직은 때로는 적대하고, 때로는 협력하며 그 세력을 불려 왔고, 방금 내가 흘려 넣었던 구슬은 그 ‘협력’의 신호다.

까마귀는 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뱀은 까마귀에게 요청받은 임무를 수행한다.

옛날, 동료들과 함께 여행할 때 동료 중 하나가 내게 알려 주었던 그들만의 비밀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그들 간의 제휴 같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으리라.

‘지금껏 쓸 일이 없었지만…… 아직 협력이 유지 중인 건가. 다행이야.’

만약 이 신호가 사라졌었다면, 어떻게 도움을 청할까 고민하며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겠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시간은 더욱 낭비되었을 테고.

시간의 낭비는 곧 신변의 위협으로 다가온다.

지금 나를 위협하는 자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상, 안일하게 있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위험한 일이다.

‘지금 필요한 건 단 한 가지.’

해야 하는 일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그것들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다.

시간.

범인을 특정하는 것이든, 내 개인의 힘을 기르는 것이든, 어느 쪽이 되었든 시간이 필요하다.

원래 몸으로 돌아갈 방법도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닌 이상—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터.

그리고 시간을 위해서는 당장 몸을 의탁할 장소가 필요했다.

물론 미쳤다고 뱀 놈들에게 몸을 의탁하려는 것은 아니다.

놈들은 그저 운반책.

용의선상에서 분명히 제외되고, 내가 언제 찾아가든 도움을 줄 만한 사람에게 가야만 한다.

뭐, 내가 적은 많아도 그리 인생을 헛산 것은 아닌지라.

친구라고 할 만한 놈도 썩 많았다.

가령 과거의 내 파티 동료들이 그러할 테고, 내가 가르쳤던 제자 놈들이 그러할 것이다.

정 아니면, 황제에게로 돌아가도 된다.

‘……정말 끔찍한 생각이지만 말이지. 황제는 진짜 마지막 수단이다.’

늑대 무리를 피해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격이다.

황실에는 날 끔찍이도 싫어하는 놈들도 널려 있고…… 무엇보다 황제의 관심이 썩 좋게 다가올 것 같지는 않다.

‘내가 뭣 때문에 정계에서 물러났는데.’

아무튼.

역시 멍이나 때리는 것보다는무언가 생각을 하는 편이 시간이 빨리 가는 것인지,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턱수엽이 덥수룩한 중년의 사내가 내 앞에 서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 까마귀의 심부름꾼이시라고.”

퍽 고압적인 태도로 문을 열고 들어온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내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는 가슴팍에서 시가 하나를 꺼내어 불을 붙이고, 그것을 깊게 한 모금 빨아들였다.

“일단 들어는 볼까. 원하는 게 뭐지?”

시간을 낭비하기 싫다는 태도였다.

오히려 좋다. 나도 이딴 장소에 오래 있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뱀 굴을 이용했으면 한다.”

“어디까지?”

“베일렌.”

“멀군. 걸어서 가면… 두 달 정도인가. 큭큭, 지체 높은 까마귀께서 도움을 요청할 만 해.”

이 놈들을 찾은 이유는 단순하다.

돈도 없고, 다른 보증을 설 만한 무언가도 없는 지금 찾을 수 있는 유일한 힘이기 때문이다.

이 제국이라는 나라는 곧잘 망할 것 같은 병신 같은 국가이지만, 그래도 꼴에 대국인지라 땅덩어리 하나는 거지같이 넓다.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장소까지 걸어갔다가는…아마 가는 도중에 아사하거나 산적한테 걸려 죽는다.

아니지. ‘아마’가 아니다.

100%다. 100%아사한다.

산열매도 씨발 하루이틀이지.

'그래서 필요한 게 이놈들, 뱀의 동굴.'

그리고 놈들의 자산 중에서도, ‘뱀 굴’이라 불리는 텔레포트 네트워크를 이용해야만 했다.

뱀 굴.

이 보잘 것 없는 놈들이 제국의 뒷세계를 장악한 이유로 꼽을 수 있는 놈들의 존재의의 그 자체.

제국 전체에 깔려 있는 놈들의 지부 사이에는 ‘뱀 굴’이라고 불리는 텔레포트 게이트가 마련되어 있고, 놈들은 그것을 이용하여 신출귀몰하게 움직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직접 지부를 덮쳐도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달아나니, 다른 놈들이 몸을 사릴 때에도 대범하게 깝칠 수 있는 것이다.

두 달의 여정을 단 1초로 줄여주는 결정이다.

이 장소가 아무리 좆같고 위험하더라도, 나름 해 볼 만한 도박이 아니던가.

중년 사내는 몇 초간 나를 쳐다보더니, 시가를 다시 한 모금 뱉으며 말을 이었다.

“가능한 일이지. 가능한 일이야. 무려 까마귀의 부탁인데… 가능해야 하고 말고. 그런데 말이야…….”

“문제라도 있나?”

“문제라, 문제… 라고 할 만한 건 아니지. 오히려 조금 즐겁다고 해야 할까.”

왜 쳐웃고 지랄인지.

옛날의 나라면 당장 테이블을 엎고 놈의 면상에 주먹 한 방 꽂아 줬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하는 것이 한이다.

살짝 이를 가는 소리를 내며, 약간의 불만을 과시할 뿐이다.

내가 침묵하자 중년 사내는 시가를 테이블에 비벼 끄며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그 입에서 튀어나온 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었다.

“그래서, 신전을 등쳐먹는 건 재밌었나?”

“……뭐라고?”

내가 잘못 들었나?

후드를 깊게 눌러 쓰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순식간에 흔들린 동요의 표정이 겉으로 드러났을 테니까.

중년 사내는 느긋하게 대꾸했다.

“그 옷… 신전의 수도복이 아닌가? 우리도 귀가 있고 눈이 있다. 낮에 신전에서 소란이 있었다는 정보쯤은 진즉에 들었어. 그런데, 기묘하게도 내 앞에 수도복을 입은 여자아이가 있군. 그건 흔한 옷이 아니야. 세례를 받는 날 쓰거나……."

"………."

"혹은, 급히 입힐 옷이 없는 환자에게 입히지.이건 우연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군. 그게 무슨 상관이지?”

“그냥단순한 얘기야.”

——짝짝.

허공에 박수 소리가 두 번 울렸다.

과장되고 불필요한 행동이었다만, 그 행동의 결과는 극적으로 다가왔다.

단 한 순간도 지나지 않아, 십수 개의 발소리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들려왔으니까.

“우리는 그렇게 쉽게 등쳐먹을 수 없다는 거지.”

"이런 미친 새끼들…!"

아무리 뒷세계의 놈들이라고 한들, 언제나 지켜야 하는 상도덕은 있기 마련일 텐데!

'그런 것조차 지킬 필요가 없어 보였나?'

쉽게 잡아먹을 수 있는 피식자로 보일 뿐이었나?

이 어린 육체는, 그런 기본조차 지키지 않아도 되는 나약한 대상일 뿐인가?

좋다, 인정한다. 이건 예상치 못했다.

“까마귀를… 적으로 돌리겠다는 거냐?”

“어린 계집이라 해서 호기심에 한 번 보기는 했다만, 결국은 세상 물정 모르는 멍청한 애새끼일 뿐인가.”

“무슨…?”

“까마귀는 이 루트를 버린 지 십 년이 넘었다. 그 빌어먹을 '까마귀 여왕' 년의 변덕이었지. 그런데 그 루트를 이제 와서 씨부리는 외부인이라…….”

흥미로운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원!

중년 사내는 노골적인 비웃음과 함께 그리 말을 끝맺었다.

귀엽다 못해, 가엽다는 투다.

“걱정 마라. 죽이지는 않을 테니. 네가 누군지는 알아야겠다. 그 여왕의 딸이라도 되는 건가?”

놈은 대놓고 품에서 시가 하나를 더 꺼내어 불을 붙였다.

따지자면, 나 따위는 정말로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듯한 자만스러운 태도.

그래, 이 순간만큼은 이 몸에 감사를 표할 수밖에 없겠다.

단 하나.

놈들에게 전혀 알아챌 수 없는 방심을 만들어 내 주었으니까.

“그건 안타깝군.”

“무엇이 말이지? 이제 와서 울어도 변하는 건 없을 텐데.”

“나는 너를 죽일 생각이거든.”

세상에는 뱀을 물어 죽이는 토끼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무슨…….”

—콰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하수도에 공허하게 울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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