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54화 (54/475)

〈 54화 〉 54화 : OO의 마녀는 스스로를 걸었습니다 (2)

* * *

개가 물려고 막 달려들 때 해야 하는 건 딱 둘이다.

하나는 돌이나 흙을 던지는 거고, 다른 하나는 팔 한짝을 물려 있는 동안 대가리를 패는 것이다.

두 번째 건 흔히 말하는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다’는 전법인데, 난 못하겠더라.

아무튼 사람만큼 큰 개일지라도 돌 던지면 도망가길래 불변의 법칙인 줄 알았는데.

대가리가 사람만한 개에겐 전혀 먹히지 않는 걸 보니 아니었던 모양이다.

역시 크기가 깡패야.

“그보다 왜 나한테만 지랄이냐, 씨바아아아알!!”

“크우어어엉! 끼이잉……”

심각하게 큰 발이 내 바로 옆의 바닥을 내리찍길래, 본능에 맡겨 검을 휘둘렀다.

뭘 벤 것 같은 느낌도 나고, 위쪽에서 낑낑대는 소리도 들리지만 확인할 여유는 없다.

난 지금 구르느라 바쁘다.

단 일 초도 멈출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발이 날아오고, 또 다른 발이 날아오고, 가끔 이빨이 달려들고 있으니까.

하도 굴러서 그런지 내가 지금 어디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내 바로 근처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젠 나 스스로를 잘 모르겠다.

사실 난 인간이 아니라 공벌레였던 게 아닐까?

이따금 팔이 앞 또는 위로 휘두르고 있으니 팔 달린 공벌레인가?

근데 공벌레는 땅을 못 구르잖아.

그럼 난 뭐지?

응?

갑자기 눈앞이 시꺼매졌다.

“앗.”

이런. 너무 되는 대로 굴러다녔는걸?

나도 모르게 헬하운드 발치로 가다니, 하핫.

“꺄아악!”

깜짝 놀라서 성검을 휘둘렀다.

동시에, 놈도 내가 지한테 굴러올 줄은 몰랐는지 화들짝 놀라며 앞발을 마구 휘둘러댔다.

덕분에 놈의 발은 검에 닿지 않고 무사했지만, 나는 놈의 발에 걷어차여 버렸다.

“크으으윽!”

본능적으로 성검을 내민 덕분에 발톱에 찢기는 건 피할 수 있었다.

이제 바닥을 구르는 몸을 부드럽게 멈추기만 하면 된다.

운 없이 어디 비석에 박아서 머리 깨지기 전에!

“아쿠아!”

물컹하는 느낌과 함께 몸이 멈추며, 거친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른 통증이 느지막하게 뒤따라왔다.

드디어멈췄어……

멈추고 보니 알겠다.

역시 난 인간이었다.

인간은 자고로 일어서서 두 발로 다녀야지, 구르는 건 안 맞아.

아니면 이렇게 아플 리가 없지.

숨도 차서 미칠 것 같다.

저 씨발, 개 같은 새끼들…… 아니, 개 맞구나.

……그나저나, 이 물컹한 건 뭐지?

몸을 일으키고 살펴보니, 엄청나게 큰 물방울 하나가 둥실 떠 있었다.

난 거기 파묻히듯이 누워 있던 거였다.

“어이구………… 다행히………… 늦진………… 않았…………구먼………………

괜………………찮은…………가…………?”

그 물방울 뒤에, 커다란 거북이가 속이 터질 만큼 굉장히 느릿느릿한 말투로 말하며 껄껄 웃고 있었다.

말하는 거북이……

아, 그래, 위슨이 계약한 정령 중 하나였지.

“아쿠아! 놈들을 막아!”

위슨의 명령을 들은 거북이가 허허 웃더니, 제자리에서 폴짝 뛰면서 등껍질 안으로 몸을 쑥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대로 세로로 굴러가서 헬하운드 한 마리를 들이받았다!

정령 대단해!

그러고도 거북이의 회전은 멈추지 않았고, 이번에는 다른 헬하운드들을 약올리듯이 주변을 빙빙 돌다가 한 대씩 툭툭 쳤다.

……곧헬하운드들이 미친듯이 거북이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도발 장난 아니네.

그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위슨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카엘 씨!”

“으윽…… 괜찮아, 괜찮아. 덕분에 살았어. 고맙다.”

손을 흔들며 말하는 내 모습에, 위슨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상태라 안 보였는데, 지금은 눈높이가 맞으니 위슨의 맨얼굴이 훤히 보였다.

머리를 길게 풀어헤치고 있어서 그런지, 좀 잘생긴 여자애 같다.

이번 일이 끝나면 머리 묶으라고 할까…….

“카엘 님!”

로나가 허겁지겁 달려와선발치에 철퇴를꽂고, 나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세상에……! 죄송해요, 설마 일곱 마리 전부 카엘 님한테 달려들 줄은 몰랐어요!”

“그러게…….”

그렇다.

나 스스로 하나의 공이 되어 굴러다녔던 건, 헬하운드 일곱 마리가 전부 나를 향해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최소 한 입은 뜯길 줄 알았는데, 그냥 몇 번 할퀴어지고 바닥만 데굴데굴 구른 걸로 끝난 게 어디야.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모르겠네.

저 개놈들, 왜 나만 노린 거지?

“그래도 굉장한 성과에요! 카엘 님이 두 마리, 메린 님이 한 마리. 벌써 세 마리나 잡다니!”

“뭐? 내가 둘이나 잡았어……?”

전혀 기억에 없는데.

……발버둥치는 거에 썰렸나?

갑자기 로나가 약간 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무리 이걸 노리셨어도 그렇지,스스로 미끼가 되시면 어떡해요?너무 위험하잖아요! 다시는 그러지 마세요!

……그래도 역시 카엘 님이에요. 다른 사람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시려 하다니. 저 너무 감격했어요!”

“아니야…… 그건 진짜 아니야…….”

난 내 몸과 목숨을 사랑하는 평범하고 상식적인 사람이다.

콰아앙!

거북이 등껍질이 저 멀리 날아가, 포탄 떨어지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박혀버렸다.

그것도 뒤집어진 채로.

“저런.”

위슨의 반응을 보니 혼자서는 못 일어나는 듯했다.

헬하운드 네 마리가 일제히 거북이를 향해 불꽃을 내뿜는 동시에, 위슨이 거북이를 향해 손가락을 퉁겼다.

거북이는 시뻘건 불꽃에 먹히기 직전에 연기가 되어, 위슨의 손바닥에 모여 작은 유리병이 되었다.

“우우우­­­­­­”

헬하운드 네 마리가 하늘을 향해 한 번 울더니, 일제히 몸을 돌렸다.

두 말할 것 없이, 나를 향해서.

……아니, 대체 왜?!

“가봐야겠네요. 사제님, 여긴 부탁드릴게요.”

“너 혼자선 위험해……! 으윽.”

“걱정 말고 회복이나 하세요. 저기 메린 씨도 있고……애초에 전 혼자가 아니니까.”

위슨은 로나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헬하운드들을 향해 달려갔다.

“플라마! 테라!”

위슨의 호령 소리에 응하듯이 울음소리가 들리며, 스라소니와 늑대가 나타났다.

유리병을 깨뜨리지 않아도 목소리로 부를 수 있는 듯했다.

“제1구속 해방! 숯덩이 개 따위 부숴버려!!”

우와.

스라소니의 두 귀와 네 발 끝에 불꽃이 피어오르고, 늑대는…… 뭐가 달라졌지?

아무튼 두 정령 모두 몸이 커졌다.

그래도 아직 헬하운드보다는 작다.

싸움에서 우위를 가지려면, 상대보다 몸집이 커야 할 텐데.

“으으윽!”

……갑자기 격통이 느껴지며 몸이 움츠러들었다.

“앗, 죄송해요! 근데 일단 손은 대어야 돼서…… 조금만 참으세요!”

로나가 눈을 감고 가만히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곧 그녀가 손을 대고 있는 부위를 시작해, 점차 통증이 가시기 시작했다.

그동안 다시 상황을 살폈다.

메린과 위슨의 정령 둘이 헬하운드 네 마리를 상대하고 있는데, 비등비등하다.

나나 로나가 끼어들지 않는 이상 결판이 나지 않을 것 같다.

메린의 검이 본래 성능대로 푹푹 박혔다면 금방 끝났겠지만……

그래도 명색이‘지옥의 개’라고, 로나가 축복을 불어넣었는데도 제대로 검이 박히지 않고 있었다.

“응?”

갑자기메린이 달리던 늑대의 등에 올라탔다.

늑대는 싫어하는 기색도 없이, 메린을 등에 태운 채 땅 위를 쏜살같이 달렸다.

“우우우!”

늑대가 크게 울자, 흙이 바닥에서 공중으로 떠올라 굳으면서 하나의 길이 만들어졌다.

빠른 속도로 그 위를 타고 올라간 늑대가, 헬하운드 한 마리를 향해 뛰어내렸다.

“크워어어엉!”

그를 향해 입을 쩍 벌리는 헬하운드의 눈을 스라소니가 할퀴어 버렸다.

늑대의 등에서 뛰어내린 메린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놈의 털을 붙잡고 정수리로 올라갔다.

물론 다른 세 놈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제 동료를 지키려고 달려오는 세 놈을 향해 위슨이 무어라 외치자, 거센 모래바람이 일어나 놈들을 채찍처럼 후려쳐 버렸다.

그 틈에 메린이 놈의 정수리에 검을 꽂았다.

놈의 입에서 나오는 것과는 다른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곧 재가 되어 흩어져버렸다.

이제 세 마리 남았다.

그건 그렇고,

“……누가 보면 같이 다닌 지 꽤 된 줄 알겠어.”

근데 메린은 그렇다 치고, 위슨 쟤, 의외로 잘 싸우네…….

“이제 됐어요!”

로나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팔을 슬슬 움직여보았다.

응. 됐다.

“고마워.”

“히히, 고맙긴요! 그럼 헬하운드들을 해치우러 가실 거죠?”

“음…….”

굉장히 희한하게 완벽한 협동전을 펼치고 있는데, 지금 우리가 거기 끼어들면 오히려 방해만 될 거다.

그렇다고 놀고 있을 순 없으니…….

나는 묘지 맨 안쪽, 비틀린 고목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베르메가 두 팔을 하늘에 쳐든 채, 무어라 혼자 중얼거리고 있다.

그래, 지금이라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로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로나, 마녀 잡으러 가자!”

“……!”

어린 사제님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지며 반짝이기 시작했다.

마치 놀러 가자는 말을 들은 아이처럼 기쁨에 찬 얼굴이다.

“네! 물론이에요! 이 순간을 어찌나 기다렸는지……!”

“뭐? 기다렸다고? ……아니, 돌겠네, 진짜.”

열 넷 밖에 안 된 여자애는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손으로 내 손을 덥썩 잡으며 환호하고 있다.

마치 굉장히 좋아하는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것 같다.

아니, ‘같은’ 게 아니라 그 말 그대로인가?

그럼 얘한텐 마녀 잡는 게 선물이라는 건데.

……조금 많이 심각하며 복잡한 심정이다.

전투사제는 다 이런가……?

한숨이 새어나왔다.

“……너 진짜 다 끝나고 보자.”

“네에?! 왜요?!”

로나는 세상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외쳤다.

그게 이유다, 임마.

헬하운드 세 마리의 주의는 메린과 위슨, 그리고 정령 둘에 온통 쏠려 있다.

베르메는 앞에서 무슨 난리가 펼쳐지든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다.

심호흡을 하고, 로나에게 시선으로 신호하려는 순간,

“……!”

하늘이 더 검어지며, 베르메가 들고 있는 기묘한 단도에 무언가 알 수 없는 기운이 서리기 시작했다.

마녀들이나 위슨에게 나타나던 기운, 마력과는 다르다.

로나가 마녀들을 때릴 때 두 눈에 담았던 그 기운과도 다르다.

단도에 서린 건 좀더 불길한, 어두침침하고 찝찝한 기운이다.

저게 무엇인지는 몰라도, 더 내버려두면 안 될 것 같아!

“가자!”

“네!”

성검을 쥐고 땅을 박찼다.

로나는 철퇴를 쥔 채 내 속도를 맞추며 옆을 달렸다.

“워어어엉!”

역시나, 남은 헬하운드 중 하나가 우리 두 사람을 향해 뛰어왔다.

막으려던 스라소니를 꼬리로 쳐버리고, 놈이 빠르게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카엘 님, 뛰세요!”

그걸 예상했다는 듯이, 로나가 바로 방향을 바꾸어 헬하운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내 옆을 달리던 속도와는 차원이 다르다.

다른 두 마리도 베르메에게 향하는 나를 막으려고 애를 썼지만, 메린과 위슨 덕분에 번번이 그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다.

진짜로, 지금이 기회다!

오베이가 누워 있는 구조물, 아마 제단일 그것에 가까워졌다.

검 자루를 쥔 손에 약간 진동이 느껴졌다.

저 앞에 무언가 있다며 경고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흣!”

발을 멈추지 않은 채, 한손으로 검을 휘둘렀다.

빛의 칼날이 베르메를 향해 날아가다가, 공중에서 혼자 번쩍이며 사라졌다.

역시 막혀 있구나.

베르메와 제단을 둘러싼 듯이 보호막이 쳐져 있는 게 보였다.

그냥 휘둘러 베는 건, 아마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깔아뭉갤 기세로 뛰어든다면……!

근처에 있는 비석을 밟고, 공중으로 뛰었다.

아래로 뻗은 검신이 빛나기 시작했다.

베르메를 향해 떨어지던 칼끝이 공중에서 박힌 듯이 멈추며, 무언가 밀어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보호막이다!

“이까짓 것……!!”

자루를 쥔 두 손에 더 힘을 주어 찔러 넣었다.

성검이 그에 응하듯이 환히 빛나며, 눈부시게 한 번 번쩍였다.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리며몸이 다시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검은 머리 마녀가 눈을 감고 중얼거리는 가증스러운 얼굴이 가까워졌다!

“베르메에에에에!!”

마녀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내 존재를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경악에 빠져 있었다.

그 눈에 내 모습이 비추는 걸 보며, 성검을 내리쳤다.

“크윽!”

바닥에 닿는 충격이 생각보다 더 컸지만, 이를 악물고 버티며내 밑에 깔린 마녀를쳐다보았다.

“하…… 아……”

베르메의 목에 성검이 꽂혀 있었다.

세로로 내리친 탓에 목을 자르진 못했지만, 적어도 이 마녀가 더 중얼거리진 못할 것이다.

“커허억!”

마녀의 입에서 검은 피가 터져 나왔다.

……검은 피?

충격에 빠진 마녀의 두 눈동자가 요동치고 있다.

마녀의 입이 움직였다.

검은 피로 물든 입술이 파르르 떨리며, 소리 없는 말을 자아냈다.

나도 모르게 그 입모양을 읽고 있었다.

목, 을, 잘, 랐, 어, 야, 지.

“……!!”

마녀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퉁겼다.

성검이 찌른 목에서 검은 연기가 터져 나오며 내 몸을 휙 날려버렸다!

“우아아악?!”

날려가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살짝 보였다.

마녀가 나를 날릴 때, 제단에 있던 다른 두 사람도 휘말려서 날아가버렸다는 걸!

기회다!

“로나!! 제단 부숴버려어어어!!”

……들렸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난 말했으니 할 일 다 했다.

아아, 떨어진다~

바닥에 부딪치면 엄청 아프겠지?

“우왁!”

몸을 붙잡은 강한 힘을 느끼며 바닥을 굴렀다.

오늘따라 바닥 너무 구르는데.

더 굴렀다간 속에서 뭐가 올라올 것 같아.

이딴 생각이 바로바로 떠오르는 걸 보니 좀 아파서 그렇지, 나 되게 멀쩡하구나.

나 은근히 튼튼했구나!

……근데 뭔가 부드럽고 푹신한 게 가슴에 닿고 있는데,뭐지?

눈을 떴다.

어디서 많이 본 갈색머리 정수리가 보였다.

“아.”

도로 감았다.

아예 손으로 눈을 덮어버렸다.

아잇. 진짜.

“아야야…… 야, 카엘, 괜찮냐?”

“……응. 괜찮아. 고마워. 이제 그만 놔줘도 돼.”

“괜찮다면서 왜 그러고 있냐? 눈 다쳤어?”

“아니야…… 됐으니까 넌 얼른 일어나기나 해.”

“……?”

녀석이 나에게서 떨어지고 나서야 주춤주춤 일어날 수 있었다.

거듭거듭 말하는 건데, 저 녀석은 지금 위에 셔츠만 입고 있다.

그리고 답답하다면서 위쪽 단추 몇 개는 풀고 있는 상태이다.

셔츠 소재가 좀 두툼한 지, 그냥 봤을 때는 별 티가 안 나지만……

……하아아아아…….

콰아아아앙!

땅을 울리는 진동 소리와 함께, 무언가 단단한 것이 처참하게 부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맞아, 제단!

제단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베르메의 앞에 있던 제단이 ‘제단이었던 돌조각’으로 변해 있었다.

마녀는 아연한 얼굴로 그걸 내려다보다, 분노로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감히이이이!!”

“이단 분쇄!!”

검은 마녀의 단도와 사제의 철퇴가 맞부딪쳤다.

누가 봐도 철퇴의 압승이었을 그 불꽃 튀는 대결은, 단도의 불길한 기운이 강해지면서 철퇴를 밀어내버렸다.

“으으읏!”

뒤로 쭉 밀려난 로나가 다시 자세를 가다듬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철퇴가 다시 닿기도 전에, 마녀는 검은 피를 뚝뚝 흘리면서 공간을 이동해, 저 멀리 날려간 드와트를 그 손에 붙잡았다.

불길한 예감이 등골과 심장을 마구 찔러대었다.

막아야 돼, 잘 모르지만 어쨌든 막아야 돼!

마녀를 향해 뛰었다.

그러나 몇 걸음 채 가기도 전에, 시커멓고 커다란 헬하운드가 내 앞을 막아서서 포효했다.

“워어어어어엉!”

“으아악, 아직도 있었네!”

으윽, 지금 일분일초가 아까운데……!

가능한 빨리 해치워야……

“……앗.”

성검이 없다!

어째 손이 허전하다 했어!

젠장, 아까 날려갈 때 놓쳤나?!

“크어어어엉!”

“카엘!”

메린이 나에게 달려드는 헬하운드의 대가리를 걷어차버렸다.

헬하운드에게 일반적인 공격은 듣지 않는다.

그러나 완전히 영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런지, 순수한 힘에 밀려나가기는 하는 듯했다.

그 틈에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되게 특이하게 생긴 검이니까 바로 눈에 띌 것……

헉. 찾았다!

바닥에 꽂혀 있는 성검을 찾은 건 좋은데, 마녀가 있는 곳과 정반대편에 있다.

저걸 줍고 도로 뛰어가기엔 너무 멀다!

“아잇, 진짜 빌어먹게 일이 꼬이네!”

저거 그냥 나한테 못 날아오나?!

선포식 땐 알아서 검집에 도로 꽂히더만!

“……?”

……착각인가?

검이 약간 흔들린 것 같았는데.

……혹시 내가 일순이나마 다시 날아오길 바라서……?

‘되새겨.’

그래, 저 검은 어쨌든, 내가 바라는 것에 응해주고 있어.

‘불러.’

그렇다면……!

밀쳐져서 아직 정신을 못 차리는 헬하운드를 향해 달렸다.

“카엘?!”

뒤쪽에서 기겁해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몸을 추스른 지옥의 개가 으르렁거리며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커다란 발을 피해 옆으로 구르고, 그 반동을 이용해 다시 일어나, 바닥을 차고 달렸다.

완전히 노출된 개의 옆구리가 보였다.

‘불러!’

알아, 임마.부를 거야!

아주 그냥 목 터져라 소리쳐주마!

“와라!!”

오른손에 익숙한 감촉이 느껴졌다.

굳이 안 봐도 안다.

알 수 있다.

헬하운드의 옆구리를 향해 뛰며, 두 손으로 칼자루를 쥐었다.

“워어어엉!!”

헬하운드가 빠르게 몸을 돌렸다.

소용없다, 이 개자식아!

“네 집으로 꺼져어어어!!”

크게 휘두른 성검이 헬하운드의 이마에서 주둥이까지 쭉 갈라버렸다.

그 상처에서부터 빛이 퍼져나가, 놈의 몸 전체를 완전히 태워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푸헥!”

……그리고 난 그 속에 처박혔다.

멋진 자세로 착지하는 것?

그런 건 평범한 마을 청년 A인 나에겐 머나먼 꿈일 뿐이다. 흑.

어쨌든 아직 안 끝났다.

더럽게 힘들어 죽겠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았다.

잿더미를 헤쳐 나와, 마녀를 향해 다시 달렸다.

로나가 홀로 마녀를 없애려 애쓰고 있었지만, 얄궂게도 마녀는 계속 질풍을 쏘아서 그녀를 멀리 떨어뜨리고 있었다.

마녀는 바닥에 앉아 한 팔로 드와트를 안아 든 채, 로나에게 계속 바람을 쏘는 와중에도 입으로 무언가를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단도는 바닥에 꽂아 둔 채였다.

분명 또 보호막 같은 걸 깔았겠지.

이번에야말로 끝장을 내주겠어……!

호흡을 가다듬고, 마녀에게 달려들려고 했을 때,

“아핫!”

베르메가 짧게 웃으며, 로나에게 바람을 쏘던 팔을 천천히 하늘로 들어올리더니,

그대로 드와트의 가슴에 쑤셔 박았다.

“……!”

나도 모르게 움직임이 굳어 버렸다.

로나 역시, 다시 달려들려는 걸음을 멈추고 놀란 눈으로 마녀를 바라보았다.

베르메는 드와트의 가슴을 찌른 손을 천천히 바깥으로 다시 빼냈다.

그 손에는 일정한 박자로 맥박치는 붉은 살덩어리가 쥐어져 있었다.

저거, 설마……!

베르메는 그 상태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흰자위를 찾아볼 수 없는, 검은 눈 두덩이가 나를 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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