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소녀검성-35화 (35/47)

〈 35화 〉 #034 삥 뜯으면 정답이 나와요(4)

* * *

34.

“그,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나 바쁜 사람이야. 빨리빨리 움직여.”

“으으…….”

안내원은 쉬이 대답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교수에게 곧바로 연락을 돌리면 근무 태만으로 인한 시말서와 연봉 삭감이 반갑게 자신을 찾을 것이고, 호봉 상승에도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는 일인데 말이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무작정 뻐겨 보는 것도 능사가 아닌 것이—

그녀는 항상 이 자리에서 진상들과 입씨름을 하는 입장으로서, 권세가를 적으로 돌리면 얼마나 피곤하고 귀찮게 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참으로 안타깝다고 해야 할까.

실베니아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 상큼하게 웃었다.

“당신, 내 뒤에 누가 있는지 알지?”

“……….”

냉철한 대응?

이성의 관철?

그런 건 상대방과 어느 정도 급이 맞고, 평등한 눈높이에서 이성적인 대화를 할 때에나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목에 칼 들이밀고 죽을래? 말 들을래? 중에 선택하라 하면 누가 아름답게 뒤진다를 선택하겠는가?

‘엄마…….’

그녀는 결국, 연봉 삭감의 눈물을 머금고 교수에게 연락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 그리 하도록 합시다.”

교수들의 회의는 이제 막 끝을 맺기 직전이었다.

문제가 되는 사항에 대해서는 대체로 합의를 끝냈고, 예외자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대응 방안을 마련할 즈음이라 하면 정확한 표현이리라.

‘예외자.’

다른 응시생들과 비교하여 다음과 같은 사항이 있으면, 교사들의 판단 아래 예외자로 분류한다.

1. 그 능력이 과하게 특출나거나.

2. 그 신분이 수준 이상으로 드높거나.

3. 그 인성에 결격 사유가 있거나…….

이 외 몇몇의 ‘예외 사항’이 있으면 부여되는 구분이다.

그러니까 어떠한 방법으로든, 다른 아이들과 다른 특별 취급을 할 필요가 있는 응시생들을 그리 불렀다.

그 ‘특별 취급’의 수위에 대해서 약간의 논란이 있었지만, 그 회의도 결국은 끝을 맺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문득.

높이 난 창틀 사이로부터, 마나로 성형되어 만들어진 푸른 새가 날아들어왔다.

프리즘이 형체를 지니지 못하고 일렁인다면 저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싶은, 신비한 형상의 새.

푸른 새는 곧 빛의 조각으로 변화하여 교수들의 미간으로 스며들어갔다.

그것은 기억 전송 마법의 일종이었다.

마법을 사용한 당사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마법이니 기초적인 통신 마법의 일종이라고 봐도 좋으리라.

“이건…….”

기억을 본 교수들은 일제히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들 중 하나가 대표하여 말을 꺼내었다.

“‘예외자’ 실베니아. 성은 없음…. 이의 제기입니다.”

“아…….”

“이런.”

교수들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탄식하며 앓는 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당황하는 투는 아니었다.

도리어, 이제야 올 것이 왔다는 반응에 가깝다.

“그래요. 다들 예상은 했잖습니까? 카드론 학생이 반쯤 송장이 되서 실려왔을 때 말입니다.”

“고 녀석 성격 참 더럽다 생각은 했네만…….”

“당돌하고 당차군.”

“그 정도로 무마할 레벨이에요? 하하, 존나게 건방지고 성깔있는데요. 저거! 외견에 속으시면 안 될 것 같아요.”

“로뎀 교수. 언행을 좀!”

“지금 그 아이보다는 상냥하지 않나요?”

“……….”

그 누구도 로뎀의 그 대꾸에 반박할 수 없었다.

금작화의 로뎀.

평상시에도 말이 험하고, 학생에게 하는 쌍욕과 심한 수위의 발언으로 자주 징계위에 회부되는 교수였다.

그럼에도 지금만큼은 그녀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녀석 참… 진상 짓만 수십 년은 해 본 노인네의 노련함을 보는 것 같군.”

“그래요. 노련하네요. 그것 말고는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진상’이라는 특성을 가진 종족이 있고 그런 종족이 모여 사는 별이 있다면, 실베니아 그녀가 바로 그 별의 원주민일 것이 분명했다.

안내원이 지금도 실시간으로 보내오는 기억을 대충 훑어보자면—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잠시만? 잠시마안? 재밌다 야. 기다리는 시간은 내 시간 아니야? 장난치냐?

—최대한 노력을 하고 있사오니….

—노력이라. 캬. 좋은 말이야. 그치? 노력하겠습니다. 만능 변명이야. 내가 노력하랬냐? 하라고. 해 오라고. 그 두 개가 같은 것 같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근무가 끝나?

—……….

“갈구기가 거의 예술의 경지군요.”

“저게 예술이면 전쟁은 뭐 신의 축복이겠구려.”

한 마디 변명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말꼬리 물고 늘어지기와, 칼 같은 박자에 치고 들어가는 무호흡 갈구기.

그 기억을 본 교수들은, 자신이 저 자리에 있었더라도 차마 저 갈굼에 멀쩡히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 누구도 꺼내고 싶지 않던 본제를 꺼낸 것은 결국 다시 로뎀 교수였다.

“어떻게 할래요? 저는 대충 들어 주는 게 낫다고 보는데.”

모두가 침음에 잠겼다.

그녀의 말을 부정하는 자는 누구건 간에 저곳에 내려가 입씨름을 해야 할 판이었으니까.

실베니아가 ‘예외자’로 선정된 이유가 그 재능과 인성 둘뿐만이 아니란 것을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녀의 요구는 정당하오. 얻지 못한 것이면 모르겠으나, 이미 손에 있는 것을 내려놓으라는 요구는 누구에게나 불합리한 법이지.”

“동의해요.”

“무슨 소리십니까!”

—쾅!

하지만 모두가 동의하는 와중, 하나의 굉음이 울렸다.

기사학과의 창술교관, 질레타가 얼굴을 붉히며 책상을 치고 일어났다.

그는 정의와 공평, 정대를 입에 달고 사는 사내였다.

질레타는 고작 어린아이 하나의 고집에 교수들 모두가 고개를 숙인다는 사실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권력에 굴복하여 고개를 숙인다면 그것의 어디에서 정의와 공평을 찾을 수 있겠는가.

“애초에 재학생을 겁박하여 강탈한 것이 아닙니까! 정의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도둑질을 시킨 게 우리인데 말이오?”

“그건 그렇다 하나! 고작 아이 하나입니다. 권력에 굴복하는 것 아닙니까!”

“굴복은 아니지. 오히려 권리요. 저 아이의 말 그대로 말이오. 잘못한 것이 없으니,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 또한 저 아이의 권리. 그 과정에서의 폭력이 있었다 한들… 그 폭력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 우리이지 않소.”

“그냥 묵살해 버리면 안 되겠습니까? 어찌 되었든 폭력을 행사한 것은 사실이니 저쪽도 할 말은 없을 겁니다.”

“묵살? 크하하하하!!”

수석검술교관, 베네투스의 웃음이 회의실을 떠들썩하게 울렸고, 질레타의 얼굴에 순간 불쾌감이 스쳤다.

그러나 그는 질레타의 상관이었고, 직접적인 불만을 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왜 웃으십니까?”

“자네 혹시 마탑주의 숨겨진 사생아라거나, 아니면 4대 검식의 직계라도 되는가?”

하, 무슨 소리를.

베네투스의 말에 질레타는 비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마탑주를 차지하고 있는 마녀는 아직도 처녀일 것이며, 4대 검식의 직계는 태어난 것만으로 제국 전체에 종을 울리는 나라의 대사다.

4대 검식— 즉, 가장 위대한 4개의 기사 가문.

자신이 그곳의 직계였다면 고작 하등한 창술 교관 따위를 하고 있었겠는가?

베네투스 당신을 턱짓으로 부려먹는 위치였겠지.

“무슨 농담을 그리 하십니까. 지금 하실 만한 농담이…….”

“농담 같나?”

베네투스가 눈을 희번뜩였다.

실베니아가 예외자로 판명된 이유는 그 실력의 불확실함과 인격에 있어서의 결함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베르트랑 가문의 비호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솔디어 베르트랑 후작— 명성 높은 검성의 제자이자, 서남쪽 국경의 군권을 장악한 군벌 귀족의 비호를 말이다.

“그 둘 중 무엇도 아니라면 그냥 닥치고 있게. 베르트랑이 모두에게 신사적으로 대한다고 만만해 보이던가? 그 망부석같은 베르트랑 후작이 처음으로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소녀야. 그 감정 없는 업무처리기계가 말일세. 기계가 분노하는 꼴은 보고 싶지 않군.”

“……그가 화도 낼 줄 아는 인간이었습니까?”

“그래서 더 무섭지. 그야말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베르트랑 후작은 상식적인 인간이기에 당장 칼을 뽑아들고 쳐들어오진 않겠지만, 향후 아카데미에 있어 결코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오지는 않을 것이다.

“베르트랑 가문이 4대 검식에 속하지는 않는다곤 하나, 검성의 제자인 후작 본인이 살아있는 한은 4대 검식 못지 않은 위세를 누릴 테지.”

심히 곤란한 일이었다.

능력. 권위. 인성.

그 셋 중 두 가지만 예외라면 어떻게든 처리가 된다.

능력이 있음에도 인성이 갖춰지지 않은 자는, 더 우월한 능력으로 찍어 눌러 겸손함을 배우게 하면 된다.

능력이 있고 자격과 신분까지 갖춘 자는, 대체로 그 성장 과정에서 인격까지 온전히 형성되기에 그다지 염려할 이유가 없다.

신분만 갖췄으나 능력이 없는 자는 명분과 권리가 없기에, 그저 묵살해도 문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능력은 있는데 인성이 갖춰지지 않았으며, 힘으로 찍어 누를 수도 없는 아이라면—

도대체 어찌 해야 하겠는가?

“……….”

“……….”

다시금 침묵이 찾아왔다.

그러나 이번의 것은 길었고, 좀처럼 끝날 듯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침묵이 끝났을 때에는, 교사 하나가 자리를 비우고 나가 있었다.

“네? 정말입니까? 네,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안내원은 예상치 못한 대답을 받았는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다. 이미 엄청 피폐해져서 저게 당황한 건지는 확신이 잘 안 서지만, 돌아온 대답은 나름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그 표식을 전부 사용하기를 바라시는 건가요?”

“아니, 그딴 건 필요 없어. 이깟 문제 푸는 건 코 푸는 것보다 쉽다고.”

“…대단한 자신감이네요. 그럼, 무엇을 바라시는지요?”

“처음부터 이렇게 나왔으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야.”

아니,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나는 원하던 바를 입에 담았다.

시험의 조항 중 하나였던, 증표를 모으고 사용하지 않으면 얻을 수 있다는 부상.

나는 그것을 원했다.

“증표가 초과되었을 때 받을 수 있다는 부상. 그걸 보고 싶은데.”

“부상 말입니까?”

“그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사전에 공개하는 것은 예정되지 않았던 일이기 때문에, 준비가 조금 필요합니다.”

“이번에는 오래 기다리지 않았으면 좋겠네. 그렇지?”

“……아무렴요.”

나는 산뜻한 미소를 지어 보였고, 안내원은 내 시선을 피하며 열심히 어딘가로 계속 연락을 돌렸다.

문득, 소니아가 옆에서 내게 속삭여왔다.

“항상 이렇게 해결하시는 거예요?”

“아니. 정 안 되면 하는 방법이지. 건방지잖아.”

“성공률이 그렇게 높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성공률 높은데?”

“얼마나 되길래요?”

“100%.”

“…거짓말 하지 말라니까요.”

소니아는 불신에 가득 찬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았다.

정말 곤란한 아이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거늘, 어찌 하는 말마다 이리 믿지 못한단 말인가?

“진짠데.”

“무슨 짓을 했길래요?”

“이걸로 못 알아 먹는 놈들은 다 죽었거든.”

“……….”

“에이, 그래도 이번에는 아니야. 이 정도 잘못으로 죽이진 않아. 내가 진상 피는 경우는 원래 진짜로 말을 못 알아 쳐먹는 놈들 뿐이었다니까.”

“………….”

분모에서 실패한 경우의 수가 사라지면 결국 100%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만, 실비아는 참으로 불신에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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