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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43화 (43/475)

〈 43화 〉 43화 : 용사여, 무엇을 택할 것인가? (2)

* * *

벽 바깥으로 날아간 드와트가 팔을 뻗으며 괴성을 질렀다.

“불타버려어어어!!”

마녀의 손바닥에서 검푸른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보기만 해도 알겠다, 저거 맞으면 불에 타는 게 아니라 녹아버릴 거야!

지금이라도 방 밖으로 나가야 돼!

“움직이지 마세요.”

“네?! 아니, 지금 그게 뭔……!”

보라머리 마녀는 나를 제지하곤 머리 위로 빠르게 손을 빙빙 돌린 후,입가에 갖다 대고 후우 불었다.

손바닥 위 꽃잎이나 고작 날릴 정도로 약한 바람이다.

저 구렁이처럼 입 벌리고 달려드는 화염을 막기엔 역부족인데.

“……!”

그런데, 손바닥을 떠난 바람에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작은 서리가 얼음이 되고 눈이 맺히더니, 종국엔 눈보라가 되어 몰아치기 시작했다.

마녀가 만들어낸 눈보라가 화염을 집어삼킨 후, 뒤로 뱉어버렸다.

……남은 건 겨우 화덕의 불똥이 될까 말까 한 작은 불꽃뿐이었다.

보라머리 마녀는 그마저도 몸을 살짝 틀어 피해버렸다.

이게 바로, 마법……!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이,보라머리 마녀는 한쪽 발을 앞으로 한 발짝 내밀고 바닥을 쿵 내려쳤다.

그대로 좌우로 바닥을 한 번 쓸자, 그 자리를 기점으로 공간이 순식간에 얼어붙으며장벽이 되었고,

콰아앙!

……굉장한 충격파와 함께, 드와트가 그 장벽에 두 손바닥을 마주대고 있었다.

그녀의 두 팔에는 아까 봤던 검푸른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레볼트 언니, 왜 날 방해하는 거죠?”

“네가 내 아가씨를 죽이려고 했으니까.”

“애초에 여긴 왜 왔어요? 언니 집은 반대편이잖아요.”

“내 아가씨 보러 왔지. 마침 창문으로 네가 열불내는 게 보이더구나. 쯧쯔, 드와트, 차였다고 애꿎은 사람에게 화풀이하면 쓰니?”

……그러고 보니 덧창이 열려 있었다.

그렇다.

하마터면 난 이 마녀에게 쪽쪽 당하는 걸 근처 다른 마녀들에게 다 보일 뻔했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몰래몰래 보고 있었을 수도 있잖아?

조졌네.

“그 여자가 내 연인에게 먼저 꼬리쳤다고요!”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네가 잘 간수했어야지.”

…………진짜 놀고들 있네.

헛소리도 정도껏 해야지, 망상환자들끼리 꼴갑 떨고 있어!

하지만 나, 카엘 에스트렐은 분위기 읽을 줄 아는 사람이다.

되게 어처구니없지만, 어쨌든 진지하게 대치 중이니 얌전히 입 다물고 있어주기로 했다.

“어쨌든 물러나세요. 여긴 내 집이고, 저 아이들은 내 손님이에요. 언니가 끼어들 자격은 없어요! 그 아이들을 어쩌든, 그건내 권리라고요!”

“권리? 권리라고? 큭, 크흐흐, 흐흐흐흐!”

보라머리 마녀, 레볼트가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드와트의 붉은 눈이 더 깊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레볼트는 몸을 홱 틀더니 메린의 팔을 잡고 얼음장벽 저편에 있는 자신의 의자매를 비웃었다.

“흐흐, 흐흐흐! 권리라고 했겠다, 드와트! 드디어 이름값을 하는 거니? 아하, 하하하하!”

드와트의 동공이 커졌다.

그녀는 바들바들 떨며,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니야, 아냐아냐아냐아냐! 난 아니야! 나는……! 네 년들과는 달라아아!!”

비명 섞인 외침과 실성한 듯한 웃음소리가 한데 뒤섞였다.

귀를 틀어막고 싶을 정도로 소름 끼치는 이중주다.

레볼트는 나머지 한쪽 팔을 벌리며 다정한 눈으로 드와트를 바라보았다.

“드디어 네가 우리와 같은 곳까지 내려오다니 정말 기쁘구나. 특별~히, 나도 언니로서 본을 보여줄게.”

“헛소리 말고 저리 비키기나 해요! 방해하지 말라고요!”

“흐흐, 흐흐흐! 언니로서, 이름값 하는 본을 보여주고 말고! 드와트, 내 이름의 뜻을 기억하니?”

“……!”

무엇을 깨달은 건지, 드와트가 얼음장벽에 손을 대고 힘을 주었다.

수증기가 생기며, 얼음이 녹아들기 시작했다.

“방해하지 말라고? 비키라고? 싫어.네 명령에 반항하마!”

따악!

레볼트가 손가락을 퉁기자, 눈 깜짝할 새에 눈앞의 풍경이 바뀌었다.

좀더 칙칙하고, 좀더 후줄근한 침실이다.

어디에도 부숴진 벽이 없는 걸 보니, 드와트의 집이 아닌 건 확실한데…….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레볼트에게 물었다.

“저기, 여기 어디,”

“꺄아앙~ 아가씨를 집에 모셔와버렸어~! 이걸 어떡해, 너무 좋아, 꺄아아~!!”

“아, 당신 집이군요.”

그녀는 메린의 팔에 자신의 뺨을 신나게 부비적거리고 있었다.

그것도 내 겉옷 소매를 걷어 올리고.

……참 세밀하기도 해라.

그래도 레볼트는 저렇게 부비적거리는 것 말고 이상한 짓은 안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장본인인 메린이 별 신경도 안 쓰고 주변을 살피기만 하고 있으니, 뭐,그냥 둬도 괜찮겠지.

어쨌든 그녀는 나와 메린을 자신의 집으로 옮긴 듯했다.

혼자도 아니고 세 명을 동시에 옮기다니, 마법이란 건 참 편리하구만.

……엥?

세 명?

“저기, 로나는요?!”

레볼트는 헤벌쭉거리느라 내 말을 듣지 못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메린에게서 그녀를 떼어냈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약간 뾰로통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로나? 아아~ 그 꼬맹이요? 거기 있겠죠.”

“거기? 뭐야, 지금 걔만 드와트랑 같이 두고 온 거에요?!”

레볼트는 콧방귀를 뀌었다.

“착각하나본데, 당신도 곁다리에요! 아가씨가 댁 팔을 잡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같이 왔구만, 고마워하진 못할 망정!”

“이 사람 말이 맞아. 카엘, 너 임마, 도와준 사람한테 그러는 거 아니다!”

“꺄아~ 역시 아가씨야!”

……응? 내가 잘못한 거야?

로나만 쏙 빼놓고 온 이 사람이 아니고?

아무튼 여기가 섬 어느 부근에 있는지는 알아야 한다.

레볼트는 내 물음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대답했다.

“여기요? 탑 기준으로 드와트네의 정반대편 방향이요. 왜요? 설마 다시 그 집으로 가려는 건 아니죠?”

“아니, 아무리 그래도 로나 혼자 내버려둘 순……”

“아서라, 아서! 오히려 그 꼬맹이 혼자 있는 게 훨씬 안전할걸요? 괜한 걱정 말고,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나 생각하지 그래요?”

어떻게…….

그러네.진짜 어떡해야 되지?

나도 모르게 벽에 다가가, 벽을 기대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상의하려던 드와트는 그 모양이고, 이 사람은 일단 메린의 목숨을 구하긴 했지만 어쨌든 똑같은 족속일 거고.

네이멜은…… 집을 모른다!

그 숲을 하루종일 돌아다니더라도 절대 못 찾을 자신이 있다.

……어머니는 어떨까?

어쨌든 자기 자식인데, 도와주지 않을까?

그 엘프 마녀, 옵센이 수장 앞으로 보내버렸지만 어떻게 접촉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푸핫!”

갑자기 앞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여러 옷가지를 손에 든 레볼트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왜 갑자기 웃고 그래요?”

“아니, 어떻게 폴레한테 부탁하려고 해요? 푸하하, 차라리 베르메 앞에 엎드리는 게 더 낫지!”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왔던 모양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게 뭐 어때서요? 위슨 어머니잖아요.”

레볼트는 혀를 차며 검지손가락을 흔들었다.

“어머니면 뭐해요? 미쳤는데. 이름에 완전히 잡아먹힌 미친년 중의 미친년인데. 이름값도 하면서, 미치기도 하고. 푸핫, 우리 중에 불쌍하고 웃긴 애라니까.”

이름에 먹혀……?

그러고보니 아까도 이름값이 어쩌고 했던 것 같은데.

“저기, 레볼트라고 했죠? 이름에 먹히다니, 그게 무슨 뜻이에요?”

“우리 이름이요. 당신, ‘이름 없는 마녀’ 만났죠? 그 사람이 뭐라뭐라 알려주지 않았어요?”

“예? 어어, 뭐…… 영혼을 담는 그릇의 성질이 어쩌고…….”

레볼트는 들고 있던 옷들을 테이블에 놓고,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건 그렇고, 이 사람 메린에게만 차를 내줬다.

대놓고 차별하네.

“흐음~ 그럼 거진 다 들었네. 의식을 마친 ‘마일린의 딸’은 각자 그릇의 성질을 새 이름으로 삼아요. 옛 이름은 그대로 없어져버리고요.”

레이스가 잔뜩 달린 짙은 감청색 옷을 들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그녀는 말을 이었다.

“예를 들면, 내 옛 이름은 마놀이에요. 하지만 지금은 레볼트 (Révolte),반항의 성질을 갖죠.”

반항의 마녀는 하나하나 열거하기 시작했다.

올바르고 공정한, 그리고 권리의 드와트 (Droit).

질서의 오드르 (Ordre).

음란한 옵센 (Obscène).

그리고……

“광기의 폴리 (Folie). 하지만 다들 폴레 (Folle), 미친년이라고 부르고 있죠.”

“그럼 네이멜을 ‘이름 없는 마녀’라고 부르는 건……”

“그 말 그대로에요. 의식을 안 치러서 새 이름이 없으니까, ‘이름 없는 마녀’인 거죠.”

그런 구조인 거구나.

이 섬의 마녀들은 정식 일원이 될 때, 영혼을 담는 그릇의 성질을 강화하며, 제 그릇의 성질을 새 이름으로 삼는다.

그리고 강해진 그릇은,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결국 영혼을 집어삼킨다.

그럼 그 사람은 그릇의 성질만을 좇으며 살게 된다.

즉,

“……이름에 먹혔다는 건, 영혼이 그릇에 완전히 먹혔다는 소리로군요.”

“맞아요.”

즉, 위슨의 어머니는 진짜 완전히 미쳤다는 것이다.

옵센, 그 엘프 마녀가 이성을 잃고 미쳐서 변태의 길을 걷는 것처럼, 위슨의 어머니는 광인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그럼 뭔 짓을 하게 되는 거지?

잘 상상이 안 되는데.

“우리 중 누구도 폴레…… 아니, 폴리가 뭘 할 지 몰라요. 그러니 무슨 계획이 있는지는 몰라도, 걔는 안 끼는 게 좋을 거에요. ……좋아, 이걸로 하자!!”

“엥?”

레볼트의 어조가 갑자기 확 올라가더니, 메린을 끌고 집 안쪽으로 들어갔다.

“엥? 뭔데요?” “됐으니까 얼른 그거 벗어요!!” ……라는 불온한 소리와, 무언가 천이 스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잠시 후, 레볼트가 메린의 손을 잡고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돌아왔다.

“짜잔!! 어때요? 내 아가씨, 너무 사랑스럽고 아름답지 않나요?!”

“……”

흥분한 얼굴로 가쁜 숨을 쉬는 변태 옆에, 주황색 드레스를 입은 메린이 서 있었다.

아마 메린의 눈동자 색에 맞춘 거겠지.

메린은 길게 땋아 내렸던 갈색머리를 풀고 있었다.

머리카락 일부는 앞쪽에 늘어뜨려서 절반쯤 드러난 어깨를 덮고 있다.

가슴까지 깊게 파인 네크라인은 단추로 여며져 있는데, 일부러 살짝 조이게 되어 있는지 가슴골이 만들어져 있었다.

허벅지까지의 선은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그 아래부터는 윤곽만 겨우 보이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확신했다.

저거 분명, 걸을 때 다리에 붙는다.

신발은 원래 신고 있던 롱부츠 그대로였다.

뭐, 그걸 감안하더라도……

“……네에, 뭐…… 예쁘네요.”

“그렇죠? 흐흐, 으흐흐흐……! 아, 이거 당신 거죠? 빨리 치워요.”

“남의 옷 막 던지지 마요!”

처참하게 내던져진 겉옷을 주워 걸치고, 다시 메린을 돌아보았다.

평소에 치마를 잘 안 입어서 그런지, 어딘지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기색이다.

근데 예쁘긴 한데……

“……딴 거 없어요? 옷 챙겨주시는 건 고맙지만, 그건 부적합한 복장 같네요.”

“이 완벽한 모습을 두고 무슨 그런 망발을?!”

“아니, 그거 야회복이잖아요! 야회복 입고 어떻게 밖을 돌아다녀요?”

“어머머, 아가씨가 왜 나다녀요?! 여기서 나랑 쭉 살 건데!”

아니, 누구 맘대로…….

일단 그 부분은 무시하기로 했다.

“얘도 맘에 안 들어할걸요? 그러니 괜히 상처받지 말고……”

“웃기지 마요! 당신이 아가씨에 대해 뭘 안다고 그래요?! 세상에 예쁜 옷 싫어하는 여자가 어디 있다고! 동정 주제에 나서지 마요!”

“맨 마지막 건 상관없잖아! 그보다 누가 도, 동정이야?!”

“옵센이 유혹 마법 걸었을 때 알았다고 했거든요! 이미 소문 다 퍼졌어요!”

“아아아!! 창조주시여, 제발 그 망할 마녀 좀 어떻게 해주십쇼!!”

갑자기 날벼락을 때리든 자다가 영혼을 뽑아가든 제발 좀!!

그건 그렇고, 젠장, 역시 이 사람도 말이 안 통해!

어쩌면 이 사람도 메린에게 마법을 걸지도 몰라.

제기랄, 도망가도 금방 도로 잡힐 거고.

지금 방심하고 있을 때 먼저 덤벼야 되나?!

메린은 자신이 입은 옷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몇 걸음 걸어본 후, 레볼트에게 말했다.

“……이 옷 불편해요. 셔츠랑 바지 없나요?”

“으아아앙!!”

레볼트는 제자리에 털썩 엎드렸다.

무언가 수를 쓸 기미는 없어 보였다.

“……훗.”

거 봐, 내 그럴 줄 알았지.

소소한 승리감과 함께, 이 사람에 대해 안도감을 느꼈다.

작은 소란이 끝난 후, 나와 메린, 그리고 레볼트는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메린은 셔츠와 바지로 갈아 입었는데, 원래 치수가 큰 걸 줄인 듯했다.

뭐, 이 마녀도 남자 데리고 있을 테니 남자 옷이야 있겠지.

정작 그 남자는 어디 있는지 보이진 않지만.

“그래서 언제 떠나실 거죠?”

메린이 옷을 갈아입은 것에 시무룩했다가, 그녀와 마주앉고 있다는 사실에 헤벌쭉거리며 레볼트가 물었다.

“……글쎄요.”

“아, 맞다, 아직 우리 중에 누가 갈지 결정이 안 됐구나. 히히, 내가 같이 가고 싶은데, 흐흐흐…….”

“아니, 그건 좀.”

상대적으로 괜찮긴 하지만, 어쨌든 이 사람도 변태잖아.

아니, 그보다도 마녀와 같이 간다는 건…….

“그럼 뭐, 위슨을 구할 거에요? 흐음, 아쉽긴 하지만 그러고 싶다면야 뭐.”

“그건…….”

이상하게도, 곧바로 긍정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마법을 난사하는 걸 눈앞에서 본 탓일까?

“아니, 사내가 뭐 이리 딱딱 끊어지는 맛이 없어? 설마 아직 결정 안 했던 거에요?나 참,우리 중 하나랑 같이 여길 떠나든가, 아니면 위슨을 구하든가. 이렇게 분명한 걸 아직도 고민하다니.”

“……”

……알고 있다.선택지는 매우 간단하다.

위슨을 버릴 것인가, 말 것인가.

레볼트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뭘 그리 고민해요? 둘 중에 하고 싶은 거 하면 되잖아요?”

아잇, 진짜. 누가 욕망대로 사는 마녀 아니랄까봐.

나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잖아요.”

“그래요? 당신은 뭘 하고 싶은데요?”

“그야……”

위슨을 구하고, 이 섬을 나간다.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이 선택밖에 없지 않은가.

하지만,

“하지만…… 너무 위험하잖아요. 우리만 무작정 쳐들어간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알아요. 그래서 드와트나 하다못해 폴레에게 부탁하려고 했던 거잖아요?좋아요, 당신이 그만 고민하도록 결정적인 조언을 해주죠. 내 아가씨를 위해.”

결정적인 조언? 나는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레볼트는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떤 마녀도 베르메를 이길 수 없어요.”

“……네?”

“모든 마녀가 한꺼번에 덤빈다 해도, 베르메를 이길 수 없어요. 그 애가 괜히 수장을 맡고 있는 게 아니에요. 그만큼 강하다고요.”

그렇다는 건, 위슨을 구할 수 없다는 말이잖아?

여기서 잡혀 죽을 수는 없으니, 결국 나에겐 마녀와 손을 잡는 선택밖에 없다는 소리가 된다.

“당신, 드래곤 토벌하러 간다면서요? 그럼 딱 봐도 위슨보다는 우리가 더 낫지 않아요? 뭐가 더 중요한지 명백하잖아요.”

아니, 그래도 그건.

그 애를 버리는 건…….

“……당신, 진짜로 원하기는 하는 거에요?”

“네?”

마녀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정말로 위슨을 구하고 싶냐고요. 그냥 죄책감 느끼기 싫은 건 아니고?”

“그건……”

“우리는 있죠, ‘내가 원하는 것’밖에 몰라요. 위험? 후폭풍? 대가? 흐흐, 몰라요, 그런 거! 그딴 거 신경 쓸 시간에, 어떻게 해야 내가 원하는 걸 가장 확실하게 손에 넣을지만 생각하는걸요.”

마녀는 두 손을 펼치며, 서늘하게 웃었다.

“설사 내 몸이 불타 잿더미가 되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죽더라도 상관없어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내가 완전히 죽어버리니까.”

이성이 없어진 영혼엔 욕망만이 날뛴다.

심장이 쥐어 짜이고, 머릿속을 새하얗게 태우는 듯한 충동만이 남는다.

심장이 터지기 전에, 머릿속이 잿더미가 되기 전에 풀어야 한다.

욕망을 해소하기 전까진 잠도 오지 않고, 음식물도 목구멍을 넘어가지 않는다……!

“……우린 그렇게 원하는 걸 손에 넣었죠. 때로는 누군가에게 엎드려 빌고, 때로는 누군가를 짓밟고, 때로는 나 자신조차 잘라가며.”

자아, 다시 묻겠어요.

마녀가 속삭였다.

“당신이 원하는 건 무엇이죠?”

나는……

테이블에 올려놓은 두 손에, 저절로 힘이 꽉 주어졌다.

“아, 이런. 대답 듣고 싶었는데.”

“네?”

갑자기 레볼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기지개를 쭉 펴며, 우리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방금 굉장히 안 좋은 소식이 왔거든요.”

“무슨 소식이요?”

문득, 마녀들의 소문은 번개처럼 빠르다는 말이 떠올랐다.

레볼트는 재미있다는 듯이 히죽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드와트가 나랑 당신들을 고발했어요.”

“예? 고발이라니 그건 또 뭔…….”

“조수에게 상해를 입혀서 납치하고, 집을 부수고, 자신을 위협하고…… 희롱했다나?”

“아니, 희롱은 내가 당했구만!”

앞의 세 개는 어쨌든, 마지막 건 절대 인정할 수 없었다.

……응? 잠깐, 조수를 납치했다니?

“어머, 그래요? 지금 드와트가 당신이 강제로 자신을 앉혀서 입맞추려고 했다며 질질 짜고 있는데.”

“그 망할 년이 씨발 진짜 주둥이 찢어버릴라!!”

난 내가 꽤 점잖은 편이라고 자신하고 있었는데, 이 섬에 온 지 이틀만에 지금 내 입에서‘씨발’이 몇 번이나 튀어나오는 거냐.

이야~ 진짜 대단하다, 마녀들.

평생 추억에 남을 것 같다, 마녀의 숲아!

“……근데 당신은 왜 껴 있어요?”

우리 셋은 그렇다치고, 이 사람은 왜 같이 고발당했지?

레볼트는 어깨를 으쓱였다.

“저요? 걔네 집 부쉈잖아요.”

“아.”

맞다.

이 사람이 벽을 부쉈지.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데요?”

“으응~ 순순히 자수하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거래요. 거부하면 체포하고 감옥에 넣을 거고. 그래서 답했죠.”

“뭐라고 했어요?”

레볼트는 방긋 웃었다.

“꺼지라고.”

“……”

그렇군.

이게 바로 이름값 한다는 건가.

메린마저도 어이없다는 눈으로 마녀를 보고 있었다.

“진짜 이름대로 사네요.”

“훗훗훗, 이게 바로 마녀랍니다, 아가씨! 하지만 걱정 말아요. 아가씨는 내가 빠져나가게 해줄게요. 뭐, 부스러기도 겸사겸사 같이 보내고.”

……부스러기.

나 말하는 거겠지?

쾅! 쾅! 쾅!

갑자기 현관문을 기점으로 집 전체가 울렸다.

“네~ 누구세요~?”

레볼트는 정중한 노크를 들은 것처럼, 느긋한 목소리로 답했다.

……문은 열지 않은 채.

“안녕, 레볼트~ 너 잡으러 왔어~ 얼른 나와~”

그녀에게 맞춰주는 듯이, 바깥에서도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꼭 놀러가자고 권하는 듯한 말투이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늘어진 목소리 뒤에 숨겨진, 싸늘한 적의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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