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소녀검성-33화 (33/47)

〈 33화 〉 #032 삥 뜯으면 정답이 나와요(2)

* * *

32.

—대략 7시간 전.

“진짜 이게 다야? 뒤져서 나오면 하나에 열 대야. 알지?”

“쥔짜입니돠…. 쥔짜 구궤 다윕니다…….”

“입은 때리지 말 걸 그랬나.”

실베니아는 좀 아쉽다는 눈치로 볼을 긁적였다.

자꾸 ‘나는 절대 굽히지 않는다!’ 라며 자존심을 세우길래 손이 먼저 나가긴 했는데, 좀 많이 때린 게 문제인지 이 자식 발음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충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이, 이것 좀 놓고 얘기하자. 비밀 유지 조항 때문에…….”

혓바닥이 길어서 일단 좀 때렸고.

—빠악!

“자, 좜깐. 내가 잘못했다. 사정을 설명할 시간을…….”

말끝이 짧아서 좀 더 때렸고.

—빠아악!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다 시켜서 하는 짓입니다! 저도 아무것도 모르—!”

모른다길래 더 때렸다. 모르면 알 때까지 맞아야지.

—빠아아악!

“즈, 증표를… 훔쳐 오라고만 했습니돠. 구궤 돠음 시험에서 어떻게든 쓰일 거라는 건 알쥐만, 좌세한 내용은 정말로 모릅니돠. 저는 일개 학생입니돠….”

“어디다 쓰는지도 모르는데 왜 훔쳐 멍청아.”

“줘는 그냥 시키는 뒈로…….”

“팍 씨. 누가 말대답하래?”

“……….”

“도둑놈 새끼가 말이야. 내가 멀쩡히 길 가는 사람 삥 뜯는 게 아니잖아. 이게 다 인과응보고 뿌린 대로 거두는 거야. 알지?”

“………….”

“대답 안 해?”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애님 만세 만세 만만세!”

카드론은 정말로 억울해 미칠 지경이었다.

법이 훌륭하다지만 언제나 주먹은 법보다 빠르기 마련이고, 당장 신입생도 아니고 응시생한테 이렇게 쳐맞았다고 어디 가서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대체 어쩌란 말인가?

대답을 하면 하는대로 건방지다고 때리고, 안 하면 대답이 늦다고 때린다.

게다가 타격하는 힘은 최소한으로, 사람이 끔찍한 고통을 느끼는 부분만을 정확하게 타격한다.

사람 패는 일을 수십 년은 해 본 장인의 손길이 이러할까.

당장이라도 저 골목 너머에서 누군가 고개를 들이밀어 주지는 않을까 싶었지만, 그런 희망찬 구원자는 안타깝게도 찾아오지 않았다.

실베니아의 얼굴에 맑은 웃음이 걸쳐졌다.

“어쨌든, 그럼 다른 애들한테도 훔쳤다는 거지?”

“그, 그렇습니다만…….”

“다 내놔.”

“예, 예?”

“? 물음표를 붙여? 뒤질래? 대답은 ‘네’ 아니면 ‘아닙니다’. 덜 맞았냐?”

“아, 아닙니다…….”

“그럼 내놔. 빨리. 시간 없다.”

“넵…….”

뭐, 대충 그렇게 몇 분.

무의미한 반항과 저항이 잠시 이어졌지만 폭력 앞에 손쉽게 굴복했다.

로렌스가 마법사를 내쫓고 그 골목에 다다랐을 때에는, 이미 모든 상황이 정리된 이후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금.

“대충 그랬다.”

“하하! 농담 실력이 출중하시네요.”

“진짜야.”

“……….”

요즘 애들은 대체 얼마나 불신과 부정으로 가득 찬 환경에서 자라는 걸까?

진실을 말해줘도 머리에 닿지를 않으니, 그야말로 통탄할 일이다.

왜 못 믿는가 싶었더니— 소니아는 머리카락을 곰실거리며 말을 이었다.

“나, 나는 옷깃도 못 스쳤는데요…….”

“뭐? 그 호구를? 농담도 심하네.”

“나만 그런 줄 알아요?! 다들 그럴 걸요! 아뇨, 분명히 다들 그래요!”

“그거 자아도취야. 자아존중감을 좀 낮출 필요가 있구나.”

나는 ‘아니라니까요!’라며 온 힘을 다해 부정하는 소니아를 무시하곤 대충 창 밖을 살펴 보았다.

‘시험 시간은 종료 시간만이 명시되어 있었지.’

그것이 뜻하는 바는 명료하다. 달리 무엇이 있겠는가?

지금 당장.

그 뿐이다.

그리고 그 생각에 확신의 방점을 찍어 주듯이—

—콰아아아앙!!

저 멀리서 붉은 화염의 폭풍이 솟아 올랐다.

전투, 혹은 결투를 알리는 누군가의 첫 번째 공격이다.

그리고 그것을 신호 삼아, 다른 충격음도 잇달아 들려오기 시작했다.

강철의 소리이기도 했으며, 누군가의 비명이기도 했고, 마법의 시동음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는 소니아를 돌아보며 물었다.

“이봐. 그럼 응시생들 모두가 증표를 도둑질 당한 거냐?”

“네? 아뇨, 모든 사람이 다 도둑질 당한 건 아닐 거예요. 도둑질의 대상이 된 사람은 극히 일부에요. 그 도둑을 때려잡은 사람은… 더더욱 일부구요.”

“흐음.”

하긴, 생각해 보면 천 명에 이르는 응시생들을 하나하나 도둑질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것이고, 어떤 방식으로든 선별된 기준이 있을 터.

나와 이 녀석의 외견적인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그러면 좀 만만해 보이는 호구들만 골라서 도둑질했다는 건가? 기분 더럽네.”

“네? 아, 아뇨. 내가 듣기로는 엘리트들만 대상이 됐다던데…….”

“네가 엘리트냐?”

“나는 그래도 나름 엘리트라고 자부하는 편인데요!”

“고작 좀도둑한테 털리는 게 무슨 엘리트냐? 주제 파악부터 해라. 그게 엘리트 되는 지름길이야.”

“그런가…?”

“그런 거다.”

그런 거였나……. 하고 중얼거리는 것을 보니, 그래도 받아들이는 건 빠른 모양이었다.

…허리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증표를 줍는 꼴은 좀 구차하긴 했지만 말이다.

나는 무릎을 꿇고 주섬주섬 증표를 주워섬기고 있는 소니아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삥땅 칠 생각 하지 말고 모아 놔.”

“왜요? 어차피 다섯 개 빼도 열 개는 남는 것 같은데! 나 좀 줘요. 치사하게 그러지 말고.”

“다 쓸 데가 있어. 남으면 너 준다.”

“에…….”

“이스가르의 차남, 르베론이 명예를 걸고 그대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흥, 번지르르한 귀족님 면상 밟아볼 기회가 이리 빨리 올 줄 몰랐는데!”

연신 들려오는 강철과 불꽃의 소음과 마나가 폭발하는 소리, 너 나 할 것 없이 만만한 놈을 골라 결투를 신청해대는 현장…….

아수라장이라는 단어를 현실에서 만들어내면 딱 이런 모양새가 되리라.

달리 말하자면, 또 다른 단어로도 축약할 수 있겠다.

“난장판이구만.”

이미 나무집들 중의 반은 박살이 나서 조각만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고, 나머지 반은 이미 불에 타서 땔감으로 전락한 뒤였다.

대충 봐도, 문제를 진지하게 풀고자 집중하고 있는 놈보다 만만한 놈 없나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놈이 훨씬 많았다.

당장 난장판이 되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상호 동의 하에 결투’ 라는 조항 때문이리라.

그게 없었으면 뒤통수와 속임수가 난무하는, 명예 따위 개나 줘버린 현장이 되었을 테지.

“학생 수준으로는 거의 푸는 게 불가능한 문제들이에요. 증표를 모아서 몇 개의 답을 알아내는지… 아마 그 승부가 되겠죠.”

“확실해? 너도 못 풀어?”

“나, 나는 당연히 풀 수 있죠! 하지만 시간이 모자라요. 새벽이 아니라 정오 즈음 까지면 풀 수 있을 것 같은데…….”

“쟤는 벌써 푼 것 같은데?”

“네?”

소니아의 멍청한 대꾸에 나는 팔을 들어 저 앞쪽을 가리켰다.

다른 모든 게 다 풍비박산나고 있는 와중에도 광장 중앙에 위치한 안내소만큼은 보호되고 있었다.

아까 번호 푯말을 받은 그곳이었으며, 지금 내가 향하는 목적지이기도 했다.

그곳의 주변에서는 보호 구역이라는 점을 이용하여 진지하게 문제를 풀고 있는 몇몇 응시생들이 몸을 의탁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몇몇은 벌써 어디서 줘 터지고 왔는지 대기중인 신관들에게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앉아 있는 가운데에, 서 있는 녀석이 한 명.

발 끝까지 흘러내리는 로브를 걸친 작은 여자아이가 안내원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찍었겠죠. 걸어다니는 계산기가 아닌 다음에야, 벌써 풀 수 있을 리가…….”

그 때, 소니아의 투정이 개소리라는 것을 때맞춰 증명이라도 하듯이 안내원의 맑은 목소리가 귓가를 때려왔다.

“확인되었습니다. 13­a 수험생, 버드나무의 아셰카. 제출한 시험지는 수정할 수 없습니다. 괜찮으십니까?”

“……상관없어.”

“알겠습니다. 응시에 감사드립니다.”

아셰카라 불린 여자아이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데스크에서 내려왔다.

흔들림 없고, 고고하기까지 한 걸음걸이다.

분명 혹독한 가르침 끝에 몸에 벤 것이리라.

고고하고, 드높으며— 그러나 귀족의 오만과는 다른 종류의 기만이 벤 몸짓.

나는 저러한 몸가짐을 지닌 족속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래, 마녀의 것이군.’

내 친애하는 벗, 월계수의 로우렐이 그러했듯이 저 소녀 또한 마녀의 움직임을 보였다.

저 나이에 칭호를 지닌 마녀라면 어찌 생각해도 저 소녀의 정체는 하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내 생각에 쐐기를 박듯이 소니아의 고함이 고막을 때렸다.

“아, 아, 아셰카요?! 마탑의 후계자!”

“……너, 입 한 번 열 때마다 엘리트다움이 뚝뚝 묻어 떨어지는 거 알고 있냐?”

“앗, 드디어 내 엘리트 포스를 알아보신 건가요?”

“뚝뚝 다 흘리고 다녀서 이젠 안 남았다는 뜻이야.”

“뭐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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