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 #033 삥 뜯으면 정답이 나와요(3)
* * *
—너보다는 쟤가 훨씬 엘리트스럽지.
—나도 꿇리지 않거든요?!
—아닌 것 같은데…….
나는 대충 대꾸해 주며 아셰카의 전신을 살폈고, 그녀 또한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리디 어린, 그야말로 핏덩이 같은 꼬마아이였지만— 그녀가 마탑의 후계자라면 쉬이 무시할 수 없음을 안다.
이미 칭호를 얻었다는 것은 한 사람의 마녀로서 자립했다는 의미이며, 이미 그러한 실력이 된다는 방증과도 같으니까.
‘흥미롭긴 하지만, 굳이 지금 대립할 이유는 없지.’
녀석은 살아 움직이는 관심 덩어리다.
대륙의 모든 마법사들이 녀석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며, 어쩌면 지금도 어딘가에서 은밀하게 저 녀석의 주변을 살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그대로 아셰카를 무시하려 했다.
헌데 문득, 우리를 스쳐지나가던 그녀는 잠깐 멈춰 돌아보며 이죽거렸다.
“흥미로운 조합이네.”
“뭐?”
“거짓말쟁이 둘이 한 팀?”
거짓말쟁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아셰카가 바라본 것은 내가 아니라 소니아였다.
눈쌀을 살짝 찌푸리고는 소니아의 얼굴을 집중해서 노려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아셰카는 뭔가 떠올랐는지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당신, 알고 있어. 분명—”
“조, 조용!”
“…읍.”
무어라 말하려던 아셰카는 소니아의 손에 입이 막혀 침묵했다.
“조용히 하세요. 다, 당신을 정말 존경하고 또 좋아하지만. 비밀은….”
“뭐, 좋아. 당신이 싫다면야.”
꽤 재미있는 이야기였을 것 같았지만, 구태여 나서서 물어보고 싶지는 않았다.
단순히 ‘주목을 받는 것’과 ‘조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니까.
전자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정신이 똑바로 박힌 놈이라면 이 육체에서 내 정체에 대한 무언가를 추론해 낼 수는 없다.
그야, 성인 남성이 여자아이로 바뀌었다는 비상식적이고도 멍청한 농담을 누가 진지하게 추론하고 믿겠는가.
‘솔디어조차도 곧장 믿지 않았는데 말이야.’
그저 대단한 아이다.
훌륭하다. 그 정도 생각에서 그칠 것이다.
그러나 후자는 곤란하다.
지속적으로 나에 대해 탐구하고, 과거를 파내고, 누구를 만나고 어떤 언행을 하는지 하나하나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아무리 그래도 언젠가는 알아챌 수도 있다.
내가 충분한 힘을 되찾기 전에는 조금이라도 의심받아서는 안 된다.
“그럼, 다음에 또 보자. 거짓말쟁이들.”
“네? 네! 또 봐요!”
다행히도 아셰카는 더는 말 없이 우리를 스쳐지나갔다.
소니아는 그저 ‘말을 걸어 줬다’라는 이유만으로도 좋다고 헤실거리고 있었고, 나는 그녀를 내버려두고는 안내원에게 다가갔다.
“이게 말이 됩니까? 예정과 다르잖아요!”
“필기 시험은 2차 이후에 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아셰카를 보낸 그녀는 온갖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몰골들을 보니, 이미 어디서 한 번 쳐발려서 패배자 신세가 된 놈들이다.
이겨먹은 놈들이면 여기 와서 난리치지 않을 테니, 뻔한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녀는 항상 일관된 웃음과 대답을 그들을 응대했다.
규정 상 안 된다!
정해진 일이다!
실력으로 쟁취하면 되지 않느냐!
무엇 하나 어긋나지 않는 정론.
완벽한 논리.
결국 떨거지들은 계속 되풀이되는 대답에 지쳐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그녀는 비로소 나를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신가요? 63b 수험생.”
그녀는 처음 나를 맞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맑은 웃음으로 응대했다.
로렌스에게 대답하기를 한 치의 빈틈없이 논리로서 맞섰듯이, 앞으로 찾아올 어지간한 진상들은 저 미소와 논리 앞에서 무릎 꿇고 돌아가야만 할 것이다.
말싸움이라는 것이 본디 그렇기 때문이다.
웃음 앞에 무력하고, 논리정연한 주장 앞에 무력하다.
그리고 그런 것은 경험 없이는 늘어나지 않으니, 어린아이들이 이 사람에게 무언가 주장하여 얻어내는 것 자체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르다.
언제나 이러한 과정에는 ‘기초’가 있는 법이다.
“좀 곤란해서 말이야. 이걸 어떻게 해야 할 지 물어보러 왔지.”
나는 그녀의 앞에 증표들을 후두둑 쏟아 놓았다.
그 청명한 금속음에 주변의 시선이 단번에 쏠렸고, 그녀는 그 시선들을 살짝 흘겨보며 대답했다.
“아, 당신이 그 예외자로군요.”
“맞아. 그런데 어떻게 생각하나?”
“무엇을 말입니까?”
“당신네가 나를 불편하게 만들어서 손수 응대했는데, 기껏 얻어 놓은 걸 못 쓰게 만들라고 하면 쓰나. 불편에 불편을 보너스로 얹어 주는 건 대체 어느 나라 규칙이지?”
“하지만 윗선의 결정입니다. 그것이 규칙이기 때문에…….”
“윗선? 말 잘했네.”
말 잘하는 놈이 맨 앞에 나와 있으면, 그 녀석과 싸워서는 안 된다.
수년간 그러한 전선에 몸을 맡긴 녀석이며, 혀로 싸우는 이에게 혀로 대응하는 것은 멍청이들이나 하는 짓.
그래.
이런 여자를 상대해야 할때, 가장 처음 해야 하는 일은 이것이다.
“그럼 책임 질 사람이 따로 있다는 말이네?”
“네? 네. 아카데미의 교수님들께서—”
아주 고아하고, 고상하고, 우아하게.
목청을 높이면서!
“이게 말이나 되나?! 책임자 불러!!”
“아, 안 됩니다. 교수님들께선…….”
“당신이 책임질 수 있어? 책임질 수 있냐고!!”
“그, 그건…….”
“내가 누군지 알아! 으이?!”
권력의 힘을 사용하는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