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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소녀검성-24화 (24/47)

〈 24화 〉 #023 후작님, 제 교복을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1)

* * *

23화.

“교복? 까이거 맞추면 되지. 뭘 그렇게 비장하게 말하더냐? 돈 아까워?”

“무슨 그런 끔찍한 말씀을! 제 충성심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당치도 않습니다!! 이미 이 제국에서 가장 유명한 디자이너를 예약해 놓았단 말입니다!!”

“…고작 교복으로 무슨 유난을 그렇게 떨어. 그냥 적당히 사 입으면 되지.”

나는 눈에 띄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원래도 그랬고, 지금의 몸 탓에 더욱 더 그렇다.

솔디어는 난색을 표하며 대답했다.

“그것이… 요즘 사정이 조금 특수합니다.”

나는 고작 교복 하나에 이렇게 긴장하며 말하는 솔디어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솔디어는 다 이유가 있다는 듯이 설명을 시작했다.

“아카데미의 교복은 모든 개량이 자유롭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알지. 각자 다루는 무기나 마법이 다르니, 그것에 특화하여 만들지 않느냐.”

옛날부터 그랬다.

가령 화염계 마법을 다루는 자와 빙결계 마법을 다루는 자.

그 둘의 로브가 같을 수는 없는 노릇인데, 아카데미는 ‘교복’이라는 통일성을 요구하니까.

때문에 아카데미는 최소한의 형태와 색상 배합만 유지한다면 그 외의 모든 개량을 학생의 자율에 맡기고 있었다.

내가 알기로… 아마 교복이랍시고 온몸 파츠에 철판을 덧대어 풀 플레이트 아머처럼 만든 미친놈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솔디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전쟁도 없고, 안전 장치도 하도 많이 발전한 탓에… 그 의미가 조금 변질되었습니다.”

솔디어의 설명이 이어졌다.

마법 각인이라는 것도 발전하고, 가죽같은 재료의 질도 좋아져서 예전 같이 미관을 해치면서까지 효율을 추구하는 경우는 없어졌다고 한다.

그렇기에 각자위 취향에 맞게 입맛대로 교복을 만들고, 더욱 비싸고 유니크한 교복을 지니는 것이 귀족 사이에서 일종의 유행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그러니까 결국, 솔디어가 하고 싶은 말은 마지막의 이것이었다.

“요즘 애들은 디자인에 신경을 그리 많이 쓴다고 합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아니, 왜… 학교잖습니까. 허구한 날 혼자 계실 것도 아니고… 유치한 거 입는다고 따돌림이나 학교폭력 같은 것이라도 당하면 어떻게 합니까.”

이 무슨 아들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학부모 같은 마인드인지.

“학교폭력은 무슨. 내가 이 꼴이라고 그리 나약해 보이냐? 쳐맞고 다닐 것 같아?”

“아뇨. 그건 걱정 안 되는데, 깽값이 좀…….”

“……….”

솔디어는 내 시선을 피하며 입맛을 다셨다.

내가 이 새끼를 조져야 하나 말아야 하나 세번쯤 고민할 무렵, 솔디어는 헛기침을 하며 황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그, 뭐, 어쨌든… 일단 이유 중 일부는 그렇다는 겁니다.”

“나머지는?”

“당연히, 스승님께 좋은 것 비싼 것 입혀 드리고 싶은 제자의 마음이죠!”

“그래?”

흠.

나는 몇 번 목을 울리며 솔디어와 눈을 마주했다.

다른 제자 놈들이었다면 분명 뭔가 수작을 부려 놨겠구나 의심했겠지만, 솔디어라면 나름 믿음을 주어도 괜찮으리라.

말뽄새야 좀 건방지기는 한데…….

저것도 나름 충언이라고 들으면 못 들어줄 것도 없었고.

“그럼 내일 곧장 가는 거냐?”

“하하, 스승님. 이, 제자… 스승님을 편히 모실 정도로는 성공했다 자부하고 있습니다.”

“?”

“로메인, 미스터 데샤프를 모셔오거라.”

“데샤프 님, 주인께서 모셔 오시라고 하십니다.”

“아아, 그래. 간다고. 쯧, 이 밤에 사람을 오라가라 하고 참… 후작도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군.”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사내는 잔에 남은 와인을 단번에 들이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만 지금 자신이 참으로 불쾌하며 이곳에 오기도 싫었다는 기색을 감출 생각이 없는지, 대놓고 한숨을 반복하고 있었다.

‘제기랄, 바빠 죽겠는데 말이야…….’

부름을 받자마자 이 오밤중에 텔레포트까지 이용하며 한달음에 달려오기는 했다.

구하기 힘든 재료 같은 것들을 후작이 몇 번쯤 구해 준 적이 있었기에 언젠가는 은혜를 갚을 생각이었고, 오늘이 그 날이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데샤프는 이곳에 와서 충격적인 사실을 들었다.

후작에게는 딸은 없고, 오로지 아들 하나만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안 그래도 예약이 수십 개가 밀려 있는데… 사내새끼 교복 때문에 불려오다니.’

그는 분명 제국 전체에서 이름을 날리는 일류의 디자이너였지만— 남성의 옷은 만들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금과 권력의 압박이 들어오면 몇 번 정도는 제의를 승낙할 법 한데도, 그는 결코 한 번도 더러운 사내새끼의 옷을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은혜를 되갚아야만 한다면, 그 신념도 한 번 정도는 꺾을 수밖에.

‘대충 해야지. 대충. 사내새끼 옷 같은 것에 시간을 할애할 정도로 나는 한가하지 않아.’

데샤프는 노골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시종장 로메인의 뒤를 따랐다.

애초에 예약을 싸그리 무시하고 그의 요청을 들어 주는 시점에서, 그는 이미 충분한 호의를 보여준 것이리라…….

…분명 그랬는데.

“??”

문을 열자 곧바로 보이는 아름다운 은빛 머리칼에, 그는 일순간 언어를 잃었다.

그 머리칼의 주인은 곧 자신을 돌아보았고, 데샤프는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빛의 눈동자와 몇 초간 마주했다.

분명…….

아들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하, 미스터 데샤프. 오랜만에 보는군. 초대에 응해 주어 진실로 고맙소.”

“그, 저도, 물론, 감사합니다만. 그… 아드님 분이? 혹시? 저기?”

“아아! 아니오. 이번에 의뢰할 것은 아들놈의 것이 아니라 여기 영애의 것이라오. 아들의 건이라면 어찌 당신을 불렀겠소.”

“하하! 무, 물론 그렇지요! 그래요! 당연한 말입니다. 믿고 있었다고요!”

큰일이다.

진실로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데샤프는 지금.

저 소녀가 설령 남자라고 해도 상관없다고—

그렇게 생각해 버렸다.

‘아냐. 젠장. 진정하자. 결국 여자아이인 거잖아? 그렇지? 그래… 나는 아무 잘못 없어….’

새로운 취향에 눈 뜰 뻔 했지만, 뭔들 어떤가!

데샤프는 다시금 현실을 직시하고 숨을 내쉬었다.

조금은 앙칼지게 위로 올라간 눈꼬리와, 아직 어려 채 다 빠지지 않은 볼의 젖살, 오똑하게 솟은 코… 그야말로 장인이 만든 인형 같은 소녀가 진실로 눈앞에 있지 않았던가.

“후작. 정녕… 이 소녀가 맞나요?”

“그렇소. 재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어떤 재료든 마음껏 사용하여 최고의 하나를 만들어 주시오.”

“큭, 큭큭…. 최고의, 최고의 하나라고요…….”

몸이 떨려온다.

폐가 수축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사용하여 아이디어를 폭발시킨다.

이것은, 그래.

도전이다.

아름다움의 신이 이 위대한 데샤프를 시기하여 보내온 도전!

데샤프는 실로 오랜만에 직접, 자신의 줄자를 꺼내들었다.

“그 승부, 받아들이겠습니다.”

“……? 그러시오.”

이상하다.

고작 교복 만드는 일이 이렇게나 귀찮은 일이었던가….

나는 저 미친놈이 아까 내 손에 쥐여 주었던 디자인 원본을 바라보며 하품했다.

미스터 뭐시기는 종이에 뭔가를 휘갈기고 버리기를 몇 번이고 반복하고, 내 온 몸의 치수 하나하나를 재며 계속해서 흥분하고 있었다.

“치마 기장은 어느 정도가 좋니? 응? 짧은 것도 좋지만, 이 비주얼이라면 긴 것도 좋겠지! 아아, 영감이 떠오르는구나! 그래, 주름 치마라면 이런 디자인이, 아니야, 아니야, 진리는 역시 프릴이지! 긴 치마? 그래, 고딕도 좋겠어. 옛 성현께서 말씀하시길 옛것이 좋다 하셨지!”

‘미친 인간인가…….’

천재와 또라이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잘 아는 나다만, 그래도 이건 좀 그렇지 않나 싶다.

무엇보다도 아무리 교복이라 한들, 나는 치마 따윌 입을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여자아이의 몸이라 한들 어찌 그딴 하늘거리는 것을 입겠는가.

절대로.

내가 지금 당장 나가 뒤진다고 해도!

치마는 입을 수 없다.

‘마누라가 입으라고 해도 안 입는다.’

…….

…아니, 그건 아닌가?

그건 좀 무서우니까 입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치마는 안 돼.”

“음? 그게 무슨 소리냐. 그건 여자아이의 기쁨이야. 차마 남자는 따라하고 싶어도 따라할 수 없는, 사회 통념의 진리이자 거룩한 아이덴티티라고. 여장이 남자만 할 수 있는 가장 남자다운 행동이라고 지껄이는 병신들도 있지만, 그건 결국 사회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 아니니? 여자아이의 귀여운 치마에 대체 얼마나 많은 평화와 진리가 담겨있는데 그런 말을 하는 거니?”

“얼어뒤질 세계평화는 다른 새끼들이 지키라고 해. 난 안 입는다고 했어.”

“크윽…….”

“고객의 요청을 무시할 정도로 전문성 결여된 디자이너는 아니겠지?”

“큭, 큭큭. 나를 뭘로 보고……!!”

미스터 미친놈은 곧장 종이와 펜을 가지고 뭔가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나는 이게 맞나 싶어 솔디어를 돌아보았지만, 그는 진심으로 그를 신뢰한다는 듯이 그저 맑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점점 불길해지던 찰나, 미스터 또라이는 종이 너머로 힐끗 나를 응시하며 물어왔다.

“바지면 되는 거지?”

“그래. 바지.”

“바지라고 했다. 그렇지? 다른 디자인은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거겠지? 그렇지? 아무래도 바지 쪽으로도 충분히 너를 살릴 수 있을 거야. 치마에 비한다면 조금 부족하겠지만, 내 마스터피스라면 그런 건 일도 아니지.”

“……반바지는 안 돼.”

“끄으으으윽!! 어떻게, 어떻게 그런 잔인한 말을 하는 거야!!”

스읍…….

이거 말 안했으면 무슨 바지가 나왔을지 조금 예상이 된다.

거의 팬티나 다름없는 무언가를 만들어 오는 게 아니었을까…….

“…최대한 간소하게. 병신 같은 장식 같은 건 붙이지 말고.”

“하하하하! 그건 정말 물고기가 물에서 산다는 걸 어렵게 말하는 말 같군! 당연한 일이야. 나는 데샤프다. 이 나라 최고의 디자이너! 머저리 같은 장식 같은 건 나랑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

데샤프는 조울증이라도 있는 건지탄식과 웃음을 반복하며 그런 질문을 몇 개 정도 더 던졌다.

그리고 수십 분 뒤에 나온 결론이, 대충 이랬다.

“치마는 안 되고, 반바지도 안 되고, 상체 노출은 곧 뒤져도 안 되고, 움직이기 편해야 하며, 피부 노출이 있으면 나를 죽여 버리겠다……. 음, 어려운 조건이네. 하지만 나라면 가능하지.”

“……….”

뭐지?

내가 뭔가를 빼먹었나?

저 변태새끼가 왜 아직도 당당한 걸까?

나는 오랜만에 진심으로 두려움에 떤다는 감정을 맛보고 있었지만, 내 얕은 식견으로는 내가 빼먹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일단 피부 노출은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아 놨으니, 어떻게든 되겠지만…….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의문에 닿기도 전에, 데샤프의 질문이 다시 이어졌다.

“달리 원하는 점은 있나?”

“음…….”

솔직히 옷에 이렇게까지 신경을 많이 쓴 적이 없어서 뭐가 좋은지도 잘 모른다.

방금까지 원단이나 재질, 속재료까지 뭐가 좋으냐고 물어봤지만 하나도 모르기에 전부 알아서 하라고 대답했는데, 이제 와서 무슨 의견이 있겠는가?

하지만 뭐, 내 취향이 하나 있다면야….

“주머니가 많았으면 좋겠군. 편하거든.”

약초 같은 걸 넣어 다니기도 좋고, 비상시에 사용 가능한 단검 같은 것도 좋다.

무엇보다 허벅지에 숫돌을 지니고 다니면 언제든 칼을 갈 수 있어서 최고로 좋다.

“……아저씨 같은 취향이네. 그게 제일 어려운데… 뭐, 좋아. 그 정도는 들어주지.”

데샤프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금껏 그가 그린 것들을 취합하여 챙겼다.

솔디어는 수표책에서 수표 몇 개를 뜯어 그에게 내밀었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솔디어와 우정의 악수를 나누고 떠났다.

참으로… 폭풍 같은 남자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솔디어에게 물었다.

“그럼 얼마나 기다리면 되는 거지?”

“일주일이면 될 겁니다. 시간이 없거든요. 곧바로 다음 시험 일정이 있으니까요.”

“일주일이라…….”

뭐, 이 녀석이 나를 위해 꽤 무리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토를 달지는 않았다.

여자들이 어떤 디자이너 일정이 꽉 차서, 어떤 디자이너를 고용했으며, 누구의 옷을 받았노라고 그렇게 자랑하게 다니던 것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그 미친놈이 꽤 유명한 인간이라면 분명히 그 또한 그럴진데,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일주일만에 완성되는 옷이라니.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아. 한 번만 믿어 주마.”

“저만 믿고 계십시오. 스승님. 최고의 하나가 올 테니까요.”

이때의 나는 모르고 있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저 미스터 데샤프의 모가지를 단숨에 꺾어 놓을 텐데—

라는, 미래의 나의 간절한 바람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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